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세계일주] 타임머신을 탔다, 2억 년 전으로!

  •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입력 2021.06.23 09:38

    아르헨티나 산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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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로라도산맥에 의해 형성된 붉은 절벽이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이 연상되는 타람파야 국립공원.

    아르헨티나 북부 지방에는 지질학적으로 연구가치가 있는 아주 특별한 지형이 있다. 바로 특이한 지질구조로 유명한 이치구알라스토주립공원Ischigualasto Parque Porvincial과 타람파야국립공원Talampaya Parque Nacional. 케추아어로로 ‘이치구알라스토’는  불모지, ‘타람파야’는 메마른 강이라는 의미이다. 평균 해발고도 약 1,200m 이상인 고원지대로 그 이름만큼이나 아주 특별한 풍경을 가지고 있고 트라이아스기Triassic Period의 많은 공룡과 포유류, 파충류 화석이 발견된 곳이다. 고고학, 고생물연구에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두 곳 모두 2000년에 유네스코 선정 세계유산에 지정되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두 공원은 같은 지질 형성에 속하지만 콜로라도산맥으로 분리되어 있고, 행정적으로는 두 지방으로 나뉜다. 타람파야는 라 리오하La Rioja, 이치구알라스토는 산후안San Juan에 속한다.

    두 곳의 공원을 모두 방문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도시는 산 아구스틴San Agustin마을. 차량으로 이치구알라스토는 45분, 타람파야까지는 1시간 정도 걸리는 산후안주의 작은 도시이다. 멘도사Mendosa에서 이동하려면 산후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산 아구스틴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버스가 연계되지 않으면 산후안에서 1박을 해야 한다. 산 아구스틴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에도 산후안을 거쳐야 하니 산후안에서 머무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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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한 공 모양의 바위가 평원에 가득한 이치구알라스토공원의 콘차 데 보차스.

    트라이아스기 공룡 화석이 무진장 널렸다

    산후안 서쪽 산후안강에 있는 우윰댐Dique Ullum 주변에는 캠핑장이 많이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트레킹코스가 다양하다. 게다가 시내버스를 이용해서 갈 수 있고 입장료도 없으니 나 같은 배낭 여행자에겐 최고의 여행지이다.

    우윰호수가 보이는 곳에서 하차해야 하는데 버스가 서지 않고 지나쳤다. 덕분에 버스 종점까지 가서 우윰마을을 한 바퀴 돌아 나왔다. 버스에서 바라보는 우윰마을은 온통 포도밭이었다. 산후안이 와인 산지이니 광활한 포도밭이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정말로 엄청난 규모였다. 여름에 주렁주렁 달린 포도를 상상으로 즐겼다. 산후안을 떠나기 전에 와이너리 방문도 일정에 포함해야겠다.

    우윰호수에서 내리니 거대하게 펼쳐진 옥빛 호수는 남미에서 보았던 여느 호수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주변에는 초코라떼 색을 띤 구릉들이 멋지게 펼쳐 있다. 호숫가에는 몇몇 사람들이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그들 중에 아빠와 함께 산책을 온 멕시맘이란 아이를 만났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흔쾌히 내 곁으로 와주었다.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여행자에게 으레 물어보는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산후안에 산다는 그들은 참 아름다운 곳이라면서 자랑스럽게 자기가 사는 도시를 설명했다. 그리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마리아 언덕 정상이 있고 그곳에선 우윰호수와 산후안 마을까지 조망된다고 했다. 그들과 함께 마리아 언덕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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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람파야국립공원 곳곳에는 원주민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암각화로 남아 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다

    정상으로 오르기 전에 커다란 십자가가 있는 중간지점에 도착했다. 남미 대부분의 도시에선 도시를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으레 커다란 십자가나 성모마리아 또는 예수님 상이 있다. 신의 가호가 도시 전체에 쏟아지기를 원하는 그들의 바람일 것이다. 중간 지점이었음에도 호수가 한눈에 보이고 주변 마을도 잘 보였다. 정상으로 오르면 더욱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호수의 반대편이 보이는 곳으로 한 바퀴 걷고 다시 정상을 향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흙길은 사라지고 거의 돌길로 변했다. 고개를 들어 정상을 바라보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졌지만 올라가도 그 거리는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정상에 오르면 반대편으로 하산이 가능하다고 해서 어떻게든 정상에 오르고 싶었지만 잠시 후면 해가 질 시간이고 산후안으로 이동하면서 점심을 부실하게 먹어서 체력도 문제였다. 멕시맘 아빠와 함께 하산을 결정했다. 처음 올라온 산에 홀로 남아서 정상을 향하는 것은 안전에도 문제가 있고 큰 의미가 없었다. 하산 후 돌아갈 버스 시간까지 섬세하게 챙겨 준 뒤 멕시맘 부자는 오토바이로 돌아갔다.

    산후안으로 돌아갈 버스 시간에 맞추어서 버스정류장으로 가고 있는데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버스는 저만치 도망을 갔다. 다음 버스까지는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물끄러미 호수를 바라보고 있을 때 한 커플이 다가왔다. 다음 버스가 오려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 같이 콜렉티보를 하자고 했다. 콜렉티보 택시를 부르자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들의 차로 시내까지 함께 가자고 한 것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차에 탔다. 그리고 시내가 보일 때까지 계속 긴장을 했다. 숙소 앞까지 데려다 준 그들은 “여행을 즐기라”라는 인사만을 남기고 돌아갔다. 선의를 베풀려는 의도를 자칫하면 오해할 뻔했다. 특히 홀로 하는 여행 중에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다 보니 간혹 이런 일이 생기기도 한다. 산후안 여행은 시작부터 느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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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화와 침식으로 만들어진 이집트의 스핑크스처럼 생긴 돌기둥.

    달의 계곡, 이치구알라스토

    해발 1,300m의 고원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북쪽 지역에 있는 이치구알라스토는 지리학으론 2억 년 전 트라이아스기를 대표하는 화석이 풍부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치구알라스토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트라이아스기의 대륙 퇴적물이 완전한 순서로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심한 지각변동 후에 형성된 거대한 협곡이 장관을 이루어 칠레의 아타카마사막에 있는 계곡처럼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으로도 부른다. 달의 계곡에는 물의 범람과 바람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다양한 형태의 바위군이 존재한다. 

    막연히 산후안으로 오면 이치구알라스토주립공원으로 가는 버스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버스로 이동해도 공원이 너무 커서 걸어서 다닐 수는 없고 돌아오는 교통편 연결도 쉽지 않았다. 숙소의 호스트가 스페인말로 아주 꼼꼼하게 천천히 써가면서 “투어를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은 그녀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어둠을 뚫고 200km 이상을 달려서 도착한 이치구알라스토. 공원 내부 관람루트만 40km가 넘으니 걸어서 관람하는 것은 허락도 되지 않지만 불가능하다. 첫 번째 방문지는 바예 핀타도Valle Pintado. 건조한 환경에서 빗물과 바람에 의해 형성된 계곡은 다양한 색이 칠해진 구릉지로 이치구알라스토에서 발견된 화석의 대부분이 출토된 곳이다. 이곳에서 출토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룡 중 2억3,0000만 년 전의 두 공룡의 해골은 공원 입구에 있는 윌리암 실 박사 박물관Museo Dr. William Sill에 전시되어 있다. 윌리암 실 박사는 이치구알라스토공원을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

    콘차 데 보차스Cancha de Bochas는 완벽한 공 모양의 바위가 평원에 가득하다. 보차스는 유럽이나 남미에서 돌을 던져서 하는 경기이다. 보차스에서 사용하는 돌처럼 보이는 공은 오랜 세월 동안 퇴적물이 뭉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언뜻 보면 공룡의 알 같았다. 광활한 평원을 채우고 있는 공에서 아기공룡들이 알을 깨고 나올 것만 같다. 공원의 가장 높은 부분에 위치한 ‘잠수함El Submarino’은 풍화의 효과를 보여 주는 공원의 상징이다. 특히 앞의 잠망경이 인상적이다. 침식과 풍화로 창조된 이곳의 조각품들은 오늘도 바람에 의해 그 모습이 변하고, 심지어 사라지기까지 한다. 다음 장소에서 만난 것은 이집트의 ‘스핑크스La Esfinge’였다. 어떻게 풍화와 침식으로 이렇게 멋진 작품이 창조되는 것일까? 그 다음엔 산후안의 관광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버섯El Hongo’. 피사의 사탑처럼 쓰러질 듯 서 있는 거대한 버섯이다. 이 삭막한 환경에서 푸마, 과나코, 리마 등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이치구알라스토주립공원에선 지정된 루트에 따라서 이동하면 정해진 뷰 포인트에서 공원 가이드가 설명을 해주었다. 정해진 루트 외에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 관람 위치에서도 관람객이 걸을 수 있는 구역은 돌로 경계표시를 해놓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공원에는 아주 작은 쓰레기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 엄격한 관리를 한 덕에 자연유산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을 것이다. 사막 한가운데 박물관도 만들어놓고 화석 발견의 과정부터 복원 과정까지 완벽할 정도로  영상물을 만들어 놓았다. 황량한 사막을 소중하게 관리하고 유지하는 그들의 시스템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긍심에 또한 놀랐다. 지질 연구뿐 아니라 사막 곳곳에 자라고 있는 식물을 포함해 사막 생태환경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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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람파야국립공원의 복원된 고생대 공룡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랜드캐니언, 타람파야.

    타람파야는 이치구알라스토에서 50km 떨어진 곳에 있다. 콜로라도산맥에 의해 형성된 붉은 절벽은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연상하게 한다. 타람파야강에는 수백만 년 전 공룡이 살았던 흔적들이 화석으로 남아 있으나, 이치구알라스토만큼 많지는 않다. 타람파야는 약 143m 높이의 거대한 암벽 때문에 유명하다. 그외에도 예전 원주민들이 살았던 흔적들과 고원지대의 희귀한 식물들, 과나코 등의 야생 동물들도 볼 수 있다. 입장료도 비싸지만 공원을 관람하려면 반드시 공원에서 운영하는 가이드가 있는 차량을 이용해야 한다. 엄청난 규모의 공원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막대하겠지만 너무 비싼 입장료는 조금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공원 곳곳에는 원주민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암각화로 남아 있다. 특히 143m의 거대한 암벽인 페트로그리포스Petrogrifos 주변에는 더욱 많다. 죽은 자들을 위한 집. 남성과 여성의 섹스 장면, 과나코, 여우, 푸마 등의 동물 그림과 발자국뿐 아니라 기하학적으로 표현한 인물, 동물 희생 장면, 원주민과 신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사람들이 이동하는 장면 등 수많은 암각화에서 그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가장 눈에 띄는 암각화는 많은 사람들이 먹이를 쫓는 집단 사냥 장면이다. ‘대성당La Catedral’이라 부르는 장소에서는 조금 다른 암각화를 볼 수 있다. 향을 태우거나 수확 축하 행사에서 주술사들이 사용하는 치차를 만들었던 흔적인데 거주할 수 없는 환경임을 감안하면 이곳에서 어떤 의식을 치렀던 것으로 보인다. 대성당을 지나면 ‘수도사El Monje’들이 무리지어 있다. 이곳에서도 이치구알라스토와 마찬가지로 고원지대의 다양한 식물들과 과나코 등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치구알라스토와 타람파야는 느낌도 색상도 완전 달랐다. 이치구알라스토는 사막 느낌이고 빛바랜 파스텔톤이었는데, 타람파야는 온통 붉은 벽돌색의 거대한 암벽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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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데가 그라피그나의 와인저장고.

    입 안 가득 번지는 말벡의 향기

    마지막 날은 느지막하게 숙소를 나와서 와이너리로 향했다. 우윰댐에서 만났던 멕시맘 아빠가 추천해 준 와이너리 ‘보데가 그라피그나Bodega Graffigna’가 목적지이다. 12A버스를 타야 하는데 버스정류장을 찾기 어려웠다. 몇 번을 물어보고 길을 헤메느라 1시간가량을 소비했다. 길에서 만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도심 구경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마음을 바꾼 순간 내 앞으로 12A버스가 지나갔다. 참으로 난감했다.

    버스 정류장에 학생인 듯한 청년 2명이 서 있었다. “보데가 그라피그나 가는 12A버스는 어디서 타나요?”하고 물으니 반대편 정류장을 알려 준다. ‘그래도 현지인이 맞겠지’라는 생각에 건너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후 아까 그 청년 중 한 사람이 나에게 와서 이곳이 아니라며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 기사님께 보데가 그라피그나에서 내려주라는 부탁까지 하고선 돌아갔다. 급히 버스에 오르느라 감사하다는 말만 겨우 전했다.

    보데가에 12시가 조금 지났을 때 도착했다. 가이드 투어는 1시간 15분 후에 시작하고 한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시음까지 포함해서 모두 무료. 일반적으로 와이너리 투어 비용이 그리 저렴하지 않은데 무료라고 하니 가이드 투어는 꼭 참가하고 싶지만 이미 길에서 시간을 너무 써버린 터라 살타행 버스를 타러 가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사무실에 있는 직원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더니 잠시 머뭇거림도 없이 특별히 나를 위해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다. 보데가 그라피그나의 역사부터 아르헨티나의 격동기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까지 자세히 설명을 했다. 역사 비디오도 보고 박물관에 전시된 와인 관련 기구들의 용도도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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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조한 환경에서 빗물과 바람에 의해 형성된 계곡이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바예 핀타도.

    마지막 코스는 멋진 와인바에서 와인시음이었다. 화이트와인과 말벡Malbec. 말벡을 산후안에서 처음 맛보았다. 진하고 입 안을 가득 채우는 과즙향이 참 부드럽다. 살타로 이동하는 것을 잠시 연기하고 이곳에 조금 더 있고 싶은 유혹이 날 잡았다. 누구나 부드럽게 마신다는 말벡을 즐긴 후에는 와인이 빛에 반사되는 색상으로 와인의 성분을 알아내는 방법도 알려 주고, 버스 시간에 늦지 않겠냐는 걱정까지 해주었다. 마음이 뭉클했다. 여행하며 길 위에서 만나는 가슴 따스한 사람들 덕에 오랜 기간의 배낭여행도 지루하거나 피로함이 쌓일 새가 없다.

    자연의 위대함과 경이로움에 놀라며 거칠고 광활한 두 개의 공원을 지질탐사하는 시간은 더위와 먼지로 조금은 지쳤지만 부드럽고 달콤한 과일향이 가득한 말벡으로 위로를 받았다. 산후안의 달콤한 포도주처럼 아르헨티나 북쪽 여행도 달달하기를 기대하면서 다음 여행지인 살타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6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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