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DIN] “ 산이 깨끗해지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도 커져요”

글 신준범 차장대우 사진 양수열 기자
  • 입력 2020.08.06 17: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 51주년 캠페인 Do It Now <1> 현장]
클린하이커스 6명 참가해 수락산 청학동계곡 우중 쓰레기 수거

참가자들이 수거한 쓰레기로 만든 정크아트 작품. 쓰레기와 클레오파트라를 합쳐 ‘쓰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흡연자에 대한 비판이나 여성성에 대한 부정적 의도가 아닌, 마구 버려지는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한 형상이다.
참가자들이 수거한 쓰레기로 만든 정크아트 작품. 쓰레기와 클레오파트라를 합쳐 ‘쓰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흡연자에 대한 비판이나 여성성에 대한 부정적 의도가 아닌, 마구 버려지는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한 형상이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주인 의식이다. 클린하이커스와 함께한 하루에서 친환경에도 고수와 하수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수는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고, 중수는 쓰레기를 줍고, 고수는 주운 쓰레기를 하산 후 집에 가져가 완벽하게 분리수거해서 버린다.

지저분한 쓰레기를 집에 들여놓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김강은씨는 하산후 1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에도 쓰레기 가방을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 손쉽게 지하철 쓰레기통에 던져버릴 법했지만, 그의 책임감은 강했다. 결국 집에서 최종 분리작업을 거쳐 폐기했다고 한다.

수락산 금류폭포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들고 선 클린하이커스.
수락산 금류폭포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들고 선 클린하이커스.

내가 수거한 쓰레기에 대한 주인의식, 우리 산에 대한 주인의식, 우리 땅에 대한 주인의식이 있다면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도, 애초에 과한 쓰레기를 발생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깨끗한 자연의 감동을 아는 여러분의 월간<山> 캠페인 ‘Do It Now! 지금 시작하자!’ 관심을 청하는 바이다.

비가 온다고 했지만 아랑곳 않고 6명의 ‘딘DIN(두잇나우 약자)’ 참가자들이 수락산 청학동계곡 입구에 모였다. 뉴스에 자주 오르내렸던 바로 그 계곡이다. 식당들이 계곡을 무단 점거해 시멘트 보로 자체 수영장을 만들어 장사하고, 심지어 익사 사고까지 났던 곳이다. 경기도에서 강력하게 계도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학동계곡 클린 산행에 나섰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쓰레기 수거에 열중인 참가자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쓰레기 수거에 열중인 참가자들.

수락산 청학동계곡은 과소평가 받은 면이 있다. 수락산 능선을 경계로 경기도와 서울이 나뉘는데, 청학동계곡은 경기도 남양주 쪽 기슭에 있어 교통이 불편해 주목을 덜 받았다. 옥류폭포, 금류폭포, 은류폭포가 있어 옛 산악인들의 빙벽등반 입문 코스로 손꼽혔다. 빙벽을 할 정도의 폭포가 있다는 건, 그만큼 골이 깊어 수량이 많고 화려한 암반이 있는 큰 계곡임을 뜻한다. ‘청학동’이란 이름도 예부터 전하는 도인들의 이상향을 뜻하니 평범한 계곡은 아닌 셈이다.

산에 들자 비가 내렸다. 미리 우중산행 준비를 했기에, 모두 우비와 방수재킷, 레인커버로 무장했다. 계곡을 이중삼중으로 막고 있던 식당들이 사라지자 비로소 산 같다. 완전히 자연에 동화되진 못했지만, 느리게 생채기가 아물고 있다. 미처 치우지 못한 철거의 잔해와 행락객이 두고 간 흔적을 지우며 오른다. 계곡과 임도를 오가며 눈에 보이는 족족 수거한다.

인천에서 온 곽신혁씨는 지난해 3월부터 클린하이커스 활동을 하며 쓰레기를 줍고 있다. 산악회 회장만 10년을 맡았을 정도로 등산을 좋아해 자연스럽게 친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플라스틱 제로’ 운동에 공감하면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일상에서도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혼자는 한계가 있어, 뜻 맞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클린하이커스 모임에 동참하고 있다.

우중산행으로 수락산을 오르는 참가자들.
우중산행으로 수락산을 오르는 참가자들.

수원에서 온 김병화씨는 수락산 클린 산행만 두 번째다. 2019년 2월에 열린 수락산 클린하이킹에 처음 참여한 이후 산행할 때면 쓰레기를 줍는 습관을 들였다. 주부인 그녀는 원래 청소를 좋아하는 성격인데, 산행 중 보이는 쓰레기를 두고 오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우연히 SNS에서 김강은씨가 쓰레기 줍기 산행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바로 이거다’ 싶어 동참했다. 그는 “산에 가는 게 좋고, 조금이라도 산이 깨끗해진 게 좋다”며 맑은 웃음을 짓는다.

빗방울이 거세다. 쓰레기 수거를 잠시 멈추고 짙은 숲으로 든다. 악천후에도 아랑곳없이 서로 주운 쓰레기를 둘러보며 유쾌한 분위기다.

빗방울이 잦아들자마자 주변 쓰레기 수거를 시작한다. 비탈진 계곡 아래 떨어져 있는 생산연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쓰레기를 줍는데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 준다. 등산로 밖에 팽개쳐진 10~20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누군가의 검은 양심을 회수한다. 10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주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비를 맞으며 꿋꿋이 끝나지 않을 청소를 한다.

흙속에 반쯤 파묻힌 캔을 수거했다.
흙속에 반쯤 파묻힌 캔을 수거했다.

제주에서 온 선한 또라이?

오늘 클린 산행을 위해 전날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이 있다. 클린하이커스로 1년 넘게 활동하며 멤버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고원상씨다. 클린하이커스에서 그의 별명은 ‘선또’이다. 일명 ‘선한 또라이’라는 것. 제주에서 매달 최소 2번은 서울에 와서 이들과 함께 산행을 한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다.

그는 “처음엔 이렇게 산에 쓰레기가 많은지 몰랐다”며 “멤버들과 함께 활동하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고 선한 미소를 짓는다. ‘선또’라는 별명과 달리 그는 제주지역 신문에서 정치부 기자를 맡고 있다. 직업과 달리 이상적인 꿈을 갖고 있어, “올해 안에  혼자 힘으로 환경 매거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수락산 중턱의 금류폭포는 아직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는지 물이 찔끔 흐르는 정도다. 청학동계곡의 명소로 손꼽히는 금류폭포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사다리 같은 계단을 오른다. 호흡을 진정시키자 너른 마당이 있는 내원암이다.

바위 틈 사이의 쓰레기를 줍는 제민주씨.
바위 틈 사이의 쓰레기를 줍는 제민주씨.

젖은 장비를 재정비하고 지금껏 주운 쓰레기를 확인한다. 예상대로 온갖 종류의 상당한 쓰레기를 모았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숱한 담배꽁초. 계곡 주변에 꽁초를 버리면 물이 오염되어 주변 동식물에 심한 피해를 입힐 것이 자명한데, 담배꽁초는 아무데나 버려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은 듯하다. 산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불법인데, 양심까지 버린 셈이다.

함부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주운 쓰레기를 모아 바닥에 정크아트 작업을 한다. 정크아트Junk Art는 쓰레기를 소재로 만든 예술 작품이다. 미대 출신이자 벽화가인 김강은씨의 주도로 다들 손놀림이 바쁘다.

비탈진 사면의 쓰레기를 줍기 위해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 준다.
비탈진 사면의 쓰레기를 줍기 위해 미끄러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 준다.

가는 비가 내리는 와중에 화려한 정크아트를 완성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현대인들의 문화를 되짚고자 담배 피우는 여인을 형상화했다. 김강은씨는 “가지고 있는 쓰레기의 색감을 살리는 과정에서 여성으로 표현되었으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이들의 행태를 표현하기 위함이지, 여성성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단시간에 만든 화려하고 의미 있는 협동 작품에 놀라며, 기념사진을 찍고선 쓰레기는 다시 각자의 수거함에 담았다. 이 날씨에 정상을 오르는 건 무리라고 판단, 산을 내려선다. 올라갈 때보다 한결 깨끗해진 산길이 개운했는지, 이들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청학동계곡을 메운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아랑곳없이 ‘두잇나우’ 캠페인 산행에 동참한 클린하이커스 회원들.
비가 내리는 날에도 아랑곳없이 ‘두잇나우’ 캠페인 산행에 동참한 클린하이커스 회원들.
제민주 클린하이커스.
제민주 클린하이커스.
Green People


"나비의 느린 날갯짓이 큰 변화 가져 올 것

제민주 클린하이커스

“산의 쓰레기를 줍는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제 생각은 달라요. 변화가 없지 않아요. 묵묵히 쓰레기를 주우면 생각이 바뀌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예요. 멍청한 짓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요. 물론 동참해 달라고 강요할 수는  없죠. 하지만 자연을 좋아하는 등산인들이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있어요. 그렇게 계속 하다 보면 나비의 느린 날갯짓이 큰 파장으로 번져나가듯 세상이 변할 거라 생각해요.”

사보제작 기자인 제민주(32)씨는 3년 넘게 실내암장을 다닌 클라이밍 마니아다. 지난해 3월 SNS를 통해 김강은씨의 클린하이킹 활동을 알게 되었고, 그녀를 인터뷰하고자 참가했다가 고정멤버로 눌러 앉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매주말 등산하는 부모를 따라 근교산을 누볐고, 모처럼 찾은 산이 그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 없었다. 게다가 쓰레기를 줍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의미 있었다고 한다. 

“보람이 남달라요. 쓰레기를 줍고 치우면서 세상에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이젠 친구랑 산에 가더라도 ‘20개 줍기’ 같은 목표를 세워서 가요. 하염없이 주우면 등산의 재미를 느끼기 어려워서 개수를 정하는 거죠.”

2018년에는 자전적 에세이집 <착하지 않습니다>를 펴냈다. 고향인 부산에서 상경해,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걸어온 시간을 독백처럼 조용히 적었다. 그는 23세부터 부산의 기획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으나 29세에 상경해 사보 기자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등산을 즐기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난 것에 대해 “산에서 예쁜 애슬레저룩을 입고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는 게 유행”이라며 “예전에 비해 등산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애슬레저룩은 여성들이 즐겨 입는 레깅스 같은, 등산은 물론 일상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입을 수 있는 스포츠웨어다.

사실 그의 이런 친환경 활동을 이해하는 친구는 많지 않다. 적극적으로 공감해 주는 건, 클린하이커스들이라 마음 맞는 멤버들과 더 자주 만나게 된다고 한다. 

“또래 친구들은 만나면 항상 맛집 찾아가고, 넷플릭스로 영화 보고, 카페에 가요. 제가 하는 활동에 대해 이해를 못 해요. 근데 저는 제 행동에 확신과 소신이 있어요. 10년 단위로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세워요. 서른이 되기 전에 세운 버킷리스트는 책 내는 거였는데 이뤘어요. 지금은 30대에 이룰 새로운 버킷리스트를 찾고 있어요.”

  

사람들이 “내려갈 건데 왜 힘들게 올라가냐”고 물으면, 그는 “올라가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 있다”고 답한다. “산행도 좋은데 쓰레기까지 주우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지게 된다”고, 친환경을 통해 자존감 높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준다.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