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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한국의 무릉도원’을 찾아서 | 어디에 있나?] 지리산·오대산이 전통 무릉도원

글 월간산 박정원 부장대우
  • 입력 2017.08.2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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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엔 보령 만수산 심연계곡에… 피서객 유치 위해 몇 십 년 전 명명한 곳 많아

조선 안평대군이 꿈에서 봤다는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전형적인 이상향이자 무릉도원이다. 출처 한국의 미술가
조선 안평대군이 꿈에서 봤다는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는 안견의 몽유도원도. 전형적인 이상향이자 무릉도원이다. 출처 한국의 미술가

무릉도원이나 청학동이 실제로 존재할까?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로 지정된 조선 초기 화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이상향을 그대로 화폭에 옮긴 그림으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 그림 속의 장면을 무릉도원이나 청학동으로 추정한다.

그 그림 속의 장면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려 말 이인로가 최초로 찾으러 갔던 지리산 청학동이나 조선시대 김종직, 김일손, 유운룡 등이 찾았던 지리산 청학동은 전부 다르다. 청학동의 정확한 위치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아마 영원히 미궁으로 존재할지 모른다. 청학동이나 무릉도원 자체가 실재하지 않은 이상향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학동이나 무릉도원을 자처하는 마을은 전국에 몇 군데 있다. 지리산에는 여러 곳이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곳이 지리산 청학동마을로 널리 알려진 일명 도인촌이다. 그곳에 들어서면 석각 하나가 눈길을 확 끈다. 天藏地秘家천장지비가. 하늘과 땅이 감춰둔 비밀스런 집이란 뜻이다. ‘정말 이럴 수가…, 이런 곳이 있었나’ 하고 눈이 휘둥그레진다. 갓 쓰고 도포 입고 흰 수염을 가슴까지 기른 현지 노인은 “이곳에서 약 60년 살고 있다”고 했다. 그 전에는 몇 가구 없었지만 20여 년 전 지금과 같이 조성했다고 한다.

지리산 청학동으로 자처하는 삼신봉 아래 하동군 묵계리 도인촌을 비롯해 바로 아래 있는 삼성궁과 산청군 시천면 고운동, 하동군 악양면 매계리, 쌍계사 화개동천 불일폭포 부근, 세석평전 등지를 청학동 마을 후보로 거론한다.

퇴계 이황이 영월군수로 있을 때 영월군 수주면에 갔다가 그 동네 풍광이 너무 좋아 무릉도원이라 이름을 붙인 적이 있다. 실제로 여름 되면 많은 사람들이 피서지로 찾는다. 이곳을 영월군은 2016년 11월 수주면에서 무릉도원면으로 아예 지명을 바꿔버렸다. 영월군은 관광홍보 차원에서 김삿갓면, 무릉도원면 등 우리의 전통적 가치를 지닌 개념을 행정지명으로 바꿔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명주(강릉의 옛 지명) 청학동 소금강도 있다. 명승 제1호로 지정된 곳이다. 입구에는 입석 바위에 ‘무릉계’라고 새겨져 있다. 역시 무릉도원과 청학동은 같은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율곡 이이는 1569년에 <유청학산기>를 남겼다. 그 내용 중에 ‘예부터 식당암이라고 불러오던 바위를 비선암이라 개명하고, 골짜기를 천유동天遊洞이라 이름 붙였다. 또한 절벽 바위 밑에 있는 못을 경담鏡潭이라 하고, 이 산 전체를 통틀어서 청학산이라 명명했다’고 나온다. 소금강 계곡은 율곡 이이가 <유청학산기>를 기록한 이전부터 청학동으로 불린 사실을 알게 해준다. 현지인들은 옛날에는 계곡 입구에 복숭아꽃이 만발했으나 언제부터인가 흔적도 없이 깡그리 사라졌다고 한다. 무릉마을 촌로들도 “옛날에는 복숭아나무가 많았다”고 전한다.

통도사가 있는 양산에도 무릉도원이 있다. 이곳은 전설 속의 무릉도원이라기보다는 여름 피서지로서의 계곡이다. 시원하게 휴식과 힐링을 취할 수 있다고 해서 무릉도원이란 명칭을 사용한 듯하다.

1 지리산 청학동 못지않게 오랜 지명을 유지해 온 오대산 청학동계곡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2 동해 무릉계곡은 고려시대, 늦어도 조선시대부터 무릉계곡으로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릉계곡을 대표하는 경관인 무릉반석.
1 지리산 청학동 못지않게 오랜 지명을 유지해 온 오대산 청학동계곡도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2 동해 무릉계곡은 고려시대, 늦어도 조선시대부터 무릉계곡으로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릉계곡을 대표하는 경관인 무릉반석.
무릉도원·청학동 같은 개념으로 쓰인 듯

강원도 동해시에 있는 무릉계곡은 전통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두타산과 청옥산, 고적대에서 발원한 계류들이 합류해 깊은 계곡과 더불어 운치를 자아낸다. 산수의 풍치가 절경을 이뤄 금강산에 빗대 소금강이라 부른다. 오대산 청학동 소금강과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 고려 말 <제왕운기>를 쓴 이승휴가 “신선이 사는 곳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명명했다는 설과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이 명명했다는 설이 전한다. 1977년 일찌감치 국민관광지로 지정됐다.

이외에도 무릉도원이라 이름 붙인 계곡들이 전국에 수두룩하나 대부분 피서객을 유치하기 위해 몇 십 년 전 상업적으로 명명한 장소들이다.

청학동계곡은 이미 언급한 지리산과 오대산 외에도 남양주 별내 수락산 자락에도 있다. 서울 근교 계곡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으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 이제는 오염이 심해 사람들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수락水落’이란 지명에서 알 수 있듯 폭포가 여러 개 있어 계곡의 운치를 더한다.

충남 보령 심연계곡에도 청학동이 있다. 성주산~문봉산~만수산으로 둘러싸인 산세 중간에 위치한 심연계곡은 유일하게 한반도 서쪽에 있는 청학동계곡이다. 한반도 지형이 동고서저형인 사실에 비춰볼 때 서쪽에서 이 정도 깊은 계곡이 생기기도 쉽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피서지로 즐겨 찾는다. 주변에 불과 5km도 안 되는 거리에 만수산자연휴양림과 성주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이와 같이 전국에는 무릉도원이나 청학동 같은 신비의 지명은 아직 유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계곡을 끼고 있다. 반면 풍수적으로 유명한 우복동이나 금계포란형 같은 지역은 대개 산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무릉도원이나 청학동의 개념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띤다. 하지만 무릉도원이나 청학동도 복숭아꽃과 청학이 여전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이름만 남아 자취를 전할 뿐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무릉도원이나 청학동은 속세를 벗어나 신선이 되는 이상향이었다면 현대 들어서는 피서지로서의 개념이 굳어지는 느낌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개념도 다소 달라지는 듯하다. 복숭아나무가 없는 무릉도원과 청학이 없는 청학동으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됐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를 일이다. 원래 없었고, 찾고 싶고 살고 싶었던 이상향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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