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추가령(楸哥嶺)에서 갈라져 남쪽으로 내려오던 한북정맥이 백운산에서 화악지맥을 분가시킨 후 다시 강씨봉을 지나 귀목봉(1,036m)에서 남동쪽으로 가지를 뻗친 능선이 명지지맥이다. 명지지맥은 귀목고개를 지나 1,199m봉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북동쪽으로 향하는 능선은 명지산(1,253m)과 백둔봉(974m)을 이룬다.남쪽으로 이어지는 명지지맥은 아재비고개를 지나 연인산(1,068m)~우정고개(전패고개)~매봉~깃대봉~약수봉~대금산~봉화산~수리재~불기산으로 이어지다 빗고개를 지나 주발봉(489.2m)을 들어올린 후 계속 남쪽으
신산경표 상의 낙남정맥은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과 횡천면 그리고 북천면 등 삼개 면이 갈리는 삼면봉(三面峰)에서 신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부산광역시 강서구의 녹산교까지 192.8km 구간이다. 신산경표 상의 낙남정맥을 8구간으로 나누어 진행한다.제1구간 옥산분기점~솔티고개 26.8km산줄기가 백두대간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결국 낙남정맥이 지리산군에서는 거의 벗어났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이는 곧 1,000고지 이상에서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 마루금이 이제는 300m대로 떨어지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백두대
정맥 산행을 계획할 때마다 기점을 어디로 삼아야 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산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고픈 마음에 한북정맥은 차량 접근이 가능한 광덕고개 대신 백운계곡을 기점으로 삼았고, 낙동정맥 역시 주남재 대신 산하동계곡을 거슬러 집북재를 거쳐 천성산에 올랐다. 낙남정맥 여항산(艅航山·770m)도 바닥부터 제대로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항산의 하이라이트는 정상 능선이었다. 여기다 여항산 구간의 남쪽 들머리인 발산재(鉢山峙)의 해발고도가 약 120m, 날머리인 한치(진고개)가 약 145m 높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힘들게 걸어
낙남정맥은 논란이 될 만한 정맥이다. 〈산경표>에는 분산에서 끝을 맺는다고 쓰여 있는데 산꾼들은 신어산(동신어산)을 끝으로 잡아 종주했다. 지금까지 산꾼들이 엉뚱한 산을 잘못 탔다는 얘기가 된다. 어찌된 일일까?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는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무작정 걷는 것이 아니라 알고 산을 타자’는 것이다. 앞선 이들이 모두 이 길로 갔다 해서 이 길이 맞는 것은 아니다. 왜 우리 산꾼들이 지금까지 낙남정맥을 잘못 탔는지 이유를 설명하겠다.조선광문회에서 간행한
의 저자 조석필 선생은 이야기한다. “아직도 태백산맥이 건재하고 있는 것은 고토 분지로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게으름과 무능 때문”이라고.낙동강의 동쪽에 위치하여 정맥 서쪽과 동쪽의 기후와 풍습 심지어는 언어까지도 상이하게 구분을 하며 보현지맥, 팔공지맥, 비슬지맥, 호미지맥 등 100km 기맥급 산줄기 4개, 30km 이상의 지맥급 산줄기는 27개나 분기시키는 남한에서는 호남정맥에 이어 두 번째 큰 산세를 과시하는 이 산줄기를 태백산맥이 아닌 산경표 상의 낙동정맥이라는 이름 그대로 15구간으로 나누어 답사하기로
경남 양산시 천성산(922.2m)~운봉산(534.8m)~낙람고개(약 178m)를 잇는 낙동정맥 구간 종주산행을 계획하며 차를 타고 쉽게 낙동정맥에 올라선다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몇 차례 정맥 종주산행을 하는 사이 종주파들이 정맥의 산봉을 제대로 알고 산을 오르내릴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종주에만 목표를 두고 시간에 쫓겨 능선만 좇다 보면 아무래도 산의 속살을 속속들이 살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지산도립공원에 속할 만큼 자연경관이 뛰어난 천성산을 산림도로 따라 걷는다는 것은 산꾼의 자세가 아니다 싶었다. 천성산 제2봉(8
낙동정맥은 백두대간이 줄기차게 남으로 뻗어 내리다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천의봉)에 닿기 전 해발 1,110m 지점에서 분기한 산줄기다. 낙동정맥은 대간에서 분기해 남진하면서 동해안 바닷가와 내륙을 구분 짓는다. 울진의 백암온천으로 유명한 백암산 어깻죽지와 청송의 주왕산국립공원을 지나며 정맥은 내륙으로 방향을 튼다. 화랑들의 수련장이었던 경주 단석산 어깨를 넘어 영남 알프스로 건너가 가지산을 밀어 올린 후 신불산, 영축산(취서산), 천성산을 거쳐 부산의 명산 금정산을 일군다. 이후 정맥은 다대포 몰운대에서 파도와 만나며 끝을 맺는데
우리나라가 일제의 침략을 받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산줄기는 현재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우리의 산줄기를 어떻게 답사하고 있을까? 산경표에서 제시한 13정맥 중 이런 질문들에 대한 올곧은 답을 주는 정맥이 하나 있다. 남한과 북한에 걸쳐있는 유일한 정맥인 한북정맥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빼앗긴 우리 산줄기 이름에 대한 아픔과 남북 분단으로 인해 되찾지 못한 우리 산줄기 이름에 대한 아쉬움을 지금도 허리가 끊긴 채 묵묵히 우리의 품에 돌아올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다.주지하다시피 온전하게
지난달 10여 km 길이의 짤막한 구간종주로 한남정맥을 장황하게 얘기하자니 뭔가 찝찝했다. 적어도 산줄기의 반쯤은 걸어야 그래도 종주 얘기에 끼어들 자격이 있다는 게 기자를 떠나 걷는 이로서 지녀야 할 ‘자세’가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래서 한북정맥 구간 종주산행을 좀 더 힘들게 해야겠다 싶었다. 해발 664m 높이의 광덕고개 대신 해발 250m대 높이의 백운계곡 들머리부터 올라가는 코스를 택한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다.한가위 명절 밑의 흥룡사는 적요감이 맴돌았다. 대나무 대롱 타고 돌확으로 떨어지는 샘물은 물빛이며 돌확에 부딪치는 소
산경표(山經表)에 나오는 한북정맥의 흐름을 보면, 백두대간이 남으로 뻗어 내리다 북한 원산 부근 분수령 식개산에서 서남 방향으로 한줄기를 내어 한강과 임진강의 수계를 가르며 흐른다. 이 산줄기는 백암산, 쌍령, 벽력암산을 지나 휴전선을 넘어 군부대들이 점령하고 있는 삼천봉, 적근산 어깨 대성산을 지나 수피령부터 민간인들이 종주할 수 있는 산줄기가 열린다.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운악산을 지나 포천에서 의정부를 잇는 축석령을 넘으면 이 땅의 수도 서울로 이어진다. 백두대간의 정기가 도봉, 삼각산(북한산) 솟구치고 노고산 지나 비산
속리산 천왕봉에서 약 378.2km의 대장정을 떠난 호서정맥 줄기는 약 158.8km 지점에서 칠장산을 만나서는 북쪽으로 가지를 하나 치게 된다. 이 줄기가 한남정맥으로 원산경표나 신산경표 공히 같은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남정맥은 남한 쪽 7정맥(원산경표 상으로는 9정맥) 중 난개발로 인해 가장 훼손이 심한 산줄기다. 아파트 단지가 가로막아 서 있는가 하면 군부대가 마루금을 접수했고, 도로가 마루금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가 하면 운하가 마루금을 동강내 버리기도 했다. 평야지대를 가로질러 구릉성 산지가 많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은
거저먹는다는 것은 편하긴 하지만 쑥스러운 일이다. 한남정맥 7구간 종주가 딱 그런 셈이었다. 경기도 안성 칠장산에서 김포 문수산(文殊山·376.1m)에 이르기까지 약 180km(215km로 치는 이들도 있음) 길이로 뻗어 나간 한남정맥을 막바지 구간인 김포시 통진읍 것고개에서 문수산을 거쳐 보구곶리까지 13km쯤 걷는 것으로 맛보겠다고 마음먹었으니 참으로 염치없다 싶었다. 게다가 김포평야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한남정맥은 전형적인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지형인지라 만만하게 보고 산행에 나섰다.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따가운 햇살 아
한남정맥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해 온 백두대간 등 우리 산줄기 흐름에 대한 조상님들의 인식방법을 이야기하려 한다. 모든 생물은 개개의 세포가 모여 하나의 가시적인 생명체를 만든다. 그 작은 생명체들이 모여 서로 작용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우주의 생명체가 만들어진다고 인식했다. 이러한 불가분의 작용을 유기체적인 관계라고 한다.우리 조상님들은 산과 강을 이러한 하나의 유기체적인 자연구조로 보고 그 사이에 얽힌 원리를 찾는 데 지리학의 근간을 두었다. 우리 산줄기의 구성 원리인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말도 바로 이
원산경표에 의하면 백두대간이 남진하다 속리산 천왕봉에 이르러 서쪽으로 가지 하나를 치는데 그 줄기가 안성땅 칠장산에 이르러 다시 두 줄기로 갈라진다. 그 줄기 중 하나는 북서쪽으로 진행해 광교산, 계양산 등을 지나 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데, 한강의 남쪽 울타리가 된다 하여 한남정맥이라 했다. 다른 한 줄기는 남서진해 백월산과 수덕산을 지나 태안땅 안흥진으로 잠긴다. 이 줄기는 금강의 북쪽 울타리가 되어 금북정맥이라 했다. 그런데 이 금북정맥은 10대강의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는, 즉 금강의 하구로 줄기가 향해야 한다는 정맥의 원칙에
비밀의 문으로 들어간다. 상당산성에는 두 곳의 비밀 문이 있는데 이를 암문(暗門)이라 한다. 양덕부는 이곳이 정맥인줄 알았을까? 호서정맥 주능선과 산성이 만나는 지점에 남암문이 있다. 비밀의 문답게 동굴처럼 살짝 허리를 숙여야 지날 수 있다. 문은 1720년, 숙종 46년에 만들어졌다. 상당산성 1차 개축(1716〜1719) 이후에 만든 것이다.연대를 알 수 있는 것은 암문 내벽에 ‘강희경자오월(康熙庚子五月)’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문구에는 공사 책임자 이름도 있다. ‘양덕부 패장 한량(梁德溥 牌將 閑良)’이 그것이다
여암 신경준 선생이 썼다고 하는 사실(史實)에는 이설(異說)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산경표에 의하면 백두대간 상의 영취산에서 분기한 금남호남정맥이 조약봉에 이르러 두 줄기를 내어 놓는데, 그중 남서쪽으로 진행하면서 전라도를 좌우로 나눈 줄기가 호남정맥이고 북진하는 다른 한 줄기는 금남정맥이 된다.그런데 산줄기를 종주하는 산꾼들은 금남호남정맥과 호남정맥을 하나의 정맥으로 인식해 일단 금남호남정맥에 들었으면 그 연장선상에서 호남정맥을 진행하지 이를 굳이 둘로 나누어 종주하는 경우는 드물다.실제 정맥을 종주하는 산악회의 경우나 홀로 산꾼
를 따라 산을 탄 이들은 ‘금남정맥’은 알아도 ‘금강정맥’은 모른다. 금강정맥은 에서 새로 이름 붙인 산줄기다. “우리 선조들이 만든 산경표의 원래 산줄기를 왜 바꾸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산경표의 산줄기를 충실히 걸은 산꾼일수록 금강정맥의 손을 들게 된다. 지난 6월호 ‘7정맥 특집’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맥은 우리나라의 10대강을 구획하는 산줄기다. 우리나라의 큰 강인 금강은 혼자 생긴 것이 아니고, 수많은 산줄기의 계곡물이 모인 것이다. 금강의 남쪽에서 강의 근원인 계곡의 어머니 역할을 한 산줄기가
옛날 운장산 깊은 골짜기에 작은 절이 있었다. 절에는 한 스님이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지으며 수행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일곱 명의 청년이 찾아왔다. 이들은 망태를 둘러메고 있었는데 이목구비가 수려하게 잘생겼으며 눈이 유난히 반짝였다. 청년들은 스님에게 배가 고프다며 요기시켜 달라고 했다. 스님은 “나 먹을 밥도 없다”고 냉정히 거절했다.이들은 절을 떠나 산을 올라 어느 암자에 이르렀다. 암자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선비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선비에게 밥을 달라고 간청했다. 마침 저녁밥을 준비하던 선비는 “불공을 올린 다음 밥을 줄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시작해 남진하는 줄기가 약 1,547.1km지점에 이르러 영취산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남서진하는 줄기가 호남금남정맥이 된다. 이 줄기는 약 69.6km 되는 지점에 이르러 조약봉을 만나서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북서진하는 줄기는 금남정맥이 되고 남서진하는 줄기는 도상거리 약 423.3km의 호남정맥이 된다.산경표에 의하면 조약봉 분기봉을 출발한 이 호남정맥 줄기는 백운산에 이르러 그 맥을 다한다. 하지만 모든 산줄기는 한강이나 금강 등 10대강에서 맥을 다한다는 대원칙에 의할 때, 백운산에서 맥을 마친다는 것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호남정맥은 호남지역의 16개 시군을 지나면서 문화와 풍습을 달리 만들었다. 호남정맥을 기준으로 서쪽의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 유역 등은 평야지대의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동쪽의 섬진강 유역은 판소리와 농악 등이 발달해 현격히 다른 생활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호남정맥은 비옥한 평야지대와 자원이 풍부한 강을 끼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민간예술이 발달했다. 판소리와 판조가 발생한 곳도 호남정맥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투박하고 거친 발성이 그대로 배어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