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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한반도해안 요트 탐사(2)

월간산
  • 입력 2009.08.2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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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고도 갯바위를 다이빙대 삼아 유리처럼 맑고 찬 바닷물로 풍덩
7월 3~5일, 전곡항에서 격렬비열도까지 120km 항해

우리는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40ft 세일링 요트의 옹색한 갑판엔 작렬하는 햇볕을 피할 그늘이 없었다. 마치 커다란 돋보기가 태양광의 초점을 우리 배에 맞춘 채 따라다니는 것 같은 7월의 햇볕.“어떻게 바람이 이렇게 없을 수 있지?”

요트에서 일제히 바닷물로 뛰어드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는 집단가출호의 크루들.
요트에서 일제히 바닷물로 뛰어드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있는 집단가출호의 크루들.
텔테일(tell tale:돛에 달린 길이 10cm 안팎의 털실. 바람에 날려 돛의 상태를 알려준다)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허 선장이 한숨을 섞어 혼잣말을 내뱉었다. 육지에서 100km 이상 떨어져 사방이 탁 트인 난바다에 바람이 3노트도 안 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장마전선이 제주도 남쪽 해상으로 잠시 물러난 사이 고기압대가 지배한 서해는 수면에 잔물결 하나 없을 만큼 바람이 없었다.

남·북반구가 갈리는 적도에는 돌드럼스(Doldrums:무풍지대)가 있는데 돛단배들이 돌드럼스에 갇혀 며칠씩 꼼짝을 못하면 선원들이 거의 정신분열 단계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집단가출호 크루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말이 없어졌고, 오후가 되자 몇몇은 급기야 멀미를 앓기 시작했다.

순풍을 받아 전진하고 있는 집단가출호. 오랜 무풍에 시달린 뒤여서 더더욱 반가운 바람이었다.
순풍을 받아 전진하고 있는 집단가출호. 오랜 무풍에 시달린 뒤여서 더더욱 반가운 바람이었다.
바닷물을 끓여 버릴 듯 뜨거운 햇살

“갈매기다!”

말린 생선처럼 이물에 늘어져 있던 바우맨 김진원(37)이 뜬금없이 소리를 질렀다. 대체 바다에 갈매기가 있는 게 무슨 경천동지할 일? 키를 잡은 허 선장과 없는 바람을 모으기 위해 집요하게 돛 줄을 조정하고 있던 트리머 정성안 외엔 거의 노숙 자세로 갑판에 뒹굴던 크루들의 뜨악한 시선이 바우맨에게 쏟아졌다.

“갈매기가 보이면 섬이 가깝다는 뜻이잖아요.”

머쓱해진 김진원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갈매기의 출현을 해석하는 순간, 크루들은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나 하늘을 살폈다. 과연 갈매기 서너 마리가 마스트 위를 맴돌고 있었다.

갈매기가 나타난 지 한 시간쯤 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초록색으로 빛나는 격렬비열도가 보인 것은 출항한 지 11시간 가까이 지난 오후 5시였다.

집단가출호의 두 번째 항해(7월 3~5일)는 출발부터 진을 뺐다. 전곡항에서 격렬비열도까지는 120km가 넘는 긴 거리. 태안반도에 바짝 붙어 가야 거리를 줄일 수 있지만 그쪽은 수심이 얕아 서쪽으로 울도 수역까지 간 후 남하하는 항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바람은 약했고, 설상가상으로 안개가 자욱했다. 새벽 4시에 모인 크루들은 연신 하품을 해댔다.

해가 뜨자 기온은 급상승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바닷물을 끓여 버릴 기세다. 햇살에 안개가 흩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선실에선 요리 담당 김은광(41)이 아침을 짓느라 팥죽 같은 땀을 흘렸다. 유도선수 출신으로 몸집이 깍짓동인 그에게 돛단배의 선실 부엌은 너무 좁았다.

윈치를 있는 힘껏 돌리고 있는 집단가출호 선장 허영만화백(오른쪽)과 필자.
윈치를 있는 힘껏 돌리고 있는 집단가출호 선장 허영만화백(오른쪽)과 필자.
정오를 넘기자 전날 잠을 거의 자지 못해 피로가 쌓인 크루들은 그늘을 찾아 헤매며 컨디션 난조에 빠졌다. 점심 식사 후 과일 간식으로 기운을 차리는 듯했으나 가도 가도 끝없는 수평선에 먼 바다 특유의 너울이 가세해 결국 3분의 1이 멀미로 쓰러졌다.

요트를 이용해 충남 최서단 격렬비열도까지 논스톱으로 달리는 것은 아마도 집단가출호가 최초일 듯싶다. 어쩔 수 없이 가끔 엔진을 가동했지만 요트의 엔진은 운항용이라기보다는 비상용 또는 항내 이동용이다. 배의 크기에 비해 엔진이 작기 때문에 가동해봤자 5~6노트가 고작이다.

출항 13시간 후, 해질 녘에야 녹초가 되어 북격렬비열도에 앵커를 내렸다.  섬 주위 가파른 바위벽에 부딪는 파도가 거세 작은 고무보트로 야영장비와 크루들을 상륙시키는 일은 신경이 몹시 곤두서는 작업이었다.

격렬비열도에서 맞은 아침. 저 아래 바다 가운데 집단가출호가 떠 있다.
격렬비열도에서 맞은 아침. 저 아래 바다 가운데 집단가출호가 떠 있다.

우리가 상륙하고 있는 동안 섬의 주인인 갈매기들이 마치 항의하듯 울어댔다. 섬 꼭대기에는 기상관측장비와 등대가 있으나 몇 년 전 등대지기가 떠난 뒤 무인도가 됐다. 콘크리트 건물인 어부대피소 앞에 걸린 팻말에 ‘야영금지’ 넉 자가 뚜렷했으나 13시간의 무풍 항해로 지친 우리는 달리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게스트로 참가한 조종덕(47)씨가 고무보트를 타고 나가 잡아온 놀래미와 참돔 몇 마리로 찌개를 끓여 저녁 밥상에 올렸다. 저녁을 먹는 동안 달이 떠올랐고, 등대 불빛의 화려한 레이저쇼 속에 북격렬비열도의 밤이 깊어갔다.

새벽에 작업등을 대낮처럼 밝힌 어선 한 척이 섬 앞에 그물을 치고 돌아갔다.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라는 긴 제목의 시(詩)가 있다. 그러나 7월의 격렬비열도엔 아침부터 음악 같은 눈 대신 격렬하게 뜨거운 햇살이 내렸다.

내파수도 지나 외도 방파제에서 이틀째 밤 보내

격렬비열도에서의 아침식사.
격렬비열도에서의 아침식사.
식전부터 크루들이 갯바위를 다이빙대 삼아 차고 맑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오늘도 뜨거운 하루가 될 테니 미리 몸을 식혀 보자는 뜻이었으나 사실은 수심 4~5m까지 유리처럼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바닷물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었다.

오전 10시, 쓰레기는 물론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섬을 떠났다. 격렬비열도 동쪽으로 눈부신 자태로 늘어선 석도, 우배도, 궁시도를 감상하며 바짝 붙어 갔다. 섬들은 주변이 온통 바위 절벽이어서 배를 타고 상륙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궁시도가 시야에서 멀어질 즈음 남서풍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남쪽으로 비팅(바람이 불어오는 각도에 최대한 근사치로 전진하는 항해법)해 내려갔다.

위도상 대천쯤까지 남하했을 땐 바람에 제법 힘이 실려 있어서 남서풍을 뒤로 받아 스피네커(순풍용 돛)를 펼쳤다. 바람으로 선속이 7노트를 넘나들자 크루들은 그제야 생기를 되찾았다. 거기다 아시안게임 요트 금메달리스트 정성안(39·여수시청)의 열정적인 세일링 강의까지 이어지자 어제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 세일링에 집중한 덕분에 멀미하는 사람도 없었다.

9시간 가까이 달려 오후 7시30분, 공처럼 둥글고 단단한 자갈로 유명한 내파수도에 상륙했으나 야영할 곳이 마땅찮아 30여 분 더 걸리는 외도로 발길을 돌렸다.

끼니가 늦어져 허기진 크루들이 생라면을 깨 먹었다. 이를 지켜보던 허 선장은 “이러다 선원들이 선상 반란 일으키겠다”며 특식을 제안했다. 생선 전문가인 게스트 조종덕씨가 외도 선착장 앞에 정박 중이던 어선으로부터 씨알 굵은 참돔 몇 마리를 ‘추진’해왔다. 태안 출신인 조씨는 서울 서초동의 횟집 ‘잡어와 묵은지’의 주방장이다. 깜깜한 밤중에 외도에 상륙한 선원들은 방파제에 둘러앉아 회가 접시에 채 담기기도 전에 된장에 찍어 허겁지겁 삼켰다.

(위)외도를 향해 접근중인 집단가출호. (아래)격렬비열도 옆의 섬들 사이를 지나고 있는 집단가출호.
(위)외도를 향해 접근중인 집단가출호. (아래)격렬비열도 옆의 섬들 사이를 지나고 있는 집단가출호.
외도의 아침은 부지런한 해녀 아주머니들의 물질 준비로 깨어났다. 50~60대의 해녀들은 방파제에서 비박한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아침 식사는 어떻게 하느냐”“밤새 모기에 뜯기지는 않았느냐”며 살갑게 말을 건넸다. 키조개를 캐러 간다는 해녀들이 긴 물결을 뒤로 남기며 바다로 나갈 때 해가 떠올랐고 집단가출호도 돛을 펼쳤다.

첫날과 둘째 날 먼 거리를 소화해낸 덕분에 마지막 날엔 여유가 있어 초도 부근에서 그동안 미뤄왔던 MOB(Man Over Board:항해 중 물에 빠지는 사고) 구조 훈련을 시작했다.

서해의 조류는 몹시도 빨라서 어지간히 수영을 해서는 제자리를 지키기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뜨거운 날 바다 수영은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엔 한 명을 빠뜨리고(?) 다시 건져내는 훈련을 했는데 급기야 MOB 희망자가 4명이나 나왔다. MOB 희망자들은 훈련보다 시원한 바다 수영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위)“바람아, 불어라.”순풍에 돛 올리고 항해하는 멋에 취해 있는 크루들. (아래)북격렬비열도를 돌며 경치를 즐기고 있는 집단가출호 선원들.
(위)“바람아, 불어라.”순풍에 돛 올리고 항해하는 멋에 취해 있는 크루들. (아래)북격렬비열도를 돌며 경치를 즐기고 있는 집단가출호 선원들.
훈련 도중 낚싯배 한 척을 만났다. 도시에서 온 주말 낚시꾼들을 싣고 나온 선장은 깔깔대며 자맥질을 하는 우릴 보더니 확성기로 “우리는 뱃놈, 저 양반들은 뱃양반”이라며 걸쭉한 입담을 풀어냈다. 우린 말없이 목례를 했지만 바다가 생활 현장인 어민들에게 우리 모습이 어떻게 비쳐질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오후 2시, 천수만을 깊게 파고든 오천항 초입에서 모터보트로 마중 나온 이 지역 세일러 김철훈씨와 조우했다. 한강 하구의 옛 모습을 연상케 하는 오천항에는 세일링 요트 10여 대가 정박되어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김철훈씨와 오천요트클럽의 배려로 앵커를 묶고 길었던 2차 항해를 마무리했다. 다음 항해는 오천항에서 외연도, 어청도를 짚어나가 목포까지 진출하게 된다.<계속>


/ 글 송철웅 익스트림스포츠 칼럼니스트 blog.naver.com/timbersmith
  사진 이정식 아웃도어 포토그래퍼 photo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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