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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단독] 백두대간 비법정 산행… “국립공원은 산악인을 도둑 취급, 떳떳하게 백두대간 걷고 싶다”

글 신준범 차장대우 사진 양수열 기자
  • 입력 2020.10.23 12:03
  • 수정 2020.10.2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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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산악단체 대표·식물전문가·동물전문가 답사

황철봉 정상부 너덜에서 현수막을 들고 선 참가자들. 답사는 미시령~황철봉 구간만 허용되었다.
황철봉 정상부 너덜에서 현수막을 들고 선 참가자들. 답사는 미시령~황철봉 구간만 허용되었다.

황철봉이 최초로 열렸다. 설악산국립공원의 비법정 구간인 황철봉(1,381m)이 생태 조사를 위해 특별히 개방된 것. 하지만 황철봉을 다녀온 사람은 많다. 황철봉의 산길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폐쇄되기 전부터 존재했고, 백두대간 종주자들이 무수히 이곳을 걸었다. 감시를 피해 암암리에 산행을 한 셈이다. 엄밀히 따지면 합법적으로 산악인들에게 특별 개방된 것이 최초인 것. 그것도 한정된 인원에 한해서 이 날만 개방되었다.

10월 23일 6개 산악단체와 식생 전문가들이 미시령 구도로 정상에 모였다. 대한산악연맹 김병준 관리위원, 한국산악회 변기태 회장, 한국대학산악연맹 한인석 회장, 서울시산악연맹 김인배 회장, 엄홍길휴먼재단 엄홍길 대장, 한국산서회 최중기 명예회장과 임원진이 등산복을 입고 섰다.

6개 산악단체가 백두대간 개방을 위한 비법정 구간 답사에 나선 것. 이날을 위해 복잡한 물밑 작업이 있었다. 지난 5월 이 산악단체 관계자들이 모여 ‘국립공원 미개방 구간 개방’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설악산의 대표적 가을 꽃 금강초롱.
설악산의 대표적 가을 꽃 금강초롱.

논의를 통해 참석자들은 “DMZ 철책선도 허물었는데,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개방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며, “산악인을 대표해 주요 산악단체가 한 목소리로 통제구간 개방의 필요성을 주장해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 산악단체장 협의회인 ‘국립공원 공원계획 대책협의회(이하 공대협)’을 결성하고, 한국대학산악연맹 한인석 회장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공대협은 이렇게 도출된 의견을 문서화 해 6월 4일 국립공원공단을 방문, 권경업 이사장에게 전달했다. 또한 7월 5일에는 도봉산국립공원 강당에서 ‘국립공원 관리와 이용’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어 백두대간 개방에 대한 뜻을 모았다.

이 자리에서 백두대간 법정 등산로만 밟아 단독 일시종주에 성공한 성예진씨는 “2㎞의 비법정 구간을 우회하기 위해 40㎞를  걸은 적도 있다”며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종주자들이 불법을 자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설명했다. 더불어 “백두대간 인증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 블랙야크BAC 앱에 따르면 현재 2만2,000명이 구간 종주를 하고 있다”며 “이 2만여 명을 막연히 못 가게만 할 수 없고 다른 대책이 필요하지 않겠나”라고 개방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산행 중 휴식을 취하는 산악인들. 설악산국립공원 사무소 직원이 동행했다.
산행 중 휴식을 취하는 산악인들. 설악산국립공원 사무소 직원이 동행했다.

김방수 변호사는 법률적인 측면에서 백두대간을 검토했다. 김 변호사는 “백두대간보호에 관한 법률과 자연공원법에 근거해 출입금지를 시행하고 있다”며 “이 법률의 제일 중요한 목적조항을 보면 ‘무분별한 개발행위로 인한 훼손 방지’인데 새로운 등산로를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기존에 있던 능선 등산로를 지나가는 패싱 행위인데 개발행위로 보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또한 “법으로 명시된 거주이전의 자유나 행동의 자유를 막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법률이 있어야 하는데 ‘자연재해가 최소화되도록 보전관리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고 인간의 이용을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아니다”라며 “최소한의 사람의 이용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도 일절 출입을 금하는 것은 법상으로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를 비롯 산악단체 간 수차례의 논의와 국립공원 간 협의를 거쳐 황철봉 비법정 구간 특별 답사 산행이 성사될 수 있었다. 대간 개방을 염원하는 6개 산악단체 40여 명이 미시령에 모였으나, 코로나와 아프리카 돼지열병 등을 고려해 10명만 출입이 허가되었다. 특히 한반도생태연구소의 야생동물전문가 한상훈 박사와 동북아식물연구소의 산악식생 전문가 현진오 박사가 동행해 꼼꼼히 식생을 기록했다.

너덜 사이에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는 한인석 한국대학산악연맹 회장.
너덜 사이에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는 한인석 한국대학산악연맹 회장.

금단의 산, 등산로는 선명해

황철봉 산길은 선명했다. 공단직원 두 명이 동행했으나 별도의 안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길이 나 있었다. 이정표만 있다면 여느 등산로와 다를 바 없는 산길이었다. 간간이 쓰러진 나무를 볼 수 있었는데 개중에는 아직 초록 잎이 남아 있어 지난 8~9월의 태풍에 쓰러진 것으로 짐작되었다.

현진오 박사는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지면 잠자던 씨앗들과 작은 식물들이 햇볕을 받아 성장하고 발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자연의 순환 원리를 일러 주었다.

설악산의 대표적인 가을꽃인 금강초롱이 부끄러운 듯 고개 숙이고 있고, 멀리서 시닥나무 특유의 단내가 풍겨온다. 참회나무 열매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주렁주렁 달린 것이 한층 가을 느낌을 더한다. 멧돼지가 땅을 파헤친 흔적이 곳곳에 있다.

식생을 주의 깊게 살피는 현진오 박사.
식생을 주의 깊게 살피는 현진오 박사.

현 박사는 “뿌리를 먹는 멧돼지 덕분에 땅도 숨통이 트이고 잠자던 씨앗들도 깨어나게 된다”며 멧돼지의 먹이 활동도 선순환의 일부라고 설명한다.

고도를 높이자 그 유명한 황철봉 너덜이다. 백두대간 구간 종주를 했지만 이토록 거대한 너덜지대는 없었다. 큼직한 바위들이 비탈을 메우고 있어 걸음이 한층 조심스럽다. 등반하듯 작은 점프를 하거나 손을 써 가며 느리게 오른다. 숲길이 잠깐 나오더니 다시 거대한 너덜이다. 나무와 풀이 없는 바위지대에선 등산객이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으로 추측된다.

국립공원 직원들과 함께 닿은 황철봉 정상, 작은 쉼터로는 제격이지만 경치가 없는 것이 아쉽다. 거대 너덜지대를 오르느라 땀 깨나 쏟았기에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이 막힌 풍경 대신 청량감을 준다. 정상은 진달래, 분비나무, 마가목, 잣나무, 사스레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아쉽지만 마등령으로 가지 못하고 온 길로 되돌아 내려간다. 황철봉 구간 4.3㎞만 입산을 허가 받았기에 미시령으로 돌아가야 했다. 답사 산행을 마친 후 참가자들은 각자 느낀 바를 서슴없이 나누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예방을 위해 소독을 받는 변기태 한국산악회장.
아프리카 돼지열병 예방을 위해 소독을 받는 변기태 한국산악회장.
황철봉 산행 후 대간 개방에 관한 참가자 의견

한인석 공대협 위원장

“수십 년을 불법이란 굴레를 씌워 생태 보전을 한 것치곤 생태 보전이 잘 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곳곳에 CCTV가 감시를 하고 있어 산이 좋아 산에 간 사람들이 도둑 취급 받고 있었다. 산악인의 마음과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산에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국립공원이 통제하고 방치하고 있다는 걸 보았다.

산악단체가 환경을 파괴하는 단체가 아닌데 언제부턴가 그런 이미지가 씌워졌다. 대학산악부는 신입생에게 환경에 대한 부분을 맨 처음 가르친다. 환경단체만 산을 보호하고, 산악단체는 산을 파괴한다는 편견이 생겼다.

백두대간을 산림청 관리로 아는 사람이 많지만 출입통제 구간은 환경부(국립공원) 담당이다.

이들이 산을 관리하는 걸 보면 공단은 아무런 철학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산악인들은 정치적인 것이 싫어서 국립공원공단과의 마찰을 피해 왔는데 이젠 ‘이건 아니다’라고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만큼 국립공원이 산악인들을 천시하고 있다.”

금단의 대간길, 미시령~황철봉 구간을 걷는 산악단체 대표들.
금단의 대간길, 미시령~황철봉 구간을 걷는 산악단체 대표들.

엄홍길 대장

“국립공원공단이 국민 건강을 위해 운영해야 하는데, 그럴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출입을 막으려고만 한다. 명산을 사유화시켜서 통제 위주로 힘을 과시한다. 백두대간은 개통돼야 한다.

백두대간을 위해 산악인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오늘 황철봉 산행으로 우리는 힘찬 첫발을 디뎠다. 이것도 다 과정이고 이것을 넘어서야지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 대간을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날을 위해 모두 노력하자.”

변기태 한국산악회 회장

“산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염원인 백두대간을 떳떳하게 걸을 수 있는 날이 오도록 노력하겠다.”

식생 현황을 꼼꼼히 기록하는 현진오 박사.
식생 현황을 꼼꼼히 기록하는 현진오 박사.

김병준 대한산악연맹 관리위원

“순수한 자연인 백두대간을 통제하려 해선 안 된다. 국립공원의 통제 위주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백두대간 개통을 위해 다함께 노력하자.” 

최중기 한국산서회 명예회장

“나는 중간자 입장이었다. 산악계 입장도 알고 국립공원 입장도 알고 있다. 그런데 산악계의 의견 반영 없이 국립공원에서 일방적으로 차단만 하는 행태는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이 산악계의 의견 반영을 위한 첫 걸음이라 본다. 미개방 구간의 개방을 위해 함께하겠다.” 

한상훈 한반도생태연구소 동물학 박사

“지리산 반달가슴곰 추진사업을 제가 시작했고, 지금은 북측 백두대간 개방을 추진하고 있다. 오늘 산악계 리더들과 함께 답사했는데, 개방되어도 이미 사람들이 다니던 길이라 야생동물에게 큰 피해가 생긴다고 보긴 어렵다. 백두대간이 개방돼야 한다.”

황철봉 정상에 오른 산악단체 관계자들.
황철봉 정상에 오른 산악단체 관계자들.

현진오 동북아생물연구소 박사

“국립공원은 대간을 개방하지 않는 이유로 ‘생태계 특별 보호구역 지정’을 든다. 오늘 답사한 황철봉을 보면 이미 개방된 공룡능선보다 식물학적으로 더 평범하다. 고산 특유의 식생은 있지만 설악산 전체에서 놓고 보더라도 특별하지는 않다. 굳이 통제한다면 안전 측면이지 않나 싶다. 앞으로 백두대간을 시민의 품으로 돌리도록 노력하겠다.

한계령에서 대청까지 가는 백두대간을 보면 중요한 생물종이 많이 있다. 그런데 생물다양성 생물종들을 보존하기 위한 공원의 정책이 하나도 없다. 원칙을 가지고 관리를 해야 된다.

1단계로 공원 내 백두대간 마루금에 살고 있는 주요 생물종, 멸종위기종이 얼마나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 멸종위기종이 여럿 있으면 모두 똑같은 방법으로 보호할 수는 없다. 종의 생태적인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한다면 등산로를 우회할 수도 있다. 보호펜스라든가 ‘중요한 생물이 사니까 보호해 달라’는 표지판을 만들 수도 있다. 보통 그렇게 하면 희귀식물을 더 캐간다고 하는데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고 본다.

미개방 구간을 개방한 뒤 중요 식물종·생물종들이 잘 유지되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하면 된다. 매년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피드백한다면 국립공원에 있는 모든 능선 등산로를 개방하더라도 생물다양성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제가 보기에 국립공원은 미개방한 지역에 대해서 식물학적 데이터를 갖고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생물보호 해야 돼!’하는 막연한 자연보호주의에 동조하는 국민을 등에 업고 통제를 시행하고 있다. 통제만을 주장하기엔 식물학적인 논리가 너무 부족하다.

무턱대고 만든 것은 무조건 개방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데이터를 가져야 한다. 개방 시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훼손될 개연성이 크다고 했을 때 이것을 예방하고 막을 수 있는 대안을 가지고 개방하면 잘 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공단을 나쁘다고만 할 게 아니라, 같이 고민했으면 한다. 국립공원 행정가들, 식물 전문가들, 환경부 정책가들이 함께했으면 하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백두대간 개방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현진오 박사와 엄홍길 대장, 한인석 공대협 위원장(왼쪽부터).
백두대간 개방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 현진오 박사와 엄홍길 대장, 한인석 공대협 위원장(왼쪽부터).

안중국 속초국립등산학교 교장

“국립등산학교 소속이라 이런 자리가 조심스럽지만, 백두대간을 걸으면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 받았다. 긴 산줄기를 오랫동안 종주하면서 나라 사랑과 우리 땅 사랑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게 된다.

전면 개방이 아니더라도 한정된 인원을 예약제로 개통하면 좋겠다. 산악단체만 모일 것이 아니라 대간의 주축인 안내산악회와 인터넷산악회 같은 다수의 종주인들이 참여해야 한다. 다만 코로나 정국이라 모임 자체가 욕만 먹을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  

권시인 한국대학산악연맹 재학생회장

“황철봉 간다고 해서 천화대 등반처럼 아름다운 장면을 볼 것을 예상하고 왔는데 의외였다.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공단은 자연보호 명목으로 방치만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오직 통제만 하면서 자연보호 된다고 얘기하는 건 양심이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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