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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방한인물] 7대륙 최고봉 완등한 재미교포 이성인씨

월간산
  • 입력 2008.11.10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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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m급 거벽 신루트 등반으로 보답할 터”

재미교포 산악인들의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 레이스가 계속되고 있다. 2년 전인 2006년 5월19일 김명준씨가 당시 한국 최고령인 63세 나이로 에베레스트(8,848m) 등정에 성공, 재미교포로서 최초로 7대륙 최고봉 레이스의 종지부를 찍은 데 이어 이성인씨(61·중동고 OB)가 9월24일 오세아니아 최고봉인 칼스텐츠(4,884m) 정상에 올라섬으로써 재미교포로서 두 번째 완등에 성공했다.

“후손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것은 재물보다 자부심”
이성인씨의 완등은 2005년 8월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5,895m) 등정 이후 불과 3년여만에 이루어낸 쾌거였다.

“후손들에게 많은 재물을 남겨주는 것보다 명예를 남겨주는 게 더 낫고 값진 일이라 생각했어요. 생각해보세요. 손주들이 커서 할아버지가 세계 최고봉을 올랐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뿌듯하겠나. 7대륙에 흩어져 있어 산을 오르는 사이 세계 곳곳을 여행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시험 삼아 난이도가 가장 뒤지는 킬리만자로부터 도전한 거예요. 아내는 제 성격을 잘 알고 있는지라 말리지 않았어요. 단지 오르다 힘들면 미련 없이 내려와 달라고 부탁만 했으니까요.”

62세 나이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재미교포 산악인 이성인씨.
62세 나이로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오른 재미교포 산악인 이성인씨.

이성인씨는 29년 전인 1979년 모 경제신문 LA 특파원으로 미국에 발을 디딘 후 몇 년간 거주하다가 사업가로 변신했다. 이후 그는 한창 잘 나가던 51세 때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사고를 당했다. 그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다 추락해 오른쪽 골반이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고 말았다.

“병원에 누워 있는데, 어머니께서 ‘계속 이렇게 살 거냐’며 한숨을 푹푹 내쉬시시는 거예요. 한창 잘 나가던 때라 고민이 되었지만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계속 사업에 몰두하다보면 결국 몸만 망가지고 남는 게 아무것도 없겠다 싶더군요.”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업을 하나 하나 정리했다. 그리곤 새 인생을 위해 새로운 취미를 찾았다. 틈날 때마다 즐겨오던 골프가 아무래도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였다. 내친 김에 골프 세계 투어에 나섰다. 그렇지만 성이 차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찾은 요세미티에서 그는 어마어마한 거벽 엘캐피탄을 보는 순간 중동고 산악부 시절이 떠올랐다.

“솔직히 산악부 생활을 1년쯤 하다 말았으니, 맛만 보고 끝낸 셈이죠. 그런데도 바위를 오르는 클라이머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지 뭐예요.”

LA의 집에 돌아오자마자 재미 산악인들과 교류를 가졌다. 우선 가까운 곳부터 찾기 시작했으나, 대부분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 등반에 몰입할 수 없었다. 동행할 사람이 없을 때는 가까운 산을 찾아 도보산행을 즐기곤 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산도 그랬다. 7대륙 최고봉을 오를 결심은 2005년 봄 고국의 산악인들과 함께 나선 에베레스트 트레킹 중 이루어졌다.

“리더를 맡은 여행사 사장이 남체에 도착하니까 여기서 고생하지 않고 베이스캠프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세 명밖에 되지 않을 거라며 용기를 북돋아주더군요. 사실 8,000m급 14개 거봉이니 7대륙 최고봉이란 얘기도 거기서 처음 들은 거예요.”

이성인씨는 베이스캠프에 도착, 세계 최고봉을 마주하면서 목표를 세웠다. 바로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이었다. 그는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면 목표를 정해놓고 몰아붙이는 성격이다. 그래야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높이에 비해 난이도가 떨어지는 킬리만자로부터 찾았다. 산행 도중 속이 뒤집혀 포기할까 망설이기도 했고,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해내는 상황까지 벌어졌지만 등정의 벅찬 감동과 함께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듬해 2006년 1월 남미 최고봉 아콩카구아(6,959m)에 도전했다.

지난해 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이성인씨.
지난해 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이성인씨.

“킬리만자로에서 돌아오니까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하더군요. 얘기를 나누던 중 가볍게 생각하고 3년 안에 해내고 싶다고 했더니 그 얘기가 미국 전역의 동문들에게 천파만파 퍼졌던 거예요. 그래서 말에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에 계획을 세우기는 했지만 한편으론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밀어붙인 아콩카구아는 킬리만자로로에 비하면 1,000m 이상 더 높고 더 어려운 산이었어요. 정상에 올라가는 날 하도 힘들어하니까 상업등반대 대장이 내려가라 명령하지 뭐예요. 배낭을 확 집어던졌지요. 그랬더니 아무 소리 안하고 동행해주더군요.”

그가 정상에 섰을 때는 거의 초주검 상태였다. 두 번이나 기절하고, 하산길에는 다리가 꼬여 동료들 부축을 받으며 내려와야 했다. 이쯤 했으면 어지간한 사람 같으면 포기할 만했을 텐데 그는 그 해 여름 예정대로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에 도전했다.

"짐이 문제였지요. 골반을 다친 이후 오른쪽 다리가 1cm쯤 짧아졌어요. 그래서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데, 무거운 짐을 메고 또 30kg 가까이 나가는 썰매를 끌면서 오르자니 고통이었지요. 며칠 걷지 못해 포기했어요. 상업등반대 대원들이지만 서로 도와주겠다며 끝까지 해보자고 했지만 그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어요."

해피엔딩 꿈꾼 칼스텐츠에서 곤욕 치러
매킨리 등반이 그렇게 실패로 끝났는데도 그는 몇 달 뒤 역시 스케줄대로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5,642m) 등정길에 나섰다.

“고산등반에 대해 자신감을 얻은 게 엘브루즈였어요. 큰 힘 들이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갔으니까요. 특별한 짐 없이 등반한다면 어느 산이든 가능하다는 확신도 가졌고요.”

그런 자신감을 가지고 지난해 봄 세계 최고봉에 도전했다.

“유명 산악인인 김재수씨가 이끈 김해팀과 함께 갔는데, 베이스캠프 도착 이후 한동안 내 운행 그래프가 안 보이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저 노인네는 보나마나 못 오른다 생각하고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던 거죠. 물론 부담을 갖지 않게 하려는 저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노스콜(7,000m)을 올라설 때부터 그는 젊은 대원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 체력과 적응력을 보여주었다.

10월 초 고국 방문길에 후배 산악인들과 함께 설악산 삼형제길을 등반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9월24일 마지막 고봉인 칼스텐츠를 정상에 올라 기쁨의 환호를 외치는 이성인씨.
10월 초 고국 방문길에 후배 산악인들과 함께 설악산 삼형제길을 등반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9월24일 마지막 고봉인 칼스텐츠를 정상에 올라 기쁨의 환호를 외치는 이성인씨.

“제3캠프부터 산소를 썼어요. 그랬더니 부쩍 부쩍 기운이 나지 뭐예요. 마지막 캠프에 올라설 때는 센 친구들도 추월했으니까요. 그러다 죽는 줄 알았어요. 세컨드스텝(약 8,500m) 아래에서 산소가 떨어지니까 숨이 콱 막히더군요.”

뒤따라 올라온 셰르파가 건네준 산소통으로 바꾼 뒤 다시 힘을 얻은 그는 드디어 세계 최고봉 정상에 올라섰다. 눈물이 나올 만큼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수족관에 있는 물고기를 밖으로 꺼내놓으면 펄떡 펄떡 뛰면서 난리를 치지요? 바로 그런 신세였어요. 정상에서도 산소가 떨어졌으니까요. 저를 책임진 셰르파가 급히 자신의 산소통을 벗어 저한테 끼워주니까 다시 살 것 같더군요. 정말 고마운 친구였어요.”

세계 최고봉 등정에 성공했지만 올해 초 나선 빈슨매시프(4,897m)는 애를 먹였다. 특히 마지막 캠프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날에는 화이트아웃에 폭풍까지 몰아닥쳤다. 안전이 최우선인 가이드는 당연히 하산을 권했다. 그러나 일단 내려가면 다시 올라올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끝까지 밀어붙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남극 최고봉 정상에 올라섰다.

“정말 고통스런 등반이었어요. 눈 속에다 모래를 잔뜩 집어넣은 것처럼 아팠으니까요. 정상을 오를 때 잠깐 고글을 벗었던 게 설맹을 유발시킨 거죠. 게다가 강풍에 동상이 걸리면서 얼굴 전체가 물집이 잡혔어요. 그게 어디 사람 꼴이었겠어요? 남극에서 빠져나온 다음에도 얼굴이 어느 정도 제 모습으로 돌아올 때까지 여러 날 집에 못 갔어요. 그 모습을 아내가 보면 얼마나 놀랄까 싶어서였죠.”

지난 5월 말 매킨리 재도전을 앞두고 그는 피눈물 나는 훈련을 해냈다. 180계단 오르내리기, 2시간 달리기, 하중훈련 등으로 이어지는 1일 3시간의 훈련을 묵묵히 해냈다. 그는 매킨리 등반을 앞두고 모국 산악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에베레스트 등반을 도와준 김지우씨, 그리고 3년 전 고국 방문길에 인수봉에서 만난 이세중씨와 동행했어요. 내 몸의 상태로서는 모든 짐을 끌어올리면서 정상까지 올라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심적 고통이 많았어요.”

전진베이스캠프 격인 매킨리시티(4,200m)에 도착하자 앞으로 1주일간 날씨가 좋지 않다는 일기예보가 전해졌다. 매킨리의 기후 특성 상 어느 팀이건 등반을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동행한 김지우씨는 “식량이 다 떨어져가기 때문에 이대로 며칠 더 기다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며 강행을 주장했다.

“왜 힘 안 들었겠어요? 마지막 캠프를 출발하면서 그 전날 먹을 걸 다 토할 정도였는데요. 데날리패스(5,600m)를 넘어서면서 컨디션이 좋아지더군요. 세중이와 지우가 아니었으면 오르지 못했을 거예요. 칼스텐츠를 가기 위해 지난 추석 날 아침에 서울에 와서 오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사우나에서 쉬고 있을 때 지우가 송편하고 부침개를 들고 왔어요.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에요.”

이성인씨는 마지막 칼스텐츠는 가볍게 여기고 해피엔딩을 그리며 다가선 산이었다. 그러나 ‘천만에’였다. 무엇보다 1주일간의 정글 캐러밴은 진이 빠지게 했다.

“가장 애를 먹은 산이었던 것 같아요. 비가 많이 내려 가벼운 여름 옷 한 벌이면 베이스캠프까지 끝이에요. 벌레와 짐승도 없어 겁낼 것도 없고요. 그런데 히말라야에 가면 크레바스가 있잖아요. 거기에는 진흙 크레바스가 수시로 나타났어요. 어떨 때는 허리까지 빠지기도 했으니까요. 인도네시아식 음식이 전혀 맞지 않아 더욱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오죽하면 몸무게가 9kg이나 빠졌겠어요. 아쉽게도 마무리를 멋지게 하려 했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더군요. 멋진 등정사진을 기대했는데 짙은 안개가 방해했으니까요.”

이성인씨의 7대륙 최고봉 등정 레이스는 이렇게 9월24일 안개가 자욱한 칼스텐츠 정상에서 마무리되었다.

완등 축하연에 모인 인수회 회원들. 3년 전 인수봉을 오르다 인연을 맺은 사이로, 김지우씨(맨왼쪽)와는 에베레스트와 매킨리를, 이세중씨(맨오른쪽)와는 매킨리를 함께 올랐다.
완등 축하연에 모인 인수회 회원들. 3년 전 인수봉을 오르다 인연을 맺은 사이로, 김지우씨(맨왼쪽)와는 에베레스트와 매킨리를, 이세중씨(맨오른쪽)와는 매킨리를 함께 올랐다.

“7대륙 최고봉을 오르겠다는 계획을 세우곤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곤 통장을 따로 하나 만들어 20만 달러를 넣어두었어요. 이번에 한국에 와서 돌아다닌 다음 확인해보니까 백만 원도 채 안 남았더군요(웃음). 세븐 서미트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줄을 묶고 산을 몇 개 오르내린 거나 다름없는 일이에요. 칼스텐츠 등정으로 긴 등반을 마치고 매듭을 푼 거라고 생각해요. 3년간 정말 열심히 산에 다닌 것 같아요. 지난해 여덟 달, 올해 서너 달 등 2년간 반은 집을 비운 것 같아요. 당분간은 쉬운 산을 갈 거예요. 가고 싶을 때 가고, 집에 돌아가고 싶을 때 미련 없이 돌아가고 하는 편안 산행 말이에요. 아무튼 그간 묵묵히 도와준 아내가 너무 고맙고 미안해요.”

산악인 의리와 산에 대한 도리 지키고파
이성인씨는 젊은 날 기자로서도 잘 나가는 시절을 누렸고, 사업가로서도 성공하고, 산악인이라면 누구든 꿈꾸는 7대륙에 성공하는 등 환갑이 넘은 나이가 될 때까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왔는데도 지금도 청년 못지않게 꿈이 많다.

“첼로를 배울까 해요. 열심히 하면 몇 년 안에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첼로를 전공한 아내가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요. 한 번쯤은 5,000m나 6,000m쯤 되는 히말라야 고봉에 새 루트를 내는 등반도 해보고 싶어요. 물론 좋은 후배들이 앞장서줘야겠죠. 그런 원정을 만들어주는 게 저를 도와준 고국의 후배들에 대한 의리이자 저에게 등정의 기쁨을 선사한 산에 대한 도리인 것 같아요.”

칼스텐츠 등반을 마치고 10월6일 고국을 찾은 이성인씨는 열흘간의 체류기간 동안 대둔산과 설악산에서 닷새를 보내며 바위 맛과 가을 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10월16일 LA의 가족에게 돌아갔다.

“바위 타고 싶은 마음에 찾은 거예요. 7대륙 최고봉 등정을 계획한 이후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모국을 찾았지만 이제 돌아가면 별로 기회가 없을 것 같아요. 7대륙 끝내면 취미를 완전히 바꿔볼까 했는데 잘 안 될 것 같네요. LA의 후배들이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어요. 계획도 많이 세워놓은 것 같아요.”


/ 글 한필석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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