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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연재 / 북한 백두대간 ③ | 백두고원의 대노은산] 마른하늘에 먹구름 몰려오더니 천둥·번개 휘몰이

월간산
  • 입력 2013.02.1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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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김일성 동상 있는 대흥단 기념지 지나… 낙엽송 등 우거져

대노은산은 산림이 우거져 있고, 정상 주변엔 바위들이 솟아 악산의 모습을 보였다.
대노은산은 산림이 우거져 있고, 정상 주변엔 바위들이 솟아 악산의 모습을 보였다.

백두산에서 동쪽 멀찌감치에 있는 대노은산에 오르기로 했다. 신산경표에 따르면 이 산의 높이는 1,489m이다. 우리는 이 산으로 가기 위해 삼지연에서 동쪽으로 백두고원을 50km 가로질러 대흥단군으로 들어갔다. 도로는 포장되어 있지 않았으나 멋진 드라이브 코스였다. 앞으로 길 끝이 보이지 않는, 평평한 도로 양 옆으로 일본잎갈나무가 우거져 있었는데 가끔 나무를 제거한 방화대가 있었다. 또한 이 지역에는 감자밭이 많았다.

가던 도중 대흥단전투 기념지라는 곳에서 한 번 정차했다. 이곳은 일본 강점기 때 김일성이 일본군에 대한 공격을 처음으로 성공한 곳이라 했다. 이곳에서의 설명에 따르면, 1936년 4월 조선인민혁명군의 제7연대와 제8연대가 두 배나 병력이 많은 일본군을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혀 주요 항일전투에서 첫 대승을 이루게 되었다.

우리가 이날 오전 등산하려는 대노은산이 거대한 김일성 동상이 세워져 있는 이곳 전승기념지 뒤로 우뚝 서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 우리 일행을 대노은산으로 안내할 현지 가이드 김상수씨를 만났다. 미소를 잘 짓는 그는 친근해 보였다. 내가 경상북도에서 만난 한 명랑한 농부를 연상시켰다는 것이다.

우리 자동차가 30분 더 가서 대노은산의 북측에 자리 잡은 한 조용한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아 해가 밝고 따스하게 비쳤다. 시원하게 파란 하늘에 흰 구름들이 조금 있었다. 비가 바로 올 것 같지는 않았으나 6월 중순이라 이런 고지대에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대노은산 등산로 입구 주변에 있는 농장에서 감자·상추 등 다양한 밭작물을 기르고 있다.
대노은산 등산로 입구 주변에 있는 농장에서 감자·상추 등 다양한 밭작물을 기르고 있다.

마을 이름이 신사동이었다. 그래서 우리 자동차가 주차한 통나무집 스타일의 식당 이름도 ‘신사동’이었다. 작은 시내가 풀 사이로 꼬불꼬불 흘러 푸른 숲으로 들어갔다. 그 시내 위로 낮은 다리가 있는데, 우리가 방금 온 비포장도로가 그것에 연결되어 있었다.

등산에 가져갈 짐을 챙기면서 나는 이 마을이 풍기는 조용한 평화로움을 느꼈다. 맑고 밝은 노란색 옷을 입은 한 어린 소녀가 호기심을 가지고 내 근처로 다가왔다. 그런데 한 어른이 와서 살며시 그 애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아마도 외국인 공포증 때문이 아니라, 내 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으로 여기고 싶었다. 늘 나는 내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그 차이를 알 수 없었다. 하여간 북한 주민이 나를 싫어한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마을 이름도, 식당 이름도 ‘신사동’

나, 김상수, 황성철 그리고 삼지연의 가이드 방령 네 명이 산에 올랐다. 이제 나는 방령과 나흘째 함께 산행하는데, 그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 그는 동안(童顔)인데 책임감이  매우 강하며 열심히 일하고 전혀 불평이 없었다. 늘 그는 내 카메라 배낭을 대신 메어주겠다고 제의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날씨가 좋아서 우리는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해 햇빛이 비치는 소나무 숲 사이를 걸었다. 더러 땅바닥에 지난밤에 내린 빗물이 고여 있었다. 잠시 숲이 사라지고 농가의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집들은 나무와 진흙으로 지었는데, 대부분의 지붕은 황토색 기와로 덮여 있었다. 집 주위에는 감자, 상추 그리고 보리를 키우는 비옥해 보이는 밭들이 있었다. 밭 주위에 꽂혀 있는 가는 막대들은 넝쿨 작물을 올리기 위한 것인 듯싶었다. 한두 명의 노파가 밭에서 일할 뿐,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즐겁게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요란했다.

1 대노은산 자락에 넓게 퍼져 있는 일본잎갈나무 군락이 관목과 어울려 녹색의 빛을 발하고 있다. 
2 대노은산 등산로 입구 반대편에 있는 농장 전경.
1 대노은산 자락에 넓게 퍼져 있는 일본잎갈나무 군락이 관목과 어울려 녹색의 빛을 발하고 있다. 2 대노은산 등산로 입구 반대편에 있는 농장 전경.

우리는 멈추지 않고 다시 숲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제 앞서의 소나무가 없어지고 숲의 모습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나무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지만 숲이 자작나무, 밤나무 그리고 도토리나무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낮은 관목들도 있었는데, 분홍색의 생열귀나무 꽃들도 있었고, 바닥에는 고사리, 버섯, 허브식물 그리고 흰 꽃들이 섞여 있었다. 이런 식물들의 사진이 나의 스폰서인 녹색사업단에 쓸모 있을 것으로 희망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우리가 산의 중간쯤 올라갔을 때 아주 기억에 남을 귀중한 야생 식물과 만나게 되었다. 산길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우리는 마지막 한 시간 동안 울창한 숲을 헤치면서 가파른 비탈을 힘겹게 걸어 올라갔다. 빽빽한 덤불을 헤치고 극성인 곤충들과 싸워야 했고 이제 더위와 습기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김씨는 늘 훨씬 앞섰으며 때때로 시야에서 사라져서 우리가 그의 방향을 짐작하며 나아갔다.

우리는 큰 소리로 서로를 부르면서 일행이 흩어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 때때로 다시 모여 쉬기도 했다. 이렇게 쉬고 있을 때였다. 김씨가 나에게 평풍(병풍)이라는 식물을 알려주었다. 우리 중 아무도 전에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식물이었다. 약 60cm의 가는 줄기가 아주 넓은 잎을 받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식물의 가장 특이한 것은 그 맛이었다. 줄기를 씹으면 즙이 나오는데, 그 즙의 맛이 신 레몬 소프트드링크 같았다. 나는 그것이 레몬 슬라이스를 넣은 보드카에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다.

방령은 그것의 넓은 잎을 머리 위에 놓으면서 그것으로 비를 막는 삿갓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평풍의 또 다른 유용성을 지적했다. 우리가 평풍삿갓을 쓴 그의 모습을 보면서 웃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평풍 잎을 마치 파리채처럼 쳐서 팔뚝에 앉은 커다란 모기를 잡았다. 나는 어떤 모기인지 파리인지 잘 몰랐지만, 그것은 가위 모양의 날개와 아주 날카로운 주둥이를 가진 아프리카의 체체(tsetse)파리를 상기시켰다. 그 체체파리는 특히 사람의 상처에서 피를 빨아먹기를 좋아한다. 아프리카의 우거진 숲에서는 상처 나기가 다반사이다.

마른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온 대노은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비가 쏟아졌다.
마른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온 대노은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뒤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비가 쏟아졌다.

약 40분 뒤에 나는 정상 근처에 도달했다. 김씨는 이미 정상에 올라가 있었으며, 황성철과 방령은 내 뒤에 조금 처져 있었다. 가파른 경사가 사라지고 바닥이 평평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나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경치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무들이 사라지고 작은 깨끗한 바위가 나타났다. 김씨가 정상에 서서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악수를 하면서 대노은산을 등정한 것을 환영하고 나에게 서남쪽으로 펼쳐진 광활한 고원을 보라고 했다.

레몬 같은 신맛이 나는 평풍삿갓 자라

광대한 광경이 멀리 지평선까지 펼쳐졌다. 고원 위에 옅은 안개가 끼어 있어 투명도가 낮았으며, 멀리 남쪽에는 고약한 검은 뇌운 무리가 끓고 있었다. 모두 정상에 도착한 뒤 가져온 간식을 먹었다. 나는 꼭대기 주위를 돌면서 촬영 각도를 찾았다. 서쪽 고원 너머로 우리가 왔던 길이 보였다.

잠시 뒤 우리는 남쪽에서 검은 구름들이 빨리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구름 아래로 굵은 빗줄기가 땅에 떨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해일이 우리 쪽으로 몰려오는 것 같았다. 다른 일행은 다소 걱정을 하면서 떠나기를 원했으나, 나는 가능한 한 머물러 있자고 고집했다. 왜냐하면 그 광경이 굉장히 좋은 사진 소재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내키지 않았으나 나와 함께 머물렀다. 곧 폭우가 쏟아질 참이었다. 바람이 거세지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정상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한 번 더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 김씨는 나의 이런 집중을 흥미 있게 여기는 듯했다. 그 뒤 그가 숲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갔다. 빠른 하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방향은 올라올 때와 달랐다. 산길처럼 보였다. 그래서 움직이기가 더 쉬웠다.

이제 빗줄기가 굵어졌다.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바람이 나무들 사이로 거세게 불었다. 나는 자주 멈추어 우비가 카메라 장비를 잘 덮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때때로 미끄러운 산길에서 넘어졌다. 30분 뒤 폭풍이 누그러지고 비도 약해졌다. 우리가 작은 공지에 도착했을 때 김씨가 멈추었다. 추위로 인해 그의 넓적다리 근육에 쥐가 났기 때문이었다. 혈액 순환을 돕기 위해 내가 그의 넓적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우리는 미끄러운 산길을 따라 계속 하산했다. 약 한 시간 뒤 산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나 그곳은 우리가 등산을 시작한 곳이 아니었다. 난처하게 되었다.

1 대흥단 기념지의 김일성 대형동상. 뒤로 대노은산 능선이 보인다.  
2 60㎝의 가는 줄기에 우산 같은 큰 잎이 자라는 평풍삿갓.
1 대흥단 기념지의 김일성 대형동상. 뒤로 대노은산 능선이 보인다. 2 60㎝의 가는 줄기에 우산 같은 큰 잎이 자라는 평풍삿갓.

황성철이 휴대폰을 꺼내어 통화가 되는지를 알아보았는데, 놀랍게도 통화가 되었다. 그가 운전기사인 한명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편 김씨는 땅바닥에 펼쳐놓은 지도에서 막대로 가리키면서 우리의 위치로 짐작되는 곳을 한씨에게 설명했다. 우리가 산의 동북 방향으로 하산한 것이었다. 그곳에는 농가가 많지 않았다. 일행들의 옷이 상당히 젖어서 우리는 폐허가 된 한 건물에서 비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약 30분 뒤 우리는 자동차가 올 것으로 예상되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얼마 뒤 우리를 태우러 오는 자동차와 만났다. 옷은 젖어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기분이 좋았다.

흔히 등산가들은 하산 뒤 유쾌하기 마련이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우리는 작은 식당이 있는 신사동으로 이동했다. 식당의 내부는 흰 벽 가운데 둥근 테이블들이 있을 뿐이었다. 한 테이블에 작업복을 입은 두 젊은이가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술잔을 내밀면서 나에게 술을 권해 받아 마셨다. 술은 유명한 대흥단 감자소주였다. 그것은 30도로 독했다.

하산주로 30도인 대흥단 감자소주 마셔

우리 일행도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주 메뉴인 보쌈 외에 우리가 가져간 재료로 조리한 라면, 물김치 등이 나왔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대흥단 감자소주를 마셨다. 술맛이 부드러워서인지 630ml짜리 첫 병을 바로 비웠다. 소주를 마셔서인지 모두 기분이 좋아졌다. 감자는 내 고향 뉴질랜드에서도 잘 먹는 식품인데, 그것으로 만든 술에 빨리 취하게 되었다.

조금 뒤 종이로 만든 요리사 모자를 쓴 한 나이 든 여자가 나와, 우리더러 왜 바보스럽게 추운 자리에 앉았느냐고 말했다. 그녀는 햇볕이 쪼이는 벽 쪽으로 가서 벽에 손을 대고 그쪽에 앉으면 더 따뜻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그녀가 조리한 맛있는 음식과 감자소주 덕분에 따뜻하고 기분이 좋다고 답변했다. 모두 껄껄 웃었다. 감자소주 한 병이 더 나왔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우리는 곤충, 식용 식물, 폭우, 그리고 길을 잃은 일 등 그날의 산행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상수씨는 사람들을 잘 대접하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했다.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 김씨가 주방으로 가더니 감자소주 한 병을 가지고 나와서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내가 기꺼이 받으면서, 만약 내가 돌아갈 때까지 그 술이 남으면 남한에 가서 산친구들과 함께 마시겠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타고 삼지연의 우리 호텔로 돌아왔다.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함께 등산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남한에서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산은 한국인의 진정한 정체성을 연결해 주는 듯 느껴졌다. 

현지 가이드 김상수씨가 로저에게 감자소주를 한 병 선물하고 있다.
현지 가이드 김상수씨가 로저에게 감자소주를 한 병 선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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