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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국립공원 정책 해부 (52)] 수해복구공사로 십이선녀탕·백담계곡 증발

월간산
  • 입력 2007.06.26 19:59
  • 수정 2007.07.2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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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모노레일’ 설치로 계곡과 능선의 원시적 자연경관 훼손

수해로 산림과 토사가 쓸려간 설악산이 이번에는 수해복구공사가 다시 자연을 망가뜨리고 있다. 설악산 수해복구공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계속돼 현재 약 6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으며, 십이선녀탕과 백담계곡에서는 용접하느라 산소불꽃이 일고 인부들은 철제 빔을 나르느라 쉴 새 없다.
 
설악산 백담계곡 ‘등산로 모노레일’ 공사현장. 우회등산로 안내판이 말해주듯 물 범람시 오르내릴 숲길이 있어서 별도 인공등산로가 불필요한 곳에 철제 빔에 판자를 깐 데크를 설치하고 있어 자연경관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설악산 백담계곡 ‘등산로 모노레일’ 공사현장. 우회등산로 안내판이 말해주듯 물 범람시 오르내릴 숲길이 있어서 별도 인공등산로가 불필요한 곳에 철제 빔에 판자를 깐 데크를 설치하고 있어 자연경관을 크게 훼손하고 있다.

설악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소장 김일산)는 복구사업이라며 엉뚱하게도 복구와 관계없는 ‘등산로 모노레일’을 계곡과 능선을 따라 길게 설치하고 있어서 수려하던 계곡과 능선의 자연경관이 훼손되고 있으며, 레일이 완공되면 레일 위로만 갇힌 채 걷게 되어 자연과 호흡하는 등산의 본질을 느낄 기회를 뺏기게 될 판이다. 데크계단은 경사진 곳에 설치하지만 경사가 거의 없는 곳에 설치하는 데크시설을 이 글에서는 데크계단과 구분하여 ‘등산로 모노레일’로 표현했다.

십이선녀탕은 설악산의 다른 계곡에 비해 폭이 그리 넓지 않다. 그런데 계곡가를 따라 계곡 바닥보다 1~3m 높이에 길게 등산로 모노레일을 설치하고 있는데, 계곡변 바위에 구멍을 뚫고 나사를 사용, 철골을 절벽의 바위에 고정시키고 있다. 폭이 1.2m밖에 안 되기 때문에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은 일렬로 걸어야 한다. 


자연공원을 인공시설물로 가득 채워

계곡 입구에서 6분 정도 걸어 들어가니 교량을 놓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대형 철제빔 2개를 계곡을 가로질러 설치하고 용접으로 쇠막대를 얽어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계류를 건넌 곳에는 등산로 모노레일을 교량에 이어 붙여 계곡변을 따라 길게 이어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십이선녀탕에는 12개소 이상에 달하는 폭포와 소가 있는데, 불필요한 지점에도 설치하고 있어서 수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공단은 철골조 위에 나무판자를 씌운다고 해서 목재데크라 부르고 있으나 실제는 철제 시설물이다. 계곡 입구 남교리에서 대승령까지 거리는 8.5km인데, 곳곳에서 공사 중이다. 십이선녀탕은 오염시설이 전혀 없고 인공시설물이 적은 편이어서 설악산에서는 가장 원시적인 자연경관을 간직해왔다.

십이선녀탕 입구의 공사자재 야적장. 대형 철제빔과 돌 담은 마대, 철근 등이 쌓여 있으며 인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십이선녀탕 입구의 공사자재 야적장. 대형 철제빔과 돌 담은 마대, 철근 등이 쌓여 있으며 인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등산로 모노레일 공사는 백담계곡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십이선녀탕처럼 현 등산로 바닥보다 1~3m 높은 공중에 철골조 모노레일을 설치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기 소리가 울리고 용접 불꽃이 틔고 인부들은 자재를 나르느라 움직이고 있었다.

공단은 모노레일 설치 필요성에 대해서 ‘물 범람시 등산객 안전시설’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공사 중인 등산로에는 ‘우회등산로. 하천 범람시 우회하세요’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사진 참조). 계곡물이 불었을 때 안내판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숲속 길로 오르내리라는 뜻이다. 우회로가 그래도 부족한 점이 있다면 5명 정도 쪼그리고 앉아 밤을 샐 수 있는 작은 무인 간이대피소를 만들어 비나 눈을 피할 수 있게 하면 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십이선녀탕이나 백담계곡에선 이러한 간이대피소의 필요성이 제시된 적이 별로 없다.

대한산악연맹 이의재 사무국장은 ‘백담계곡 아래에는 백담대피소(현 검문소)가 있고 상류에는 수렴동대피소가 있다. 물이 불었을 때는 두 대피소에 상주하는 관리인이 등산객들을 안전한 곳으로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주대 산림자원학과 윤영일 교수는 ‘100년만의 홍수로 피해 입었다고 안전시설을 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사가 급한 숲속에도 데크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백담계곡 상류는 수렴동계곡이라 부른다. 수렴동계곡 맨 위에 자리 잡은 봉정암에서 소청봉 오름길도 경사가 심하다. 이곳에도 데크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천불동계곡 상류의 희운각대피소에서 중청으로 오르는 등산로에도 데크계단 공사 중이다. 장수대 코스에도 데크계단을 설치했다. 오색 용소폭포 코스는 2.5km인데, 곳곳에 데크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대청봉 오르다 오색폭포 부근에는 관광유원지 시설인 전망대를 설치했다.

백담계곡 가운데 섬을 따라 나있는 호젓한 등산로 대신 절벽에 ‘등산로 모노레일’을 만드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백담계곡 가운데 섬을 따라 나있는 호젓한 등산로 대신 절벽에 ‘등산로 모노레일’을 만드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십이선녀탕과 오색 용소폭포 코스는 산불방지기간이 지났어도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십이선녀탕 입구와 백담계곡 입구의 자재 야적장에는 교량설치용 대형 철제빔과 돌을 담은 마대 등이 쌓여 있으며, 헬기로 실어 나를 준비를 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사진 참조).

수해복구라며 최근에 데크계단이나 통나무계단을 설치한 곳은 설악산 외에도 오대산, 월악산, 치악산이다. 지난해 7월15일 발생한 수해를 복구한다며 공사를 벌인 공원은 설악산, 오대산 등 8개 국립공원이며, 총예산은 320억6천만 원이다. 이 중 설악산이 280억7천만 원으로 가장 많다(표1 참조).


2000년 북한산판을 7년만에 설악산에 재현

설악산 공룡능선은 마등령~희운각대피소 구간을 말하며, 용아장성릉과 함께 험한 구간이다. 그런데 공단은 안전산행을 위해서라며 공룡능선에 데크계단을 설치하다가 자연훼손이라는 여론이 일자 중단했다. 설악산 관리사무소는 ‘바위에 박은 철골조를 전부 철거 중’이라고 말했다. 공룡능선 동서 양쪽에는 설악동으로 흐르는 천불동계곡과 백담계곡으로 흐르는 가야동계곡이 있다. 그러나 이 두 계곡에 폭우로 물이 범람해도 험준한 공룡능선까지 계류가 찰 리 만무하며, 등산로 바닥이 대부분 암반이다. 수해와 무관한 등산로 정비인 것이다.

수해와 거의 무관한 곳은 또 있다. 오대산 노인봉, 동대산, 비로봉 등산로다. 노인봉 등산로에는 데크계단 200m, 돌깔기 200m, 난간 150m를, 동대산 등산로에는 데크계단 20m, 돌깔기 500m를, 비로봉 등산로에는 돌깔기 200m, 난간 40m를 공사했다.

국립공원의 바위도 수난을 당하고 있다. 경사가 거의 없는 곳에 설치하는 등산로 모노레일이나 경사진 곳에 만드는 데크계단, 계류를 건너는 곳에 놓는 데크교량 등은 말이 데크이지 철제시설물로서 공사 막판에 상판에 나무판을 댓을 뿐이다. 철제 시설물을 설치하고 다시 허물고 장소를 옮겨 설치하느라 여태까지 바위를 뚫은 구멍 수는 전 국립공원을 통틀어 약 10만 개로 추정된다. 등산로 주변에는 부러진 쇠말뚝 밑둥치가 박혀 있는 곳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7년 전인 2000년에 북한산에도 41억 원 예산의 수해복구공사가 벌어졌다. 그러나 수해와 관련한 공사는 5% 정도일 뿐 대부분 수해와 무관한 등산로 정비였다. 설악산 공룡능선처럼 북한산 칼바위에도 철골조 데크계단을 놓다가 철거했고, 십이선녀탕과 백담계곡의 모노레일처럼 북한산 구기동에도 데크계단을 설치했는데, 계류를 가로지르기도 하며 계곡변을 따라 길게 놓였다.

구기동계곡은 교량을 놓지 않아도 백담계곡 우회로 안내판처럼 안내판을 세우고, 숲속에 굵은 흰 색 밧줄을 설치해두면 밧줄 따라 하산할 수 있는데도 교량을 2개나 설치했다. 철제 교량인데도 공단은 목재데크라 칭하고 있다. 수해와 무관한 공사를 벌인 구기동 코스는 인공계단의 단수가 440단이 되어 등산객들이 기피하는 코스가 되었다.

계류를 건너는 징검다리를 굴삭기로 부수고 대신 대형 교량을 놓고 있다. 철제 교량인데도 공단은 목재데크라 부른다. 2000년 북한산 평창계곡.
계류를 건너는 징검다리를 굴삭기로 부수고 대신 대형 교량을 놓고 있다. 철제 교량인데도 공단은 목재데크라 부른다. 2000년 북한산 평창계곡.

징검다리가 놓여 있던 평창계곡에도 목재데크라며 대형 교량을 놓았는데, 위쪽에 위치한 일선사 주지는 “나들이 나갔다가 물이 불어 건너지 못한 경우도 없었고, 여태까지 등산객들 조난사고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공단은 멀쩡한 곳에 교량을 설치하거나 콘크리트 교량의 낡은 색이 보기 싫다며 허물고 새 철제 교량을 놓고 상판에 나무판을 덧씌우기도 했다.

등산로 바닥이 암반이어서 자연적인 계단이 형성되어 있는데도 목재데크라며 쇠를 박고 계단공사를 벌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거한 곳이 칼바위와 대성문 앞, 백운대피소 아래 등산로다. 이러한 ‘안전시설, 편의시설, 관광시설’이 수해복구라는 이름으로 국립공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해복구예산 쓰임새 철저 검증해야

당시 경기도 북부 지역에선 집을 잃은 주민들이 수해복구비 지원이 부족하다는 항의가 이어질 때였으며, 수해 입은 하천 정비를 소홀히 했다가 다시 수해를 입었다고 난리였다. 수해복구비는 이러한 곳에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2000년도 북한산 수해복구방식을 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설악산에 적용, 설악산마저 마지막 남은 원시의 자연경관을 송두리째 뭉개고 있다. 수해복구예산의 쓰임새를 철저히 검증해야 할 때다.

/ 이장오 아름다운산하(전 국립공원시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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