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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등산시렁] 겨울산은 사납다고? 이렇게 귀여운 걸!

글·그림 윤성중
  • 입력 2022.01.2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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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겨울산 귀여워
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광덕사 입구에서 바라본 광덕산의 모양. 능선 위로 삐죽삐죽 솟은 헐벗은 나무들이 꼭 머리카락 같다. 그래서 산은 까까머리를 한 꼬맹이 같다.
광덕사 입구에서 바라본 광덕산의 모양. 능선 위로 삐죽삐죽 솟은 헐벗은 나무들이 꼭 머리카락 같다. 그래서 산은 까까머리를 한 꼬맹이 같다.

고양이는 무적이다. 강아지도 그렇다. 둘을 이길 수 있는 건 지구상에 거의 없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귀여운 것 앞에선 누구나 무장해제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나의 아내는 나를 볼 때 대체로 가자미 눈을 한다. 아니면 게슴츠레 뜬 상태거나. 길을 가다가 고양이나 강아지를 발견한 아내의 눈은 반대다. 반짝반짝 하트 모양이면서 동시에 길바닥에 주저앉아 어떻게든 그들과 가까워지려고 난리를 떤다. “어머, 어떡해! 귀여워!!” 이러면서. 귀여운 건 정말 막강한 힘을 가졌다. 

‘귀여움’이라는 단어는 또 한없이 자비롭다. 강호동이나 옥동자(개그맨 정종철) 같은 사람도 때에 따라, 누군가에게 얼마든지 귀여울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귀여워”라는 말은 온 세상을 따뜻하게 감싸는 말이다. 절에서 흔히 하는 인사말 “성불하세요”를 대체해서 써도 될 것 같다. 이를테면 “오늘 참 귀여우셔요.” “귀여운 하루 되세요.” 서로 매일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면 온 세계가 평화로울 거다. 

결론은 겨울산도 귀엽다는 거다. 산이 귀여워 보이는 시기는 아무래도 봄이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아니다. 겨울산도 충분히 예쁘고 사랑스럽다. 멀리서 봐도 그렇고 자세히 들여다봐도 분명 그렇다. 천안 광덕산(699.3m)에서 귀여운 것들을 주워다가 여기 늘어놓았다. 귀여운지 아닌지 의견 바란다. 혹은 더 귀여운 것들이 있다면 알려달라.  

산 속 깊숙이 들어가면 높은 나뭇가지 끝에 둥지처럼 생긴 물체가 눈에 띈다. 겨우살이다. 겨우살이는 참나무 같은 나무의 가지에 뿌리를 박고 사계절 내내 사는 기생식물이다. 잎이 다 떨어진 겨울에 그 정체가 탄로난다.
산 속 깊숙이 들어가면 높은 나뭇가지 끝에 둥지처럼 생긴 물체가 눈에 띈다. 겨우살이다. 겨우살이는 참나무 같은 나무의 가지에 뿌리를 박고 사계절 내내 사는 기생식물이다. 잎이 다 떨어진 겨울에 그 정체가 탄로난다.

밤톨머리같아!

겨울산은 온통 시커멓다. 나무들이 잎을 모두 떨궈서 그렇다. 솔잎의 초록도 이때만큼은 어쩔 수 없이 산의 칙칙함을 따라간다. 겨울산은 그래서 확실히 다가가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보통 머리를 바짝 깎은 사람의 인상이 그렇지 않나? 언뜻 보면 무서운. 하지만 그 모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풉”하고 웃음이 새어나올 때가 있다. 광덕산이 그 모양이었다. 둥그스런 봉우리, 밤톨머리 꼬마 광덕이라고 해도 될까? 하늘과 맞닿은 둥근 능선 아래로 생글생글 웃는 눈 코 입이 그려졌다. 

‘저 능선을 쓰다듬으면 부드럽고 탄력 있는 머리털을 만지는 느낌이겠지?’ 산 위로 삐죽삐죽 솟은 나무들이 진짜 머리카락처럼 보였다. 그 위에 머리를 감을 때처럼 비누거품을 올린다거나 왁스를 발라 근사하게 매만진다거나, 봉우리에 털모자를 씌운다거나 하는 상상을 했는데, 이렇게 산봉우리가 사람의 머리처럼 보일 때는 겨울이 유일하지 않을까?

적막한 산에서 “컹, 커엉!”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고라니가 우는 소리다. 고라니는 사람을 보면 매우 빠르게 도망치기 때문에 실제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 겨울에는 털을 찌워 통통한 모양이라는데, 한때 인터넷에서 그 귀여운 모습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적막한 산에서 “컹, 커엉!”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고라니가 우는 소리다. 고라니는 사람을 보면 매우 빠르게 도망치기 때문에 실제 모습을 확인하기 어렵다. 겨울에는 털을 찌워 통통한 모양이라는데, 한때 인터넷에서 그 귀여운 모습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나 들킨 거야?

산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앙상한 나무의 가지 끝을 올려다봤다. 이따금 둥그스름한 털뭉치처럼 생긴 물체가 가지 끝이나 중간에 걸린 게 보였다. 겨우살이다. 그 아래서 얼마 동안 보고 있으니 둥지처럼 생긴 그것이 슬금슬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엥? 나 여기 있는 거 들킨 거야? 부끄럽잖아,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 

겨우살이는 기생목이다. 참나무 같은 가지에 뿌리를 내리고 살며, 사계절 내내 푸른 잎을 틔운다. 그러니 겨우살이는 겨울에 특히 더 눈에 띈다. 겨우살이 입장에선 자신의 정체가 온전하게 드러나 몹시 당황스럽겠지만 나는 그 모양이 상당히 귀엽다. 늦은 밤, 조용히 냉장고 문을 열어 숨겨둔 간식을 꺼내 먹다가 아내한테 들킨 누군가의 남편과 흡사하달까? 그때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 참, 배고파서 그랬어. 나도 좀 살자.” 

겨우살이는 숙주에게서 수분만 섭취하고 별 다른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한다. 약재로도 쓰인다. 기생목이지만 그래도 귀엽게 봐주자.

사람들을 속이려고 나뭇잎으로 등산로를 덮어 놓은 나무들의 장난! 하지만 나에겐 어림도 없지, 나는 나무가 가려놓은 등산로를 찾아 길을 확실하게 닦았다.
사람들을 속이려고 나뭇잎으로 등산로를 덮어 놓은 나무들의 장난! 하지만 나에겐 어림도 없지, 나는 나무가 가려놓은 등산로를 찾아 길을 확실하게 닦았다.

털찐 고라니

“커엉, 커엉!” 고요한 산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괴상한 음색! 고라니의 울음소리였다. 깜깜한 산 속에서 이 소리를 들었다면 굉장히 공포스러웠을 텐데 이날은 달랐다. 언젠가 SNS에서 본 ‘털찐 고라니’ 이미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왜냐하면 고라니는 사람을 보면 민첩하게 달아나니까. 털찐 고라니는 앞으로도 더더욱 만나기 힘들 테니  그림으로만 남긴다. 

산 정상 부근에 이르니 나뭇가지에 상고대가 피었다. 이 대단한 광경은 귀여움의 범주를 뛰어 넘는 것인데, 그래도 나는 여기서 기어코 귀엽다고 하겠다!
산 정상 부근에 이르니 나뭇가지에 상고대가 피었다. 이 대단한 광경은 귀여움의 범주를 뛰어 넘는 것인데, 그래도 나는 여기서 기어코 귀엽다고 하겠다!

여긴 겨울왕국인가?

고도가 높아지니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입을 막았다. 눈만 내놓은 채 어기적어기적 오르막을 올랐다. ‘귀여운 것 줍기’는 여기서 끝내야 할까? 싶었는데, 눈앞에서 온갖 예쁜 것들이 흔들렸다.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눈꽃이 피어 있었다. “와! 귀여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 주변이 온통 흰색으로 덮인 풍경은 환상적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했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귀엽다고 말해 버렸다. 

흰 옷을 두른 나뭇가지 하나하나는 누구라도 귀엽다고 할 만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팬터스틱한 광경은 귀여움이 모여 만들어진 건가? 팬터스틱한 세상의 일원인 나도 귀여운 거 맞지? 추워서 기분이 별로였는데, 금세 좋아졌다. 이날 하늘은 맑았고 눈 내린 흔적은 없었다. 공기 중 습기가 나뭇가지에 붙었다가 찬바람에 그대로 얼어버린 모양! 내가 본 건 눈꽃이 아니라 상고대였다.

움푹 패인 낙엽길

나무가 사람을 골탕 먹이려고 길 위에 낙엽을 뿌려 등산로의 흔적을 지워놓은 것 같은 모양, 이것도 상당히 재미있고 귀엽다. 하산하다가 멈춰 서서 두리번두리번 길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무는 킥킥대면서 웃을 것 같다. 하하하! 하지만 나처럼 산에 꽤 다닌 사람들을 속일 순 없지!  나는 그들이 애써서 만들어 놓은 함정 위를 과감하게 쓸고 지나가면서 확실하게 길을 표시했다. 나무가 벌인 등산객 속이기 작전은 대실패! 나무들은 실망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광덕사 경내에서 마주친 한 스님. 스님이 쓴 털모자가 귀엽다. 작은 얼굴이 모자 안으로 쏙 들어간 모양! 스님은 모자를 어디서 구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내가 저 모자를 쓰면 스님처럼 귀엽지는 않을 것이다.
광덕사 경내에서 마주친 한 스님. 스님이 쓴 털모자가 귀엽다. 작은 얼굴이 모자 안으로 쏙 들어간 모양! 스님은 모자를 어디서 구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내가 저 모자를 쓰면 스님처럼 귀엽지는 않을 것이다.

그 털모자 어디서 팔아요?

광덕사로 내려왔다. 저녁 때가 다 된 탓인지 절은 조용했다.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경내를 가로지르는 스님을 발견했다. 두꺼운 회색 법복에 털모자를 썼다. 다른 건 눈에 띄지 않았는데, 유독 스님의 털모자에 눈길이 쏠렸다. 왜냐하면 ‘귀여웠기’ 때문이다. 

흰 피부의 작은 얼굴이 모자 속에 쏙 들어가 있는 모양이라 그런가? 내가 그 모자를 쓰면 스님과 다른 ‘핏’이 나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탐이 났다. 정확하게 모자가 탐난 게 아니라 귀여운 스님과 고요하면서 차분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싶었다. 스님에게 다가갔다. 

“그 털모자 어디서 구할 수 있어요?”

 “이거요, 다른 스님이 쓰시던 걸 물려받은 거라 어디서 구했는지는 저도 잘 몰라요.”

스님은 미소를 지었고 나는 이 풍경을 겨울산에서 얻은 귀여움 목록에 추가했다. 

두꺼운 겨울 옷 때문에 뚱뚱해진 몸으로 어슬렁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도 귀엽다.
두꺼운 겨울 옷 때문에 뚱뚱해진 몸으로 어슬렁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도 귀엽다.

*귀여움 추가

두꺼운 겨울 등산복은 등산객의 몸을 둥글둥글하게 만든다. 몸집이 뚱뚱한 사람은 그래서 더 동그랗게 보일 때가 있다. 이런 모습도 겨울 산에서 볼 수 있는 귀여움 중 하나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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