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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World News] ‘미국자연주의 대가’ 존 뮤어 인종차별 재조명

글 오영훈 기획위원
  • 입력 2020.09.2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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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중심의 환경운동 조장했단 비판도

1903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좌)과 함께 요세미티공원을 찾은
존 뮤어(우). 사진 게티 이미지
1903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좌)과 함께 요세미티공원을 찾은 존 뮤어(우). 사진 게티 이미지

백인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뒤 이어지고 있는 흑인 인권운동으로 인해 미국 산악계에서는 미국 자연주의의 대가로 꼽히는 존 뮤어(1838~1914)의 과거 인종차별적 발언이 도마에 올랐다. 뮤어는 산악인이자 저술가로, 특히 요세미티국립공원 설립에 관여하면서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그의 인종차별 발언을 재조명한 곳은 존 뮤어가 창설한 미국의 대표적 환경단체인 ‘시에라 클럽’이다. 시에라클럽은 1960년대 유색인종의 회원 가입을 허용할 때까지 철저히 백인 위주의 단체였으며, 초기 지도급 인사들은 백인우월주의를 따르는 우생학 신봉자이기도 했다.

1920년대 강제로 퇴거당해 빈민으로 전락한 체로키 원주민의 가옥. 사진 노스캐롤라이나주
1920년대 강제로 퇴거당해 빈민으로 전락한 체로키 원주민의 가옥. 사진 노스캐롤라이나주

지난 7월 시에라 클럽의 전무이사 마이클 브룬은 홈페이지에 게시한 기고문에서 뮤어의 인종차별적 발언들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존 뮤어는 흑인과 북미 원주민을 두고 ‘게으르다’, ‘미신을 믿는다’, ‘새처럼 종알댄다’, ‘다람쥐 같다’ 등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으며, 특히 미국 남동부 체로키 인디언 마을을 보고는 ‘지저분하게 대충 사는 사람들’이라고도 했고, 이들의 거주지는 ‘야만인 천막촌’이라고도 묘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이와 같은 발언들은 당시 인종차별적 강제퇴거의 역사를 도외시한 것의 일환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백인 이주자들은 1838~1839년 스모키산의 금광을 노리고 체로키 인디언들을 내쫓았는데, 삶의 터전을 빼앗긴 인디언들은 추운 겨울에 살 곳을 찾아 이동하다가 4,000명이나 동사한 바 있다. 당시 인디언들의 이동 경로는 ‘눈물의 여정The Trail of Tears’이라 불린다.

캘리포니아주 세콰이아국립공원에 설치된 존 뮤어 두상. 사진 브라이언 멜리.
캘리포니아주 세콰이아국립공원에 설치된 존 뮤어 두상. 사진 브라이언 멜리.

요세미티도 마찬가지다. 유럽인이 미국 대륙에 정착한 이래로 요세미티계곡에 살던 수천 명의 미주 인디언 원주민은 전염병과 폭력으로 모두 자취를 감췄다. 뮤어는 1868년에 요세미티를 처음 방문했는데, 그보다 17년 이전에 백인들이 요세미티 원주민들을 살육했던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었다고 한다.

또한 뮤어가 선도한 환경주의에 대해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뮤어는 환경주의에 있어 핵심적인 인구 증가, 도시화, 기후변화 등에 대해서는 침묵했고, 당시 백인들이 선호했던 자연에 대한 종교적 찬사를 늘어놓으면서 오늘날 백인 중심의 자연주의가 뿌리내리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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