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우먼들의 한북정맥 종주 1] “반가워요 여러분! 예진이가 다시 왔어요”

글 사진 성예진
입력 2022.01.11 09:52
2019년 백두대간 일시종주 연재를 못끝낸 사연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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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한 번에 잇는 ‘불수사도북’ 산행을 했다. 수락산에서 의정부로 내려서는 길에 본 야경.
백두대간 일시종주를 끝낸지 2년이 흘렀다. 24세였던 나는 27세가 되었고, 그간 많은 것이 달라진듯 느껴진다. 나를 기억해주는 월간<山> 독자분들께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대간을 완주하고 남은 몇 편의 일시종주기를 마무리 하지 않은 탓에 뒷이야기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았다. 이야기가 중간에 끊겨 걱정 했다는 분들도 계셨고, ‘혹시 종주 중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아서 더욱 죄송스러웠다. 주변 지인들도 일시종주 후반부 이야기가 궁금하다며 성화였다. 최근까지도 월간山에 독자 문의가 온다고, “언제 마무리 할 거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글을 쓰는 것도, 산에 대한 경험도,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 보니 자신감이 사라져 글쓰기가 두려웠다. 어느 샌가 한없이 작아진 나를 발견했다. 말머리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니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고, 미루다 보니 점점 더 자신이 없어져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일시종주기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지난 2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 긴 시간 동안 숙제를 하지 않은 마음의 짐은 생각보다 큰 고통이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 아직도 마음의 짐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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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3일간의 백두대간 일시종주를 마치고 10월 6일 결승점인 지리산 천왕봉에 도착했다. 대구 해품달클럽 김을연(왼쪽) 산행대장이 마중 나와 주었다.
해외 원정 무기 연기돼 무력감

숙제를 미뤄온 2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해외 고산 원정을 준비했으나 코로나로 무산되는 슬픔을 맛보았다.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 덕에 일을 하게 되었고, 우연히 이어진 인연이 2년 동안 이어져, 만족하며 근무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산과는 잠시 멀어진 시간이었지만, ‘성예진’이라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해외 고산 원정은 무기한 연기됐다. 연기라고 했지만 사실상 공중분해된 것이다. 삶의 이유가 사라진 듯 공허함과 허무함만 남았고, 거의 두 달 동안 방황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선배들은 시간이 많다며 “앞으로 준비만 되어있다면 기회는 언제든 오기 마련”이라 했지만, 시작도 못해보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억울함이 컸다. 원망스러웠으나 누구를 탓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기에 더 슬픔에 잠겼던 것 같다.

결국 무언가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던 산에 가기가 힘들어졌기에 열정을 쏟을 다른 대상이 필요했다. 표현이 이상할 수 있지만, 난생 처음 본업에 열정을 쏟았다. 오롯이 일에만 몰두했다.

한동안 산을 멀리한 것은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더는 산에 올랐을 때 전과 같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산이 예전처럼 무작정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산이 본능적으로 좋았다. 아무 이유 없이 좋았다. 무작정 좋았고 매순간 자연이 주는 울림이 가슴 벅차게 좋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런 감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연을 접해도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더는 산에서 즐겁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산과 멀어졌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내 마음의 열정은 그대로 있지 않았다.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하는 것이, 그 어떤 산행의 난이도 보다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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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사도북’ 산행 중 수락산 기차바위를 배경으로 선 조수연 언니. ‘불수사도북’에 이어 나의 무모한 한북정맥 종주에 흔쾌히 동행해 주었다.
수연 언니와의 첫 만남 

지난 2년간 나름의 성찰을 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산과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숲길등산지도사 과정을 듣게 되었고, 동기인 조수연 언니를 알게 되었다. 수업 듣는 내내 도움을 많이 줬던 언니인데, 막연히 좋은 사람 같다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주된 대화는 산이었다. 산에 가고 싶은데, 잘 몰라서 혼자 가기는 무섭고, 같이 갈 사람이 없다며 백패킹 할 때 데리고 가달라던 언니였다.
 
교육을 마치고 연락이 끊어졌다가 우연히 ‘불수사도북’이라 불리는 강북 5산 종주를 함께 했다. 둘이서 산행을 해본 적도 없는데, 극한의 종주산행이 웬말인가! 불수사도북을 함께 하자는 나의 제안에 등산 초보자 입장에서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언니는 “체력이 닿는데까지 열심히 따라가겠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오랜만이었다. 한동안 산행 계획을 세우면 무리라며 주위에서 만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반갑기만 했다.

함께 한 불수사도북 종주는 참 즐거웠다. 걸음을 뗄 때마다 감탄사를 쏟아내기 바빴다. 백두대간 일시종주를 할 때의 느낌이 생각났다. 모처럼 다시 느끼는 벅찬 감동과 자유로운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이날부터인 것 같다. 다시 산이 그리워지기 시작한 날이. 불수사도북 종주는 내게 산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 이후 백패킹도 다니고, 동네 뒷산인 인왕산도 올라보고, 이따금 산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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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시내 구간을 지나 사패산으로 가는 길.
정맥을 타야 진짜 산악인!

산을 찾으니 산으로 맺어진 인연들과도 연이 닿았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1대간 9정맥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흡사 남자들이 군대에서의 무용담을 털어놓듯 왕년의 경험담이 쏟아져 나왔다. 백두대간 종주를 끝낸 뒤 ‘언젠가는 나머지 정맥과 기맥도 가봐야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곤 했었다.

‘정맥을 해야 진짜 산악인’이라며 익살스럽게 약 올리는 지인의 이야기에 마음이 동했다. 사실 대간을 끝낸 뒤 한동안 그 모든 게 징글징글 해서 나에게 정맥과 기맥을 이야기 하는 지인들에게 “언젠가는 하게 되겠죠?”하는 대답으로 물음을 일축했는데, 이제는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시간이 제법 흐른 것 같다.

그간 산을 멀리하며 쌓인 갈증이 밀려왔다. 겨울옷을 입은 한북정맥을 묘사하는데,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지며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설산. 겨울 산이 매력적인 걸 아니까. 종주산행의 매력을 아니까.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했다.

대간 종주를 여름과 가을 사이에 했던 터라 ‘겨울은 어떨까?’ 사뭇 궁금했는데, 마침 대화의 화두로 떠오른 한북정맥은 나에게 참 매력적인 곳이었다. 가보고 싶으면 또 가야하지 않겠는가. 집으로 돌아와 바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한 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있었다. 백두대간 일시종주 이후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마치 내가 대단한 산꾼이라도 된듯 이야기를 하니 뭔가 찝찝했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스스로 판단하기에 많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대간 외에도 정맥과 기맥을 다 걸어봐야 그런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1대간 9정맥 이야기에 끼어들 자격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에서였다.

100대 명산이나 백두대간 일시종주처럼 유명한 산, 누구나 아는 산 외에는 딱히 가본 적이 없어 잘 알지 못했다. 까닭에 정맥 코스가 어떻다더라(대체적으로 까다롭다는 이야기였다)라는 식의 말들은 개의치 않고 나름의 계획를 짰다.

내 스타일에 맞게 짜다보니 보통 6개 구간으로 나뉘어 산행하는 코스를 절반으로 줄였다. 1박 2일로 3회에 걸쳐 빠르게 끝내는 방향으로 한북정맥 초안을 잡았다. 무작정 마음이 가는 대로 계획을 세우고 보니 제법 힘든 여정이 될 것 같아 ‘이번에도 혼자 갈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단독종주를 고집한 것은 아니었으나 1박2일 동안 50~60㎞를 함께 걸을만한 사람이 주변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수연 언니가 생각이 났다. 안부를 물으며 동네 뒷산 가듯 한북정맥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는 이번에도 흔쾌히 동행을 약속했고, 우리의 한북정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계획에 별다른 이유 없이 함께 해 줄 사람. 지금까지도 언니에게 가장 고마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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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수사도북’ 산행 중 막바지인 사모바위 부근에서 수연 언니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크리스마스 날, 도봉산 훈련 산행

언니와 마지막으로 본 것이 지난해 8월이었다. 불수사도북 종주를 마지막으로 만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후 술자리에서 한 번 봤던가? 아마 서울 근교로 백패킹을 다녀왔던 것 같다.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그것이 전부였던 것 같은데, 떠날 날짜가 다가오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산행을 같이 해 본 것이 딱 한 번이었고, 이동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3일을 함께 해야 하기에 떠나기 전 합이라도 한 번 맞춰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겨울 산행 장비가 별로 없다던 언니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서로 장비 체크도 한 번은 해야 할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둘이서 도봉산을 올랐다. 크리스마스에 여자 둘이서 산이라니. 사실 일이 너무 바빠서 크리스마스인 것조차 모르고 부랴부랴 약속을 잡았다. 뒤늦게 그날이 크리스마스인 걸 알고서 언니에게 다시 양해를 구했더니, 언니도 딱히 중요한 일은 없다며 함께 해주었다.

산에서 보는 일출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웠다. 며칠 전부터 한파주의보가 예고되어 있던 날이라 그런지 주말 아침임에도 등산객이 거의 없었다. 그 덕에 도봉산 전체를 전세 낸 것 마냥 둘이서 신나게 즐길 수 있었다.

작년, 재작년에도 겨울에 산행을 하지 않았던 터라 감각이 많이 떨어졌다는 걸 느꼈다. 확연히 추워진 날씨에 자꾸만 옷깃을 여미게 된다. ‘한북정맥은 강원도 철원 화천 쪽이라 더 춥겠지? 1월이 되면 더 추울 거야. 보온에 더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개인적으로 설산을 가장 좋아하지만, 겨울 산행 경험이 많지는 않아 걱정되었다. 동행이 있다 보니 걱정되는 것들도 있었다. ‘나를 믿고 함께 해주는 언니가 나 때문에 고생하지 않도록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해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걱정만 한 건 아니다. 사실 설렘이 훨씬 컸다. 얼마 만에 눈 덮인 산을 밟아보는 것인가! 게다가 이번엔 동행도 있지 않나. 모처럼 만날 눈 덮인 산에 대한 기대로 설렘이 가득한 12월 마지막 주를 보냈다. 하산길에는 오랜만에 도봉산장에서 할머니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한국등산학교 다닐 적 추억을 곱씹기도 했다. 할머니표 도봉산장 원두커피는 확실히 도봉산의 명물이었다.

한북정맥 출발일은 1월 1일. 예정일을 일주일을 남겨두고 계획을 수정했다. 가지고 있는 장비로는 겨울 야영산행은 무리인 것 같아, 더 안전하게 가기로 했다. 1박 2일으로 진행하되 기존에 생각한 백패킹 스타일 말고, 숙소에서 자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사전에 숙소도 미리 구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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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도봉산 일출 산행에 나섰다. 주능선 바윗길에서 해돋이의 감동을 만끽했다.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