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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르포라이터 민병준의 향토기행] 제천 II

월간산
  • 입력 2007.07.31 07:53
  • 수정 2008.12.1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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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어떤곳인가
 

충청북도 북동부 중앙에 위치한 제천시(堤川市)는 동쪽으로는 단양군과 강원도 영월군, 서쪽으로는 충주시, 남쪽으로는 경상북도 문경시, 북쪽으로는 강원도 원주시와 접한다.

제천시의 남쪽으로는 백두대간이 경상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한강기맥’의 지맥이 뻗어 강원도와 경계를 이루어 북쪽과 남쪽이 높고 서쪽과 동쪽은 낮다. 동쪽은 호명산(虎鳴山·475m)·작성산(鵲城山·820m), 서쪽은 삼봉산(三峰山·910m)·시랑산(侍郞山·691m), 남쪽은 문수봉(文繡峰·1,162m)·월악산(月岳山·1,094m)·하설산(夏雪山·1,028m), 북쪽은 백운산(白雲山·1,087m)·구학산(九鶴山)·송학산(松鶴山·820m)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부분 험준한 산악지대로 이루어진 제천은 남한강이 시 중앙부를 동서로 흐르고, 그 지류인 제천천 등이 산간 침식분지를 형성하나 평야는 좁다. 그나마 충주댐 건설로 남한강 주변에 발달한 하안단구가 수몰되어 경작지가 줄어들었다.

해발고도가 높고 바다와도 거리가 멀어서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 기후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연평균 기온은 10.3℃, 1월 평균기온 -2.7℃, 8월 평균기온 23.4℃이며, 연교차 26.1℃로 기후차가 심하다. 연평균 강수량은 1,453㎜로서 전국 평균 강수량보다 많다. 

삼한시대에는 진한(辰韓)의 발상지로, 당시 축조된 의림지가 남아 있다. 4세기 초에는 백제의 영토였으나 5세기 이후 고구려 내토군(奈吐郡)이 되었고, 청풍면은 사열이현(沙熱伊縣)이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 내제군(奈堤郡)으로 개칭되었고, 청풍현은 내제군에 속했다. 지방제도를 9주5소경으로 정비하면서 삭주(朔州·지금의 춘천), 북원경(北原京·지금의 원주)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인 940년(태조 23) 제주군(堤州郡)으로 개칭되었다. 985년(성종 2) 지방제도가 12목으로 완비되면서 충주목사 관할 하의 원주에 속하게 되었다. 992년에는 의천(義泉)·의원(義原)으로 불렸다. 995년(성종 14) 중원도(中原道)에 속하였고, 1018년(현종 9) 원주의 속현이 되었다.

조선시대인 1395년(태조 4) 양광도를 충청도로 개편하면서 충주목(忠州牧)에 속하였고, 1413년(태종 13)에는 제주를 제천이라 개칭하고 현감을 두었다. 1896년(고종 33) 충북 제천군이 되었으며, 청풍면은 청풍군으로 독립하였다. 1914년 청풍군이 제천군에 병합되었다. 1980년 제천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제천군은 제원군으로 분리되었다.

1991년 제원군에서 제천군으로 환원한 뒤 1995년 제천시와 제천군을 합쳐 제천시가 되었다. 현재 봉양읍과 백운면 등 1읍 7면 9동을 관할한다.

제천 의림지

제천시 모산동에 있는 의림지(義林池)는 원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로 본래의 이름은 임지(林池)다.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오랜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수리시설이다. 호반둘레 2km, 만수면적 151,470㎡, 저수량 6,611,891㎡, 수심 8~13m의 대수원지로 289정보의 농지를 관개한다.

저수지 둘레로는 아름드리 소나무, 버드나무 숲이 울창하고 전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이 함께 자라고 있다. 주위에는 1807년(순조 7)에 세워진 영호정(映湖亭)과 1948년에 세워진 경호루(鏡湖樓)를 비롯해 연자암·용바위·홍류동·홍류정지 등이 있다.

의림지 주변 산책로는 △제1코스(9.1km, 2시간50분 소요)=솔밭공원~용담사~용두산~864m봉~제2의림지~솔밭공원 △제2코스(5.7km, 2시간10분 소요)=의림지 주차장~용담사~Y자 갈림길~급경사길~용두산~682m봉~용담사~솔밭공원 △제3코스(7km, 3시간20분 소요)=의림지 주차장~용담사~Y자 갈림길~급경사길~용두산~안부 갈림길~무당골~의림지 등이 있다. 
 

청풍 문화재단지

1985년 충주댐이 생기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자 유적들을 옮겨놓고 옛 고을을 재현한 곳이 청풍 문화재단지다.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 4동), 지석묘, 문인석, 비석 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 점이 보관되어 있으며, 명실상부한 옛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문화의 산실로 자리 잡고 있다.

관람시간 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 무료. 전화 641-4301-4302.
 

박달재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면 원박리와 백운면 평동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 38번 국도가 제천시와 충주시를 연결하고 있으며, 1970년 도로확포장이 이루어졌다.

최근 터널이 뚫렸다. 구학산(九鶴山·917m)과 시랑산(侍郎山·691m)의 안부에 해당한다. 요즈음에는 천등산(天登山·807m) 박달재로 알려져 있으나 천등산과 박달재는 원서천을 사이에 두고 있다. 1217년(고려 고종 4)에 김취려 장군이 거란병을 크게 물리친 곳이다.
 

월악산

월악산(1,094m)은 충북 충주시·제천시·단양군과 경북 문경시에 걸쳐 있다. 주봉인 영봉(靈峰)에 걸린 달이 아름답다하여 ‘월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삼국시대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 불렸다. 한국의 5대 악산(嶽山)으로 198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바위로 이루어진 영봉을 중심으로 등산로가 여럿 뻗어 있다. 이중 덕주공주의 전설이 서려있는 덕주사 코스가 가장 인기 있다.

덕주골~덕주사~마애불~960m봉~영봉(정상)~동창교를 돌아오는 데 4시간30분 정도 걸린다. 동쪽에서 오르는 수산리~보덕암~하봉~중봉~영봉~마애불~덕주사~덕주골 코스는 6시간 소요. 전화 043-653-3250.
 

용하구곡

월악산 동쪽을 흐르는 16km의 계곡으로 곳곳마다 기암절벽과 소, 숲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이중에서 아홉 절경을 골라 용하구곡이라 한다.

수직 높이 35m, 길이 100m 가량 되는 수문동폭포, 물굽이가 마치 용이 꼬리를 튼 모양을 이루고 있는 수곡용담, 계류에 솟은 높은 바위가 일품인 관폭대, 5개의 큰 암석이 층계를 이루고 맑은 물이 소를 이룬 청벽대, 옛날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미대, 부녀자가 많이 찾아와 몸을 청결히 하던 수룡담, 주변에 산삼이 많다는 활래담, 옛날 선비들이 글을 읽고 쓰던 강서대, 신륵사에서 500m 위 넓은 바위로 흘러내리는 폭포가 장관인 수렴선대가 그것이다.
 

송계계곡

월악산 서쪽 한수면 송계리를 거쳐 충주 미륵리까지 이어진 8㎞의 송계계곡은 깊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계류가 있고, 사찰·성문·불상·석탑 등 유물이 산재해 최고의 피서지로 꼽힌다. 인근의 아홉 절경을 꼽아 송계구곡이라 한다.

월악산의 최고봉(1094m)인 월악영봉, 넓은 암반과 깊은 소가 절경을 이루는 송계계곡 입구의 자연대, 30여m의 3단으로 이루어진 월광폭포, 신라시대부터 월악신사를 설치하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수경대, 한 쌍의 학이 월악산을 오가며 살았다는 학소대, 덕주산성 남문과 한쪽 맥이 이어져 있는 곳으로 기암줄바위와 고무서리계곡을 굽이도는 맑은 물과 어울린 절벽인 망폭대, 용이 승천하였다고 하는 와룡대, 하늘나라 공주가 하강하여 목욕했다고 전해지는 팔랑소가 그것이다.
 

옥순봉

수산면 괴곡리에 있는 옥순봉(玉筍峯)은 가까이에 있는 단양의 구담봉(龜潭峯)과 함께 단양8경에 속하기도 한다. 옥순봉은 조선 초 청풍군(현 제천시 청풍면)에 속해 있었다.

단양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옥순봉을 단양팔경에 넣으려고 하였으나 청풍군수가 이를 허락지 않자 옥순봉이라 이름 짓고, 석벽에 ‘단구동문’이라 새겨 단양의 관문이 되었다고 전한다.

김홍도는 정조의 초상화를 잘 그린 공로로 충청도 연풍의 현감에 임명되었는데, 이 무렵인 1796년 옥순봉도(玉筍峯圖)를 남겼다. 옥순봉은 등산로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 1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다.
 

제천 점말 동굴유적

송학면 포전리 점말에 있는 구석기시대 동굴유적이다. 굴 앞쪽이 남동쪽으로 열려있고, 동굴 주변의 크고 작은 가지굴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맑은 물은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에 알맞았던 것으로 보인다.

굴을 채웠던 쌓임층의 두께는 4∼5m에 이르며, 7개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쌓임층 안에서 제4기 짐승뼈 화석과 구석기인들이 남긴 뼈연모·석기·치렛거리·예술품 등 여러 문화유물이 발굴되었다.
 

제천 입석리 선돌

송학면 입석리 입구 길 옆 가장자리에 세워져 있다. 선돌 축조와 관련된 전설과 함께 기자사상에 관련된 이야기가 전하여오고 있다.

마을에서는 주민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선돌제를 1986년부터 매년 음력 10월 중에 지내고 있다. 선돌의 기능·구조·학술적 의미 등에서 중원지방의 대표적인 선돌로 평가된다. 
 
 
 
 

사자빈신사지 석탑

한수면 송계리의 사자빈신사지 석탑(보물 제94호)은 빈신사터에 세워져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상·하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4층의 지붕돌을 얹은 모습인데 원래는 9층이었다.

아랫기단은 글이 새겨져 있어 탑의 조성 경위를 알 수 있으며, 윗기단은 사자 4마리가 탑신을 받치고 있다. 네 모서리에 한 마리씩 배치한 사자의 안쪽 공간에 비로자나불상을 모셔 두었다. 앉은 모습의 비로자나불상은 특이하게도 두건을 쓰고 있으며 표정이 매우 흥미롭다.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시대의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을 모방한 것이다.

기단의 기록에 의해 1022년(고려 현종 13)에 만들어진 이 탑은 연대가 확실하여 각 부의 구조와 양식, 조각수법 등 다른 석탑의 조성연대를 추정하는 데 기준이 되는 중요한 탑이다.
 

덕주사 마애불

월악산 덕주사의 동쪽 암벽에 새겨진 덕주사 마애불(보물 제406호)은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거대한 화강암 바위 남쪽 면에 조각한 불상은 전체 높이가 13m로 얼굴 부분은 도드라지게 튀어나오게 조각하였고, 신체는 선으로만 처리했다. 이와 같이 얼굴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거대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살찐 얼굴과 하체로 내려갈수록 간략해진 조형수법, 입체감이 거의 무시된 평면적인 신체 등은 크기에 비해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장락리 칠층모전석탑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은 탑으로, 흙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탑(模塼塔)이라고 한다.

제천시 장락동 들판에 있는 장락리 칠층모전석탑(보물 제459호)은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만 화강암으로 1단을 마련하였으며, 그 위로 회흑색의 점판암 벽돌로 이루어진 7층의 탑신을 올렸다. 탑신 전체에는 표면에 회를 칠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높이는 9.1m에 이른다.

1967년 무너지기 직전에 탑을 해체하여 보수했는데, 7층 지붕돌 윗면에서 꽃무늬가 조각된 청동조각이 발견되었다.
 

청풍 한벽루

청풍 문화재단지 내에 있는 한벽루(보물 제528호)는 1317년(고려 충숙왕 4)에 처음 지은 건물이다. 원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을 세우면서 1983년 청풍면 물태리로 옮겨 세웠다. 구조는 앞면 4칸, 옆면 3칸의 2층 누각과 앞면 3칸, 옆면 1칸의 계단식 익랑건물이 이어져 있다.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하였으며 사방에 난간을 둘렀다.

건물 안에는 송시열·김수증의 편액과 김정희의 ‘청풍한벽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밀양의 영남루(보물 제147호), 남원의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함께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청풍 석조여래입상

청풍 석조여래입상(보물 제546호)은 당당한 어깨, 양감 있는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힘을 느끼게 하고 있지만, 목의 형식화된 주름이라든지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과 괴체화된 신체 등을 볼 때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 읍리에서 1983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매우 작아서 우뚝해 보이며 사각형의 얼굴은 후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가늘면서도 두툼한 눈, 넓적한 코, 뚜렷한 인중, 양 어깨까지 길게 드리워진 두 귀는 자비로운 부처의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신륵사 삼층석탑

월악산 동쪽에 있는 신륵사 삼층석탑(보물 제1296호)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하나씩 본떠 새겼고, 탑신에서도 역시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지붕 모양의 장식) 등이 있으며, 머리장식부의 무게중심을 지탱하기 위한 찰주(쇠꼬챙이)가 뾰족하게 꽂혀 있다. 각 부재를 만든 솜씨도 세련되었는데, 이처럼 머리장식이 잘 남아있는 예는 드문 편이다.

1981년 탑을 해체·복원할 때 기단 내부에서 흙으로 빚은 소형 탑 108개와 사리함 조각이 발견되었다. 통일신라의 석탑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는 고려 전기의 탑이다.

 

덕주산성

한수면 송계리 월악산의 남쪽의 덕주산성(德周山城)은 돌로 쌓은 통일신라시대의 산성이다. 문경과 충주를 잇는 도로를 차단하는 요충지이기 때문에 차단성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둘레가 9,800m에 이르렀던 성벽은 거의 무너졌으나, 조선시대에 쌓은 남문·동문·북문의 3개 성문이 남아 있다. 남문은 동창으로부터 문경으로 통하는 도로에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홍예문으로 되어있고, 덕주골 입구에 있는 동문은 남문과 비슷하다.

새터말 민가 가운데 있는 북문은 내외에 홍예가 있으며, 홍예 마룻돌에는 태극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덕주산성은 내외 5겹의 성벽이 있는데, 축조연대가 각기 달라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자양영당

봉양읍 공전리 자양영당(紫陽影堂)은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유중교(1821-1893)가 후진을 양성했던 곳이다.

1889년(고종 26)에 창주정사로 세웠는데, 1906년 유림에서 자양영당으로 새롭게 세웠다. 1895년(고종 32)에는 의병장 유인석(1842-1915)이 팔도 유림들을 모아 비밀회의를 하던 곳이다. 유중교는 이항로와 김평묵의 제자였으며, 그들의 영향을 받아 위정척사론을 주장한 인물. 유인석 역시 이항로의 문하에 있었으며, 위청척사론자이자 의병장으로 적극적인 항일운동을 전개시켰다.

제천의병전시관은 제천의병의 활약상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주자·송시열·이화서·유중교·유인석·이직신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경내에는 ‘화동강목’ 판목을 보존하고 있다.
 

황강영당

한수면 송계리의 황강영당(黃江影堂)은 조선 주자학의 대가인 우암 송시열(1607-1689)을 비롯하여 그의 제자인 수암 권상하(1641-1721), 권상하의 제자인 한원진, 윤봉구, 권욱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이다. 1726년(영조 2)에 세웠고 다음해에 황강서원으로 승격되었는데,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황강영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충주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1983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긴 것이다. 수암사(遂庵祠)는 권상하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관란정

송학면 장곡리 관란정(觀瀾亭)은 생육신인 원호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후손과 유림들이 1845년(헌종 11)에 세운 정자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에 안치된 후 관란 원호(생몰년 미상)가 청령포로 흐르는 서강가에 단종을 추모하여 단을 세우고 조석으로 바라보던 곳이다.

원호는 청령포로 흐르는 물줄기 상류인 이곳에 초막을 짓고 새벽과 저녁에는 단종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울며 임금을 생각하였다 한다. 또 남모르게 음식과 의복을 바치고 풀잎에다 글씨를 지어 함지에 함께 넣어 강물에 흘려보내면 함지박은 청령포 앞 용수지는 곳에서 빙글 빙글 돌며 더 흘러가지 않고 머물렀다고 하며 원호는 함지박이 어소에 닿을 무렵에 강기슭에 나아가 단종이 있는 곳을 향해 배례하였다고 한다.
 

탁사정

제천전 상류인 봉양읍 탁사정(濯斯亭)은 1568년(선조 19)에 제주 수사로 있던 임응룡이 고향에 돌아올 때 해송 여덟 그루를 가져와 심고 정자를 지은 뒤 팔송정이라 하였다. 세월히 흐르면서 허물어진 정자를 후손 윤근이 다시 세웠고 원규상이 탁사정이라 하였다. 팔송은 모두 죽고 지금은 한 그루도 남아있지 않으나 1999년도 10월에 팔송 마을 및 제방둑에 20그루의 해송을 심었다.
 
탁사정은 중국 초나라 때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의 ‘맑은 물에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 발을 씻는다’(淸斯濯瓔 濁斯濯足)에서 이름을 따왔는데, 바위·소나무·물이 잘 어우러져 있어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더위를 식히는 피서지로 이름 높다.
 

배론성지

봉양읍 구학리의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천주교사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성지다.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때 많은 천주교인이 배론 산골로 숨어들어 살았는데, 그들은 옹기장사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당시 황사영은 조선의 천주교도 박해 상황과 천주교 신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를 토굴 속에 숨어 집필하였다.

백서는 가로 62cm, 세로 38cm 되는 흰 명주 비단에 한 줄에 110자씩 122행 13,384자로 작성되었으며, 원본은 로마교황청 문서보관소에 보관중이다. 경내에는 황사영이 백서를 썼던 토굴 외에도 1855-186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성요셉 신학교,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가 된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다.
 

정방사

금수산(1,016m) 산자락인 신선봉(845m)에서 청풍 방면 도화리로 가지를 뻗어내린 능선 상에 위치한 정방사(淨芳寺)는 662년(신라 문무왕 2)에 의상이 도를 얻은 후 절을 짓기 위하여 지팡이를 던지자 이곳에 날아가 꽂혀서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로서 ‘동국여지승람’에는 산방사로 소개되어 있다. 경내에는 1825년에 세워진 법당을 비롯해 요사, 일주문인 현혜문 등이 있다.

법당 안에는 주존불인 관음보살상이 있으며, 불상 뒤로 후불탱화가 그려져 있다. 최근 법당 안에 신중탱화, 산신탱화, 독성탱화 등을 그려 넣었다. 법당 뒤에는 의상대라는 웅장한 암벽이 솟아있다. 법당 앞에 서면 청풍호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수산 입장료 1,000원. 전화 043-647-7399. 
 

정원태 가옥

금성면 월림리의 정원태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48호)은 19세기 전기에 지었다고 전해오는 양반집이다. 주변 환경이 아름답고 전망이 좋으며, 풍수지리상 아주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는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튼 ㅁ자형으로 조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장식은 없지만 잘 짜인 건물이다.
 

박도수 가옥

금성면 구룡리의 박도수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37호)은 큰 농가 형식의 민가로 ㄱ자형 안채, 사랑채, 아래채, 중문채, 헛간 등이 일곽을 이루고 있는 집이다. 안채에서 발견된 기록으로 미루어 1864년(조선 고종 1)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안채는 특색 있는 구성·배치와 오래되고 특이한 건축구조를 이루고 있어 우리나라 전통주택 연구에 좋은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사랑채나 아래채는 20세기 초에 지은 것이라 한다. 원래는 초가집이었다고 전한다.
 

망개나무

망개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지에 드물게 자라는 희귀종으로 황색 단풍이 아름답다. 번식력이 약하지만 한번 싹을 틔우면 잘 자라난다.

한수면 송계리 충북대 연습림 내에 위치하고 있는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337호)는 나이가 약 150살로 추정되며, 높이는 17m, 가슴높이의 둘레가 2m다.

망개나무는 세계적인 희귀수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곳 외에 속리산, 주흘산, 주왕산 등지에서 볼 수 있다.
 

능강 솟대문화공간 

솟대는 기러기나 오리 등의 새를 높은 장대 위에 형상화한 조형물로, 고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희망의 매개체다. 수산면 능강리 솟대문화공간은 테마공원으로, 솟대 전문 조각가 윤영호씨가 자신의 작품 수백여 점을 들여와 오픈했다.

제천시는 능강 솟대문화공간을 관광명소로 가꾸기 위해 시유지를 제공하고 산책로와 전망대 등 편의시설도 만들었다. 능강 솟대문화공간은 160m² 규모의 솟대 전시관과 주차장, 원두막, 야외 솟대와 야생화 정원 등을 갖추고 있다.

주차, 관람 모두 무료. 전화 043-653-6160.
 

박달재 자연휴양림

백운면 평동리 박달재 고갯길에 있는 박달재 자연휴양림은 수령 100년이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 등 잡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휴양지다.

깎아지른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광도 보기 좋다. 시설로는 족구, 배구장, 등산로 7km, 동물사육장 12종 116수(꽃사슴, 청공작, 백공작, 금계, 은계, 백한 등), 물놀이장 1,000㎡, 자연관찰원 곰솔 등 12종 224본, 화훼원 목수국 등 7종 2,424본, 생태연못 170㎡ 등이 있다.

숙박시설 사용료는 통나무집 5평/5동(30,000원), 6평/8동(40,000원), 13평/2동(80,000원), 황토방 8평/8동(50,000원), 단체 숙소 44평 1동(200,000원)이 있다. 야영장 4개소(2,000/5,000원)다. 입장료 1,000원, 주차료 2,000원. 전화 043-652-0910, 641-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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