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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최선웅의 고지도 이야기 97] 캡틴 쿡의 항해궤적을 그린 ‘세계지도’

글 최선웅 한국지도학회 부회장, 한국지도제작연구소 대표, 한국산악회 자문위원
  • 입력 2020.09.2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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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쿡의 항해궤적이 그려진 세계지도(출처: National Library Australia).
제임스 쿡의 항해궤적이 그려진 세계지도(출처: National Library Australia).

18세기 후반, 유럽의 강국들은 대양을 지배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특히 미지의 영역인 남방대륙Terra Australis은 그 존재 여부조차 알지 못해, 가장 먼저 이 새로운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을 위한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1768년 영국 왕립학회Royal Society는 해군과 연계해 최초로 태평양에 파견할 과학탐험대를 조직하고 있었는데, 해군성은 갓 중위로 진급한 40세의 제임스 쿡을 탐험대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제임스 쿡James Cook은 1728년 10월 27일 영국 요크셔의 머튼Marton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아버지와 머튼 태생의 어머니에게서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1736년 쿡의 가족은 그레이트 에이톤Great Ayton의 농장으로 이주해 쿡은 그곳에서 초등교육을 마치고, 농장 관리인으로 승진한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17세가 되던 1745년 스테이시스Staithes의 어촌 마을 상점에서 일했다. 역사가들은 쿡이 이곳에서 바다에 매료된 것으로 보고 있다.

1746년 쿡은 석탄수송업을 하는 존 워커John Walker의 회사에 수습선원이 되어 틈틈이 배를 부릴 때 필수적인 대수학代數學과 삼각법三角法, 항해술, 천문학 등을 공부했다. 1755년 쿡은 귀족들이 좌지우지하는 영국사회에서 유일한 출세 길인 해군에 입대한 뒤 선원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아 1757년에 사관 대우의 항해장으로 승진했고, 프랑스와의 7년 전쟁 동안 미국 세인트로렌스강 하구 지역을 면밀히 측량해 해도를 제작했다. 1763~1768년 사이에는 뉴펀들랜드섬 해안을 측량해 정확한 지도를 제작한 공적으로 영국 해군성과 왕립학회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제임스 쿡은 왕립학회의 금성 일면통과日面通過의 관찰과 남방대륙 탐사를 목적으로 1768~1780년 12년간 세 차례에 걸쳐 지구 여덟 바퀴를 항해했다. 그의 업적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남방대륙이 존재하지 않음과 북서항로의 항행 불가능을 밝힌 것 외에도 태평양 상의 많은 섬들을 발견하고 지도화했으며, 존 해리슨John Harrison이 개발한 크로노미터로 정확한 경도를 측정하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등을 영국령으로 선언했다.

캡틴 쿡의 3차에 걸친 항해궤적을 나타내는 세계지도는 해군 장교인 헨리 로버츠Henry Roberts에 의해 1784년에 완성되었다. 그는 지도제작자이며 탐험가로서 쿡의 2차ㆍ3차 항해에 수행하면서 쿡의 지시로 수로측량과 지도학 데이터의 유지 관리를 맡았다. 지도의 동판 조각은 로버트 로리Robert Laurie가 새겼고, 지도 출판은 런던의 지도제작업체이며 출판사 대표인 윌리엄 파덴William Faden에 의해 1784년에 초판이 발행되었다.

‘캡틴 제임스 쿡에 의해 발견된 내용을 표시한 항해도 A general chart exhibiting the discoveries made by Captn. James Cook’란 명칭의 이 세계지도는 초판이 발행된 이후 해를 거듭하며 여러 형태의 지도가 제작되었다. 지도의 크기는 가로 90.4cmㆍ세로 53.6cm이며, 축척은 약 4,500만분의 1이다. 투영도법은 해도에 사용되는 메르카토르 도법Mercator projection으로 제작되었고, 경도는 그리니치 본초자오선을 기준으로 했다.

지도는 채색본hand colored으로 유럽은 담적색, 아프리카는 연두색, 아시아는 담황색, 아메리카는 담갈색으로 구분하고, 해안선의 안쪽은 짧은 가로선을 촘촘히 그어 강조하고, 해안선을 청색 띠로 채색해 바다를 표시했다. 지도 우측 하단에 적힌 색상 참조에 따르면 영국이 발견한 태평양 일대 연안은 적색으로 표시하고,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 1세의 명에 따라 비투스 베링Vitus J. Bering이 1741년에 발견한 베링해협 연안과 아메리카 북서쪽 해안은 청색으로 구분했다.

지도 좌측 하단에 표시된 항해궤적 범례에 제1차 항해는 파선破線에 적색 선, 제2차 항해는 점선點線에 청색 선, 제3차 항해는 실선實線에 황색 선을 덧그려 구분했다. 각 항해궤적에는 출발ㆍ도착 항구와 날짜는 물론 중간 기착지나 항로 중간에도 통과 날짜를 표기했다. 또한 중요한 목표지점에는 그곳의 상황을 적었는데, 예를 들어 제2차 항해 때 최남단 도착지에는 ‘단단한 벌판과 광대한 빙산Firm Field and Vast Mountains of Ice’이라고 적었다.

지도상으로 보는 제1차 항해는 타히티섬에서의 금성 관측과 전설의 남방대륙 발견을 목표로 1768년 8월 26일 엔데버Endeavour호로 플리머스항을 출발했다. 대서양을 횡단해 남미 최남단의 케이프 혼Cape Horn을 지나 이듬해 4월 13일 천체관측 목적지인 타히티에 도착해 6월 3일 금성의 일면통과를 관측했지만, 기대했던 결과는 얻지 못했다. 뉴질랜드의 북섬과 남섬 사이의 해협(쿡 해협)을 발견한 뒤 폭풍이 심해져 남방대륙은 접근조차 못 했으나, 호주 동해안을 탐사하면서 해안을 측량했다. 1771년 6월 12일 영국으로 귀환했다.

제2차 항해는 남방대륙 탐사를 목적으로, 1772년 7월 12일 리졸루션Resolution호로 플리머스항을 출발해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인도양으로 남회귀선을 따라 동진했으나 남방대륙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 뒤 뉴질랜드를 거쳐 다시 남하해 1774년 2월 1일 남위 71° 10′까지 도달했으나, 광대한 빙산만 보았을 뿐 남방대륙은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위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탐험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번 탐험에서는 크로노미터로 정확한 경도를 측정한 것이 큰 성과였다. 1775년 7월 30일 영국으로 귀환했다.

제3차 항해는 북극해를 벗어나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북서항로의 탐색을 목적으로, 1776년 7월 13일 플리머스항을 출발해 희망봉을 거쳐 인도양 남쪽을 횡단한 뒤 호주 남단과 뉴질랜드를 거쳐 북상해 1778년 2월 샌드위치제도(지금의 하와이제도)를 발견했다. 그 뒤 북서항로를 찾기 위해 북미 서해안을 거쳐 북상해 베링해협을 통과했고, 1778년 8월 18일 알래스카 북단의 북위 70° 44' 지점에 도착했으나, 해빙에 가로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쿡은 이곳을 ‘아이시곶Icy Cape’이라 이름 지었다. 1778년 11월 하와이제도로 돌아왔으나, 이듬해 2월 14일 원주민들과의 다툼으로 사망했다.

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낸 제임스 쿡은 가정적으로 결코 단란하지 못했다. 해군으로 근무하던 34세 때인 1762년 엘리자베스 배츠Elizabeth Batts와 결혼해 6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3명은 유아기에 사망했고, 세 아들 중 둘은 해군에 들어가 자식을 낳기 전에 사망해 직계 자손이 없다. 그러나 그는 수많은 선구적 업적을 남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항해가로, 지금도 영국의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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