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지리산 하늘 아래] 삼신봉 기슭

월간산
  • 입력 2010.01.11 10: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침내 지리산에 오른다. 누구나 오르는 산이지만 지리산에 대한 그리움은 산처럼 깊고도 넓었다. 아니 지리산을 향한 꿈이 높았다.

그 꿈을 향해 붓길을 이어온 뒤안길은 언제나 지리산을 품은 마음으로 점철되었다. 마치 어느 생엔가 살다 떠나온 고향 산이었을까. 이 알 수 없는 애모의 정이 깊어갈수록 산은 높았고, 나는 한없이 낮아져야만 했으니….

지리산 삼신봉에서(168×271cm)
지리산 삼신봉에서(168×271cm)
산은 말이 없는데 반백의 나이를 넘겨 세월의 무상을 느끼며 오르는 초겨울의 산길, 하늘 아래 지리산 종주 능선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는 삼신봉으로 오른다. 길머리는 도인촌으로 불리는 청학동(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뒷산이다.

여행은 돌아오기 위함이고, 산은 내려가기 위해 오른다는 역설을 되새기며 오르는 길. 남빛 하늘 아래 스산한 계곡, 마른 낙엽들이 마냥 뒤척이고 있다. 사계절의 운행 속에 빛이 바래가는 낙엽의 형해(形骸)! 저들은 필시 새 봄의 잉태에 헌신하리니.


  그들 떠나고 있네 이승의 마지막 잔치 끝내고
  우수수 찬비 휘날리는 하늘 가로질러
  하나의 풍경에서 다른 풍경에로
  어깨 부딪치며
  자욱하게 떠나고 있네…<‘낙엽에게’-이유경>


초겨울 늦단풍의 조락을 가슴에 묻고 자욱한 능선을 발아래 두고 등이 젖을 무렵 드디어 삼신봉(三神峰·1284m) 정상에 올랐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산신께서 도와주시는가. 청명한 하늘 아래 펼쳐지는 지리산 능선의 대파노라마! 노고단-반야봉-토끼봉-명선봉-벽소령-덕평봉-칠선봉-영신봉-세석평전-촛대봉-연하봉-장터목-제석봉-천왕봉이 우뚝하고 써리봉으로 흘러내리는 능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의 대미로‘흘러온 백두산’ 또는 ‘머물러버린 백두산’(박태순)으로 불리거니와 어머니산이라 함은 이인로(李仁老 ·1152~1220)의 문장에서 실감난다.

‘꽃봉오리 같은 산봉우리들과 꽃받침 같은 골짜기들이 백두산으로부터 면면히 흘러내려와 솟구쳤다.’

예로부터 선인들의 지리산 유람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자신과 사회와 국토에 대한 종합적 성찰의 기회를 갖는 여행이었다(최석기).  따라서 내 붓길 또한 여여하여 지리산의 시절 인연에 화답해보리라 서원하며 화첩을 펼쳤다.

거센 바람 속에 시원의 역사와 숨결이 우주를 감싸듯, 웅혼한 기상이 몰려와 가슴 벅차다. 신령한 기운에 전율한다. 이 기나긴 여정이 부디 산신의 가호 속에 뭇 인연들과의 행복한 조우로 이어지기를 나는 발원했다.

1. 지리산 삼신봉에서 스케치(화첩 205×25cm) 2. 삼성궁 마고성 개천대제(168×271cm) 3. 천왕봉(화첩).
1. 지리산 삼신봉에서 스케치(화첩 205×25cm) 2. 삼성궁 마고성 개천대제(168×271cm) 3. 천왕봉(화첩).
산을 내려와 청학동 도인촌의 천제당(天祭堂)에 이르니 서형탁(徐亨卓) 훈장님이 맞아준다.

“요즈음 어른들은 인사할 줄도 몰라요.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는 부모는 인사하지 않고 애들에게만 시키니. 부모가 먼저 하면 어련히 따라서 잘할까.”

짧은 말씀이나 오늘의 세태와 전통의 간극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청학동(靑鶴洞)은 신선이 학을 타고 노닐던 지상선경(地上仙境)이라 하여 중국의 무릉도원 같은 명승지로 이상향(理想鄕)을 구현하려는 곳이다. 1950년대부터 유불선합일(儒彿仙合一) 사상인 갱정유도(更定儒道)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터 잡은 곳이다. 창시자 강대성(姜大成·1890~1954)에 의해 하동에서 수행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둥지를 틀었다고 한다.

고려 때 이인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청학동이 정녕 이곳이었을까?


두류산은 아득하고 저녁구름 낮게 깔려/ 천만 봉우리와 골짜기 회계산(會稽山)과 같네./ 지팡이를 짚고서 청학동을 찾아가니/ 숲 속에선 부질없이 원숭이 울음소리뿐/ 누대에선 삼신산이 아득히 멀리 있고/ 이끼 낀 바위에는 네 글자가 희미하네/ 묻노니, 신선이 사는 곳 어디 멘가/ 꽃잎 떠오는 개울에서 길을 잃고 헤매네
<청학동 변증설>


다담을 마치고 뜰을 나서자 훈장이 계신 서당은 예전(450년 전) 진주암 터였단다. 앞이 탁 트이고 산맥이 출렁이며 달려 나가는 것이 감나무 사이로 시원하다. 명당의 반열에 들 만하다.

훈장의 안내로 천제당(天祭堂)으로 가 도인촌 김덕준(金德遵) 촌장을 뵈었다. 천제당은 봄, 가을 천제를 올리고 도조(道祖) 강대성의 탄강일을 봉행하는 곳이다. 촌장께서는 길손에게 한 마디라도 더 들려주려고 끊임없이 책장을 넘기며 말씀하시니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겠는데, 문제는 새겨듣기 어려움이다. 이것이 시대와 세태의 간극인가. 아니면 길손의 우매함인가. 좀 더 쉽게 풀어서 오늘의 삶과 접속할 수 있는 지혜와 방편이 필요할 것 같다. 청학동의 존속 가치와 희망을 위해서 말이다. 웃으며 길손을 전송해주시던 촌장님의 쓸쓸한 그림자가 자꾸만 마음에 남는다.

현재 청학동은 10여 개의 서당이 운영되며 20가구에 5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산골 묵계초등학교가 그나마 폐교되지 않는 까닭은 전교생 100 여 명 중 이곳 아이들이 반 정도는 되어서다. 부디 더 줄어들지 않고 서당을 보고 전학오는 아이들이 많기를.

이제 발길은 인근의 삼성궁으로 향한다. 시절 인연이 도래했는지, 삼성궁은 지난해 여름부터 화첩을 펼칠 기회가 있었다. 앞서 도인촌이 여러 서당과 훈장들이 조성한 마을이라면 삼성궁은 한풀선사(仙師)를 중심으로 수좌들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운영된다. 소위 창시자가 생존하여 진행 중인 특수한 문화공간이다. 삼성궁은 낙남정맥의 시원이 되는 영신봉에서 흘러온 삼신봉을 주산으로 둥지를 틀었다. 천왕봉과 노고산을 양축으로 한 영신봉 산마루는 산신봉을 거쳐 김해의 신어산까지 흘러간다.

일년에 네 번 축제의 장이 열리는데 삼신천제(봄), 만하연(여름), 개천대제(가을), 만동연(겨울)이 그것이다. 지난해 만하연 때 별빛이 쏟아지는 마당에서 풍류를 즐긴 추억이 참으로 특별했다.

1. 삼성궁 만하연 축제(58×97cm) 2. 청학동 삼성궁(94×58cm) 3. 청학동 천제당(58×52cm)
1. 삼성궁 만하연 축제(58×97cm) 2. 청학동 삼성궁(94×58cm) 3. 청학동 천제당(58×52cm)
고운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 나오는 풍류도(風流道)를 공표하는 의지와 함께 신명나는 마당놀이가 지리산의 지축을 울렸으니…. 전국에서 논다 하는 소위 풍류도인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젓대와 장고, 검무와 춤사위, 구성진 소리 가락과 가사 또한 멋스러웠다. 애환과 환희, 태고의 먼 그리움과 만남, 통한과 해원, 무상의 세월이 지리산 밤하늘에 흐느끼듯 물결쳤다. 그 후 다시 찾은 개천대제(11월 1일)는 제일 큰굿으로 불타는 단풍 속에 혼불을 지피는 행사로 거행되었다.

삼성궁은 배달민족의 성전이라 하여 한배임(桓因), 한배웅(桓雄), 한배검(檀君) 및 역대 나라를 세운 태조 각 성씨의 시조 현인과 무장을 모신 곳이다. 옛 소도(蘇塗)를 복원한 삼성궁은‘배달민족 정통 도맥인 선도(仙道)의 맥을 이어 천지화랑(天地花郞)의 정신을 바탕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異化世界)를 실현하고자 하는 민족대화합의 터전’이라고 밝히고 있다.

큰굿은 열림소리로부터 헌화, 헌다에 이어 고천(삼신께 올리는 의식), 독경을 거쳐 선도무예와 해원상생춤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고성으로 옮겨와 행사의 불꽃이 만개했다. 마고성은 태초의 생명, 생산의 신으로 불리는 마고할머니의 전설이 서린 공간으로 마고복본(麻姑複本), 원시반본(原始返本)을 통해 잃어가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성을 회복하고 인류화합의 평화, 생명존중 사상을 교육하며 실현을 꿈꾸는 곳이다. 삼성궁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어둠과 밝음이 분화되기 전 마고 삼신은 스스로 나투어 음양 자체에 머물며 마고산에 계셨다. 이를 땅의 어머니라 일컫는다. 함없는 함을 이루니 검달은 푸른 미르와 흰 호랑이를 낳고 배달은 주작과 현무를 낳았다. 음양과 사방위를 이루니 마고 삼신께서는 여덟 딸을 낳았다. 여덟 딸들은 여신이 되었고 전국에 땅의 어머니가 되었다. 이것이 인류의 시작이다.’

청학동 진주암터(화첩) / 장승가족(화첩)
청학동 진주암터(화첩) / 장승가족(화첩)
지난 여름 삼성궁에서 한 주일을 머물 때 마고성 길목에서 마주친 장승 앞에서 쓴 추억의 그림일기가 새삼스럽다.


어둠 속을 파고들던 뿌리가 죽어서 하늘로 솟은 목장승가족! 풍화(風化)로 형체가 다해가는 비목(碑木) 앞에서 아득한 세월을 읽는다. 모두가 저렇게 돌아가는 것을, 하늘 향해 손짓하며 저마다 한번 웃다 가는 것을…. <2009.6.27>


마고성 행사는 굿마당 쑥향로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 가운데 모두가 흰 박달나무를 오색 끈줄로 당겨 세우는 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제례와 한풀선사의 고천의식이 있은 후 풍악이 곁들여졌다. 절정은 현묘(玄妙·선사의 부인)가 낭독한 긴 두루마리 영고사(靈告辭)였다.

“몹시 기뻐하는 마음으로 머리 숙여 삼신을 맞이하오니…(중략)…바라옵건데 은혜의 광명이 온 누리에 길이 비춰 주시옵소서 -단기 사천삼백사십이년 상달 상날 마고상 제천단에서.”

내용은 종교의식을 떠나 홍익인간과 인류 평화의 상생을 위한 발원으로 느껴졌다. 삼성궁은 신선도를 가르치며 화랑도 교육과 무예를 연마한다고 하며, 내무부로부터 문화시설지구로 고시(1997년 1월 24일)받은 곳이다.

기실 운명적으로 외롭게 40년간 돌탑을 쌓아 올리며 겨레의 정신문화를 위해 혼신을 쏟아부은 한 사내의 열정이 오롯이 담긴 곳이다. 그 주역이 한풀선사요, 삼성궁의 모태다. 하여 한 생애를 건 그의 노력과 숙원이 어떻게 뿌리 내리고 성숙되는지를 지켜볼 일이다. 바라건데 세상에 기여하는 또 다른 역사의 강이 되기를.

행사 이후 며칠을 더 지리산 품에 떠돌다가 길을 떠나려는데 폴폴 첫눈이 내린다. 서설(瑞雪)이다. 우러러보니 지리산은 이미 눈에 싸여 눈부시다. 황홀하다.


/ 필자 이호신 | 화가. 국토기행을 통해 자연과 인간의 삶, 그리고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재발견하는 붓길을 이어왔다. 12회의 개인작품전과 함께 <길에서 쓴 그림일기> <숲을 그리는 마음> <우리마을 그림순례> 등 12권의 저서를 냈다. 그의 작품은 대영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lhs1957@lycos.co.kr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