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부 다이어리] 선자령엔 폭설, 진부령엔 ‘곱빼기 강풍’…

  • 글·사진 거칠부(필명)
    입력 2021.07.20 09:36

    백두대간 자동차여행 下
    10년 전 대간 종주를 추억하며 보름간 백두대간 고개에서 차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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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백두대간을 걷는 동안 비를 자주 만났다.
    2011년 34세, 혼자 백두대간을 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매주 야영배낭을 메고 백두대간으로 향했다. 5월에 시작한 길은 10월에서야 끝났고, 17개 구간에 걸쳐 5개월 반이 걸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1년 44세, 다시 백두대간을 찾았다. 이번엔 자동차였다. 백두대간 자동차 여행은 간단했다. 차박을 하면서 백두대간의 주요 고개를 넘는 것. 지난달에 이어 대간 차박 여행 이야기를 이어서 풀어낸다.
    ​영월에서 태백산 가는 찻길은 그야말로 구불구불했다. 속도를 낼 수 없었지만 봄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경치가 좋으면 차를 세워 사진을 찍었다. 봄을 느끼며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여행은 충분히 근사했다.
    백두대간뿐만 아니라 정맥까지 한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그렇게 다니면 우리나라에서 안 가본 곳이 없겠다. 그나마 백두대간이라도 해서 다행이다. 우리나라 산줄기를 걸어보는 것. 내 나라 땅도 모르면서 다른 나라 땅에 열광하는 게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다른 나라 땅을 좀 더 다녀봤다고, 내 나라 땅을 가볍게 보는 것도 우습다. 히말라야에 다녔다고 우리나라 산이 낮은 건 아니다. 한낱 인간에게 산은 늘 크고 높은 존재 아니던가.
    태백산에도 봄이 왔다.​​ 임도를 따라 올라가는데 야생화가 제법 보였다. 괭이눈, 꿩의바람꽃, 노루귀까지. 남쪽에선 잘 보이지 않던 야생화가 자주 보였다. 산행을 시작할 때 할머니 세 분도 같이 출발했다. 나는 임도를 따라서 갔고 그분들은 사길령 쪽으로 향했다. 혼자 걸을 땐 쉬지 않고 걷는 편이다. 빨리 걸어서가 아니라 쉬는 게 귀찮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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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노인봉에 오른 필자.
    천제단과 장군단에는 기도하러 오는 사람이 많은 듯했다. 내 고향인 강화도의 마니산도 기가 센 곳 중 하나다. 나는 히말라야에 갈 때면 마니산에 들러 산신령님께 인사드린다. 왠지 안심이 되고 트레킹이 잘 풀릴 것 같아서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믿음 하나쯤 있는 것 같다. 대자연 앞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건, 그곳에 계신 신뿐이니까.
    ​하산은 사길령 쪽으로 했다.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었다. 가는 길에 야생화가 지천이었다. 노란 괭이눈이 뿌려놓은 듯했고​​ 꿩의바람꽃도 자주 보였다. 태백산에 야생화가 이렇게 많았던가. 놀랍고 행복했다. 하도 야생화가 눈에 밟혀서 꽤 오랫동안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느 산이든 올라갔다가 내려가기 바빴는데 여기선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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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천제단을 찍고 내려오는 동안, 할머니들이 이동한 거리는 단 1.5㎞였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야생화를 보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이 따뜻하고 좋아 보였다. 저렇게 다니면 산행이 힘들 이유가 없겠구나. 나도 노년에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20년 가까이 무거운 배낭을 지고 다녔다. 이젠 가볍게 다니려고 한다. 장기간의 히말라야 트레킹에서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건 챙기되 배낭이 무겁지 않게 했다. 어느 날 삐걱거리는 무릎을 느끼고 나서였다. 무릎이 아파서 걷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산에서 달리고, 시간을 단축하고, 하루에 많이 걷는 것엔 관심이 없다. 그럴 자신도 없다. 무엇보다 나이 들어서 고생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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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여름엔 누군가 보내준 농약 방제복을 입고 걷는 날이 많았다.
    백두대간의 4월은 잔인했다
    차박이 불편하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나는 차박을 하더라도 일찍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자고 싶을 때까지, 허리가 아플 때까지 잤다. 적어도 9시간 이상. 히말라야 트레킹 때도 그랬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일찍 잠들었다. 그때는 10~11시간을 잤다. 잠을 많이 자는 게 고산적응에도 도움이 되고 피로회복에도 좋았다.
    삼수령(피재)은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분수령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독 비가 많이 내린 그해 여름. 누군가 농약 방제복을 보내 주었다. 우중산행에 요긴할 거라며. 실제 나는 농약 방제복을 입고 걷는 날이 많았다. 한여름이라 비에 젖고 땀에 젖어야 했던 숱한 날들. 징글징글하게 고생했지만 그만큼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건의령에서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그 편이 댓재로 가기 편했다. 오토바이나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길이 겹치지 않게 했다. 하지만 나는 특정한 원칙을 정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움직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고개를 빼먹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런 식의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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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대간 종주 중 고루포기산 전망대에서 혼자 야영했다. 당시 금요일에 산 초입까지 가서 1박, 다음날 야영산행하며 1박하는 2박3일 일정의 구간 종주를 했다.
    댓재에 도착하니 바람이 살벌했다. 사진을 찍겠다고 차에서 내렸다가 모자가 두 번이나 날아갔다. 이런 날 산행을 해도 되는 건지 심란했다. 댓재에서 만난 동행자와 일단 출발했다. 바람은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사정없이 불었다. 서로의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져서 잘 들리지 않았다. 1228m봉에 도착했을 때, 날씨를 확인한 동행자가 강풍주의보라고 했다. 미세먼지까지 최악이었다. 그는 산행을 멈추고 싶어 했고, 우리는 주저 없이 하산했다.
    백복령도 바람이 심한 건 마찬가지였다.​​ 정선 쪽은 바람의 나라였다. 10년 전 이 구간을 지날 땐, 일정이 비슷한 사람과 동행을 했다. 비를 쫄딱 맞고 하산한 백복령휴게소는 아늑했고, 우리는 파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꽤 오래전 일인데 아직 휴게소가 운영 중이라서 놀랐다. 그러면서도 안심이 됐다. 내가 다시 이곳에 오면 배를 채울 수 있겠구나.
    삽당령에서 닭목령으로 왔다. 백두대간은 여기서 고루포기산과 능경봉을 지나, 대관령으로 이어진다. 왠지 여기까지만 와도 다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길은 이후에도 여전하지만 대관령이 주는 느낌이 그랬다.
    대관령은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음을 빌려 지금의 대관령이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험하다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대관령 옛길을 따라 가는데 굴곡이 상당했다. 지금까지 지나왔던 고개 중에서도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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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봄 태백산에서 만난 한계령풀.
    바우길(1구간)은 자연스럽게 양떼목장 쪽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청량한 느낌의 침엽수림을 지나 계곡으로 내려섰다. 요염하게 피어 있는 얼레지와 연둣빛 낙엽송도 만났다. 5월이면 더 좋을 곳이다. ​​풍력발전기가 보이기 시작하자 세상은 금세 다른 곳이 되었다. 날씨가 흐린데다가 미세먼지까지 잔뜩 있어서 분위기가 묘했다.
    소황병산 쪽이 어렴풋이 보였다. 9월이면 저기 어디쯤에 구절초가 지천인데, 다시 볼 일이 있을지. 때가 되면 와야지 했는데 몇 번이나 해를 넘기고 말았다. 선자령을 지나는 동안 날이 어두워졌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았다.​​ 미세먼지에 갇힌 세상은 을씨년스러웠다. 이제야 꽃망울을 틔운 진달래는 바람에 바들바들 떨었다.
    대관령에서 동행자는 돌아가고 나는 진고개로 향했다. 횡계를 지나는 동안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이 내렸다. 4월에 웬 눈이람. 다행히 진고개가 가까워지면서 날씨가 개기 시작했다.​​ 진고개의 하늘은 맑고 파랬다. 하지만 바람이 차서 잠깐 서 있는데도 몸이 떨렸다.
    4월은 차박 여행에 좋은 계절이 아니었다. 특히 강원도는 더했다. 추운 건 말할 것도 없고, 1,000m가 넘는 산이 많아서 봄이 더뎠다. 산 아래는 봄이 무르익어도 산 위는 겨울이나 다름없었다. 남쪽만 생각하고 너무 이른 계절에 찾았다. 산불방지지간에 막혀 있는 국립공원도 그랬다. 오대산과 설악산은 거의 막혀 있어서 갈 곳이 없었다.
     
    진고개에서 주문진으로 내려갔다. 차박할 곳을 찾기 위해 주문진 해수욕장부터 들렀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결국 저녁 6시가 다 돼서 멈춘 곳이 동산해변이었다. 바다와 가까운 곳이었다. 사실 나는 바다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바다에 대한 환상 같은 것도 없었다. 섬에서 태어나 섬에서 살고 있지만 바다는 왠지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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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코스로 꼽히는 두타산~청옥산 30km 구간을 우중 야영종주로 마치고, 하산한 백복령휴게소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정선엔 강풍, 횡계엔 때 아닌 눈
    구룡령까지 대차게 올라갔다. 강원권으로 들어오자 넘는 고개마다 차원이 달랐다. 백두대간 고개를 넘는 여행은 무엇보다 차가 고생이다. 이런 길을 몇 십 개나 올라야 하는데다가,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문제였다.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해도 아슬아슬했다.
    높은 산은 여전히 겨울이지만 낮은 곳은 눈부셨다.​​ 가는 곳마다 봄이 반짝였다. ​​나는 조침령 터널 앞에서 멈췄다. 여기서 터널 위로 걸어올라야 백두대간 조침령이 나온다. 거기까지 가볼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여행도 끝날 때쯤이면 힘이 빠진다. 그럴 때는 휴식을 해야 하는데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마음의 여유도 덩달아 잃어갔다.
    백두대간 자동차 여행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우려했던 곳이 한계령과 미시령이었다. 지리산 성삼재와 정령치도 걱정됐지만 강원도의 고개에 비하면 순한 길이었다. 운전 실력이 미천하다 보니 일부러 평일에만 움직였다. 하지만 한계령은 과감하게 일요일에 넘었다. 여행 덕분에 고갯길 운전연습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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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대간 종주 당시 황철봉 가는 길에 본 울산바위.
    한계령 가는 길에도 봄이 왔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쉼터마다 들러서 설악산을 바라보았다. ​​계절의 변화는 참으로 적절했다. 아름답고 눈부신 봄.​​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설악산의 봄도 설악의 모습도. 한계령으로 향하는 동안 눈에 보이는 것마다 멋지고 신기했다. 백두대간의 모든 고개를 통틀어 한계령 가는 길이 최고라는 사실. 사람들이 백두대간을 할 때 남진보다 북진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고생하며 걸은 길의 끝에서 마주하는 설악의 아름다움은, 숱한 고생을 만회하고도 남기에.​​
    10년 전 나의 백두대간 마지막 구간은 한계령부터 진부령까지였다. 3박 4일간 걸을 생각에 애써 휴가를 냈다. 서울에서 막차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을 때가 10월 중순.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제설장비 창고 안에 텐트를 치고,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을 들으며 챙겨온 소주를 아껴 마셨다. 
    ‘이제 내게 남은 길은 설악산. 하지만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무색할 정도로 홀로 걷는 게 두려웠다. 그럼에도 같이 걷겠다던 사람을 모질게 떼어 냈다. 그 길을 혼자 걷지 않으면 어쩐지 산행이 마무리될 것 같지 않았다. 산길을 오롯이 혼자서 느껴 보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 길에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소주를 꺼냈다. 딱 한 병뿐이라 아껴 마셔야 하는데, 이런 날 마시지 않으면 무슨 재미랴. 가져온 반찬을 안주 삼아, 홀짝홀짝 눈물겹게 마셨다. 한계령에서 듣는 한계령은 무한반복.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설악이 내게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다 해도 섭섭하지 않았다. 산이 그래야겠다고 하면 그래야지. 그저 지금 내가 이 산에 있음이 고맙고 벅찼다.​​’<2011. 10. 14.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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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봄, 성인대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미시령 가는 길은 도로 유실로 양방향 모두 막혔다. ​차를 돌려 미시령 터널을 지났다. 휴게소에 차를 대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여행 막바지니까 호텔이라도 가서 편하게 휴식할까. 느려터진 휴대폰을 붙잡고 여기저기 검색해 보지만 내키는 곳이 없었다. 결국 마지막이니까 더더욱 차박을 해야 한다며 화암사로 향했다.
    화암사도 그 사이 많이 바뀌었다. 입구에 큰 주차장을 만들었고, 신도들의 차량과 일반인들의 입구가 달랐다. 카드로 주차요금을 결제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일정의 절반을 차박으로 다니는 일은 불편하면서도 즐거웠다. 잠도 충분히 잤고, 커피를 내리는 여유도 가졌다. 여행의 과정은 조금 불편해야 맛이다. 쉬운 건 쉽게 잊히는 법이니까.
    바람은 아침이 돼서도 멈추지 않았다. 하늘은 파랗고 쨍한데 바람은 한낮으로 갈수록 더했다. 일기예보를 보니 고성 쪽 풍속이 13~14나 됐다. 그럼에도 나는 걷고 싶었다. 화암사에 주차하고 배낭을 멨다. 성인대까지 짧은 산행이지만 스틱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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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간 종주였지만 1박2일 야영 산행을 주로 했다.
    성인대 가는 길은 능선이라서 바람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꼭 붙들었다.​​ 성인대에 도착했지만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상봉과 신선봉을 바라보는 짧은 순간에도 바람이 후려쳤다. 정신은 사나웠지만 상봉과 신선봉을 가까이에서 보니 반갑고 기뻤다.
    울산바위가 보이는 쪽은 출입금지 안내판이 생겼다. 그게 아니라도 차마 안쪽까지 갈 수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바람에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 입구에서 간신히 몸을 가누며 흔들리는 사진 한 장을 담았다. 울산바위가 보고 싶어서 바람을 감수하고 왔던 건데, 바로 앞에 두고도 제대로 볼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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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로 한계령 가는 길에 만난 설악산.
    비 내리던 한계령과 마지막 소주 한 병
    4월의 봄은 잔인했다. 소백산에선 한파주의보, 두타산에선 강풍주의보, 선자령에선 최악의 미세먼지와 눈까지 만나고. 마지막 진부령 가는 길엔 강풍주의보 곱빼기. 결국 진부령에서 가기로 했던 마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그랬다.​
    백두대간 자동차 여행의 마지막 고개인 진부령. 남진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시작이고, 북진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끝난다. 백두대간의 많고 많은 고개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고개이지 싶다.​​ 그날의 기억을 소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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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여행은 나의 애마 ‘조르바’와 함께 했다. 책 <그리스인 조르바>를 인상 깊게 읽고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별명을 붙였다.
    ‘진부령이다. 곰님(곰 동상)에게 인사를 하고 정상석으로 향한다. 눈물 따윈, 나지 않는다. 감동이 복받치는 것도 없고,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그 많은 길을 걸었음에도 무덤덤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걸었던 이 길과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것을. 그러니 당장 눈물이 쏟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아쉬울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다. 결국 다시 찾을 테니까 말이다.’ <2011. 10. 17. 일기 중에서​>​
    10년 전 백두대간을 마치고 진부령에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온 사람이 있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고마우면서도 불편했다. 나만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밥도 혼자 먹고 막걸리도 혼자 마시고 싶었는데. 미처 그런 감정을 즐기기도 전에, 낯설고 어수선했던 마무리. 오늘은 완전히 혼자다. 누군가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따뜻한 커피를 시켰다. 조용히 보름간의 짧고 허술한 백두대간 자동차 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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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백두대간 구간종주를 마치고 진부령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7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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