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산따라 맛따라] 지장산 & 종자산 - 이동이 포천보다 유명한 이유

월간산
  • 입력 2005.10.31 19:18
  • 수정 2005.11.01 14: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동갈비와 이동막걸리, 그리고 한탄강 매운탕의 원조들

포천보다 포천에 속해있는 이동(면)이 세상에 더 알려져 있는 것 같다. 갈비와 막걸리 때문에 얻어진 것이리라. 포천시 이동면은 인구 6,900여 명의 면에 70여 음식점이 영업 중이고, 이 중 63개 업소 이름에 ‘갈비’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다. 이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는 이동 갈비마을로 들어서면 갈비 굽는 냄새가 천지를 진동한다. 가히 ‘갈비천국’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동갈비는 이곳만이 아니고 일동면을 위시해 포천 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또 한 가지, 이동이라는 지명을 접두어로 한 막걸리도 전국적으로 크게 알려져 있는데, 그 지명도로 포천의 양조장 6개 업소가 성황을 누리고 있다. 양조는 수질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포천은 산세가 수려하고 계곡마다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 청정지역임을 자랑해 왔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이어진 제조비법으로 빚은 고유의 맛으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은 그 동안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종류의 다양화와 고유의 맛을 간직하면서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캔과 팩으로도 제조하고 있다. 나아가서 수출상품으로 외화획득에도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 실정이다.

포천에는 막걸리만이 아니라 1996년에 설립된 전통술박물관 배상면주가도 있다. 이 박물관에는 전통술 관련자료와 도구 등을 전시해 놓았고, 10여 가지 술을 무료로 시음할 수 있다. 술안주로는 술 찌꺼기를 이용한 감초엿, 다식, 약과, 술튀김과자, 술잼, 상화만두, 가자미식혜 등 다양한 전통음식을 내놓는다.

포천시는 10월22, 23일 이동면 백운계곡에서 ‘대한민국 술 축제’도 개최한다.

한탄강 어부의 한탄
영로교매운탕집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다. 한탄강이 흘러내리고 종자산이 솟아 있는 영로교 바로 윗집 ‘영로교매운탕(031-533-1821)’ 집은 한여름 장사를 망쳤다고 했다. 한탄강 어부인 집주인 이창원씨(60)의 한탄조 하소연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여름 종자산을 오르고 한탄강을 찾는 외지사람들에게 장사를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무슨 놈의 ‘짜장(중국산)’ 물고기에 발암물질이 나왔다는 언론보도로 엉뚱한 지역인 한탄강변의 매운탕 집에도 손님의 발길이 끊어졌으니 기가 막힌다고 했다. 이 식당에서 차려내는 매운탕 물고기는 한탄강 어업권을 갖고 있는 이 집 주인 이씨가 강에서 직접 잡아올린 것으로 매운탕을 끓이고 있는데, 쯧쯧, 정말 딱한 사연이다.

기묘한 절벽, 웅장한 산세, 다양한 식생의 울창한 수림, 동남쪽 자락을 감싸고 흘러내리는 한탄강과의 조화 등으로 사계절 ‘종자산 마니아’가 많다는 것이 이창원씨의 설명이고, 이들 마니아들은 종자산을 ‘포천알프스’로도 부른다고 했다. 38선 이북으로 6.25 전에 이북땅이던 이곳을 흘러내리는 한탄강은 강원도에서 발원하여 철원과 연천을 거쳐 임진강으로 유입한다. 물길이 굽이쳐 지나는 곳마다 비경이 어우러져 각기 색다른 절경들을 연출한다.

집 아래쪽으로는 한탄강이 흐르고 마당에 서면 종자산 정상이 이마라도 칠 듯한 영로교매운탕집은 부인 김기분씨(50)가 남편이 잡아온 한탄강 민물고기로 옥호 그대로 매운탕을 끓여내는데, 요즘은 도시 사람들이 참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중국산 민물고기를 먹는 것이 개운치 않은 이럴 때일수록 매운탕 식도락가들은 집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쏘가리 매기 잡고기매운탕 15,000원(2인분)~35,000원(5~6인분).

중2리 이장인 집주인 이창원씨는 관인면 이장협의회 회장직도 맡고 있는데, 현지에서는 ‘의리의 사나이’로 통하고 있었다. 산행안내는 이장인 자신의 기본임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암반 200m 아래서 끌어올린 광천수
이동막걸리 & 이동갈비촌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한일탁주합동주조장은 그 유명한 이동막걸리가 탄생한 곳이다. 이동막걸리는 화강암 암반 200m 지하에서 끌어올린 광천수로 술을 빚는다. 신맛과 쓴맛, 쌉쌉한 맛이 잘 배합되어 깊고 텁텁한 맛과 함께 상쾌한 뒷맛까지 더해준다. 이 술은 경기도 민속주로도 지정되어 있다.

이동막걸리의 뛰어난 술맛은 미네랄이 풍부한 백운계곡의 맑은 물 덕분이겠지만 제조공법도 무시할 수 없겠다. 여기에 창업자 하유천 옹의 막걸리 제조에 대한 각별한 정성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양조장 옆에다 사택을 짓고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누룩제조실과 삽입실을 돌봤다. 그의 하루 일과는 술밥과 누룩밥을 독에 빚어 넣는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대개의 경우 일반 막걸리는 금속제 탱크에서 숙성된다. 이에 비해 이동막걸리는 예부터 전해져오는 전통적 기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질그릇인 항아리를 사용함으로써 미생물 발효에 필요한 맑은 공기와 풍부한 산소를 항아리가 공급받아 독 속에서 발효가 쉽게 이루어지게 했다. 포천에는 이동막걸리 외에도 일동·내촌·포천막걸리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애음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동막걸리다.

이동면 장암리 영평천 주변에는 18개 업소의 갈비집이 도로 양편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데 이곳이 이동갈비촌이다. 막걸리와 더불어 포천 명물로 자리 잡게 된 이동갈비가 지금의 명성을 얻기까지에는 5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 휴전 직후인 1954년부터 군부대가 주둔했던 장암리와 도평리 일대에 생갈비와 각종 과일로 양념한 부드러운 양념갈비를 푸짐하게 차려내는 식당이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오지만, 어느 집이었는지는 문헌상 기록이 없다.

1960년대 초반 ‘이동갈비집’과 ‘느타리갈비집’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점차 증가추세를 보이다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울 동대문시장 내 산악회 회원들이 국망봉을 등반한 후 이곳을 들르면서 그 맛이 구전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행정상의 기록으로는 1981년 9월30일 이후의 업소들이 등재되어 있다. 지금은 일동에서 이동을 거쳐 백운계곡에 이르기까지 200개 업소에 이르는 크고 작은 갈비집들이 길 양쪽에 포진하고 있다.

이곳 갈비는 처음에는 모두 참나무 숯불에 구워냈지만 지금은 대부분 인조숯을 쓰고 있다. 질 좋은 고기에 갖은 양념을 다해서 하루 동안 냉장고에 재워 놓는다. 그래야만 양념이 스며들어 부드러운 고기맛을 낼 수 있다. 갈비의 기름기를 빼내고 양념도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시골의 소박한 맛을 그대로 내는데, 소면과 함께 시원한 동치미가 나오는 것이 이 식당들의 일반적인 상차림이다. 각각의 업소에서는 자기 집만의 독특한 맛을 자랑하며 옥호에 ‘원조’라는 접두어를 대부분 붙여 놓았다.

이동갈비촌에는 품격이 한 차원 높다는 ‘이동부산갈비(031-532-4578)’와 원조임을 자임하는 대형업소 ‘김미자할머니집(031-533-4069)’이 가장 많은 단골들로 늘 붐빈다는 소문이다. 고운 모습의 김미자 할머니는 50대 나이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늙지 않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일에 바빠 늙을 틈이 없다”고 답변하시는 멋쟁이 할머니시다. 갈비 400g 24,000원.

지장산이나 종자산 산행 후 43번 국도가 귀로인 경우는 포천시청에서 의정부 방향, 인삼조합을 지난 500여m 지점에 있는 ‘원조포천이동갈비(031-535-6185)’를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U턴의 번거로움이 없는 방향에 주차공간이 넉넉한 데다 이동갈비가 주머니 사정에 부담이 가면 함흥냉면이나 우거지탕(각 5,000원), 또는 선지해장국(3,500원)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집의 이동갈비는 갈비공장의 것을 가져다 쓰지 않고 집에서 직접 뜬다는 것이 특징이다(이동갈비 1인분 500g 8대 26,000원). 손님의 90% 이상이 서울과 인천 손님이라고 하니 외지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집임을 알 수 있다. 마당에 서면 지붕 너머로 왕방산 주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성공한 두부장수 이야기
지장산손두부

어릴 때 여러 차례 들었던 두부장수 이야기가 있다. 한 가지 일에만 열중하면 성공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하라는 뜻으로 어른들께서 들려주시던 이야기였는데, 지장산 자락 ‘지장산손두부(031-531-9569)’ 주인 정성하(51)-김윤자(49)씨 내외가 새삼스럽게 이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두부장수 두 명이 한 마을에 살고 있었다. 한 두부장수는 늘 ‘언제쯤이면 이 두부장수를 그만둘 수 있을까’ 생각하며 지냈다. 장사수완이 좋아서 돈은 잘 벌고 있었지만 그는 늘 두부장수보다 다른 일로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이 없을까 궁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빠른 시일 내에 두부장수를 그만두리라 믿었다.

그리고 또 다른 두부장수는 ‘두부장수는 나의 천직이다. 아침마다 나의 종소리를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는 두부장수 말고는 다른 생각이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가 평생토록 “두부사려!”만 외치다가 죽을 거라고 수군거렸다.

그런데 두부장수를 그만 두겠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더 이상 발전을 하지 못했고, 정작 두부장사를 그만 두고 더 큰 장사라도 할 수 있는 처지가 된 사람은 두부 파는 일이야 말로 자기의 천직이라고 여겼던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다.

두부장수를 천직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늘 즐겁게 일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그러자 장사는 더 잘 되었고 돈도 더 크게 벌었지만, 계속 두부장수를 했다는 것이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두부장수는 골목길을 누비며 손종을 울리며 “두부사려!”를 외쳤고, 두부가 필요했던 집에서는 바로 두부를 받아서 돈을 치루면 되었다. 그만큼 두부는 가정의 식탁에서 약방의 감초 같은 식품이었다.

깊은 산속 지장산 자락에서 애기 셋을 키우고 이제는 자녀들 교육비 문제에서도 해방되었다는 지장산손두부 주인 내외는 두부 만드는 일이 마냥 즐겁고 손님들이 찾아주는 일이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고 한다. 산속의 두부집에서 번 돈으로 딸 둘 아들 하나 모두 큰 도시로 보내 대학까지 마치게 한 일이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럽다는 내외는 지금 식당은 재미로 한다고 자랑이다.

이런 가운데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등산망태를 울러 메고 찾았던 손님이 골수 단골이 되어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이상 꾸준히 찾아 주는 일은 지금껏 살아온 삶의 큰 보람이라고도 했다.

지장산손두부 집은 산자락 어느 곳에서나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그런 식당이다. 그런데 이 집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범상치 않는 구석이 있다. 경북 영천 출신의 처녀가 먼 산골까지 시집와서 보니 시어머님(89)의 두부 만드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고 한다. 살고 있는 집 주변에서 수확한 콩으로 두부 만드는 법을 익히고 양념을 해서 내놓았더니 찾아온 손님들 모두가 만족하는 눈치라 자신의 집이 산자락 지장산유원지 입구인 점을 감안하고 문을 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집에서는 콩 농사를 직접 짓는데, 식당에서 쓰는 콩은 모두 자가 생산한 콩이라 철저한 신토불이다. 굳이 시장까지 나가서 장을 보지 않아도 식탁을 꾸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이 집의 또 다른 자랑이기도 했다. 솔잎콩국수, 손두부백반, 모두부, 두부전골 각 4,000원.

단골 대부분이 솔잎콩국수를 주문한다는데, 바늘의 실처럼 포천조술당에서 빚은 포천찹쌀동동주가 필수라고 했다. 물맛 좋기로 소문난 포천의 지하 300m 암반수에 쌀과 밀을 섞어서 빚은 포천찹쌀동동주(도수 6도, 1,700ml)는 3,000원을 받는다. 100가구 250여 명이 살고 있는 이곳 관인면 중1리에는 냉면과 칡막국수를 차려내는 음식점 6곳이 성업 중이다.

사계절 소박한 음식상
파주골콩비지

포천에는 47번 국도와 43번 국도가 알파벳 H자형으로 깔려 있다. 남북간의 두 국도 중간 중간에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지방도들이 있는데, 서쪽의 43번 국도 상 성동검문소와 동쪽의 47번 국도 상 이동갈비촌을 잇는 도로가 322번 지방도다. 이 지방도와 나란히 영평천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이 영평천의 북위 38도선이 6.25 전에는 남북을 갈라놓던 경계선이다. 이 경계선 지방도와 영평천변 관음산 자락이 풍혈산유원지이고, 이 유원지에 ‘파주골 순두부촌’이라는 먹거리마을이 도로변에 형성되어 있다.

14개 업소가 영업하고 있는데 순두부촌이라는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콩비지, 청국장 등을 먹을 수 있는 업소들이 있는가 하면 여느 산자락 음식점들과 별 다름없이 갈비와 오리고기, 버섯요리 등을 차려내는 음식점들도 있다.

이들 업소들 중 ‘파주골콩비지보리밥(031-534-4679)’ 집으로 들어가 본다. 집 앞은 도로를 건너면 바로 영평천이다. 콩비지 전문점인 이 집은 비교적 젊은(?) 주인 김영필(37)-임인자(37)씨 부부가 새로운 감각으로 운영하고 있는 토속 음식점이다.

백운산과 명성산(산정호수)이 10분 거리이고, 서울 강남권에서 지장산 등 포천 서북쪽의 산행길에는 거치게 되는 도로변이라 봄 가을에는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많이 들르는 집으로 인기 높다. 집앞의 영평천은 수심이 얕아 여름철에는 애기들의 물놀이터로 가족 단위의 행락객들이 많이 찾는다. 겨울이면 일동의 온천을 들른 사람들이 소박한 이 집 음식을 먹기 위해 찾아 오는 집이라 사계절 전천후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콩비지(보리밥) 5,000원. 계절 따라 8가지 기준으로 집에서 기른 고추, 가지, 호박 등의 반찬을 상 위에 올린다.

47번 국도변 대표음식점
우남하우스

월간山 독자분들로부터 가끔 받는 전화가 “어느 지역으로 가는데 그곳의 대표음식점이 어느 집이냐”는 것이다. 조금은 난감해지지만 답변은 해드려야할 처지다. 월간山에다가 100회 이상 연재하고 있으니 독자분들께서는 모든 산자락의 모든 음식점들을 환하게 꿰차고 있는 것으로 알고 계시는 것 같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지만, 인구 100명당 식당 한 곳쯤으로 알면 크게 틀리지 않는 그 많은 음식점들을 다 꿰차고 알 수는 없다. 상대적으로 다른 분들보다는 조금 더 안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이미 월간山(2004.5)에 ‘47번 국도변 돌갈비탕의 최고 명소’로 소개한 바 있는 ‘우남하우스(031-571-9233)’를 다녀오신 분들로부터는 많은 전화를 받았는데, 참으로 좋은 집을 소개해 줘서 고맙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만큼 우남하우스는 고객만족도가 높은 업소라는 것이겠다.

고객을 만족케 하는 요인이야 여러 가지이겠지만, 이 업소는 기본 식자재인 고기를 식당 지하 100평의 육가공 공장의 것을 갖다 쓴다. 모든 유통과정이 배제된 상태라 다른 식당들과는 음식값에서 30% 가량 싸다. 식자재의 신선도나 질에서 타 업소의 추종을 불허한다. 식당경영이 원만해지고 불황을 타지 않다 보니 종사자들이 안정된 정서로 일하게 되고, 고객들에게는 언제나 맑고 밝은 얼굴로 대한다. 한 마디로 ‘잘 돌아 가는 업소’이고 보니 주객 모두가 만족할 수밖에 없다.

“갈비탕은 우남하우스에서 먹기로 하고 여기서는 다른 음식으로 주문해.” 우남하우스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식당에서 하는 말이고, “혹 계산에서 빠진 것은 없습니까?” 계산대에서 음식값이 예상보다 너무 싸기에 한번 확인해 보면서 손님들이 하는 말이란다. 우남하우스에서 파생된 이들 유행어들을 잘 살펴보면 이 업소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돌갈비탕 8,000원. 멍석갈비 29,000원. 모듬고기 32,000원.

글·사진 박재곤 산촌미락회 고문·60대산회 회원 www.sanchonmirak.com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