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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나홀로 세계일주ㅣ에콰도르 코토팍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 코토팍시와 마주하다

글·사진 김영미 여행작가
  • 입력 2020.01.1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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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림 같은 이끼로 가득한 시크릿 가든…
태초의 초록 내음 몸에 채워

루미냐우이 화산 정상에서 마주 보이는 코토팍시 화산.
루미냐우이 화산 정상에서 마주 보이는 코토팍시 화산.

싱그런 초록이 펼쳐진 초원 너머로 루미냐우이Rumiñahui 코토팍시Cotopaxi, 신촐라구아Sincholagua, 안티사나Antisana 등 4,000m 가 넘는 9개의 고산이 시원스럽게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해먹에 자유롭게 누워서 햇살을 맞으며 세계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 코토팍시를 바라보고 있다. 마치 코토팍시가 마당에 앉아 있는 듯하다. 이곳은 어디일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 마차치Machachi로 향한다. 마차치를 지나면서부터는 울퉁불퉁 시골길, 덜컹거리는 사륜구동 지프의 짐칸에 실려서 배낭과 함께 짐짝처럼 이리저리 쏠리면서도 함께 탄 사람들은 서로의 모습을 보고 웃느라 힘든 줄도 모른다. 1시간 이상 짐짝으로 이동하고 나니 약간 어지럽기도 하지만 도착한 곳은 이런 모든 피로를 날리기에 충분하다.

그 많은 고산이 한눈에 조망되는 해발고도 3,500m의 나지막한 언덕에 시크릿 가든 코토팍시Secret Garden Cotopaxi가 있다. 와이파이도 사용할 수 없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곳. 숙소 어디에서도 코토팍시가 인사를 한다. 시선이 멈춘 곳은 대형 해먹. 따스한 햇볕을 맞으며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행객들이 눕거나 앉아서 코토팍시를 마주하고 있다. 해먹에 누워서 코토팍시를 마주하다니! 사진의 모습 그대로였다.

파소초아 정상에서 바라보는 운무에 싸인 안티사나와 신촐라구아.
파소초아 정상에서 바라보는 운무에 싸인 안티사나와 신촐라구아.

계곡 트레킹에 앞서 각자 발에 맞는 장화를 신는다. 도대체 계곡이 어떻길래 장화까지 신을까? 궁금증은 10여 분도 되지 않아 풀린다. 원시림 같은 계곡 길은 이끼로 가득하다. 겨우 한 사람 정도 걸어갈 수 있는 곳. 태초의 자연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마법의 계곡이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진한 초록 내음이 몸 안에 가득 채워진다. 구석구석 작은 세포까지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공기가 채워지고 몸에 남아 있던 오염된 모든 것들은 밖으로 나오기를 바라면서 더 깊게 들이쉬고 더 길게 내쉰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쑥쑥 건강이 자란다. 

용암이 흘러내려 한 개의 바위로 굳어버린 루미냐우이 정상.
용암이 흘러내려 한 개의 바위로 굳어버린 루미냐우이 정상.

마법의 계곡트레킹

계곡 길의 바위를 걷기가 쉽지 않다. 이끼가 가득하고 자유로운 위치에 놓여 있어서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위험하다. 긴장감이 맴돈다. 몸의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긴장해서일까? 힘들지 않아서일까?

두 번째의 폭포. “이곳에서 잠시 쉽니다”라는 가이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옷을 훌훌 벗더니 폭포로 떨어진다. 여기저기서 다이빙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린다. 열정적으로 자연을 즐기는 이들. 나는 언제나 과감하게 즐길 수 있을까?

역시나 오르는 길은 어렵지만 내려오는 길은 쉽다. 계곡에서 발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둥대던 것이 잠시 전인데 마치 익숙한 것처럼 통통 가볍게 바위를 디디며 내려온다. 어느새 계곡 길이 끝나고 초록 이끼가 가득한 오솔길. 2시간여의 계곡 트레킹이 끝나고 현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저 멀리 코토팍시가 인사를 한다.

험악한 화산재 바위로 뒤덮인 루미냐우이 화산 정상 능선.
험악한 화산재 바위로 뒤덮인 루미냐우이 화산 정상 능선.

파소초아 트레킹

시작 지점은 고도가 3,500m인데도 그리 춥지는 않다. 고도가 높아지면 날씨 변화가 심해지니  가능하면 비가 오지 않을 때 트레킹이 끝났으면 좋겠다. 시작부터 경사길. 고도가 높으니 호흡이 가빠진다. 모두 전투를 하듯이 참 빨리도 걷는다. 나만 제외하고 모두 유럽과 북미에서 온 사람들이라 체격 자체가 다르다.

숲길은 까하스국립공원과 같은 이끼로 뒤덮여 있다. 같은 안데스산맥의 산들인데 에콰도르의 산은 마치 열대림처럼 이끼가 카펫처럼 깔려 있어서 스펀지 위를 걷는 듯하다. 캐나다 할아버지가 정성스레 초록 카펫을 사진으로 담는다. 아침이슬이 똑똑 떨어지는 작은 오솔길. 달콤하고 상쾌한 아침 공기. 오늘의 첫 손님을 맞이하는 파소초아Pasochoa의 바람 소리와 계곡 물소리, 우리들의 말소리가 어우러져 대자연의 합창으로 숲에 울려 퍼진다. 살짝 철은 지났지만 이따금 보이는 블루베리도 따먹고 쉬엄쉬엄 이야기도 나누면서 오르니 지금 걷고 있는 곳의 고도가 4,000m에 가깝다는 사실도 잠시 잊는다.

숲길에서 나오니 능선길이 보인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다르게 바위가 가득하고 가파르다. 트레킹을 하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배낭에 넣는다. 가파르고 바위투성이인 봉우리를 넘기 위해서, 나의 안전과 카메라 안전을 위해서 스틱도 접었다.

시크리트 가든에서는 바라보는 신촐라구아, 앞쪽으론 고산평원이 펼쳐져 있다.
시크리트 가든에서는 바라보는 신촐라구아, 앞쪽으론 고산평원이 펼쳐져 있다.

무사히 두 개의 봉우리를 넘으니 정상. 이곳은 해발고도 4,200m. 정상 봉우리에 오르니 아래서는 보지 못했던 안티사나(5,753m), 신촐라구아(4,887m)도 보인다. 광활하고 스펙터클한 자연의 장엄한 모습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 장관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 숨을 헐떡거리며 고산에 올라왔구나!

정상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즐기는 휴식 시간. 캐나다에서 온 아버지와 아들은 비스듬히 돌에 기대어 쉬고, 독일 친구는 어느새 작은 책을 꺼내어 읽고 있다. 휴식을 즐기는 모습도 다양하다. 눈을 감고 따스한 햇볕을 받으니 스르르 잠이 온다.

휴식이 끝나갈 즈음 올라올 때 조망되었던 주변의 산들을 안개와 구름이 서서히 삼킨다. 오후가 되면 구름이 위로 올라와 산은 구름바다에 잠긴다. 4,000m 넘는 고산의 일상 모습이다.  산을 오르는 내내 길을 인도해 주던 코토팍시도 구름 속으로 숨는다. 아스라이 구름 속에서 비치는 코토팍시가 꼭꼭 숨어서 안 보일 때까지 시선을 뗄 수 없다. 떠나가는 연인의 모습만큼이나 간절하다.

험한 길을 내려오고 이제는 편안하게 걷는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 구름은 산봉우리에 걸치고 햇님이 윙크를 한다. 해가 나오니 갑자기 더워진다. 변화무쌍한 날씨이다. 모두 약속이나 한듯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종종 걸음으로 하산을 한다.

스콜이 쏟아진 후 하늘에서 드리워진 무지개.
스콜이 쏟아진 후 하늘에서 드리워진 무지개.

루미냐우이 화산 트레킹

코토팍시국립공원에서 코토팍시 화산과 마주 보고 있는 루미냐우이(4,721m) 화산은 코토팍시 화산의 명성에 가려져 있다. ‘루미냐우이’는 에스파냐가 잉카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공격했을 때 맞서 싸운 장군 ‘루미냐우이’의 이름에서 따왔다. 오타발로를 방문했을 때 그의 조각상을 보고 알았다.

이른 새벽부터 날씨가 걱정되었는데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예상한 대로 오늘은 나 혼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토팍시 화산으로 트레킹을 가는데 나는 이미 라타쿵가에서 코토팍시 화산 트레킹을 다녀와서 루미냐우이 화산을 선택했다. 트레킹 비용은 3인 이상이면 1인당 35달러, 1인이면 80달러이다. 혼자 가는 데 지불해야 하는 추가요금이 45달러. 가이드와 운전기사, 지프차까지 혼자서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그리 비싼 비용도 아니다.

루미냐우이는 코토팍시국립공원 안에 있어서 입산 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도착해보니 지난번 코토팍시 화산 트레킹 때 왔었던 림피오풍고Limpiopungo호수가 들머리였다. 그때 5~6시간 걸리는 트레일을 보고 아쉬웠었는데 그 길을 걷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이곳에 다시 왔다. 뭔가 인연이 있었나보다.

들머리에선 루미냐우이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각종 약용식물로 가득한 지역을 지나며 가이드는 식물들의 쓰임새를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을 해준다. 정성 가득한 설명에도 이름이 너무 생소해서 기억하기 쉽지 않다. 맞은편에 우뚝 서 있는 코토팍시를 향해서 손짓도 하고, 손가락으로 집어 올리는 사진도 찍으며 여유롭게 산행을 즐기는 사이에 갑자기 가이드 발걸음이 빨라진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나보다.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고 길은 험해진다. 가이드 뒤를 쫓아가느라 숨이 헐떡거린다. 가이드와 둘이 온 것이라 시간제한 없이 여유로운 산행을 할 거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차량이 와 있기로 한 시간에 맞춰가야 한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출발할 때 조금 여유 있게 시간을 약속했어야 했다. “서두르지 말자”, “호흡하는 박자를 놓치지 말자.” 언제나처럼 나에게 최면을 건다. 조금 더 깊은 호흡으로 몸의 리듬을 찾고 천천히 가이드 뒤를 따른다. 정상이 보인다.

긴장이 풀어질까 염려하는지 길은 모래처럼 고운 화산재로 깔려 있다. 미끄러워서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조심스럽다. 접었던 스틱을 꺼낸다. 산을 오를 때는 아무리 작고 낮은 산이라도 혹여 모를 때를 대비해서 언제나 스틱을 가지고 다닌다.

시크리트가든의 하이라이트인 해먹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행자들.
시크리트가든의 하이라이트인 해먹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여행자들.

1월 1일 새해 첫날 피친차 산행에서 이미 한 번 경험한 터다. 가이드는 미끄러운 길도 아주 편안하게 잘 오른다. 거의 매일 오른다고 하니 길이 얼마나 익숙할까? 눈으로 뒤덮인 산을 걸을 때는 앞서가는 사람이 러셀하면서 만들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 걸으면 힘도 덜 들고 안전하다. 눈은 아니지만, 화산재 러셀로 가이드가 만들어 놓은 발자국을 따라 조심스레 발을 옮긴다. 미끄러운 길이 끝나니 이젠 딱딱한 화산재 바위로 뒤덮인 길이다. 경계심을 늦추기가 어렵다.

루미냐우이는 남미 원주민의 케추아Quechua족 언어로 ‘바위’를 뜻하는 ‘루미rumi’와 ‘눈’ 또는 ‘얼굴’을 뜻하는 ‘냐위ñawi’가 합쳐진 말이다. 즉 바위 얼굴이다. 왜 이 산의 이름을 바위 얼굴이란 뜻을 가진 루미냐우이 장군의 이름에서 가져왔는지 이해가 된다. 정상 주변의 화산석은 조금만 부딪혀도 엄청나게 아프다. 루미냐우이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보다 마주 보이는 코토팍시를 이렇게 멋진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기쁨이 더 크다. 코토팍시 화산에 갔을 때는 정작 코토팍시 화산의 웅장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360도 돌아가며 루미냐우이 화산을 천천히 살펴보니 산 정상부터 아래까지 다양한 색을 입고 그 모습도 달랐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심호흡하며 힘겹게 올라온 수고에 대한 상이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갑자기 배가 고프다. 가이드는 조금 내려가서 안전한 곳에서 먹자고 하지만 나는 정상에서 더 머무르고 싶다. 샌드위치를 한 번 베어 물고 루미냐우이 화산을, 또 한 번  베어 물고 코토팍시를 바라본다. 샌드위치를 먹는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계곡트레킹의 백미, 폭포에서 다이빙 즐기기.
계곡트레킹의 백미, 폭포에서 다이빙 즐기기.

내려오는 길은 거의 달리기 수준. 올라갈 때 천천히 오르지 않았으면 그나마도 보지 못하고 스쳐 갔을 풍광을 흘깃흘깃 바라본다. 천천히 오르길 정말 잘했다. 화산재 길도 모래흙 길도 끝나고 다시 숲길. 저 멀리 호수까지 보이니 쉬엄쉬엄 가도 되겠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늦어진다. 가이드는 앞서서 가다 말고 자꾸 뒤를 바라본다. 아마도 조금 더 빨리 오라는 신호 같다.  슬쩍 모른 척하고서 아무 이상 없다는 듯이 손만 흔든다.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3시 5분 전. 운전기사와 한 약속은 3시. 약속을 지켜서 다행이다.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는 운전기사에게 ”무쵸스 포토스”를 몇 번이나 이야기한다. ‘무쵸스 포토스‘는 많은 사진이란 스페인어. 나는 모른 척하며 웃기만 한다. 그저 우리 집 와이드 TV로 들어온 루미냐우이 화산의 모습만을 상상할 뿐이다.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이끼가 가득한 계곡 길.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이끼가 가득한 계곡 길.

쉼표를 찍는 시간

바람과 함께 움직이는 신비한 구름, 시시각각 다른 옷을 입는 코토팍시와 그의 친구들. 손을 뻗으면 마치 코토팍시는 내 손안으로 들어올 것만 같다. 계곡엔 만년설이 녹아 흐르고 꽃밭에는 울긋불긋 꽃들이 만발이다. 정성스럽게 준비되는 식사, 마지막 햇빛이 들판과 산에 내려앉으면서 하늘은 붉은 주홍빛으로 세상을 물들인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장작이 훨훨 타오르는 벽난로, 밤이면 쏟아지는 별, 스콜처럼 가끔 쏟아지는 비까지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캐나다에서 온 부자는 오늘도 변함없이 해먹에 누워 코토팍시를 바라보며 책을 읽는다. 나는 모자를 쓰고 꽃밭 옆에 있는 해먹에 누워 눈을 감고 이곳에서의 일상을 내 기억에 하나씩 조각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존재만으로도 감동인 자연 안에 머물렀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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