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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연재ㅣ최선웅의 고지도이야기 89] 조선시대의 지적도 ‘어린도魚鱗圖’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 입력 2019.12.1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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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제작된 충청북도 청안군 북이면 일원의 경지배열일람도 (LH토지주택박물관 소장).
1911년 제작된 충청북도 청안군 북이면 일원의 경지배열일람도 (LH토지주택박물관 소장).

어린도魚鱗圖란 “물고기 비늘과 같이 생긴 지도”를 말한다. 그러나 지적학 용어로는 일정한 구역의 토지를 세분해 장척사지丈尺四至(소유지의 크기)를 기입한 지도가 물고기의 비늘처럼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현대의 지적도와 같은 것이다. 어린도를 모아 책으로 꾸민 것을 어린도책魚鱗圖冊 또는 어린도적魚鱗圖籍이라 하는데, 현대의 토지대장土地臺帳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적제도는 8세기경 대야발大野勃이 편찬한 <단기고사檀奇古史>에 ‘토지를 측량해 조세율을 개정했다’는 기록이 최초이고, 이후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양전제良田制가 실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양전제를 정비 보완했는데, 1485년(성종16)부터 시행된 <경국대전經國大典> 호전戶典에 ‘모든 토지는 6등급으로 나누며, 20년마다 양전을 실시해 대장을 만들어 호조와 해당 도·읍에 각각 보관한다凡田, 分六等, 每二十年改量成籍, 藏於本曹本道本邑’는 규정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 丁若鏞은 행정구역 개편을 비롯한 관제 토지제도, 부세제도 등의 개혁원리를 제시해 1817년(순조18)에 저술한 <경세유표經世遺表>에서 ‘정전제井田制 실시를 위한 양전의 필요성과 방법’을 설명하면서 “수확량을 기준으로 양전하는 결부법結負法을 고쳐 토지의 실제 면적을 기준으로 하도록 하며, 어린도를 작성해 양전에 편의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세유표> 제9권 지관수제地官修制 전제별고田制別考에 어린도의 기원을 비롯해 어린도 작성법까지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기원에 대해서는 “홍무시대의 어린도는 원래 주례에 근본한 것인데, 이것을 무루법이라 한다洪武魚鱗之圖 本諸周禮 斯之謂無漏法也”고 어린도는 주周나라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그 뒤 남송을 거쳐 명나라 홍무연간(1368년~1398년)에도 여러 차례 어린도에 대한 기원설이 주장되었으나, 〈경세유표〉에 “어린도는 홍무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魚鱗圖 不自洪武始也”라고 일축했다.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 李瀷도 “어린도는 전지田地의 모양을 두루 그린 것이니 오늘날의 방역지도邦域地圖와 같다. 모든 들과 골짜기 작은 것이 큰 것에 통합되니, 큰 것은 전도가 되고 작은 것은 분도가 된다. 구릉·분연墳衍(물가와 평지)·천택川澤의 갈아먹지 못하는 땅과 묵거나 황폐하여 개간되지 않은 땅도 모두 빠뜨리지 않고 산법算法에 의해 그 넓고 좁음과 길고 짧음을 적는다<후략>”고 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듬해인 1898년 전국의 양전量田사업을 담당하기 위한 양지아문量地衙門을 설치했는데, 이때 경지배열일람도耕地配列一覽圖를 비롯한 민유임야약도民有林野略圖·산록도·사표도四標圖·한성부지적도 등 대축척 실측도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경지배열일람도는 그 형태나 내용으로 보아 조선시대의 어린도와 같은 지도이다.   

경지배열일람도는 지금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충청북도 제천군 근좌면近左面 일대의 경지와 가옥분포도 13장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LH토지주택박물관에도 이와 유사한 대형 경지배열일람도가 소장되어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본은 제목과 범례가 있어 그 위치와 내용을 알 수 있으나, LH토지주택박물관 본은 제목이나 범례, 간기刊記가 없어 언제, 누가, 무엇 때문에 제작했는지 확실치 않다. 

LH토지주택박물관에 소장된 어린도는 종이에 3색으로 필사로 제작되었고, 크기는 가로 115cm, 세로 157cm이다. 언뜻 본 지도의 느낌은 경지의 구획을 촘촘하게 나눈 모습이 물고기의 비늘과 같아 어린도로 판단되는 도면이다. 도면에 표기된 주기 방향으로 방위가 판단되고, 상단 왼쪽의 하천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진천鎭川’, 동쪽에는 ‘청안淸安’이라 표기되어 있고, 지도 오른쪽 상단과 오른쪽 중간 공간에 ‘화하계花下界’라 표기되어 있어 이 도면은 충청북도 청안군淸安郡 북이면北二面 화상리花上里 일원임을 알 수 있다. 

김추윤(2005)은 충청북도 제천군 근좌면 원박리院朴里의 경지배열일람도에 대한 제작연대를 1897~1906년 사이로 추정했으나, 홍금수(2015)는 1911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 토지조사사업의 시범사업으로 작성된 도면 가운데 현존하는 것으로는 충청북도 청안군 북이면 화상리와 화중리花中里의 대형 도면 1도엽과 제천군 근좌면의 13도엽이 유일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LH토지주택박물관 소장 어린도는 위의 청안군 도면과 위치가 일치하므로 1911년 토지조사사업의 시범사업으로 제작된 경지배열일람도임을 알 수 있다. 

LH토지주택박물관 소장 경지배열일람도는 축척이 1:1,200이고, 붉은색으로 토지의 필지가 구획되고, 먹선으로 전답의 경계가 구획되어 있으며, 전답의 필지 내에는 전전傳田ㆍ전답傳畓, 제전諸田ㆍ제답諸畓, 외전外田ㆍ외답外畓, 고전姑田ㆍ고답姑畓, 목전睦田ㆍ목답睦畓 또는 부전婦田, 부전夫田, 숙택淑宅地 등으로 전답과 택지가 구분되어 있다. 

도면 상단 왼쪽에 ‘전전 547번 2두락 3복 주김민식傳田 五百四十七畨 二斗落 三卜 主金黾植’이라고 표기된 것을 살펴보면, ‘전전傳田’은 천자문 ‘전傳’자 밭이라는 뜻으로, 양전할 때 측량한 토지를 포함한 인접 필지의 총 면적이 5결結 이상이 되면 천자문의 다음 순번 글자로 기록하는 예이다. 그 다음 ‘5백47번五百四十七畨’은 필지의 지번이며, ‘2두락二斗落’은 해당 전답의 면적으로 두 마지기, 즉 두 말의 종자를 파종할 수 있는 면적으로 약 400평을 나타내고, ‘3복三卜’은 해당 토지의 면적단위, 즉 결부법結負法에 따라 전지의 면적과 수확량을 표준으로 하는 과세 단위의 하나로 ‘짐’이라고도 읽는다. 끝의 ‘주김민식主金黾植’은 해당 전답의 소유주이다.

현재 진정한 의미의 어린도는 남아 있지 않지만, 1911년 조선총독부 토지조사사업의 시범사업으로 제작된 충청북도 청안군과 제천군 일원의 경지배열일람도가 오늘날에 전해지고, 그동안 확실한 정보가 없었던 LH토지주택박물관 소장 어린도가 1911년에 제작된 경지배열일람도임이 밝혀졌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경지배열일람도이지만 현존 유일의 근대적 지적도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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