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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파워우먼 한북정맥 종주 35회] 길 끝에서 다시 출발선에 서다… 장명산 정상에서 완주 타종식

글·사진 성예진(스윗밸런스 광화문점장)
  • 입력 2022.07.0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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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고개~노고산~옥녀봉~숫돌고개~견달산~문봉동재~고봉산~고인돌산림욕장~장명산 47km

한북정맥 종착지 장명산에서 월간山 기자님이 가져온 완주 현수막을 꺼냈다. 현수막에 적힌 멘트가 부끄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여기서 만난 어르신 말로는 뒤쪽 잘려나간 절개지가 원래 장명산 정상부였다고 한다.
한북정맥 종착지 장명산에서 월간山 기자님이 가져온 완주 현수막을 꺼냈다. 현수막에 적힌 멘트가 부끄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여기서 만난 어르신 말로는 뒤쪽 잘려나간 절개지가 원래 장명산 정상부였다고 한다.

장사바위에서 헬기장, 고봉정을 지나 고봉산 삼거리에 내려선다. 만만하게 보고 시작했다가 호되게 당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며 걷는다. 이어지는 황룡산에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지도를 보고, 또 찾아본다. 황룡산은 그 길을 잠시 거쳐 갈 뿐 정상을 들리지 않는다. 초입의 금정굴을 지나 일산동고등학교 쪽으로 내려간다. 지도에는 탄현공원이라 표시되어 있다.

금정굴에는 많은 내용이 빼곡히 적힌 안내문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고양 지역 주민들이 부역 혐의자로 몰려 집단 총살을 당한 곳이라는 설명.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안내문 외에 플랜카드에도 긴 글이 적혀 있었는데 대충 봐도 사연이 많은 듯 보인다. 갈 길이 멀어 애도하는 마음만 전하고 길을 따라 걷는다.

일산동고등학교에서 장명산 들머리까지 10km의 도로를 걷는다.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남짓 걸었으니 지친 상황에서도 제법 속도를 내며 걸은 셈이다. 이제 정말 마지막 도심 구간이다. 월간山 기자께 대략 예상되는 도착시간을 알려드리고 부지런히 걷는다. 

이젠 정말 도로만 남아있어 길을 헤맬 여지가 없다. 앞선 길들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산을 죄다 깎아서 길을 만들고, 아파트 단지를 세웠기 때문에 정해진 길이랄 게 없다. 가고 싶은 길로. 빠르다고 생각하는 길을 찾아서 가면 된다. 고봉산에서 헤맨 것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걷는다. 웬일로 여유롭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다시 종종걸음이다. 

한창 뜨거워질 시간이라 지열이 올라온다. 역시 도로를 걷는 건 해로운 일이다. 새삼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끝낼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한여름에 도로를 걷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제 도로 끝에 장명산만 오르면 끝이라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안고 부지런히 걸어간다.

아파트와 공원을 지나며 지도를 보는데 운정역이 눈에 띈다. 여기가 그 말로만 듣던 파주 운정역인가? 파주에 올 일이 없었던 터라 이야기로만 듣던 신도시 파주에 와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강원도 화천에서부터 걸어서 벌써 이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란다. 걸을 때는 별것 아닌 듯 느껴지지만 두 발로 걷는 걸음이 쌓이면 제법 크다는 걸 산행하며 자주 느끼고 있다.

고인돌 산책로부터 다시 산길이다. 근처에 유명한 고인돌이 있나보다. 걷기 편한 산책로가 이어지고, 생태이동통로를 지나 산속 암자까지 왔다. 성재암을 지나며 지도를 살피고 거의 다 왔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너무 기쁜 나머지 길을 잘못 들어섰다가 다시 돌아왔다. 무아지경으로 내려가는데 배달 오토바이가 우리가 온 길로 가는 걸 보고 느낌이 이상해 지도를 다시 찾아봤다. 

6∙25 전쟁의 아픈 사연이 담긴 금정굴을 지난다.
6∙25 전쟁의 아픈 사연이 담긴 금정굴을 지난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뿔싸. 길이 아닌 곳으로 너무 당당하게 걸어 내려왔다.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좀 더 힘을 내어 본다. 지도까지 확인하고서는 아닌 길로 너무 당당하게 내려가서 어찌나 민망하던지. 마지막까지 정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다.

참 많이도 헤매었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기자를 기다린다. 오도1리 버스정류장을 지나 장명산 들머리 근처에서 전화하니, 도착 1분 전이라 한다. 시간을 잘 맞춰 도착했다. 잠시 기다리는데도 볕이 어찌나 뜨겁던지. 마냥 서 있을 수 없어 그늘을 찾는데 썩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 마땅한 곳이 없어서 골목의 작은 그늘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날은 뜨거워도 그늘진 곳에서 바람을 쐬니 아직은 썩 괜찮게 느껴지는 날씨다. 밤새 40km를 넘게 걸어왔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볕이 세게 내리쬐니 눈이 시려온다. 이대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어디든 머리만 대면 3초 안에 코를 골 것만 같은 상태랄까.

몇 달 만에 만나는 기자는 여전히 호방하다. 겨울에 아이젠을 받으러 사무실에 놀러 갔을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한참 지난 이야기다. 계절이 바뀌어 여름의 문턱에서 만난다. 예전에 본가인 대구에 있을 때는 서울 사람들끼리도 바빠서 잘 못 본다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같은 생각이다. 실내가 아닌 필드에서 뵙는 건 더 오래된 일인 것 같은데…, 등산복 입은 모습을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서, 몇 년 전 백두대간을 함께 타던 생각이 났다.

반가움은 짧게 나누고 장명산으로 간다. 이야기는 산행을 끝낸 뒤에도 실컷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얼른 산행부터 끝내기로 한다. 실은 많이 쉬면 꼼짝도 하기 싫을 것 같아, 얼른 끝내고 싶었다. 한북정맥 종착지인 장명산은 시작부터 난관이다. 마지막인데 길이 참 거칠다. 없는 이정표는 둘째치고서라도 표지기 또한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있는 표지기도 의미 없는 위치에 드문드문. 아주 오래전에 달아둔 낡은 표지기만 보일 뿐이다. 

고봉산에서 대형 알바를 한 탓에 김밥을 먹으면서도 지도를 들여다봤다.
고봉산에서 대형 알바를 한 탓에 김밥을 먹으면서도 지도를 들여다봤다.

야트막한 능선에 올라서자 산을 죄다 파헤쳐둔 압도적인 크기의 공사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북정맥의 마지막이 이렇게 처참하게 파헤쳐진 것을 보니 심란하다. 한북정맥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생각지 못한 상황들이다. 이런 현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에게 한북정맥은 충분히 값진 걸음이 된 것 같다. 그와는 별개로 수피령에서부터 200km 가까이 걸어왔는데 마지막 장명산의 벌거벗고 갈기갈기 찢어진 모습이 아쉬울 따름이다.

공사 현장 너머로 봉우리가 여럿 보이는데 정상석이 있는 곳은 어디일까?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고민스럽다. 눈에 보이는 길부터 찾아 들어가 보는데 허탕 치길 여러 번. 길 찾기가 쉽지 않다.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아서 먼저 와서 공릉천을 바라보던 노부부께 상황을 설명하고 장명산 정상석을 본 적이 있는지 여쭤보았는데 잘 모르는 것 같다.

한북정맥 종착지인 장명산 정상. ‘파워우면 시리즈’ 구독자인 김유영 님을 우연히 만나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몇 년 전 한북정맥을 완주한 베테랑 등산인이자, 월간山 구독자였다.
한북정맥 종착지인 장명산 정상. ‘파워우면 시리즈’ 구독자인 김유영 님을 우연히 만나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몇 년 전 한북정맥을 완주한 베테랑 등산인이자, 월간山 구독자였다.

오늘은 어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다 모른다고 한다. 그만큼 한북정맥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어르신이 비슷한 것이 저리로 가면 있다고 하여, 혹시 몰라 기자님이 혼자 다녀오기도 했는데 꽝이다. 전혀 관계없는 길이라고 했다. 이곳 주민인 노부부는 거대한 공사 현장이 옛날 장명산 정상이 있던 곳이라 알려준다. 산이 다 잘려 나갔다고 한다. 

2006년에 한북정맥을 종주했다는 기자님은 길이 달라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한다. 기자님이 옛날 한북정맥 이야기를 해준다. “라떼는 말이야” 이야기도 재미있게 한다. 기자님의 정맥길 첫 기사가 금북정맥이었고, 그 다음이 한북정맥이었다고. 한북정맥 등고선 지도도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10번쯤 들은 것 같은데 그때마다 어깨가 으쓱해 보인다. 이렇게 베테랑인 山 기자와 함께라도 산을 다 파헤쳐 놓았으니 정상을 찾기는 어렵다. 100m 고지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만만치 않다.

바람이 불 때마다 공사 현장에서부터 날아온 모래가 얼굴을 뒤덮는다. 사방에 모래가 흩날린다. 순간 모래사막 한가운데 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정상을 못 찾는 건 아닐까? 걱정할 때쯤 우연히 갈대숲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민 표지기를 발견해서 따라 들어가 본다. 

찾았다. 갈대숲에 숨겨진 길이 있다. 길을 따라 봉우리 근처에 가니 펜스에 표지기가 많이 엮여 있다. 흡사 서울 근교 산의 안내판 같은 모양새였달까. 표지기의 연식이 제법 되어 보이는 것들이 달려 있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많이 찾던 곳이었나 보다.

그토록 고대하던 장명산에 올랐다. 마지막에 정상석을 찾기 위해 한참을 고생했더니 이 만남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정상석 옆에 녹슨 종이 보여 물었는데 한북정맥 종주를 끝낼 때 이 종을 쳐야 진짜 종주를 마친 거라고 한다. 정말인지 확인은 안 되지만 전통적으로 그렇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북정맥을 완주한 기념으로 수연 언니와 번갈아 시원하게 한 방씩 울려본다. “끝났다!” 이로써 일종의 타종식을 치룬 셈이다. 소박하게 치룬 우리만의 완주 타종식. 녹슬고 오래된 종이지만 내 귓가에는 선명히 울리는 듯했다.

기자님의 가방에서 시원한 얼음물과 음료 여러 병이 나온다. 집에서 손수 우려낸 시원한 차와 커피, 이온 음료와 에너지 음료, 취향껏 마시라며 챙겨준다. 더운 날 고생했다며 시원한 음료를 손수 챙겨주는 그 마음에 정말 감사하다. 

곧이어 비닐에 감싸진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시더니 펼쳐 보인다. 맙소사. 보기만 해도 부끄러워지는 플랜카드가 나왔다. 이걸 전해주러 온 모양이다. 어쩐지! 마지막을 함께 해야 한다고 하더니…. 내용은 차마 내가 직접 이야기하기가 부끄럽다. ‘월간山 아이돌’이라니… 차라리 ‘돌아이’가 나을 것 같다. 투덜거리지만 늘 고마운 기자이다.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와는 다른 길로 한 분이 올라온다. 우리는 누군가 올라와서 놀라고, 그분도 먼저 와있는 우리를 보고 놀란다. 정맥꾼이 아니면 등산을 할 만한 산이 아니기에 누군가 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요즘엔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이들도 도봉산에서 마치는 이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도 인연이라 같이 사진도 찍고 행동식을 나눈다. 몇 마디 나누는데 이곳 지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왕년에 한북정맥과 백두대간 종주를 했다고. 오늘 시간이 나서 장명산을 올라 볼 겸해서 인천에서 찾아왔다 이야기 한다. 인천에서 파주 장명산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오셨다는데 혼자 대단한 열정이다. 올라온 길이 궁금해서 여쭤보니 차고지 쪽으로 올라왔다고 하며 요즘은 한북정맥 인증하러 올 때 다들 이쪽으로 온다고 알려준다. 차고지에서 올라오면 거리도 짧고 금방이라고 이야기한다.

몇 마디 나눈 뒤에 월간山 구독자라고 알려주셨다. 인천에서 온 구독자 김유영 님이다. ‘파워우먼 시리즈’를 잡지에서 본 기억이 있다며 오늘 한북정맥을 끝내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산객다운 대화를 나눈다. 가끔 길 위에서 알아봐 주는 분들이 계시면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는 신준범 기자가 타고 온 차를 타고 서울로 들어갈 예정이라 다시 올라온 길로 돌아가야 한다. 장명산에서 만난 산객도 올라온 길로 내려가야 편하다고 해서 인사를 나누고 서로 갈 길을 간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왔던 길을 내려가며 우리 모두 누구든 사전 정보가 없으면 찾기 쉽지 않은 길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길을 알고 봐도 쉽지 않은 길이다.

이대로 헤어지긴 아쉬워 밥을 먹고 헤어지기로 한다. 근처에 탕수육 맛집이 있다고 해서 운정 근처로 갔다. 어라? 좀 전에 걸어서 지난 길이다. 황룡산에서 내려와 장명산까지 도심을 지날 때 이 길을 지나쳐서 장명산까지 걸었다. 1~2시간 전의 이야기인데 꽤 오래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두고두고 추억으로 오랫동안 회자 될 한북정맥 길 위에서의 기록이다.

이로써 한북정맥은 끝냈지만, 아직 내 산행은 진행 중이다. 이제 다음에는 무얼 할 거니? 한북정맥을 끝낸 지금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다. 아직 생각해본 바가 없다. 언제든 마음이 동할 때 떠날 생각이다. 한북정맥을 걸으며 다시금 느꼈지만 나는 한 번에 몰아서 여러 날 다니는 게 체질에 맞다.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정맥이든, 지맥이든, 그 외의 다른 어떤 길이든 텐트 하나 짊어지고 한 번에 이을 수 있는 길을 걷고 싶다. 되도록 길게 말이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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