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등정 후 하산 중 동료 구하려다 사망… 네팔 여성 두 번째로 ‘국가 위인’ 선정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해 공항을 빠져 나오다 보면 네팔 국기를 들고 서 있는 한 여성의 동상을 마주하게 된다. 네팔 여성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자 파상 라무 셰르파pasang lhamu sherpa(1961~1993)를 기리기 위해 세운 조형물이다. 그녀는 1993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했으나, 하산 도중 컨디션이 좋지 못한 동료 셰르파를 돌보기 위해 함께 비박하다 목숨을 잃었다. 세계 최고봉 정상에 올라 네팔 여성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동료의 생명을 우선시하다 죽음까지 맞이한 명실상부 네팔의 국민 영웅이다.
파상 라무는 1961년 수르케Surke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파상 라무의 집안, 정확히는 집안 남성들은 모두 등반 가이드에 종사했다. 6남매와 함께 자란 파상 라무는 본인도 남자들처럼 등반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아버지 푸르바 키타 셰르파Phurba Kitar Sherpa를 설득해 15세의 나이에 트레킹 가이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집안 어른들은 그녀에게 셰르파 전통에 따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릴 것을 요구했다. 심지어 파상 라무의 의향과 상관없이 집안 간 약혼까지 맺어버렸다. 그러자 파상 라무는 파혼해 버리고 자신이 선택한 락파 소남 셰르파Lhakpa Sonam Sherpa와 결혼한 뒤 카트만두로 떠났다. 1979년, 그녀의 나이 18세 때 내린 결정이었다.
파상 라무 부부는 카트만두에서 트레킹 회사 탐세르쿠Thamserku를 차렸다. 이때부터 파상 라무는 본격적인 고산 등반을 시작할 수 있었다. 프랑스 몽블랑, 초오유, 피상 히말, 얄라피크 등 닥치는 대로 올랐다. 그러나 그녀의 산에 대한 갈증은 해갈되지 못했다. 그녀는 더 높은 곳, 에베레스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팔 여성 최초 ‘네팔 타라’ 칭호 받아
파상 라무가 에베레스트에 첫 도전장을 내민 건 1990년이다. 탐세르쿠를 통해 만난 프랑스의 한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동행했다. 그러나 여성 셰르파에게 정상 등정 기회를 줄 리 만무했다. 이에 자극받아 원정대를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이듬해 스스로 대장이 되어 네팔 최초 여성 원정대를 꾸렸다. 그러나 거센 폭풍설로 인해 물러나야 했다. 1년 뒤인 1992년 에베레스트에 세 번째 도전했으나 아쉽게도 남봉(8,750m)까지만 진출하고 날씨 문제로 인해 등정을 포기해야 했다.
1993년, 파상 라무는 다시금 네팔 여성 원정대를 꾸리고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 여성 원정대지만 다른 다섯 명의 대원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이번에는 날씨가 나쁘지 않아 순조롭게 등반을 진행할 수 있었다. 마침내 4월 22일, 파상 라무는 네팔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파상 라무는 정상에서 단 20여 분의 시간만 보낸 뒤 하산을 서둘렀다. 정상에 오르는 데에만 꼬박 하루가 걸려 이미 날이 저문 상태였기 때문이다. 라무는 별다른 고산 증세가 없었지만, 동행한 소남 츠링 셰르파가 오를 때부터 피가 섞인 기침을 뱉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소남 츠링은 이전 원정에서 파상 라무와 동행했을 뿐만 아니라 에베레스트를 5회나 등정한 고참 셰르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