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어디까지 아세요] 오름의 여왕을 알현하라!

글·사진 이승태(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입력 2022.05.17 10:08
굼부리 도는데만 30분… 잘생긴 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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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다랑쉬오름. 뻥 뚫린 굼부리가 눈길을 끈다.
5월, 생각만 해도 설레는 계절. 우리 산천 어느 곳이든 신록으로 아우성이다. 계절의 여왕답게 생명의 기운이 차고 넘쳐 자연은 어느 때보다 밝고 화사하다. 제주의 5월을 만나 보았는가? 상록수가 많아서 섬 전체가 사철 푸르지만 5월의 생기는 결이 다르다. 제주가 더 눈부신 푸름으로 단장하는 이때, 다랑쉬오름에 올라 그 풍광을 즐기는 것은 무척 특별한 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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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다랑쉬와 다랑쉬오름. 서로 400m 거리다.
제주 오름답사 1번지

화산섬 제주에서는 어디를 가더라도 기생화산인 오름을 만나게 된다. 오죽했으면 제주 사람들이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에 기대어 살다가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며 살았을까! 

오름은 제주의 마을과 마을을 형성하는 모태가 되었고, 각 오름에는 제주의 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여겼으며, 오름과 그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거친 황무지인 ‘뱅듸(버덩)’는 예부터 말과 소를 키우는 터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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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 남쪽 능선에서 무리지어 사는 소사나무.
육지의 산과 달리 화산체인 제주 오름의 가장 큰 특징은 굼부리(분화구)다. 대부분의 오름이 폭발의 흔적인 굼부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서 볼 때는 그냥 부드러운 산등성이 같아서 오르지 않고 굼부리의 실체를 상상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삼각뿔 모양의 외관은 물론 정상부에 들어선 거대하고 놀라운 굼부리까지, 화산체의 전형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곳으로 손꼽히는 구좌읍 세화리의 다랑쉬오름은 꼭 올라보아야 할 명소다.

제주시 북동쪽에 솟은 ‘다랑쉬오름’은 지척에 있는 용눈이오름과 함께 ‘오름답사 1번지’로 통한다. 지질과 지형학적인 가치가 매우 높고 경관과 생태적 특성이 빼어나 제주 오름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적합해 오름의 랜드마크로 뽑혔으며, 사방 어디서도 눈길을 끄는 날렵하고 잘 빠진 산체로 인해 ‘오름의 여왕’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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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 굼부리 안쪽 벽. 가파르기가 가늠된다.
‘다랑쉬’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산봉우리의 굼부리가 마치 달처럼 둥글어서 그리 불려오고 있다는 주변 마을사람들의 설명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한자 이름이 ‘월랑봉(月郞峰)’인 것도 그렇다. 

많은 이가 찾는 곳답게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비교적 널찍한 주차장과 안내센터, 화장실과 쉼터용 정자, 벤치, 안내판이 반듯하고, 좁았던 진입로의 확포장 공사도 한창 진행 중이다. 탐방로 들머리는 아끈다랑쉬를 마주하는 곳이다. 

오름 입구에서 정상부 능선까지는 가파른 사면을 가로지른 지그재그형의 탐방로를 따라 20분쯤 걸리고, 1,500m가 넘는 원형의 굼부리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도 30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다랑쉬오름 탐방은 최소 두 시간은 잡아야 한다. 부록처럼 붙어 있는 아끈다랑쉬오름과 4·3유적인 다랑쉬마을 터, 다랑쉬굴까지 다녀오려면 도시락을 준비해야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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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쪽 둔지오름이 보이는 풍광.
오름이 겹쳐진 놀라운 풍광

탐방로 들머리는 빼곡한 삼나무로 인해 어둑어둑하지만 곧 숲을 벗어나며 시야가 트이고 시원스런 주변 풍광이 눈을 즐겁게 한다. 동쪽으로 두산봉과 성산일출봉, 지미봉, 우도가 배경을 이룬 바다와 어우러지며 멋지고, 조금씩 오를 때마다 그 모습을 조금씩 더 보여 주는 아끈다랑쉬를 살피는 것도 재밌다. 

능선에 올라서면 먼저 뻥 뚫린 거대한 굼부리가 시선을 압도한다. 건너편 능선의 탐방객이 겨우 가늠될 정도로 넓고, 바닥은 아찔할 만큼 깊다. 굼부리 안은 여느 오름처럼 숲을 이루지 못하고 대부분 초지대여서 그 규모는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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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굼부리능선. 여느 오름처럼 소나무가 점점 자리를 잡아간다.
오르막 탐방로가 굼부리 능선을 만나는 곳에 널찍한 나무데크가 놓여 있어서 주변을 조망하며 쉬기에 좋다. 여기서 굼부리 능선 양쪽으로 길이 갈리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도 된다. 오른쪽이 곧바로 정상으로 이어지지만 가파르다. 왼쪽으로 가면 굼부리를 거의 한 바퀴 돌아 정상에 닿는다. 그만큼 길이 완만하고 또 굼부리 능선을 따라 뿌리내린 한국 특산식물인 소사나무 군락지도 만나며 여유롭게 풍광을 즐기기에 좋다. 

오름 능선을 걷는 동안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제주가 사방으로 펼쳐진다. 동쪽으로는 지미봉과 우도, 성산일출봉, 두산봉, 은월봉이 또렷하고, 서쪽으로는 한라산이 배경을 이룬 가운데 용눈이오름과 손지오름, 동검은이오름, 백약이오름, 좌보미오름, 높은오름, 거슨세미오름, 안돌·밧돌오름 등이 황무지 같은 벌판 위에서 켜켜이 겹쳐지며 제주 동북부지역의 신비로운 하늘금(능선 실루엣)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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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풀을 뜯는 용눈이오름 뒤로 다랑쉬와 아끈다랑쉬가 보인다.
다랑쉬오름은 정상에서 굼부리 바닥까지 115m로 한라산 백록담만큼 깊다. 옛날 다랑쉬마을 주민들은 이토록 깊은 굼부리 바닥까지 내려가서 콩이나 수수, 피 등의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때의 흔적인양 돌담이 잘 보존되어 있다. 굼부리 바닥을 살피다보면 백록담에서처럼 가끔씩 노루가 풀을 뜯는 모습도 보인다. 이곳 굼부리가 그만큼 충분히 깊고 넓기 때문이다.

오름은 현대 도시화, 산업화로 인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버린 자생식물을 만날 수 있는 자생식물의 보고로 그 가치를 주목받고 있다. 해발고도 382m인 다랑쉬오름엔 굼부리 능선과 사면을 따라 나무가 많지만 초지대도 넓다. 조사에 의하면 다랑쉬오름엔 250종이 넘는 목·초본류가 산다고 한다. 

오름 아랫자락을 따라서는 삼나무와 편백나무, 해송과 벚나무가 뒤섞인 숲이 무성하고, 탐방로와 정상부 초지대엔 세복수초와 각시붓꽃, 새끼노루귀, 산자고, 층층이꽃, 솔체, 절굿대, 당잔대, 박새, 한라꽃향유, 한라돌쩌귀, 야고 등 아름다운 우리 들꽃이 철따라 피고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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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의 쌈밥정식 상차림.
조선시대 이름 난 효자의 제단

오름의 북쪽인 다랑쉬오름 정상엔 돌로 쌓은 나지막한 단이 있다. 조선조의 이름난 효자였던 홍달한洪達漢이 1720년에 숙종 임금이 돌아가시자 이곳에 올라와 단을 쌓고 분향하며 국왕의 승하를 슬퍼해 마지않던 망곡望哭의 자리라고 한다. 

다랑쉬오름을 마주한 동쪽엔 가운데를 살짝 누른 찐빵 같은 모양의 아끈다랑쉬오름이 탐방객의 발길을 끈다. ‘아끈’은 버금가는 것, 둘째 것이라는 뜻의 제주말로, ‘작은다랑쉬’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다랑쉬오름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끈다랑쉬오름은 전체적으로 억새가 뒤덮고 있다. 억새가 절정인 10월이면 외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다랑쉬오름 입구에서 400m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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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오름 개념도
Info
교통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오가는 810-2번을 이용해 다랑쉬오름 정류소에 내린 후 1.3km 걸어야 한다. 오름 입구에 주차장과 탐방안내소, 화장실이 있다. 

주변 볼거리
다랑쉬마을과 다랑쉬굴 

다랑쉬오름 남서쪽에 50가구쯤이 모여 화산지역의 황무지를 손으로 개척하며 살던 다랑쉬마을(월랑동)이 있었다. 그러나 4·3사건 당시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 내려졌던 소개령의 광풍을 피하지 못해 마을 전체가 사라지는 아픈 운명을 맞았다. 

다랑쉬오름 남서쪽으로 2km쯤 떨어진 곳에 제주 4·3사건 유적지인 ‘다랑쉬굴’이 있다. 하도리와 종달리 주민 11명이 난리를 피해 숨어 살았는데, 1948년 12월 18일에 토벌대에 발각되어 집단희생을 당한 곳이다. 오랜 기간 묻혀 있다가 1992년에 실상이 알려졌으나 입구가 좁고 안전문제도 있어서 출입은 할 수 없다. 

먹을 데
가까운 비자림로에 청국장이 딸려 나오는 쌈밥정식과 제주 토속음식인 접짝뼈국 딱 두 메뉴만 내놓는 ‘예원(064-784-2542)’이 먹을 만하다. 싱싱한 쌈용 채소가 풍성하고, 밑반찬도 하나같이 맛깔스럽다. 쌈밥정식은 1만 원, 접짝뼈국은 9,000원이다. 매주 일요일 휴무.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5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