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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최선웅의 지도이야기] (59) 국경선은 과연 공평한 것인가

월간산
  • 입력 2009.11.20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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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국경을 지닌 나라들 예외 없이 역사 짧아

일반적으로 지도는 ‘지구 표면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일정한 축척에 의해 약속된 기호를 사용하여 평면상에 나타낸 그림’이라고 정의하지만 실제 지도에는 지표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항도 많이 표현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지형의 형태를 평면으로 나타낸 등고선과 지구상의 위치를 나타내는 경위선, 그리고 행정구역이나 국가 간의 영역을 나타내는 경계선 등이다.
경계(境界·boundary)란 일이나 물건이 어떤 표준 아래 맞닿은 자리를 뜻하나 지리에서는 행정구역을 가르거나 국가와 국가를 구분하는 선을 말한다. 국가와 국가 간의 경계를 국경이라 하고, 그 선을 국경선 또는 국계(國界)라 한다. 이 밖에 행정구역을 나타내는 경계를 행정계(行政界), 지적측량에 의해 지번별로 확정하여 등록한 선을 토지경계 또는 지적계(地籍界)라 한다.

오늘날 지구상의 육지는 남극대륙을 빼놓고는 세계 각국의 영토에 속해 지표면은 국경이라는 경계선에 의해 구분되어 있다. 또 국경선은 육지에만 한하지 않고 영해(領海)라 하여 바다에까지 확대되고, 더 나아가 영토와 영해의 상공인 영공(領空)까지도 영토로 인정하고 있다.

인류 역사상 중세까지는 인적 결합이 근간이 되었기 때문에 명확한 국경선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 간에 벌어진 백년전쟁(1337~1453년)이 끝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절대주의 국가가 탄생하면서부터 경계선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유럽에서 국가 체계의 기점이 된 것은 1618년부터 종교와 왕조, 영토 등을 둘러싼 적대관계로 벌어진 30년전쟁이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조약(Peace of Westfalen)으로 종결되면서부터이다. 이 조약으로 주권국가는 명확한 영역을 갖게 되었고 점차 지구상의 육지가 유계화(有界化)되면서 지표상에 국경선이 그어지게 되었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현재 192개의 국가가 서로 국경을 맞대며 모자이크처럼 얽혀 있는데 이러한 국경이 지닌 형상은 지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산맥·하천·호수·해양 등의 자연지물을 이용한 자연적인 국경과 조약·민족·경위선·도로·운하 등 인공적인 것에 의한 인위적인 국경으로 대별된다. 인위적인 국경은 대체로 자연적인 국경의 요인을 무시하고 국경을 정하는 당사자가 자의적으로 그은 것으로, 직선에 의한 기하학적인 선이 많다.

지형을 주 요인으로 하는 자연적 국경은 구체적으로 산맥국경, 하천국경, 해양국경으로 구분된다. 산맥국경은 알프스산맥을 국경으로 하는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오스트리아의 국경과 히말라야산맥을 경계로 하는 네팔·중국·인도·부탄의 국경, 그리고 피레네산맥의 프랑스·에스파냐의 국경과 안데스산맥의 칠레·아르헨티아·볼리비아의 국경 등이 있다.

남중국해 남부에 널리 점재해 있는 난사군도(南沙群島·남사군도라고도 함)는 70여 개의 작은 섬과 암초로 이뤄진 군도이나 석유와 천연가스의 이권 때문에 중국·타이완·필리핀·말레이시아·베트남·브루나이 등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각기 점령한 섬에 자국의 병력을 배치해놓고 있다.
남중국해 남부에 널리 점재해 있는 난사군도(南沙群島·남사군도라고도 함)는 70여 개의 작은 섬과 암초로 이뤄진 군도이나 석유와 천연가스의 이권 때문에 중국·타이완·필리핀·말레이시아·베트남·브루나이 등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각기 점령한 섬에 자국의 병력을 배치해놓고 있다.

하천국경은 지도를 보면 의외로 많은데 대표적인 예로는 우리나라와 중국·러시아의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과 두만강,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을 이루는 흑룡강(아무르강), 타이와 라오스의 국경을 이루는 메콩강,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이루는 리오그란데강 등이다. 해양국경은 영국이나 일본·필리핀·쿠바 등 주로 섬으로 이뤄진 나라의 국경을 이른다.

세계지도를 펼치면 아프리카나 북미대륙에 직선으로 이뤄진 국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직선국경은 경위선에 따른 경선국경과 위선국경, 사선국경으로 구분하지만 지형이나 민족, 문화 등의 조건을 무시한 채 그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선국경이 많은 나라는 아프리카 북부의 알제리·리비아·이집트·말리·니제르·차드·수단 등이고, 중동지역에서는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예멘, 북미에서는 캐나다·미국·멕시코 등이다.

직선국경을 지닌 나라들은 예외 없이 국가 형성의 역사가 짧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프리카대륙 여러 나라의 국경은 19세기 말 유럽의 열강인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가 베를린회의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분할하여 경계선을 긋고 식민지로 삼은 데 기인하여 직선국경이 많다. 민족이나 부족은 긴 역사를 거치면서 형성되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들의 거주권이나 문화권을 무시한 경계선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있다. 중앙아프리카 지역의 동서에 걸쳐 널리 분포되어 있는 수단족이 아프리카의 분할에 따라 몇 개의 나라로 분산되었듯이 아프리카에는 자연적 지형이나 민족 관계를 무시한 인위적인 국경선으로 지금도 분쟁과 내전이 끊이질 않는다.

국경선의 종류에는 온전한 국경선 외에 미확정국경선과 군사분계선이 있다. 미확정국경선은 영토 분쟁으로 국경을 확정하지 못한 경우인데 중국의 티베트와 인도의 동부 지역,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지역이 대표적이다. 온전한 국경선임에도 불구하고 미확정국경선을 주장하는 나라는 일본인데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우리나라와의 독도, 중국·타이완과의 댜오위다오군도(釣魚台群島, 일본명 센가쿠제도) 세 지점에 대해 집요하게 영유권을 내세우고 있다. 군사분계선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으로 실효지배지역의 분명한 경계선이지만 남북 양쪽이 한반도 전역을 각자 자기의 영토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국경선은 아니다.

국가의 존립은 영토가 절대적 조건이기 때문에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가 국경선을 맞대고 북적거리다 보면 예외 없이 인접국 간에 영토를 둘러싼 대립이나 충돌이 생기게 마련이다. 현재에도 세계 각지에서는 영토와 국경 분쟁이 국제분쟁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무력충돌에까지 이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영토와 영해 분쟁의 또 다른 원인은 지하 깊숙이 묻혀 있는 원유나 천연가스, 즉 탄화수소자원(hydrocarbon)을 둘러싼 분쟁이다. 탄화수소자원은 지상의 국경과는 관계없이 인류 발생 이전인 수억 년 전에 지하에 형성된 것으로 그 유전이나 가스전이 여러 국가의 영토나 영해에 걸쳐있는 경우 으레 자원 쟁탈 분쟁으로 치닫게 된다.

독일 출신의 국제정치학자인 존 허츠(John H. Herz)는 그의 논문에서 국경은 ‘딱딱한 껍질(hard shell)’이라고 표현하면서 영토나 국경은 외부로부터의 힘에 대하여 침투되거나 관통되지 않는 요새와 같은 것이지만 현대에 이르러서 이 ‘딱딱한 껍질’이 경제적 침투, 심리적·정치적 침투, 공중전쟁, 핵전쟁 등 네 가지 요인에 의해 의미를 잃어 영토국가라는 것이 소멸될지 모른다고 했다. 실제 유럽의 여러 나라는 1992년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의해 유럽연합(EU·European Union)을 결성하여 국경을 허물고 있다.


/ 글 최선웅 한국산악회 부회장·매핑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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