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르포라이터 민병준의 향토기행] 울릉도 & 독도

월간산
  • 입력 2008.06.19 12: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 동쪽 끄트머리를 지키는 화산섬 형제

새벽 4시, 묵호항.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풍랑주의보는 해제되었다. 바람이 수그러들긴 했어도 파도는 여전히 높다. 어제는 풍랑주의보 때문에 울릉도행 오전 10시 한겨레호가 뜨지 않았다. 발이 묶인 것이다. 2시간 뒤? 3시간 뒤? 풍랑주의보가 언제 해제될지 모르는 상황. 여객선터미널 근처에서 멀리 떠나지 못하고 가까운 추암해변 등을 얼쩡거리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보내고, 어두컴컴한 새벽에 배를 타러 묵호항에 나온 것이다. 아무리 그렇지만, 군사훈련도 아닌데, 새벽 4시 출항이라니!

망향봉에서 내려다본 울릉도 풍광. 동해 한가운데에서 독도와 함께 
대한민국 동쪽을 지키는 울릉도는 25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생겨난 화산섬이다.
망향봉에서 내려다본 울릉도 풍광. 동해 한가운데에서 독도와 함께 대한민국 동쪽을 지키는 울릉도는 25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생겨난 화산섬이다.
섬 여행은 기상상태가 좌우한다. 안개와 파도는 배를 부두에 묶어놓는 심술쟁이 형제다. 특히 파도는 고약한 녀석이다. 이 녀석이 몸부림치면 출항은 연기되고, 혹 부두를 떠났다 해도 배 안에서 내내 뱃멀미로 고통을 받아야 한다. 섬에 도착해서도 울렁증과 어지럼증으로 숙소에 반나절은 누워있어야 정신을 차릴 수 있다. 특히 울릉도와 독도는 동해의 먼 바다에 외롭게 떠있기 때문에 모든 게 기상상태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묵호에서 울릉도까지는 161km. 동국여지승람 등 옛기록을 보면 예전엔 순풍에 돛을 달고 울릉도까지 이틀이 걸린 거리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포항에서 7~8시간이 걸렸다. 오늘 길손이 겨우 잡아탄 한겨레호는 시속 41노트(1kn=1,852m)로 달리니 2시간20분 뒤면 울릉도에 도착할 수 있다. 거기에 배 흔들림을 잡아주는 멀미방지장치가 돼 있다고 하니, “세월 참 좋아졌다”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울릉도 행남등대에서 저동항으로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 가파른 해벽을 따라가며 해안 절경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왼쪽) / 도동항에서 행남등대로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의 해식 동굴. 이 구간에선 이런 해식 동굴을 여러 개 지난다. (오른쪽)
울릉도 행남등대에서 저동항으로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 가파른 해벽을 따라가며 해안 절경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왼쪽) / 도동항에서 행남등대로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의 해식 동굴. 이 구간에선 이런 해식 동굴을 여러 개 지난다. (오른쪽)
하지만 이렇게 파도가 심한 날엔 멀미방지장치도 그다지 소용이 없는가 보다. 승객들은 대부분 비닐봉지에 머리를 박고 기도를 한다. 길손도 마찬가지. 한겨레호는 예정대로 오전 6시20분에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렇게 뱃멀미에 시달렸는데, 비록 양귀비가 눈앞에 서있다 해도 어찌 손을 내밀 수 있겠는가. 도동약수공원에서 톡 쏘는 탄산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나니 그제야 울릉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길손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독도와 더불어 대한민국 동쪽을 지키는
든든한 수문장인 울릉도는 동해의 거센 파도와 바닷바람이 빚은 화산섬이다. 역사를 간단히 짚어보면, 지구는 46억 년 전 태양계의 수많은 미행성들이 충돌해 뭉치면서 탄생했고, 불덩어리였던 원시지구가 점점 식으면서 44억 년쯤 전엔 육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29억 년 전 한반도가 태어났고, 오늘날처럼 자리가 잡힌 것은 1억5천만 년쯤 전이다. 당시 일본열도는 한반도에 붙어 있었다. 그러다 2천5백만 년쯤 전 일본열도가 떨어져나가면서 동해가 열렸다. 그리고 드디어 450만 년 전부터 250만 년 전 사이에 바다 속 화산이 폭발해 독도가 탄생했고, 250만 년 전엔 역시 화산폭발로 울릉도가 생겨났다. 울릉도·독도 형제 중 나이로 보면 독도가 형님인 셈이다.

망향봉에 설치되어 있는 독도전망대. 날이 맑으면 독도가 육안으로도 보인다. 
우리 조상은 예로부터 독도를 울릉도에 속한 섬으로 여겨왔다.
망향봉에 설치되어 있는 독도전망대. 날이 맑으면 독도가 육안으로도 보인다. 우리 조상은 예로부터 독도를 울릉도에 속한 섬으로 여겨왔다.
그렇다면 현재 울릉도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도동항 가파른 바위벼랑에서 뱃멀미에 지친 길손을 내려다보던 향나무다. 높이 4m, 둘레 2m에 이르는 이 향나무의 수령은 2,000~2,500년으로 짐작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5,000~6,000년 정도로 내다보기도 한다. 어쨌든 울릉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 향나무는 울릉도에 사람이 살기 이전부터 척박한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오가는 이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울릉도에 살기 시작했을까. 학자들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초기부터 울릉도에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포·남서·저동 등에서 고인돌·무문토기·갈돌·갈판 등이 발견되었는데, 서울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고 1997년 출간한 ‘울릉도 지표조사 보고서’를 보면 울릉도에서 발견된 무문토기·신라토기·적갈색 토기 3가지 가운데, 무문토기는 기원전 3세기경의 것이고, 신라 토기는 6세기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최소 2,300년 이전부터 울릉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역사적인 기록은 512년(신라 지증왕 13) 강릉의 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을 정복하여 신라에 복속시키면서부터 등장한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적혀있는 기록을 정리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톡 쏘는 맛이 일품인 도동약수. 옛날 왜군과 싸우던 장군의 갑옷에서 흘러내린 쇳물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왼쪽) / 도동약수공원에 세워져 있는 안용복장군의 
기념비. 동래 출신인 안용복장군은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드나들던 일본인들을 쫓아낸 분이다. (오른쪽)
톡 쏘는 맛이 일품인 도동약수. 옛날 왜군과 싸우던 장군의 갑옷에서 흘러내린 쇳물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왼쪽) / 도동약수공원에 세워져 있는 안용복장군의 기념비. 동래 출신인 안용복장군은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드나들던 일본인들을 쫓아낸 분이다. (오른쪽)
‘강릉 동쪽 바다에 순풍으로 이틀 걸리는 곳에 울릉도가 있다. 이 섬은 둘레 2만6,730보다. 이 섬에 사는 오랑캐들은 바닷물이 깊은 것을 믿고 몹시 교만하여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이에 왕은 이사부 장군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치게 했다. 이 때 이사부는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큰 배에 싣고 위협했다. “너희가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을 놓아 버리겠다.” 이에 오랑캐들은 두려워하여 항복했다.’

예전에 일본인들은 이사부 기록을 허구라고 몰아세웠으나 이건 분명히 역사적 사실이다. 지금까지 연구한 성과를 보면, 한반도 해안지방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우산국은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동해 바다를 기반으로 살아가던 소규모의 해양왕국이다. 우산국의 도읍지는 울릉도 북동쪽, 지금의 북면 현포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곳에 촌락과 7개의 석불과 석탑 등이 있었고, 19세기 말 개척 때만 해도 석실고분이 무려 40여 기가 있었다. 지금도 10여 기의 고분이 남아있다.

우산국은 본토에서 전해진 무문토기와 철기문화를 발전시키고 해양왕국답게 발전된 항해술로 동해안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독도는 울릉도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울릉도와 독도는 모두 우산국의 영역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1) 저동항 풍경. 도동항이 관광지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항구라면 고깃배 드나드는 저동항은 울릉도 어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속살 같은 항구다. / (2) 항구 작은 덕장에 내걸린 오징어. 본격 오징어철이 되면 울릉도 해안은 어디를 가나 새하얀 오징어로 뒤덮인다. / (3) 오징어 조형물과 뾰족 솟구친 송곳산이 돋보이는 추산마을 풍경.
(1) 저동항 풍경. 도동항이 관광지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항구라면 고깃배 드나드는 저동항은 울릉도 어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속살 같은 항구다. / (2) 항구 작은 덕장에 내걸린 오징어. 본격 오징어철이 되면 울릉도 해안은 어디를 가나 새하얀 오징어로 뒤덮인다. / (3) 오징어 조형물과 뾰족 솟구친 송곳산이 돋보이는 추산마을 풍경.
이렇듯 사서에 등장한 전투는 지금의 서면소재지 해안가에 있는 사자바위와 투구바위 전설로 남아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이렇게 신라가 우산국을 정벌한 이후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한 주변 도서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대한민국까지 줄곧 우리의 영토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데, 여말선초에 왜구의 침략이 심해지자 위정자들은 공도정책(空島政策), 말 그대로 섬을 비우는 정책을 쓰게 된다. 왜구의 노략질로부터 백성을 지키기 위한 소극적인 방편이었다. 조선 건국 후에도 한동안 이 정책은 유지되었다. 그러다 큰 섬들은 성종(재위 1469-1494)대를 전후하여 다시 주민이 거주하기 시작하였지만, 작고 외딴 섬들은 16~17세기에야 사람이 들어가 살 수 있었다. 울릉도 공도정책도 이런 흐름의 하나였다.

울릉도는 평균 경사도가 25°나 되기 때문에 가파른 밭에서 경작하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가파른 더덕밭 너머로 펼쳐진 바다가 더욱 평평해 보인다.
울릉도는 평균 경사도가 25°나 되기 때문에 가파른 밭에서 경작하는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가파른 더덕밭 너머로 펼쳐진 바다가 더욱 평평해 보인다.
1416년(태종 16) 조정은 울릉도에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하는 공도정책을 발표하게 된다. 당시 울릉도엔 고려 말 부패와 정권의 불안정으로 가혹한 세금을 피해온 사람들 수백 명이 살고 있었다. 조정에선 이들을 본토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당시 기록을 보면 울릉도 사람들은 송환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던 것 같다. 1417년 우산무릉등처안무사로 임명된 김인우는 울릉도에서 15가구 86명의 주민들이 있음을 발견했으나 단 3명만 설득할 수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 1425년(세종 7)에 역시 김인우를 다시 파견해 주민들을 불러들였다. 이어 1438년(세종 20)에도 66명을 송환했다. 뿐만 아니라 1441년엔 울릉도를 수색해 다시 70여 명을 송환했는데, 이 과정에 주모자는 교수형에 처하고 나머지는 노복으로 삼을 정도로 울릉도 공도정책은 강경했다. 이후 송환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정기적으로 배를 띄워 울릉도 주변을 감시했다. 이와 더불어 삼봉도(독도)에도 백성들이 숨어산다는 소문이 돌자 그곳을 탐색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울릉도 서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태하엔 성하신당(聖霞神堂)이라는 해신당이 있는데, 여기엔 공도정책 시기에 탄생한 한 편의 슬픈 전설이 전한다.

(1)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봉래폭포. 원시림 사이로 떨어지는 이 폭포의 하루 유량은 3,000톤이 넘어 울릉읍 주민들의 귀중한 상수원으로 쓰이고 있다. / (2) 울릉도 개척민들의 목숨을 이어줬다는 명이(산마늘). 예전엔 산기슭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요즘엔 높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 (3) 태하동 성하신당에 모셔져 있는 동남동녀상. 조선 초기 공도정책을 쓸 때 희생당한 소년소녀의 전설이 서려있다.
(1)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봉래폭포. 원시림 사이로 떨어지는 이 폭포의 하루 유량은 3,000톤이 넘어 울릉읍 주민들의 귀중한 상수원으로 쓰이고 있다. / (2) 울릉도 개척민들의 목숨을 이어줬다는 명이(산마늘). 예전엔 산기슭에서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요즘엔 높고 깊은 산속에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 (3) 태하동 성하신당에 모셔져 있는 동남동녀상. 조선 초기 공도정책을 쓸 때 희생당한 소년소녀의 전설이 서려있다.
조선 태종 때 김인우는 안무사를 명받아 울릉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육지로 이주시키기 위해 병선 2척을 이끌고 이곳 태하에 도착했다. 안무사는 울릉도를 수색해 주민들을 찾아냈다. 이윽고 울릉도를 떠나기 전날 밤, 잠을 자는데 안무사의 꿈에 해신이 나타나 말했다.

“너의 일행 중에 동남동녀 2명을 두고 떠나거라.”

그러나 안무사는 개의치 않고 이튿날 아침 출항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갑자기 거센 풍랑이 일었다. 풍랑은 이튿날도 계속되었고,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졌다. 안무사는 문득 며칠 전 꿈이 떠올랐다. 주민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보니 예쁘장한 소년 소녀가 눈에 띄었다. 안무사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너희들은 지금 이 길로 내가 머물던 숙소로 올라가 필묵을 가져오너라.”

노인봉이 굽어보고 있는 현포 앞바다. 울릉도 바다는 이렇듯 어디를 가나 투명한 옥빛이다.
노인봉이 굽어보고 있는 현포 앞바다. 울릉도 바다는 이렇듯 어디를 가나 투명한 옥빛이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은 마을로 달려 올라갔다. 그러자 그 순간 신기하게도 풍랑이 잦아들며 순풍이 불었다. 안무사는 그 틈을 타 닻을 올린 뒤 태하를 떠났다. 무사히 육지에 도착한 안무사는 두고 두고 그때의 일이 마음에 걸렸다. 몇 년이 지난 뒤 다시 안무사가 되어 울릉도를 찾은 김인우는 태하 주변을 수색했는데, 그 때 자신이 유숙하던 곳에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형상으로 백골이 되어 있었다. 안무사는 이들의 고혼을 달래기 위해 참회의 뜻으로 그 자리에 사당을 지어 제사지내고 돌아갔다. 성하신당의 유래다.

이런 슬픈 사연까지 잉태한 울릉도 공도정책. 일본인들은 그 빈틈을 파고들었다. 물론 공도정책을 쓰는 중에도 우리 조정에선 군사를 보내 정기적으로 울릉도·독도 부근을 순찰했지만, 감시가 소홀해질 때마다 일본인들은 울릉도에서 벌목하든지 독도 주변에서 어로행위를 자행하곤 했다. 예로부터 바다로 나가 끊임없이 주변국을 노략질하던 나라가 아니던가.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1614년(광해군 6) 대마도주에게 울릉도에 일본인들의 왕래를 금지하는 금약을 준수하라는 서계를 보낸 일, 1693년(숙종 19)과 1696년에 동래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 근해에서 일본인들의 어로행위를 발견하고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소유임을 확인받은 일 등등이 그것이다. 그러다 안용복이 2차 도일 담판 후 철종 때까지 일본은 비교적 잠잠해졌다.

1881년(고종 18). 드디어 울릉도에 새로운 시대가 찾아오게 된다. 조정에서 울릉도 공도정책을 폐기하고 개척령을 반포한 것이다. 당시 현지조사를 위해 파견된 울릉도검찰사(檢察使) 이규원(李圭遠·1833-?)이 쓴 <울릉도 검찰일기>는 지금도 소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성인봉의 칼데라 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나리분지 전경. 울릉도 전체에서 유일한 평지라 개척민들 수백 명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
성인봉의 칼데라 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나리분지 전경. 울릉도 전체에서 유일한 평지라 개척민들 수백 명이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
배 3척에 102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울릉도를 찾은 검찰사 일행의 탐방 기간은 1882년 4월29일부터 5월13일에 이르기까지 만 14일간이었고, 울릉도에 상륙해 조사한 기간은 5월1일부터 10일간이다. 검찰사 일행은 험한 산길과 해변을 탐험하듯 다니며 샅샅이 조사하면서 울릉도의 실태를 꼼꼼히 파악했다.

그 내용을 간추려보면, 수백 년간의 공도정책에도 불구하고 울릉도엔 전라도·경상도 등 내륙 각지에서 건너온 여러 계층의 백성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숫자는 벌목인 91명, 약초꾼 9명 등 모두 116명이나 되었다. 더불어 울릉도에서 벌목 중인 일본인들도 무려 70~80명이나 되어 일본 정부가 약속한 울릉도 금령이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알고 육지로 돌아온 후 일본 외무대신에 항의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이외에 농사가 가능한 장소, 마을을 이룰 수 있는 장소, 식수가 있는 수원지, 배를 댈 수 있는 포구 등을 꼼꼼히 조사하였다.

미역취로 묵나물을 만드는 울릉도 주민. 이 과정을 거친 뒤 바닷가에 널어놓고 말린다. (왼쪽) / 노인봉과 송곳산이 굽어보고 있는 현포항 전경. 학자들은 삼국
시대 우산국의 도읍지가 바로 이곳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른쪽)
미역취로 묵나물을 만드는 울릉도 주민. 이 과정을 거친 뒤 바닷가에 널어놓고 말린다. (왼쪽) / 노인봉과 송곳산이 굽어보고 있는 현포항 전경. 학자들은 삼국 시대 우산국의 도읍지가 바로 이곳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른쪽)
검찰사가 돌아가 보고한 지 4~5일만에 임오군란이 일어나는 등 국정이 매우 어수선했지만, 개척령의 기본방침은 바뀌지 않아 정부는 울릉도 개척에 적극 나서게 된다. 당시 검찰사의 성실한 답사보고서가 기초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개척 당시 울릉도 행정의 중심은 성하신당이 있는 태하였다. 이규원 검찰사 일행도 태하의 학포 마을에 처음 도착했다. 개척령이 내려진 그 이듬해 16가구 54명이 정부 주도하에 공식적으로 첫 이주를 하게 되는데, 이들 역시 태하의 학포 마을로 입항했다. 이후 태하는 울릉도의 관문으로서 울릉도 군청까지 자리 잡았으나 1914년 일제가 군청을 도동으로 이전하면서 지금의 한적한 고을로 물러앉게 되었다.

초기에 울릉도를 찾은 개척민들이 가장 큰 집단을 이루고 살던 곳은 바로 성인봉 북쪽의 나리분지였다. 평균 경사도가 25°나 되는 울릉도에서 성인봉의 칼데라 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나리분지는 사람이 살기에 아주 적합했다. 개척 당시 나리분지 거주민은 93가구 5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은 울릉도에 흔한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억새로 이엉을 엮어 지붕에 얹었다.

나리분지에 남아있는 너와집. 백두대간 산골에서 볼 수 있는 강원도 너와집과 구조가 아주 비슷하다. (왼쪽) / 너와분지에서 더덕을 캐는 너와동 주민들. (오른쪽)
나리분지에 남아있는 너와집. 백두대간 산골에서 볼 수 있는 강원도 너와집과 구조가 아주 비슷하다. (왼쪽) / 너와분지에서 더덕을 캐는 너와동 주민들. (오른쪽)
우리 전통 가옥에서 통나무를 ‘우물 정(井)’자 형으로 네 귀를 맞추어 쌓아 만든 집을 귀틀집이라 하는데, 울릉도에서는 이를 투막집이라고 부른다. 전체적인 구조는 강원도 산골의 귀틀집과 거의 비슷하지만, 울릉도 전통 민가인 투막집의 특징은 우데기다.
이는 눈이나 비바람을 막기 위해 집 바깥쪽에 기둥을 세우고, 억새·옥수숫대 등으로 엮은 이엉을 설치한 바깥벽을 말한다. 보통 부엌·화장실·장독대 등이 모두 우데기로 둘러싸여 있어 내부에 활동공간이 생기게 된다. 바람이 많이 불고, 겨울엔 눈이 3m까지 내리는 울릉도 기후에 아주 알맞은 시설인 셈이다. 현재 나리분지엔 지붕을 너와로 이은 너와집 1개소, 섬에서 많이 나는 솔송나무와 너도밤나무를 우물 정 자형으로 쌓고 틈은 흙으로 메워 만든 투막집 4개소를 도지정문화재로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개척민들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특히 먹을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도 울릉도는 나물 천국이었다. 섬초롱, 전호나물, 취나물, 부지깽이, 참나물, 명이…. 숲엔 먹을 수 있는 나물이 지천이었다. 문제는 이른 봄이었다. 긴 겨울을 지나고 나면 식량이 모두 떨어져 개척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곤 했다. 이때 잔설을 뚫고 솟아나는 명이는 반가운 생명줄이 되었다. 당시 개척민들이 산에 올라 눈을 헤치며 캐온 이 나물를 삶아먹고 ‘명(命)’을 이었다 해서 ‘명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하늘나라 선녀가 변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일선암. 고깃배 한 대와 멋진 구도를 이루고 있다.
하늘나라 선녀가 변했다는 전설이 전하는 일선암. 고깃배 한 대와 멋진 구도를 이루고 있다.
명이의 학명은 산마늘로, 울릉도를 비롯해 육지의 강원도 등 고지대에서 자란다. 울릉도 사람들은 이 명이로 김치도 담그고, 절임도 한다. 그냥 뜯어다 쌈 싸먹기도 한다.

무엇보다 고기 특유의 잡내를 없애주기 때문에 요즘엔 울릉도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최고의 효자 나물로 대접받는다. 이렇듯 명이는 단백질 공급원이었던 깍새(슴새)와 더불어 개척민들의 허기를 달래준 양대 생명줄이었다. 또 울릉도는 호박 하나가 20kg에 이를 정도로 아주 잘 자랐는데, 지금은 울릉도 호박엿이 별식이지만, 호박 역시 개척 당시엔 식량 대용이었다.

먹는 얘기가 나온 김에 하나만 더 꺼내자면, 요즘 유명 호텔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울릉 약소’의 시초는 1883년 4월 개척농민(6가구 54명)들과 함께 들어온 소 암수 1쌍이다. 이어 1892년 주민들은 콩 50석을 주고 울진에서 송아지 5마리(암 3, 수 2마리)를 들여와 울릉도 남동쪽의 사동 지역에서 기르게 되는데, 1920년대엔 매년 수십 마리씩 육지로 내다팔 수 있었고, 1960년대엔 매년 100~200마리씩 육지로 출하했다. 육지산 소보다도 고가였으나 당시 포항엔 울릉도 약소를 구입하기 위해 온 상인들로 붐볐다고 한다. 지금 울릉도 전역에서 자라고 있는 소는 700여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이젠 울릉도 경치를 살펴보자. 울릉도는 해안엔 거북바위·사자바위·투구봉·만물상·송곳바위·촛대바위 같은 기암들이 솟아 있고, 앞바다엔 깍새섬·삼선암·구멍바위·관음도·죽도 같은 섬들이 호위하듯 떠있다.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종상화산이라 해안절벽이 아주 날카롭다. 이런 울릉도의 미학을 가장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섬목 근처에 있는 관선터널. 해식 동굴로 자연스럽게 터널이 뚫려있어 제법 운치가 넘친다. (왼쪽) / 천부에 사는 한 주민이 섬목 도선장에서 스쿠버 장비를 챙기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심심하면 이렇게 바다 구경을 하러 들어간단다. (오른쪽)
섬목 근처에 있는 관선터널. 해식 동굴로 자연스럽게 터널이 뚫려있어 제법 운치가 넘친다. (왼쪽) / 천부에 사는 한 주민이 섬목 도선장에서 스쿠버 장비를 챙기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심심하면 이렇게 바다 구경을 하러 들어간단다. (오른쪽)
유람선 일주는 ‘울릉도 개론’인 셈이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관광버스·택시·렌터카 등 차량을 이용해 섬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하지만 평소 걷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984m) 산행을 어찌 빼놓을 수 있을까. 더불어 울릉도 전체를 한 바퀴 걷는 1박2일 일정의 일주 트레킹도 있다. 하지만 울릉도는 북동쪽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어 걷는 맛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시간과 체력이 넉넉하지 않다면 시도하기 쉽지 않다.

이외에도 울릉도엔 대풍감 해안절벽을 감상하는 태하등대 코스, 호젓한 울릉도 옛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내수전~석포~섬목 코스, 해안 절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도동~행남등대~저동 해안 코스 등 반나절 정도의 시간으로 즐길 수 있는 산책길이 여럿 있다.

이 중에서 도동~행남등대~저동 해안 코스는 울릉도, 아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길의 하나로 손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용암을 파도와 바람이 오랜 세월 다듬어놓은 울릉도의 아름다움을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섬목에서 바라본 삼선암 풍경. 울릉도에서도 섬과 해벽이 어우러진 이 주변의 풍광이 빼어나다.
섬목에서 바라본 삼선암 풍경. 울릉도에서도 섬과 해벽이 어우러진 이 주변의 풍광이 빼어나다.
바다와 섬이 만나는 해안 갯바위 가장자리로 아슬아슬 이어진 길은 두 사람이 손 붙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너비다. 기암절벽을 이룬 갯바위와 여러 개의 해식동굴을 지나는데, 무엇보다 발치에서 찰랑이는 옥빛 물결이 황홀하다. 저녁 무렵이면 해안 산책로를 따라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 운치도 있다. 특히 바닷내음 비릿한 새벽녘에 산책을 나서면 동해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장엄한 해돋이도 만날 수 있다. 해돋이 감상은 행남등대에서 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

무엇보다 여느 산책 코스와는 달리 울릉도의 관문인 도동항에서 바로 시작하기 때문에 접근성도 아주 빼어나다. 정해진 울릉도 여행을 즐긴 뒤 배를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 물론 난간 등 안전시설도 갖추고 있어 어린이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지만, 강풍이나 높은 파도가 칠 때는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울릉도 나리분지의 투막집. 눈보라를 막기 위해 이엉을 엮어 집 바깥에 두른 우데기는 울릉도 전통가옥의 가장 큰 특징이다.
울릉도 나리분지의 투막집. 눈보라를 막기 위해 이엉을 엮어 집 바깥에 두른 우데기는 울릉도 전통가옥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산책이 끝날 무렵이면 저동항 부둣가에 솟아 있는 촛대바위가 눈앞에 펼쳐진다. 관광유람선이 머무는 도동항이 밤새 흥청거리는 번화가라면, 고깃배들이 드나드는 저동항은 울릉도 어민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울릉도 오징어 대부분을 취급하고 있는 저동항 새벽 어판장은 오징어철이 되면 어부와 어촌 아낙의 손길이 바쁘다. 어판장 한쪽의 좌판에서 뱃사람들의 사투리를 들어가며 오징어 회에 소주 한 잔 들이킬 수 있으니 2시간 해안산책의 마무리로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울릉도를 구석구석 돌았으니 이젠 독도다.
묵호에서 울릉도로 들어올 때 뱃멀미로 심하게 고생한 탓에 배 타는 일이 겁났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동쪽 끄트머리 독도를 어찌 빼놓겠는가. 파도가 잦아든 날, 울릉도 주민들도 육지 나들이할 때 애용할 정도로 효과가 뛰어나다는 배약국의 ‘멀미예방약’을 사먹고, 드디어 독도행 씨플라워호에 오른다.

우데기 안쪽 풍경. 이렇게 안락한 생활공간이 만들어진다.
우데기 안쪽 풍경. 이렇게 안락한 생활공간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독도는 대략 250만 년에서 460만 년 전 사이에 해저 2,000m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이다. 현재 동도·서도 2개의 섬 외에 그 주위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크고 작은 바위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름을 갖고 있다. 동도의 독립문바위·얼굴바위·부채바위, 서도의 코끼리바위·탕건봉, 그리고 그 주변의 암초들도 미역바위·군함바위·지네바위·보찰바위…. 하지만 동도와 서도 최고봉은 그동안 이름이 없었다. 울릉군에서 발행한 독도 지도를 보면 서도 정상엔 ‘최고 봉우리 168.5m’, 동도 정상엔 ‘최고 봉우리 98.6m’라고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이 사실이 안타까웠는데, 드디어 최근 독도를 다녀온 한 지도제작자가 독도 최고봉에도 이름을 붙어줬다. 그가 독도 주민과 함께 고민해 지었다는 이름은 서도 최고봉은 대한봉(大韓峰)이요, 동도 최고봉은 일출봉(日出峰)이다. 대한민국의 대한이요, 해가 가장 먼저 뜬다 해서 일출봉이다. 제법 어울리는 이름이다. 이 지명이 부디 공신력을 갖고 생명을 이어가기를 기원해본다.

독도는 단순한 바위섬이 아니다. 주변의 여러 동식물들 때문에 섬 전체가 천연 기념물로도 지정되어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의미는 바로 대한민국 영토를 완성하는 자존심이란 사실이다. 아마 독도가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섬나라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 때문일 것이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일본인들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동도 선착장에 내려 독도를 둘러보는 관광객들. 파도가 잔잔한 날엔 이렇게 동도에 들어갈 수 있다. (왼쪽) / 동도에 세워져 있는 대한민국 동쪽 땅끝 기념 표지석. 
독도가 대한민국 소유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동도 선착장에 내려 독도를 둘러보는 관광객들. 파도가 잔잔한 날엔 이렇게 동도에 들어갈 수 있다. (왼쪽) / 동도에 세워져 있는 대한민국 동쪽 땅끝 기념 표지석. 독도가 대한민국 소유임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일본 외무성은 지난 2월 ‘다케시마(竹島·독도를 일본에서 부르는 말)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10가지 포인트’라는 14쪽 분량의 팸플릿을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일본어·영어는 물론 우리도 보란 듯이 버젓이 한국어판으로도 제작했다. 이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독도연구센터는 최근 ‘독도는 과연 일본 영토였는가?’라는 제목의 분석자료를 만들어 일본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여기서도 한번 짚어보자.

일본 외무성 자료를 보면, ‘일본은 옛날부터 독도를 인식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나가쿠보 세키스이(長久保赤水)의 ‘개정 일본여지노정전도(日本輿地路程全圖)’를 들고 있으나, 독도연구센터는 ‘이 지도의 1779년 초판은 일본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울릉도·독도를 채색하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두 섬을 일본 영토가 아닌 곳으로 인식했던 증거가 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독도는 울릉도에서도 육안으로도 관측되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삼국시대 이래 독도를 울릉도의 일부로 여기고 있었다.

또 울릉도 외에 우산도·삼봉도·가산도 등으로 불리던 독도가 있었다는 ‘2도(島) 의식’은 ‘세종실록 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 숱한 문헌에서 나타난다. 앞에서도 짚었듯이 1417년 김인우가 울릉도 공도정책에 따라 주민들을 송환하는 임무를 맡은 직책이 ‘우산무릉등처안무사’였는데, 여기서 ‘우산’은 울릉도요, ‘무릉’은 독도를 지칭한다.

1696년 일본은 조선이 울릉도 도항을 금지한 뒤에도 독도 도항은 금지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1870년의 일본측 보고서 ‘조선국 교제 시말 내탐서’엔 ‘송도(독도)는 죽도(울릉도)의 속도(屬島)’라고 써서 독도가 울릉도에 속한 조선 영토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즉 울릉도 도항 금지조항은 독도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나리분지. 오른쪽의 부드러운 봉우리는 나리분지 안에 솟은 중앙 화구구(火口丘)인 알봉이다.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나리분지. 오른쪽의 부드러운 봉우리는 나리분지 안에 솟은 중앙 화구구(火口丘)인 알봉이다.
그리고 일본측 자료는 일본이 1905년 시마네(島根)현 고시를 통해 독도 영유권을 재확인했다고 했지만, 독도연구센터는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을 내용으로 하는 이 고시는 ‘무주지(無主地) 선점’ 논리로서 ‘이전부터 일본의 고유 영토였다’는 주장과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에서 관할 구역을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석도(石島)’라고 했는데, 여기서 ‘석도’는 ‘독섬’, ‘돌섬’으로 부르던 독도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독도 영유권을 이미 확립하고 있었으므로 관할구역과 명칭만 쓴 것이다.

일본측은 또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미국이 독도를 일본령으로 인정했다’고 했지만, 이것은 냉전 구도에서 일본을 포섭하려던 미국이 최종 단계에서 논란을 없애기 위해 이 사안 자체를 삭제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수천 개나 되는 섬 이름을 모두 적어야 한단 말인가. 또 같은 논리라면 일본의 영토로 규정되지 않은 대마도는 우리 땅이 되는 것인가.

그리고 1950년 독도를 미군의 폭격연습지구로 설정한 것을 두고 ‘일본 영토로 인정한 것’이라고 했지만, 미군이 1953년 독도를 연습장에서 제외한 것은 한국 정부의 항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일본은 ‘한국측이 독도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거부한다’고 했지만, 서기 6세기 이래로 울릉도와 함께 대한민국의 영유권이 이미 확립된 영토를 국제재판할 이유가 없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다.

독도 경비대가 기르는 삽살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다.
독도 경비대가 기르는 삽살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아주 높다.
이와 같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일본의 궤변을 보면, 일본측은 우리의 공도정책으로 관리가 허술한 틈을 이용해 몰래 드나들어 놓고선, 이젠 아예 자기네 땅이었다고 하니 ‘도둑이 주인 행세하려는 격’이 아닌가.

일본의 이런 억지주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 우리 땅 독도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다. 2008년 현재 독도에 상주하는 인원은 서도에 사는 독도 주민 김성도(69)씨 부부를 비롯해 동도 거주 경찰인 독도경비대 45명, 등대를 관리하는 항로표지관리원 3명 이렇게 모두 50명이다. 거기에 5월20일부터 독도 주민과 독도 방문객의 안전 관리를 위해 6명으로 구성된 독도전담팀 공무원이 2명씩 번갈아가며 상주하면서 모두 52명으로 늘어났다. 동도엔 경비대원과 등대지기가 있고, 서도의 어업인숙소엔 독도 이장인 김성도씨 부부가 살고 있으며, 여기 2층에 울릉군 공무원의 숙소와 사무소가 꾸며져 있는 것이다.

20분. 일반 관광객이 울릉도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다. 울릉도에서 2시간을 달려 고작 20분을 머물지만 2년은 생활한 것 같은 진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대한민국 동쪽 끄트머리에서 외롭게 파도와 싸워가며 대한민국을 지키는 국토의 자존심 독도. 하지만 주민이 살고, 행정공무원이 거주하며, 경비대가 지키고, 날마다 대한민국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섬 독도는 이제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다. ‘독도야, 잘 있거라! 내 다시 찾아오마!’ <취재 협조=대아고속해운>

울릉도, 어떤곳인가

경상북도 울릉군(鬱陵郡)은 동해상에 격리된 울릉도와 주변에 딸린 관음도·죽도·독도 및 삼선암·공암·죽암·청도·북저암·촉대암 등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도인 울릉도는 울릉군 총면적의 98%를 차지한다.

울릉도는 동서 길이 10km, 남북 길이 9.5km, 해안선 길이 42km의 좁은 섬이다. 지형도에 나타난 하천은 22개에 이르나 물이 흐르는 하천은 절반 정도인 13개뿐이다. 8km에 이르는 태하천, 그리고 남양천·남서천 외에는 하천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짧다.

울릉도는 지질적으로 제3~4기 초에 걸쳐 동해에 솟아난 거대한 화산의 정상부에 해당하며, 현무암·조면암 등으로 이루어진 알칼리성 화산섬이다. 해안선이 단조롭고 해안단애가 발달하여 천연의 양항은 없다.

섬의 중앙부에는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984m)이 솟아 있고, 그 북부 사면에는 성인봉의 칼데라 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나리분지가 있다. 나리분지를 제외하면 울릉도의 평균 경사도는 25°로서 평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주민생활이 불편하다.

울릉도는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해양성기후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은 12℃인데, 1월 평균기온은 0℃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8월 평균기온도 24℃를 넘지 않는다. 일교차(5.8℃)도 적어 전국에서 가장 온화하다. 연강수량은 1,916.7mm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평균 적설량은 1m 내외, 나리분지의 최고 적설량은 약 3m로 전국 제일의 다설지역이다. 

또한 울릉도에는 약 600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어 식물의 보고를 이루는데, 섬잣나무·솔송나무·너도밤나무는 울릉도에만 자생한다. 총 39종의 특산식물과 6종의 식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예로부터 울릉도는 무릉·우릉 또는 우산국으로 불렸다. 청동기시대(BC 1000~BC 300) 또는 철기시대 전기(BC 300~AD 1)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무문토기·갈돌·갈판 등이 발견되었다. 512년(신라 지증왕 13) 강릉의 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하여 신라에 복속시켰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공도정책을 쓰면서 왜인들이 드나들자 1694년부터 조정에서 울릉도 정기순찰을 실시하였다. 1882년(고종 19)에는 공도정책을 버리고 울릉도 개척령을 공포해 이민을 장려했다. 1900년(광무 4) 울릉도를 울도군으로 개칭하면서 강원도에 편입하였고, 1907년(융희 원년) 울도군을 울릉군으로 개칭하여 경상남도에 편입시켰으며, 1914년 경상남도에서 경상북도로 이속시켰다.

1949년 정부수립 후 울릉군으로 환원하여 경상북도 울릉군이 되었고, 1979년 남면이 울릉읍으로 승격되었다. 2000년 독도리가 신설되었으며, 2008년 현재 울릉읍·서면·북면의 1읍 2면의 행정구역을 이룬다. 군청 소재지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다.


성인봉

울릉도 중앙에 솟은 성인봉(聖人峰·984m)은 울릉도의 최고봉으로서 나리분지 남쪽 외륜산에 해당한다. 성인봉 북서쪽 나리분지 안에는 중앙 화구구(火口丘)인 알봉(卵峰·538m)이 있다.

울릉군의 진산이기도 한 성인봉은 아주 오랜 옛날 나물을 뜯던 한 소녀가 신령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여 유래한 이름이다. 또 산의 모양새가 성스럽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성인봉은 연평균 300일 이상 안개에 쌓여있어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인봉을 중심으로 모두 300여 종의 식물이 분포하는데, 해발 600m 부근의 원시림(천연기념물 제189호)엔 섬피나무·너도밤나무·섬고로쇠나무 등 희귀수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섬조릿대가 나며, 그 사이에 솔송나무·섬단풍나무 등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나무들로 숲이 이루어져 있다. 그 밖에 섬노루귀·섬말나리·섬바디 등 희귀식물들도 많다.

성인봉 산행의 매력은 원시림을 지나 정상에서 감상하는 망망대해의 아름다움이다. 초입 부분에서 경사가 가파른 편이지만, 그다지 위험한 구간이 없어 초등학교 저학년도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다.

▲대원사 코스=도동항~도동 삼거리~대원사~팔각정~바람등대~성인봉~신령수~알봉분지~나리분지~천부(6시간 소요)

▲KBS 중계소 코스=도동항~도동 삼거리~소방파출소~KBS 중계소~팔각정~성인봉~신령수~알봉분지~나리분지~천부(5시간40분 소요)

▲나리분지 코스=나리분지~알봉분지~신령수~성인봉~팔각정~대원사(4시간40분 소요)
<특별부록지도 ‘성인봉’ 참조>

독도 천연보호구역

우리나라 동단인 독도는 대략 250만~460만 년 전부터 해저 2,000m에서 솟은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이다. 이는 울릉도(약 250만 년 전)보다 약 200만 년, 제주도(약 120만 년 전)보다는 약 340만 년 앞서 생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동도·서도 2개의 섬 외에 그 주위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크고 작은 바위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도는 철새들이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에 바다제비·슴새·괭이갈매기의 대집단이 번식하고 있다. 척박한 바위지대라 식생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쥐명아주·번행초·갯패랭이꽃·대나물·기린초·가는기린초·붉은가시딸기·무룬나무·구절초·참김의털·달뿌리풀·노간주비짜루·날개하늘나리 등이 자라고 있다.

독도는 신라 지증왕(재위 500-514) 이래로 내려온 우리 영토로서 역사성과 더불어 자연과학적 학술가치가 매우 큰 섬이므로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독도 여행은 울릉도∼독도를 오가는 배편을 이용하면 된다. 해상의 기상상태에 따라 입도 여부가 결정되는데, 만약 너울이나 파도 때문에 배를 대기 어려울 경우엔 배가 독도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대신한다. 배편은 성수기엔 하루 3~4회도 운항하지만, 승객 수와 기상 상태에 따라 자주 바뀐다. 울릉여객선터미널(대아고속해운 054-791-0801~3, 독도관광해운 054-791-8111)에 반드시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 독도 관리사무소 전화 054-790-6641.


도동약수공원

도동항에서 도보로 20분쯤 거리에 있는 도동약수공원은 울릉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이곳엔 독도 관련 자료를 모아놓은 독도박물관, 울릉도의 민속유물과 선조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향토사료관, 독도전망대 케이블카, 전망광장, 기념비광장, 향토수목원, 체육공원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그리고 울릉도·독도를 지켜낸 안용복 장군의 기념비, 청마 유치환의 울릉도 시비 등도 볼 수 있다. 약수공원 관리사무소 054-790-6421.


독도전망대 케이블카

도동약수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망향봉 정상의 독도전망대에 오르게 된다. 도동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전망대에서는 울릉팔경의 하나인 오징어잡이배 어화를 감상할 수 있는데, 아주 맑은 날(연중 50일)에는 92km 거리의 독도를 육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다. 케이블카 운행시간은 일출 전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요금 대인 7,500원, 소인(3세~초등학생) 5,000원. 전화 054-791-7160~1 www.ulleung.go.kr/cablecar


독도박물관

도동약수공원에 있는 독도박물관은 독도에 대한 역사와 자연환경 및 식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토박물관이다. 초대 관장이자 서지학자인 이종학 선생이 약 30년간 수집하여 기증한 자료, 1953년 4월20일부터 3년8개월 동안 목숨을 걸고 독도를 사수한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의 유품, 독도의용수비대 동지회와 ‘푸른 독도 가꾸기 모임’ 등의 자료를 소장·전시하고 있다. 관람시간 09:00~18:00(동절기 17:00), 관람료는 무료. 전화 054-790-6432~3, www.dokdomuseum.go.kr


울릉향토사료관

도동약수공원에 있는 울릉향토사료관은 울릉도 향토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270여 점의 관련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러한 전시물들은 개척 당시 사용한 일상 생활용품, 자연환경과 식생에 맞게 변화된 편의도구 및 가옥구조를 통해 당시 생활상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물 유적 등의 자료를 통하여 울릉도 개척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 전화 054-790-6432~3.

도동약수


도동약수는 사이다 맛에 쇳내가 많이 나는 탄산수다. 쇳내가 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옛날 왜군과 싸우던 장군이 죽은 뒤 그 장군이 입고 있던 갑옷을 이 근처에 묻었는데, 그 갑옷이 삭아서 흘러내리는 쇳물이 바로 이 약수라는 것이다. 도동약수엔 소화 및 제산작용을 하는 성분이 섞여있어 자주 마시면 위장병이 낫고, 몇 달 동안 목욕하면 나병도 고칠 수 있다고 한다. 이 약수로 밥을 지으면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행남등대


도동항 북쪽에 있는 도동 항로표지관리소는 도동등대 혹은 행남등대로 불린다. 이곳은 저동항과 그 앞바다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 포인트다. 등대까지 이르는 길은 도동항 좌측 해안을 따라 개설된 해안산책로를 따르거나 울릉군청 뒤편 행남산길을 따라가는 방법이 있다. 특히 도동항에서 행남등대에 이르는 1.4km의 해안 산책길이 일품이다. 왕복 1시간30분 정도 소요.


울릉도 도동항

울릉도에서 포항과 묵호를 오가는 여객선이 출입하는 도동항은 울릉도의 관문이다. 도동항에 들어서면 왼쪽에 우뚝 솟은 망향봉이 여행객을 굽어본다. 오른쪽 가파른 암벽엔 수령 2,000년 된 향나무(높이 4m 둘레 2m)가 반긴다. 울릉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 향나무는 울릉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무렵부터 척박한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오가는 이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도동항 좌우 해안에 산책로가 개설되어 있다.


울릉도 저동항

도동항이 관광 유람선이 머무는 곳이라면 저동항은 어민들의 고깃배들이 드나드는 곳이다. 유명한 울릉도 오징어 대부분을 취급하고 있는 저동항 새벽 어판장에서는 오징어철(9~11월)엔 싱싱한 횟감을 구할 수 있다. 도동항 여객선터미널에서 저동항까지는 택시로 10분쯤 걸린다.


죽도 관광지구

울릉도에 딸린 섬들 중에서 가장 큰 섬인 죽도(竹島)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해서 대섬이라고도 한다. 저동항에서 북동쪽으로 4km 정도 떨어져 있고, 면적은 207,818㎡, 높이 116m로서 현재 1가구 2명이 거주하고 있다. 죽도엔 식수원이 없어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섬의 유일한 진입로엔 나선형 계단(일명 달팽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 수는 365개다. 도동항에서 죽도 간 비정기 유람선(어른 1,200원)이 여름 성수기에만 운항하고 있다. 20분 소요. 죽도공원 관리소 054-790-6424, 도선 사무실 054-791-0150.


봉래폭포


울릉읍 도동리에 있는 봉래폭포는 울릉도를 대표하는 폭포다. 원시림 사이로 떨어지는 3단 폭포로 1일 유량은 약 3,000톤 이상이며, 울릉읍 주민들의 상수원이다. 봉래폭포 가는 길엔 삼나무숲을 이용한 삼림욕장, 에어컨보다 더 시원한 자연바람이 나오는 풍혈, 울릉도의 옛 가옥구조인 너와집 등이 있다. 매표소 앞 주차장에서 걸어서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요금 어른 1,2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600원. 봉래폭포 관리소 전화 054-790-6422.


내수전 몽돌해변 

울릉도 해맞이의 명소인 내수전은 예전엔 닥나무가 많이 자생해서 저전포라고도 했다. 개척 당시에 김내수라는 사람이 화전을 일구고 살았다고 하여 내수전이라 부른다. 울릉읍 지역에 사용하는 전력을 공급하는 화력발전소와 톡 쏘는 맛이 있는 탄산약수터가 있다. 몽돌해안은 여름철 해수욕장으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도동에서 내수전까지 택시로 20분 소요.


내수전 일출전망대

울릉읍 저동리 내수전고개에서 주차를 하고, 동백나무와 마가목 등이 터널을 이룬 완만한 산길을 15분쯤 걸으면 해발 440m 정도의 내수전 일출전망대에 도착하게 된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넓게 뻗은 수평선과 옥빛 바다에 떠있는 관음도(깍새섬)·섬목·죽도·북저바위·저동항·행남등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야경을 보러오는 사람들을 위해 조명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대풍감

울릉도 서쪽 끝 태하등대 부근에 솟은 해안 절벽인 대풍감(待風坎·152m)은 옛날 돛단배가 드나들던 곳으로, 바람을 기다리며(待風) 구멍(坎)을 뚫어 배를 매어뒀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정상에서 바라본 인근 해안절벽 풍광은 ‘우리나라 10대 비경’으로 꼽을 만큼 아름답다. 대풍감 전망대에 서면 향나무 군락과 가운데 부분이 오목하게 들어간 포구가 눈앞에 펼쳐진다. 태하리 성하신당~태하등대~대풍감 왕복 1시간 소요. 태하등대 전화 054-791-5334.


사자바위



서면 남서리 해안가에 있는 사자바위는 신라 장군 이사부와 얽힌 전설이 전해오는 바위다. 신라왕의 명령을 받고 우산국 토벌길에 오른 강릉군주 이사부는 울릉도 지형이 험해 배를 댈 곳이 마땅치 않자, 군선의 뱃머리에 목사자를 싣고 몰살시키겠다고 협박했다. 그러자 우산국의 우해왕은 투구를 벗고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했다고 한다. 그때 목사자가 사자바위로, 우해왕이 벗어 놓은 투구는 그 맞은편의 투구봉이 되었다 전한다.


성하신당

서면 태하리 마을 안쪽 솔밭에 자리한 성하신당은 울릉도의 대표적인 성황당이다. 울릉도 사람들은 배를 새로 만들어 바다에 띄울 때면 반드시 이곳에 와서 빈다고 한다. 매년 음력 3월1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어와 풍년을 기원한다. 이 성하신당에는 조선 태종 때 울릉도 거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킬 당시 희생당한 동남동녀에 관한 슬픈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현포마을 전망대

현포라는 이름은 동쪽에 있는 촛대암의 그림자가 바다에 비치면 바닷물이 검게 보이는 데서 유래한다. 방파제로 둘러싸인 현포항은 바닷물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최근 개발된 현포 해상공원에서 목재다리로 연결된 팔각정에서도 그와 같은 광경을 볼 수 있다. 현포전망대는 현포항을 비롯해 노인봉과 탁 트인 수평선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천부 풍혈

천부항 근처의 길가 암벽에 있는 풍혈은 땅 밑으로 흐르는 지하수의 찬 공기가 바위틈으로 솟아나 항상 섭씨 4℃를 유지한다. 봉래폭포 풍혈과 마찬가지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이곳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 여름철에 천연냉장고로 사용되었고, 지금도 주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섬목

북면 천부리 석포 동쪽에 산이 바다로 뻗다가 중간이 끊어져 배가 왕래하게 되고, 다시 일어서서 관음도가 됐다. 이 사이가 섬의 목과 같다 하여 섬목이라 하며 배를 정박하기에 좋은 항구라 하여 선창포라고도 한다. 도선이 왕래하던 곳으로 북면지역의 주요 교통로였다.


석포전망대

울릉도에는 3개의 망루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북쪽 망루인 북면 천부리의 석포전망대다. 석포전망대는 예전부터 망루 역할을 하던 곳으로서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러시아 군함을 관측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한 망루였다고 한다. 울릉도와 한반도 사이의 동해를 관측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석포전망대는 관음도와 죽도, 북면의 해안 조망도 좋다. 석포전망대 입구에서 걸어서 10분쯤 걸린다.


관음도

관음도(깍새섬)는 울릉도 북동쪽 끝인 북면 천부리 앞바다에 있는 바위섬이다. 이곳엔 동백나무·억새풀·부지갱이나물 등이 자생하고 있다. 섬에 있는 높이 약 14m의 관음쌍굴은 옛날 해적들이 이곳에 배를 숨기고 있다가 지나가는 배를 약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두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배 위에서 받아먹으면 장수한다고 전한다.


삼선암

북면 천부리 앞바다에 떠있는 삼선암은 울릉도 3대 비경 중 제1경으로 꼽힌다. 멀리서는 2개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3개로 이루어져 있다. 지상으로 놀러온 세 선녀가 놀이에 열중하다가 돌아갈 시간을 놓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는 바람에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공암

울릉도 북쪽의 북면 현포리 앞바다에 있는 공암(구멍바위)은 바위 모양이 코끼리를 닮았다고 해서 코끼리바위라고도 한다. 구멍은 높이 10m 정도의 해식동굴인데, 소형 선박이 지나갈 수 있다. 바위표면은 다른 바위섬들과 마찬가지로 주상절리현상에 의해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듯하다.


나리분지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화구원(火口原)으로 울릉도에서는 유일하게 평지를 이룬다. 면적 1.5~2.0㎢, 동서길이 1.5km, 남북길이 2km다. 나리분지는 화구원 안에 있던 알봉(538m)의 분출로 두 개의 화구원으로 분리되어, 북동쪽에는 나리 마을, 남서쪽에는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알봉 마을이 있다. 개척 당시 93호에 500여 명이 거주한 적이 있는 울릉도 제1의 마을이었다. 울릉도의 특유한 자연조건에 맞춰 지은 가옥구조인 너와지붕을 한 우데기집이 여러 채 남아 있다. 야영장·식물원 등을 갖추고 있다. 나리분지 관리소 전화 054-790 -6423.


송곳산


북면 해안에 솟은 송곳산(430m)은 성인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에 솟은 봉우리다. 그 생김새가 마치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겼다고 하여 송곳산이라 불린다. 불과 100m 이내의 짧은 거리에 바다와 접해 있어, 해상이나 육상 어디에서 보든 높고 웅장하게 보인다.


울릉 통구미 향나무 자생지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용도로 쓰여 온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다. 서면 남양리 통구미의 향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48호)는 통구미 서쪽 험한 암벽 틈에서 자라고 있다. 이곳은 향나무의 원종(原種)이 자생하고 있는 곳으로서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울릉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

서면 태하리 대풍감 향나무 자생지(천연기념물 제49호)는 바람이 강한 해안절벽이라 향나무의 키가 크지 않으나 오랜 세월 동안 다른 지역과 격리된 특수한 환경 속에서 자라고 있어 향나무의 진화연구에 있어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태하는 예전에 울릉군청이 있던 곳이라 관리와 감시를 잘하여 향나무 군락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태하동 솔송나무·섬잣나무·너도밤나무 군락

서면 태하령 주변엔 솔송나무·섬잣나무·너도밤나무가 모여 군락(천연기념물 제50호)을 이루고 있다. 솔송나무·섬잣나무·너도밤나무는 줄기가 굵고 비교적 위쪽으로 가지가 퍼져 자라는 나무들이다. 이 나무들은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육지엔 없고 오직 울릉도에서만 자라고 있다.

도동 섬개야광나무·섬댕강나무 군락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섬개야광나무와 섬댕강나무는 키가 작고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떨기나무로 잎은 봄에 돋았다가 가을에 떨어진다. 섬개야광나무는 장미과에 속하고 5∼6월에 하얀 꽃이 피고 키는 1.5m 가까이 자란다. 섬댕강나무는 인동(忍冬)과에 속하며 꽃은 5월에 연한 황색으로 피며 키는 1m 정도다. 이 나무들은 울릉읍 도동 뒷산의 암벽 경사면을 따라 자라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51호.


나리동 울릉국화·섬백리향 군락

나리동의 울릉국화와 섬백리향 군락(천연기념물 제52호)은 화산 분화구인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으로 가는 언덕 양지 바른 곳에 있다. 울릉국화와 섬백리향은 꽃이 필 때 향기가 짙게 나지만, 섬백리향은 낮에는 향기가 거의 나지 않고 밤중에 향기가 짙다.


사동 흑비둘기 서식지

동백나무나 후박나무에 깃들어 사는 흑비둘기는 비둘기의 한 종으로 주로 울릉도나 제주도, 남해안의 일부 섬지역과 일본 등에 분포되어 있다. 울릉읍 사동리 해안에 있는 흑비둘기 서식지(천연기념물 제237호)엔 후박나무 5그루가 있어 흑비둘기가 해마다 규칙적으로 찾아든다.


나리동 너와집·투막집

울릉도 전통 민가인 투막집의 특징은 우데기다. 이는 눈이나 비바람을 막기 위해 집 바깥쪽에 기둥을 세우고, 억새·옥수숫대 등으로 엮은 이엉을 설치한 바깥벽을 말한다. 부엌·화장실·장독대 등이 모두 우데기로 둘러싸여 있어 한겨울에도 내부에 활동공간이 생긴다. 울릉도 나리분지와 알봉분지엔 개척 당시인 1882년(고종 19년)의 흔적을 간직한 투막집, 너와집 등이 여러 채 남아있는데, 대부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울릉 남서동 고분군

서면 남서리 일대엔 삼국시대의 고분 15기가 밀집 분포하고 있다. 무덤은 산록 경사면에 괴석을 이용하여 축대 또는 기단을 쌓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시신을 모시는 돌덧널무덤(석곽묘)을 만들었으며, 돌로 봉분을 만든 적석총 형태다. 돌덧널(석곽) 입구의 앞은 수직벽으로 되어 있어 마치 신전의 정면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형식은 삼국시대 울릉도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이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72호.


울릉 현포동 고분군

울릉 현포동의 완만한 경사면엔 울릉도 내에서 가장 많은 40여 기의 무덤이 밀집하여 분포하고 있다. 무덤의 형태는 기단을 만들고 가운데 직사각형의 돌방(석실)을 만들어 시신을 넣고 그 위에 돌을 이용하여 봉분을 만든 이른바 적석총으로 삼국시대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 도기념물 제73호.

태하리 광서명 각석문

서면 태하리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계곡 안쪽에 있는 광서명 각석문(문화재자료 제411호)은 지상에 노출되어 있는 거대한 바위면에 새겨진 글자다. 가로 160cm, 세로 170cm의 넓이에 연대를 달리한 7행의 글씨가 있다. 글씨 크기는 10cm 내외다. 이 각석문은 1890년(고종 27)과 1893년(고종 30)의 기록이다.


태하리 임오명 각석문

서면 태하리의 임오명각석문(문화재자료 제412호)은 해안 암벽에 새겨진 글자다. 서로 5m 가량 떨어져서 3곳에 기록이 있다. 1개소에는 가로로 ‘울릉도(蔚陵島)’라 새겨져 있다. 3개소 중 가운데 것에는 ‘검찰사(檢察使) 이규원(李奎遠) 임오오월(壬午五月)’이라 새겨 두었으며, 다른 한 곳은 풍화 때문에 마멸이 심하다. 글자의 크기는 10cm 내외, ‘울릉도’라는 글자는 20cm다. 이 각석문은 1882년(고종 19) 임오년의 기록이다.


도동리 신묘명 각석문

울릉읍 도동리 신묘명각석문(문화재자료 제413호)은 1937년 도동 축항공사 때 바다에서 건져 올린 비석이다. 당시 2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1개만이 남아있다. 비석은 가로 70cm, 세로 80cm의 현무암으로서 평탄면에 2단으로 글자를 새겼다. 글자의 크기는 2cm 내외로 작다. 이 각석문엔 ‘신묘오월(辛卯五月)’이라 새겨져 있어서 1711년(숙종 37)으로 추정되된다.


길에서 만난 별미


따개비밥·홍합밥

따개비밥과 홍합밥은 여느 고장에선 맛보기 쉽지 않은 울릉도의 별미다. 따개비는 높이와 폭이 1cm 정도로 바닷가 바위에 붙어사는 생물인데, 일명 삿갓조개라고도 한다. 이 따개비와 크고 잘생긴 홍합을 한 번 삶은 다음 참기름·간장을 넣고 볶다가 쌀을 넣고 각종 야채와 섞어 밥을 짓는다. 이렇게 지은 따개비밥이나 홍합밥에 양념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그야말로 별미가 된다. 한 끼 식사로는 가격이 비싼 게 흠이지만, 여행지 별미라 생각하고 한번쯤 맛보는 것도 괜찮다. 99식당(054-791-2287) 등 도동항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홍합밥 10,000원, 따개비밥 13,000원, 따개비칼국수 6,000원.


울릉 약소

울릉도 전체엔 수백 종의 나물과 약초가 자란다. 이중에서도 울릉도의 한우는 일명 돼지풀이라 불리는 섬바디를 많이 먹고 자라는데,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이 식물은 줄기에서 우유 같은 진액이 흘러나와 ‘풀에서 나는 우유’라고도 한다. 이렇듯 귀한 나물과 약초 먹고 자란 ‘울릉 약소’는 서울 특급호텔에서도 특별대우를 받는다. 약초 특유의 향과 맛이 배어 맛도 독특하고 육질도 좋다는 게 주민들의 자랑.

육지 소와 구분하기 위해 울릉군의 인증을 받은 식당에서만 고기를 판다. 혜솔약소숯불(054-791-1146), 울릉식육점(054-791-0990), 향우촌(054-791-8383) 등이 유명하다. 소금구이 1인분(150g) 15,000원, 양념불고기 1인분(250g) 15,000원(공기밥 포함).


울릉도 오징어회

울릉도 바닷고기는 오염원이 전혀 없는 맑고 깨끗한 청정 바다에서 잡아 올린 자연산이다. 전복·해삼·소라 등도 깨끗한 바다 속 해조류를 먹고 자라기 때문에 육지의 그것에 비해 클 뿐만 아니라 살이 쫄깃쫄깃하고 맛도 담백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울릉도에서 그 유명한 ‘울릉도 오징어’를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오징어는 매년 8월~11월이 제철이지만, 6월 무렵부터도 슬슬 잡히기 시작한다. 도동에 울릉회타운(054-791-4054), 정이품회식당(054-791-2404) 등 오징어회를 맛볼 수 있는 횟집이 많다. 또 울릉도 오징어 집산지인 저동항에선 금방 배에서 내린 싱싱한 오징어를 회로 맛볼 수 있다. 오징어회 한 접시(3~4인분) 20,000원, 오징어불고기 1인분 10,000원, 오징어내장탕 1인분 8,000원.

일정별 길라잡이

●울릉읍권  울릉도의 관문인 도동항이 있어 울릉도 여행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이다. 독도박물관·문화관·케이블카 등이 있는 도동약수공원을 비롯해 저동항, 내수전전망대, 봉래폭포, 도동~행남등대~저동 해안산책로 등 둘러볼 곳이 아주 많다.

●서면권  울릉도 남서쪽 지역으로 드라이브를 즐기며 사자바위, 투구봉, 곰바위, 만물상 등 해안가 기암괴석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서쪽 끝인 태하리엔 성하신당, 태하등대, 대풍감 등의 명소가 있다. 태하령을 지난다면 남서리 고분군, 섬잣나무·너도밤나무 군락 등을 둘러보자.

●북면권  경치로 보면 가장 빼어난 곳이다. 해안엔 노인봉과 송곳산이 돋보이고, 앞바다엔 공암·삼선암·관음도 같은 바위섬들이 풍광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투막집·너와집 등이 남아있는 나리분지에선 울릉도 개척민들의 흔적을 짚어볼 수 있다. 울릉국화·섬백리향 군락도 있다.


일정짜기

●당일  아침배로 들어가 저녁 배를 나오면 되므로 불가능한 일정은 아니다. 다만 울릉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짧으므로 둘러볼 수 있는 곳이 한계가 있다. 주로 독도전망대, 행남등대 산책로 등을 둘러보고 떠난다.

●1박2일
  실질적으로 이 정도 일정은 되어야 울릉도를 둘러볼 수 있다. 추천일정은 다음과 같다. 도동항~섬 일주(차량 이용)~해안산책로~도동항(숙박)~약수공원 일출 감상~해상유람선 관광~봉래폭포~내수전 전망대~도동항. 독도(3~4시간 소요)를 방문하려면 다른 일정을 빼야한다.

●2박3일
  가장 일반적인 울릉도 여행 일정이다. 도동항~섬 일주(차량 이용)~태하등대~천부·나리분지(숙박)~성인봉 산행~독도 관광~도동항(숙박)~약수공원 일출감상~해안산책로~봉래폭포~내수전 전망대~도동항.

●3박4일  비교적 울릉도를 자세히 둘러볼 수 있는 일정이다. 태하등대~대풍감 트레킹, 내수전~섬목 옛길 트레킹 등을 포함해 반나절 정도 낚시도 곁들일 수 있다.


교통

●배편

묵호항↔울릉도  여객선터미널에서 10:00 출항, 울릉도 도동항에서 14:00 출항. 요금은 한겨레호·씨플라워 모두 편도(1등/우등) 일반 49,000원/53,500원, 중고등학생 44,100원/48,150원, 만 2~12세 24,500원/26,750원.

묵호항 여객선터미널 주차장 승용차 당일 5,000원/ 1박 11,000원. 버스는 당일 7,000원, 1박 17,000원.

포항↔울릉도  여객선터미널에서 10:00 출항, 울릉도 도동항에서 15:00 출항. △썬플라워(1등/우등) 일반 54,500원/59,800원, 중·고등생 49,200원/54,000원, 만 2~12세 27,250원/29,900원. △씨플라워(1등/우등) 일반 48,300원/53,000원, 중고등생 43,700원/47,850원, 만 2~12세 24,200원/26,600원.

포항 여객선터미널 이용료(성인 1,500원, 소아 22개월~초등학생) 750원. 주차료 승용차 5,000원, 버스 8,000원. 썬플라워호는 차량 탑재 가능. 요금(왕복) 소형차 269,400원, 중형차 317,600원. 울릉도엔 LPG 충전소가 없다.

울릉도↔독도  씨플라워호 13:00 출항, 왕복 4시간 소요. 한겨레호 14:00 출항, 왕복 3시간 소요. 요금(공통) 일반 45,000원, 중고등학생 40,500원, 만 2~12세 22,500원. 울릉도에서 독도로 가는 배편은 인원·기상상태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운항하므로 반드시 여객선터미널에 전화로 확인해야 한다.

*묵호항 여객선터미널 033-531-5891, 포항항 여객선터미널 054-242-5111~5, 울릉 여객선터미널 054-791-0801~3, 대아고속해운 홈페이지 www.daea.com


●현지교통

도동↔천부  여객선터미널 앞에서 매일 8회(06:10, 07:20, 09:10, 11:30, 13:20, 15:30, 17:00, 18:20) 운행. 남양 20분 소요, 요금 1,500원. 태하 35분 소요, 요금 2,500원. 현포 50분 소요, 요금 3,400원. 천부 1시간 소요, 요금 4,500원. 이 차편은 천부에서 바로 도동으로 되돌아 나온다.

천부↔나리분지  천부에서 매일 8회(07:10, 08:20, 10:20, 12:30, 14:20, 16:30, 17:50, 19:00) 운행한다. 15분 소요, 요금 900원.

천부↔섬목  매일 4회(07:40, 11:30, 15:30, 17:10) 운행. 20분 소요, 요금 900원.

*우산버스 054-791-7910, 8000. 010-6778-5844.

택시  울릉 군내엔 모두 50여 대의 영업용 택시가 있다. 모두 4륜구동 차량이다. 울릉도 일주 관광코스 4~5시간 10만원, 8시간 15만원 내외. 울릉택시 054-791-2315, 054-791-2612.

렌터카  보통 24시간 단위로 승용차를 빌릴 수 있다. 베르나 80,000원, 소나타 11만원, 테라칸 12만원. 한진렌트카 054-791-5337.

섬 일주 유람선  비수기 매일 2회(09:00, 15:00), 성수기 매일 4회(08:00, 10:00, 15:00, 17:00) 운항. 기상상태·승객·날짜별로 운항시간 변동이 심하다. 성수기엔 증편 운항한다. 일반 18,000원, 소인 9,000원. 2시간 소요. 울릉도관광유람선협회 054-791-4468.


숙식(지역번호 054)

●울릉읍권  도동항 주변에 울릉비취호텔(791-2335), 울릉호텔(791-6611), 승용차로 5분쯤 거리의 사동에 마리나관광호텔(791-0020~4), 대아호텔리조트(791-8800), 독도펜션(791-3248), 비치하우스(791-0500) 등을 비롯해 모텔급 숙박업소가 즐비하다. 저동엔 태조민박(791-4088), 울릉향민박(791-1232) 등의 민박집이 여럿 있다. 도동항 주변에 횟집과 고깃집이 많다.

●서면권  도동보다 숙식할 곳이 많지는 않다. 남양리에 거북모텔(791-0303), 울릉리조텔(791-7744), 남양장여관(791-7722), 통구미민박(791-3224), 대구남양민박(791-5223), 태하리에 황토구미민박(791-0050), 태하민박(791-5361) 등이 있다.

●북면권  삐죽 솟아 눈길 끄는 송곳산 바로 옆 절벽에 추산일가펜션(791-7788· www.chusanilga.com)이 있다. 천부 지역엔 이외에도 청림장여관(791-6028), 반도민박(791-6062) 등이 있다. 나리리엔 울릉아일랜드민박(791-8888)이 있다. 나리촌(791-6082)에서는 감자전(7,000원), 더덕파전(7,000원), 더덕·황기 넣은 토종닭백숙(45,000원), 토종씨앗동동주(7000원) 등을 차린다.

*울릉군청 홈페이지 www.ulleung.go.kr 대표전화 054-791-2191, 문화관광과 054-790-6394~5.


/ 글·사진 민병준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