희양산 구간에는 권태도·박춘영·김찬일·성예진 셰르파가 동참했다. 셰르파는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을 움직이는 핵심 멤버들이다. 6만 명이 넘는 여러 프로그램 도전자들을 이끌어주고, 안내해 주는 셰르파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BAC 앱에 매일 도전자들이 올리는 수백 건의 사진을 인증하는 역할, 도전자들과 함께하는 산행에서 가이드 및 대장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쓰레기를 줍는 클린산행도 하며 모범이 되는 산행리더를 자처하고 있다. 셰르파는 급여를 받지 않는 봉사의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셰르파를 선발할 때면 정원보다 훨씬 많은 베테랑
희양산이란 이름으로만 1,000년 넘게 불렸다. 이번 구간 최고봉이 백화산임에도 ‘희양산 구간’이라 부르는 건 산에 얽힌 역사가 깊기 때문이다. 희양산은 신라시대에 봉암사가 세워지면서 이름을 알렸다. 최치원의 ‘봉암사지증대사비문’에는 봉암사鳳巖寺를 세운 지증대사의 터잡기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881년경, 지증대사가 죽기 1년 전의 일이다. 문경에 심충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지증대사가 선禪의 정혜定慧가 넉넉하고 천문과 지리의 이치를 거울처럼 환히 들여다본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가 가진 땅인 희양산에 절을 지을 것을
잎을 간다고 하여 잎갈나무(이깔나무)다.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등은 사계절 푸른 침엽수이지만 잎갈나무는 가을이 되면 붉은 색깔을 띤다. 그래서 낙엽이 지는 침엽수란 의미로 ‘낙엽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잎갈나무는 뉴스에 한 번씩 오르내린 ‘일본잎갈나무’와는 또 다르다. 잎갈나무는 북한이 고향이다. 백두산에 울창한 원시림을 이룬 토종 한반도 나무지만, 애석하게도 국립수목원 광릉숲과 오대산 월정사 등 일부 인공조림한 지역을 제외하곤 남한에 자연산 잎갈나무숲은 없다. 남한의 잎갈나무는 거의 일본잎갈나무로 1904년에 들어왔다. 토종
백화산의 테라스바위백화산에 올라 되돌아보면 발아래 특이한 암벽이 서있다. 위쪽이 평평해 일명 테라스바위라 부른다. 여유가 있다면 야영을 하거나 실컷 시간을 보내고 싶을 만큼 편안하게 보이는 바위다. 굽이굽이 봉우리가 이어진 능선에 눈길이 간다. 저 멀리 희양산의 우람한 암반이 뚜렷이 보인다.백화산 테라스바위, 47x74cm, 한지에 수묵, 2018거대한 암반이 솟은 희양산멀리서도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거대한 암반의 희양산은 봉암사를 품고 있다. 1947년, ‘부처님 뜻대로 살자’는 결사 이후 부처님 오신 날 단 하루만 개방하는 선승
오랜만의 매혹이었다. 구왕봉을 넘어선 순간 나타난 거대한 통바위 희양산은 산꾼의 마음을 꽉 움켜잡았다. 이 산을 스쳐 보내고 싶지 않다는 충동이 끓어올라, 연신 사진을 찍었다. 압도적인 덩치의 신성한 빛을 지닌 흰수염고래가 산이 되어 있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빛나는 화강암 고래를 보고서야, 햇볕 ‘희曦’, 태양 ‘양陽’이란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다만 저 통바위 어디로 길이 나있을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흘러나왔지만, 몸은 이미 달아오르고 있었다. 산에 온 몸 비벼 오를 순간을 빨리 맞고 싶었다. 희양산이 마치 ‘내게 오고
악법도 법이다. 월간과 블랙야크가 함께하는 에코트레일은 비법정구간은 가지 않는다. 백두대간 완주자의 상당수가 비법정 구간을 새벽에 주파하는 방법으로 완주하지만, 에코트레일은 합법적인 정규 등산로만 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난 달, 21구간에서 22구간을 생략하고 곧장 23구간으로 나눈 것은 비법정 구간은 가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비법정인 22구간 문장대~밤티재~늘재 코스를 생략하고, 23구간 늘재~청화산~조항산~대야산 코스로 접어든다. 사실 등산 마니아들은 국립공원의 백두대간 비법정 탐방 코스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백두대간에서 소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100년 후 한반도에서 소나무가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 경고한 바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로 소나무가 자라기 어려운 환경으로 변하고 있으며, 치명적인 남방계 해충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해충으로 소나무 에이즈라고 불리는 재선충병이 있다. 소나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표적인 나무다. 2014년 한국갤럽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의 절반(46%)에 가까운 응답자가 좋아하는 나무로 소나무를 꼽았다. 2~3위로 꼽힌 은행나무와 벚나무가 8%와 7% 응답률을 얻은 것
누가 보더라도 청화산보다 속리산이 명산인데, 이중환은 왜 청화산을 더 높게 여겼던 걸까? 단순히 산의 높이와 산세의 화려함만 본 것이 아니라 산의 성질과 사람이 땅을 일구고 살 수 있는 척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등산적인 가치가 아닌 사람이 기대어 살 수 있는 가치를 더 높게 본 셈이다. 이중환은 에서 청화산의 아름다움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청화산은 내외 선유동을 위에 두고, 앞으로는 용유동을 가까이에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수석의 기이함은 속리산보다 훌륭하다. 산의 높고 큼은 비록 속리산에 미치지 못하지만 속리산같
산이 두려웠다. 술 취한 광인이 귀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것 같은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간꾼의 기를 꺾어놓아 완주를 포기하게 만들기로 이름 높은 바위산의 악명 탓도 아니었다. 제법 많이 걸은 줄 알았는데, 대야산이 첩첩산중 지평선 끝에 있었다. ‘또 야간산행이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걱정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배낭 무게, 얼어붙은 바윗길, 부족한 식수, 촬영 시간 등등. 그렇게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난코스인 대야산 구간이 시작되었다. 일기예보가 빗나가는 건 익숙했다. 오후로 갈수록 맑아질 거라 믿었지만, 산을 오를수록 내면 깊
세속을 떠난 속리산 주능선도는 사람을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하였고,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세속이 산을 떠난다. 속리산俗離山 국립공원은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며,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峯을 필두로 높이 1,000m 안팎의 비로봉·입석대·신선대· 경업대·문수봉·관음봉·문장대 등 높은 봉우리들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속리산 능선, 73x142cm, 한지에 수묵담채, 2018극락정토 대원 품은 삼불봉삼불三佛은 극락세계의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좌우에서 모시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이르는 말이다.
속리산은 ‘영웅호걸의 산’이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무인과 문인 등 영웅호걸의 전설과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신라의 최치원이 거쳐 갔으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즉위하기 전 이곳에 머물렀다. 쿠데타로 왕권을 거머쥔 세조 역시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했고, 우암 송시열과 당대의 시인 백호 임제가 발자취를 새겨 놓았다. 속리산俗離山이란 이름은 신라시대부터였다고 전한다. 신라 말 진표眞表 율사는 법주사를 중창하기 위해 보은 땅으로 들어섰다. 밭을 갈던 소들이 대사를 알아보고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들이
속리산 하면 정이품송을 떠올리지만, 속리산의 깃대종은 망개나무다. 깃대종은 생태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식하는 중요 동식물을 뜻하며, 국립공원마다 중요한 동식물을 마스코트처럼 정해 놓았다. 그러나 이번 산행에서 망개나무를 한 그루도 보지 못했다. 중요한 나무이지 가장 많은 나무는 아닌 것이다. 또 주로 계곡이나 사면에 자라 능선종주 중에는 볼 수 없다. 망개나무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중국과 일본에서 간혹 볼 수 있는데 개체수가 무척 적어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3~7m밖에 자라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망개나무는 15
백두대간 인증은 쉽지만 쉽지 않다. 100대 명산을 하던 도전자가 처음 대간을 타면 인증장소가 많아 실수를 범하게 된다. 100대 명산은 정상석만 찍으면 그만이지만, 백두대간은 당일 산행에서도 인증장소가 여럿인 경우가 많고, 정상이 아닌 고개나 갈림길이 인증장소인 경우도 많다. 100대 명산 인증에 익숙해져, 아무 생각 없이 산행하다간 인증을 놓치기 딱 좋은 것이 백두대간이다. 그래서 백두대간은 예습이 필수다. 산행 코스를 확인하고 인증지점의 위치와 인증 시설물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보통 큰 고개나 정상의 경우 고개 이름을 새긴
개 소리였다. 이렇게 깊은 산꼭대기에, 그것도 해질녘에 개 짖는 소리라니, 이상했다.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긴 비탈을 온 몸으로 받아 삼키자 나타난 바위 꼭대기에 그가 있었다. 피앗재 산장지기가 손님인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 산장에서 키우는 붙임성 좋은 백구는 우리를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덮치듯 안겨왔다. 형제봉 위에 올라서자 속리산에 온 것이 실감났다. 경치 한 줌 없는 야산 구간만 걷다가 만난 국립공원은 도가 지나쳤다. 아름다움의 정도가 마음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누구랄 것 없이 “우와”하는 소리가 발
개머리재에서 갈령에 이르는 구간은 지난달 답사한 추풍령 이후 지나온 산들과 유사한 분위기다. 완만한 구릉성 산지가 분수계를 이루면서 구불구불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등줄기다. 이 구간은 대부분 야산이라고 할 수 있는 나지막한 등성이의 연속이다. 그중 도드라진 것이 윤지미산(538m)과 봉황산(740m) 정도지만, 바로 옆 속리산 탓에 크게 눈에 띄는 봉우리는 아니다. 속리산으로 솟구치기 전에 잠시 숨을 죽이는 마지막 구간이다. 추풍령에서 뻗어 올라가던 대간 줄기가 속리산으로 이어지기 전의 고개인 화령은 상주에 이르는 서쪽에 위치하고 있
끊어질 듯 이어지는 대간길 지기재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인 해발 260m 지기재는 901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고개다. 주변의 구릉지에는 당도가 높고 맛도 좋은 포도밭이 많다. 지기재는 도둑들賊이 출몰하던起 고개峙로 적기치, 적기재로 불리다가 지금은 지기재旨起峙로 부른다. 안심산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지기재다. 백두대간은 지기재에서 끊어질 듯하다가 멀리 금은봉으로 이어진다.지기재, 48x74cm, 한지에 수묵, 2018아름드리 상현리 소나무 화령 부근 상주시 화서면 상현리에 천연기념물 제293호로 지정된 상현리 반송이 있다. 수
낮은 대간 줄기는 마음이 넓다. 1,000m대 능선에는 기온이 낮고 혹독한 환경이라 한정된 식물만 살 수 있어 식생은 단조로운 편이다. 반면 개머리재에서 비조령까지 이어진 상주 구간에선 해발 200~300m를 오르내릴 때가 빈번하다. 덕분에 더 다양한 나무와 꽃을 볼 수 있다. 낮은 산이라 사람의 손을 탄 곳이 많아 인공조림한 나무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인공림과 자연림이 어우러져 다양한 식생을 볼 수 있다. 이번 구간의 대표적인 인공조림 나무는 리기다소니무, 잣나무, 일본잎갈나무, 밤나무, 감나무 등이었다. 가을이라 쑥
가을 단풍철을 맞아 인증 정체가 일어나고 있다. 등산객이 몰리는 100대 명산은 정상 표지석 앞에 10분 이상 줄을 서야 겨우 찍을 수 있을 정도다. 가을철 단풍 산행객이 많기도 하지만, 블랙야크 도전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방증이다. 신속하게 사진을 찍어야 줄 선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듣지 않는다. 찍어 달라고 부탁할지, 스스로 셀프카메라를 찍을지 먼저 정해야 한다. 또 자신의 폰으로 찍을지, 지인의 폰으로 찍어 사진을 메신저 등을 통해 전달 받을지 정해야 한다. 미리 인증수건이나 인증용품을 준비하고 있다가 차례가 되면 바로 자세
대간의 즐거움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경치 한줌 없는 오르내림 속에서도, 느껴지는 흘러가는 세월의 아름다움. 바람의 온도가 다르고, 잎의 빛깔이 다르고, 피는 꽃이 다르고, 과일의 크기가 다르고, 마을의 사투리가 다르고, 무엇보다 다시 만나는 사람들. 따뜻한 미소로 흐뭇하게 만나게 되는 블랙야크 셰르파들과의 산행이 즐겁다. 상주 구간처럼 부드러운 야산이 많은 곳에선, 두런두런 대화 시간이 늘어난다. 멤버가 조금씩 바뀌지만, 산에 대한 열정은 같아 금세 친해진다. 개머리재에서 비조령(비재)까지 29㎞를 3일에 나눠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