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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새걷기길 | 상주 MRF 낙동강 칠백리길] 잊혀진 왕국 사벌국에서 낙동강 따라 걷기

월간산
  • 입력 2012.07.23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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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 걸리는 산행 반, 걷기 반 코스… 운동화보다 등산화가 알맞아

마리산을 내려오면 너른 낙동강을 옆에 끼고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마리산을 내려오면 너른 낙동강을 옆에 끼고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상주에 새 걷기길이 생겼다. 상주 MRF 이야기길 마지막 코스인 ‘낙동강 칠백리길’이다. 상주 MRF란 산(Mountain), 강(River), 들(Field)을 이어 만든 걷기길을 뜻한다. 2009년 14개 코스가 개통했으며 이번에 추가로 15번째 코스가 만들어졌다. 2004년부터 MRF를 만들어온 상주시청 전병순 계장은 “제일 마지막에 만들었지만 북쪽에서부터 순서를 매기는 특성상 낙동강 칠백리길이 1코스가 될 것”이라 한다.

낙동강 칠백리길은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를 기점으로 한다. 사벌면은 상주의 북쪽 경계이며 예천·문경과 닿아 있다. 사벌면은 삼국시대 초기 소국이던 사벌국이 있던 곳이다. 고대 상주를 중심으로 경북 북서부에 있던 나라이며 신라에 흡수되었다. 

마리산은 낮지만 울창한 숲이 매력이다.
마리산은 낮지만 울창한 숲이 매력이다.

상주 MRF는 모든 코스를 원점회귀로 만들었다. 낙동강 칠백리길의 들머리이자 종착지는 낙동강 표석이다. 350cm에 이르는 대형 비석에 ‘낙동강 칠백리 이곳에서 시작되다’라는 글귀가 있다. 상주시에서 2007년 세운 것으로 성주봉 한방산업단지의 돌을 가져와 세웠다고 한다. 여기서 낙동강이 시작된다고 하는 건, 이곳이 문경 방면의 영강과 예천 방면의 낙동강이 합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낙동강의 모습이 여기서 시작된다고 해서 ‘낙동강 칠백리’ 비석을 세운 것이다.

비석 앞에서 낙동강의 너른 경치를 감상한 다음, 걷기가 시작된다. 시작부터 카메라를 꺼내게 하는 건 퇴강성당이다. 빨간 벽돌의 고풍스런 성당, 앞에는 마리아상이 있다. 시골 풍경과 무난하게 어우러지면서도 특별한 분위기가 깃들어 있다. 경북 문화재인 퇴강성당은 1956년 지어졌으며 천주교 역사적으로 경북 북부지방의 중요한 가치를 지닌 성당이다. 내부 역시 화려하진 않지만 깨끗하고 검소한 시골 성당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성당을 지나며 걷기가 시작된다. 시골 골목길, 헷갈릴 법한 데는 MRF 이정표와 파란 페인트 화살표가 길을 알려준다. 개망초꽃이 널브러진 시골길은 초라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정감이 간다. 콘크리트길은 길지 않다. 2~3명이 나란히 걸어도 좋을 흙길이 낙동강 칠백리길의 시작을 알린다. 완만한 길을 따라 두릅나무가 벽을 이루고 있다. 왼편으로 낙동강이 차분히 흘러간다. 낙동강처럼 차분한 걸음을 유도하는 완만한 흙길이다. 길은 퇴강리 사람들의 삶과 닿아 있어 참깨밭과 가족묘를 지난다. 강한 생활력을 보여주는 다랑이 논도 보인다. 그러나 사벌면은 평야지대라 예부터 먹고 사는 걱정 없는 동네였다고 한다.

1,2 마리산에서 만난 참나리와 흰금강초롱. 
3 남근을 닮은 독특한 나무.
1,2 마리산에서 만난 참나리와 흰금강초롱. 3 남근을 닮은 독특한 나무.

길은 점점 산으로 향한다. 마리산(馬里山· 385m)으로 향한다. 지도에는 특별한 산 이름이 없지만 매호리에선 국사봉이라 불렀는데 이번에 표지석을 세우면서 마리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매호리에는 조씨 집성촌이 있는데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매호별곡(梅湖別曲)을 쓴 조우인 선생의 고향이다. 조우인 선생이 인조로부터 국록으로 받은 지역이라 국사봉(國師峰)이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그러나 김진숙 면장은 사벌면에서 가장 높은 산이 ‘봉’으로 불리는 게 맞지 않고 ‘국사봉’이란 이름이 너무 흔해 상주군지 등의 문헌을 찾아 새 이름을 붙인 것이 마리산이다. 과거 이곳에 말이 뛰어 놀았다는 전설과 놋쇠로 만든 말 동상이 있었다고 해서 유래한다. 이후 상주의 향토사학자 조희열 선생과 조씨 집성촌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이름을 바꾸었다.

길은 산 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군데군데 묵논이 보인다. 멧돼지가 많아 밭농사가 힘들다고 한다. 높이는 낮지만 보전이 잘된 시골 뒷산이라 야생동물이 의외로 많다. 깊은 산에서 들을 수 있는 여러 새 소리는 물론 고라니, 오소리, 뱀 등이 많다. 길이 점점 좁아지나 싶더니 정통 산길이다. 정글 같은 원시림이 거짓말처럼 나타난다. 어둑어둑할 정도로 진한 숲이 자연 커튼을 친다. 초록잎 사이를 지나 온 바람이 코끝에 닿자 바람과 몸 섞은 나무의 살 냄새가 난다. 숲의 건강한 색스러움이 몸속으로 번지자 걸음이 한결 가볍다. 얕은 오르막을 올라서자 쉬었다 가기 좋은 바위다. 원탁처럼 둥글다 해서 원탁바위라 전병순 계장이 이름 지었다.

퇴강성당을 지나면 임도를 따라 낙동강이 펼쳐진다.
퇴강성당을 지나면 임도를 따라 낙동강이 펼쳐진다.

전 계장은 상주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산 전문가로 통한다. 한 번은 경천대 소장 자리를 맡은 적이 있었다. 한직이라 쉬었다 오는 자리로 통하는데 그가 직접 돌탑을 쌓으며 “경천대를 싹 바꿨다”고 한다. 이후 그의 이런 모습을 높이 사 문화관광과 일을 맡게 되었고 새로운 등산로를 만들고, 걷기길을 만드는 등 상주를 새로운 아웃도어 명소로 탈바꿈시켰다.

희미한 산길을 따른다. 걷기라기엔 경사가 장사다. 부드러운 육산이라 위험한 데는 없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이 완전히 다져지지 않았다. 코가 닿을 것 같은 센 오르막을 거친 호흡으로 올라서는 길에 한숨 돌릴 만한 작은 바위 전망대가 나오는데 전 계장은 이곳이 퇴옹바위라고 한다. 터는 좁지만 속리산 천왕봉에서 소백산까지 장쾌하게 뻗은 백두대간 능선이 그림처럼 보인다.

상주 MRF 낙동강 칠백리길 개념도
상주 MRF 낙동강 칠백리길 개념도

마리산에는 퇴옹바위, 매호바위, 매중바위가 있으며 바위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 갈티고개에 퇴옹·매호·매중 3형제가 살았다. 형제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빈둥거리기 일쑤였다. 어느 날 도사를 만난 어머니가 자식들을 잘 이끌어달라고 하소연을 한다. 도사는 형제들에게 소원을 물었으나 그들은 도사를 조롱했다. 이에 화난 도사가 형제를 바위가 되게 했다고 한다.

퇴옹바위를 지나면 능선길이 이어진다. 다시 바싹 선 오르막을 올려치면 매호바위에 닿는다. 앞이 탁 트여 낙동강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발아래는 동디마을이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다. 강 너머로는 의성의 비봉산이 피라미드처럼 솟아 있다. 매호바위는 마치 야구장 홈플레이트 뒤쪽의 값비싼 지정석처럼 낙동강 풍경을 제대로 보여준다.

1 무리지어 핀 개망초는 낙동강 칠백리길에서 가장 흔한 길동무다. 
2 경북문화재로 지정된 퇴강성당.
1 무리지어 핀 개망초는 낙동강 칠백리길에서 가장 흔한 길동무다. 2 경북문화재로 지정된 퇴강성당.

산죽을 지나면 마리산 정상이다. 넓은 헬기장에 큼지막한 표지석과 작은 삼각점이 있다. 지난 5월 28일에 세운 따끈따끈한 표지석에는 산의 유래며 마을 소개가 담겨 있다. 동쪽으로 트여 있어 경치가 시원하지만 땡볕이라 오래 있진 못한다.

정상을 지나면 완만한 능선길이다. 나무가 빼곡한 숲이라 그늘져 기온에 비해 선선하다.  능선길에는 두 개의 이정표가 있는데 하나는 용해사 갈림길에, 다른 하나는 예술촌 갈림길이다. 이런 시골 야산에서는 드문, 설악산에서나 볼 법한 금강초롱이 수줍게 피어 있어 눈길을 끈다. 남근을 닮은 나무도 있어 농도 짙은 농담을 주고받기에 안성맞춤이다. 마지막 바위인 매중바위는 하산길 말미에 있다. 얼핏 보면 그저 간벌해 둔 작은 전망대 같지만 다가서서 자세히 보면 흙 아래가 바위임을 알 수 있다. 멀리 상주의 대표적인 명산인 갑장산이 상투처럼 특이하게 볼록 솟은 것이 인상적이다.

산을 내려서다 보면 능선이 잘린 곳을 잠깐 우회하게 되는데 옛날 규석 광산 터였다고 한다. 발아래 규석이 나뒹군다. 꽃뱀이라 불리는 유혈목이도 있어 걸음을 긴장하게 하지만 화들짝 도망치는 폼으로 봐선 더 놀란 건 저 녀석이다.

1 마리산 정상은 넓은 헬기장이라 경치가 시원하다. 
2 낙동강 칠백리길에서 가장 경치가 수려한 매호바위. 왼쪽부터 사벌면 김완수 계장, 상주시청 전병순 계장, 김진숙 면장, 김은숙 직원, 권택수 계장.
1 마리산 정상은 넓은 헬기장이라 경치가 시원하다. 2 낙동강 칠백리길에서 가장 경치가 수려한 매호바위. 왼쪽부터 사벌면 김완수 계장, 상주시청 전병순 계장, 김진숙 면장, 김은숙 직원, 권택수 계장.

도로를 만나면 산행은 끝이다. 걷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로 곁에 데크로 만든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 3.3km를 가면 ‘낙동강 칠백리’ 표지석에 닿는다. 오른쪽으로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걷는다. 논밭을 지나기도 하는데 농사짓던 어르신들이 ‘비싼 밥 먹고 왜 길에서 힘 빼나’ 싶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한다.

조우인문학비에는 그의 대표작인 매호별곡(梅湖別曲)이 적혀 있다. 벼슬을 버리고 매호마을에서 임호정과 어풍대를 짓고 자연에 묻혀 살겠다는 뜻을 유려한 필치로 표현했다. 여기서 280m 가면 어풍대가 있다. 지금은 정자는 없고 표지석만 남아 있다. 자전거길을  따라 1.9km 더 가면 낙동강 칠백리 표지석에 닿는다.

미니 인터뷰_김진숙 면장

표지석 세우는 사벌면의 여성 ‘돌 면장’

김진숙 사벌면장은 상주 24개 읍면에서 유일한 여성 장이다. 상주 토박이인 그녀는 일명 ‘돌 면장’으로 통한다. 낙동강면 면장으로 근무 시 나각산에 표지석을 세웠고, 지난 5월에는 사벌면 마리산에 대형 표지석을 세웠다. 헬기로 표지석을 옮겨 사벌면 최고봉에 이름표를 세웠다.

주변 사람들은 김 면장에 대해 여성 특유의 아기자기한 행정이 장점이라 한다. 집안 살림하듯 꼼꼼히 행정을 살핀다는 것이다. 상주 MRF에 새로 추가된 낙동강 칠백리길 역시 김 면장이 제안하고 상주시청의 전병순 계장이 길을 만들었다. 과거 문헌을 찾아 ‘마리산’이라 새로 이름 지은 것도 김 면장의 꼼꼼한 아이디어였다. 기존 ‘국사봉’이란 이름이 너무 흔하고 딱딱해 새로운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사벌은 들판이 넓어 예부터 벼농사를 지어 왕에게 진상했을 정도라고 한다. 김 면장은 “요즘은 사벌 배와 포도, 딸기, 참외가 인기”라며 침이 마르게 자랑한다. 더불어 하반기 예산을 투입해 마리산 산길을 더 깔끔하게 정비하겠다며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는 낙동강 칠백리길을 많이 찾아 달라”고 말한다.

걷기 가이드

산행 반 걷기 반이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처럼 적절히 섞었다. 마리산은 385m로 낮지만 산행이 쉽지만은 않다. 초반 바싹 선 오르막을 1km 정도 올라야 해 여유 있게 희희낙락 걸을 수 있는 걷기코스는 아니다. 다만 정상 이후로는 수월한 내리막이 이어져 편하게 갈 수 있다. 간간이 경치가 열리고 숲 그늘이 짙어 여름에도 무난히 갈 수 있다. MRF 이정표와 표지기, 파란 페인트의 화살표시만 살피면 길찾기 어려운 곳은 없다. 산행 후 낙동강 자전거길을 따라 3.3km 가면 출발지다. 9km에 4시간(휴식 시간 포함) 걸린다.

교통 중부내륙고속국도를 이용해 북상주 IC를 빠져나와 함창에서 사벌(풍양) 방향으로 꺾어서 가면 된다. 소요시간은 15분이다. 국도를 이용할 경우 함창 또는 상풍교 전방에서 좌측 퇴강으로 향하면 된다.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경우 ‘퇴강성당’을 입력하면 된다. 낙동강 칠백리 표석 공원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숙식 낙동강 칠백리 표석 앞에 퇴강매운탕식당(054-536 -7707)이 있다. 25년 된 매운탕 집으로 김중태ㆍ김미순 부부가 운영한다. 어부인 김중태씨가 낙동강에서 잡은 고기를 부인 김미순씨가 요리한다. 상주에서 가장 유명한 매운탕집이라는 사벌면장의 설명이다. 숙소는 문경 시내나 상주 시내로 나가야 한다.

1 퇴강매운탕의 자연산 민물고기매운탕.
2 식당을 운영하는 김중태ㆍ김미순 부부.
1 퇴강매운탕의 자연산 민물고기매운탕. 2 식당을 운영하는 김중태ㆍ김미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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