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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특파원 르포 | 세이셸 <하>] 희귀한 식생과 곤충, 푸른 하늘과 끝없는 수평선… 세이셸 몬 블랑은 ‘지상낙원’

글·사진 | 박정원 부장대우
  • 입력 2014.05.1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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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양객 가장 많이 찾는 트레킹 코스… 원점 돌아와도 2시간 남짓 걸려

밀림 같이 우거진 등산로를 산악가이드 테렌스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려오고 있다.
밀림 같이 우거진 등산로를 산악가이드 테렌스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내려오고 있다.

지상의 마지막 낙원이라 불리는 세이셸 군도. 115개의 섬으로 이뤄진 세이셸은 유럽과 중동의 부호들이 많이 찾는 최고급 휴양지다. 잘 보존된 자연, 열대지방이지만 쾌적한 기후, 산호가 부서져 만들어진 부드럽고 새하얀 모래는 환상적인 해변을 보여 준다.

세계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 번 가본 사람이라면 환상적인 해변이 지천에 널려 있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또한 늘씬한 미녀들이 비키니를 입고 일광욕하는 모습은 어디서나 눈길을 끈다. 풍광에 빠지고 사람에 반하게 하는 세이셸이다.  

이 조그만 섬에도 여러 트레킹 코스가 있다. 정글 탐험을 무색케 하는 최고봉 몬 세이셸로이스(Morne Seychellois)까지 오르는 코스, 정상 남동쪽으로 위치한 몬 블랑(Morne Blanc·650m) 등이 있다. 특히 몬 블랑 코스는 도시에서 접근이 편리하고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어 많은 휴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지난 4월호에는 최정상 몬 세이셸로이스를 소개했고, 이번 호에는 또 다른 봉우리 몬 블랑 코스로 올라가보자.

등산로 주변 나무에 등산객들이 그려놓은 듯 가끔 하트모양이 새겨져 있다.
등산로 주변 나무에 등산객들이 그려놓은 듯 가끔 하트모양이 새겨져 있다.
고도를 높일수록 이끼가 잔뜩 낀 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고도를 높일수록 이끼가 잔뜩 낀 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산악 가이드 테렌스 벨(Terence Belle)이 안내했다. 테렌스는 체구가 100kg 이상은 족히 돼 보였다. ‘이 덩치로 산을 오르기 쉽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부터 들게 한다. 등산 입구에는 안내 이정표가 지명과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 지역은 몬 세이셸로이스국립공원이며, 몬 블랑 하이킹 코스 출입구라는 표시다. 등산 입구는 GPS로 해발 442m. 약 200m 오르면 정상이다. 등산로는 잘 조성돼 있다.

산은 역시 천혜의 자연을 자랑한다. 숲을 바라보는 순간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이 든다. 테렌스도 등산로 옆에 있는 레몬 그라스(Lemon Grass)를 가리키며 호흡을 가볍게 순환시켜 주는 식물이라고 소개한다. 우리의 녹차 같은 나무다. 이어서 코코팜(CoCo Palm) 나무도 설명한다. 나뭇잎을 묶어서 로프로 사용하는 나무라고. 또 수액을 빼서 상처 난 데 바르면 낫고 추잉검으로 사용하는 시나먼 베룸(Cimmon Verum)도 가리킨다. 이 친구는 말을 꺼냈다 하면 전부 세이셸 특산 동식물이라고 한다. 새도 마찬가지다. 유난히 우는 소리가 크고 도전적인 새를 가리키며 불불(Bulbul)이라며 세이셸에서만 산다고 한다. 그러려니 하고 듣는다.

세계적인 희귀종 다양하게 서식

드디어 세이셸에서만 서식하는 세계적인 희귀종이 나타났다. 이미 각국 언론들이 보도한 희귀종이다. 테렌스가 숲 한쪽 구석을 유심히 보더니 뭔가를 하나 집어 손바닥에 얹는다. 너무 작아 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소글루셔스’라고 부르는 ‘가디너 개구리(Gardiner's frog)’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로 공식 인정된 개체다. 손톱보다도 작고 몸 전체 길이가 1cm도 채 안 되는 종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조사팀이 세이셸에서 발견했다고 2013년 9월 보도한 바 있다. 이 종이 알려진 것이 불과 1년도 안 된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만 한 달팽이도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만 한 달팽이도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로 알려져 있는 소글루셔스를 잡아 가이드 테렌스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로 알려져 있는 소글루셔스를 잡아 가이드 테렌스 손바닥에 올려놓고 있다.

테렌스는 조금 더 가다 나뭇잎에서 또 뭘 하나 줍더니 손바닥에 얹으며 보라고 한다. 이번엔 베치 누더스 나이저(Batch Nudus Niger)라고 부르는 세계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와 비슷한 크기의 달팽이였다.

정말 테렌스가 자랑할 정도로 희귀동식물이 많기는 많다. 식생도 엄청 풍부하다. 하지만 이들이 전부 세이셸에서만 서식하는 종은 아니지 싶다.

등산로는 평소 등산객들이 많이 다닌 듯했다. 길이 반들반들할 정도다. 나무줄기에 누군가 하트 모양을 새겨 사랑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사람들이 나무에 남긴 흔적은 많다. 휴양객들이 해변에서 쉬는 것만 아니고 때로는 산을 오르는 트레킹도 많이 즐기는 것 같다.

숲은 전부 활엽수림이다. 열대지방이라 침엽수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기후는 덥지만 활엽수가 햇빛을 막아 시원한 느낌을 준다. 숲속의 이끼들은 숲을 더욱 시원하게 만든다. 숲이 너무 우거져 작은 섬이지만 바다조차 볼 수 없다. 가끔 전망이 터지기도 한다. 이 때 바라보는 인도양은 끝이 없다. 다이빙하면 바로 바다로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산악가이드 테렌스가 몬 블랑 입구에서 등산코스를 설명하고 있다.
산악가이드 테렌스가 몬 블랑 입구에서 등산코스를 설명하고 있다.
몬 블랑도 고도가 높아질수록 수종 차이를 확연히 드러냈다. 상층부에는 이끼류가 확실히 눈에 많이 띄었다.
몬 블랑도 고도가 높아질수록 수종 차이를 확연히 드러냈다. 상층부에는 이끼류가 확실히 눈에 많이 띄었다.

정상이 가까이 다가오는 듯 이끼가 더욱 많이 보인다.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이기 때문에 조그만 고도차에도 식생의 차이를 많이 나타낸다. 굵은 나무들이 넘어져 밀림을 방불케 한다. 가끔 트인 나무 사이로 북서쪽에 있는 최고봉 몬 세이셸로이스도 얼핏 보인다. 1,000m도 안 되는 높이지만 섬의 최고봉이라 구름이 항상 모여 있다. 때로는 이들이 수시로 비를 뿌린다. 인도양의 구름은 1,000m의 높이도 굉장히 높은 것 같다.

밀림 속 나무줄기에 하트 모양 누군가 새겨

드디어 정상이다. 출발한 지 1시간18분 만인 오전 10시58분 정상에 도착했다. 사방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인도양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섬들과 아름다운 산호초 해변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 점 티 없는 푸른 하늘과 드넓게 펼쳐진 수평선, 정말 환상적이다. 이게 바로 낙원이지 싶다. 세이셸을 지상의 마지막 낙원이고 에덴의 섬이라 부르는 게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정상에는 안전하게 바다를 바라볼 수 있도록 나무데크를 조성하고 있다. 그 데크에 세계 각국의 글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만국공통어는 하트 모양이다. 부부나 연인들이 많이 온 것 같다. 다른 글자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정상 부근에서 고슴도치가 한 마리 슬쩍 모습을 비추더니 인기척을 느꼈는지 그대로 굴속으로 슬그머니 들어간다. 신기한 모습이다. 테렌스는 다시 한 번 소글루셔스를 잡아 손바닥에 얹으며 보라고 한다. 나를 보며 “행운아”라고 한다. 세계적인 희귀종을 하루에 두 번씩이나 봤다고 그런다. 

세이셸 몬 블랑 개념도
세이셸 몬 블랑 개념도

산에서 오르는 길과 내려가는 길은 또 다르다. 아니 모든 길이 그러할지 모르겠다. 정말 신기하게도 올라온 길 그대로 내려가는 데도 전혀 처음 보는 길이다. 사람의 앞뒤 모습처럼 말이다.

테렌스는 세이셸에 1억5,000만 년 전에 형성된 숲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고 강조한다. 숲의 규모는 섬만큼 작지만 식생이 풍부하고 원시림 상태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저 밑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여자가 혼자 올라오고 있다. 그것도 치마를 입고.

“혼자 왔냐?”

그 뒤에 남자가 올라오고 있다. 남편이란다. 독일인 부부다. 여자는 치마를 입고, 남자는 샌들을 신고 산을 오르고 있다. 그 모습도 신기하게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이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다.

“세이셸에 어떻게 왔느냐?”

내가 두바이를 거쳐서 왔다고 하자, 그들도 독일에서 두바이를 거쳐 왔다고 응답한다. 정상까지 고도는 100m가 채 안 되고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정보를 알려 주자 고맙다고 인사한다. 이들은 “저 아래에서 70~80cm 되는 녹색 뱀을 보고 두려워 조심조심 움직였다”며 우리에게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가이드 테렌스는 “세이셸에 있는 뱀들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설명하며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고는 발길을 돌린다.

등산로는 비교적 잘 보였지만 간혹 이끼가 덮여 움푹 빠지는 구간이 있다.
등산로는 비교적 잘 보였지만 간혹 이끼가 덮여 움푹 빠지는 구간이 있다.
몬 블랑 정상에는 나무 데크를 깔아 사방 해변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나무 데크에는 세계 각지의 낙서가 새겨져 있다.
몬 블랑 정상에는 나무 데크를 깔아 사방 해변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나무 데크에는 세계 각지의 낙서가 새겨져 있다.

또 사람 소리가 들린다. 이번에는 젊은 독일인 부부다.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묻는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비슷한 거 같다. 한국에서도 하산길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항상 묻는 말은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냐”다. GPS를 확인한 뒤 지금 현재 고도와 정상 고도를 알려 주고 대충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고 말하자 “퍼펙트”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세 번째 사람을 만났다. 이들도 독일인이다. 너무 젊어서 부부인지 연인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다. 젊어서 별로 말이 없이 고개만 끄덕하고 그냥 지나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닌 듯 등산로는 반들반들

이 트레킹 코스는 반들반들한 등산로 상태가 보여 주듯 사람들이 많이 찾는 듯했다. 올라가는 나무줄기에 있는 하트 모양이나, 정상 데크에 새겨진 글자들이나, 내려오면서 만난 독일인 부부 세 쌍에서 보듯 휴양객들이 심심찮게 즐기는 것 같다.

원점으로 돌아왔다. 아직 오전 11시30분이다. 거구의 산악가이드 테렌스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우 빨리 갔다 왔다”고 했다. 거리를 확인해 보니 2.5km 정도 됐다. 왕복 2.5km에 2시간 정도 걸렸으면 지극히 정상적으로 갔다 온 것이다. 이 친구는 자기 체구를 감당하지 못해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어쨌든 1톤에 이르는 가이드 테렌스 덕분에 세이셸 휴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트레킹 코스를 무사히, 그리고 가볍게 끝냈다. 인도양의 끝없는 수평선과 티끌 하나 없는 푸른 하늘, 그리고 세이셸의 희귀하고 다양한 식생과 동식물을 확인한 환상적인 트레킹이었다.

세계 최고의 해변과 세계 최고 휴양지 ‘노스아일랜드’   
1박에 700만~1,000만 원선… 섬 하나 통째 빌려 완벽한 프라이버시 보호
 

세계 최고의 해변으로 꼽힌 앙세소스다종 해변에서 휴양객들이 즐기고 있다. 이곳은 연중 내내 휴양객이 끊이질 않는다.
세계 최고의 해변으로 꼽힌 앙세소스다종 해변에서 휴양객들이 즐기고 있다. 이곳은 연중 내내 휴양객이 끊이질 않는다.

세이셸의 크고 작은 화강암 섬들 중에 가장 변화무쌍한 화강암 해변을 자랑하는 섬이 라디그(La Digue Island)다. 라디그섬 안에 있는 앙세소스다종(Anse Source de dargent) 해변은 세이셸을 가장 대표하는 해변이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장관을 그대로 보여 준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는 명소다. 햇빛의 각도에 따라 핑크빛과 회색빛을 오가는 해변가의 거대한 화강암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라디그섬을 둘러보는 가장 효과적인 교통수단은 자전거와 우마차다. 자전거를 대여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해변가에도 휴양객들이 타고 온 자전거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섬이 작아서 자전거를 타고 2~3시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따스한 햇살과 짙푸른 야자수 아래를 달리다보면 산호초에서 나온 희디흰 백사장과 대비를 이루는 기암괴석, 크레올 방식의 코코넛 가공공장, 바닐라 농장 등이 여행객의 눈길을 끈다.

이 아름다운 해변은 노출을 꺼리는 세계적인 명사들의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특급 리조트는 하루에 700만~1,000만 원까지 한다. 일반인들이 1박하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다. 그 중 노스아일랜드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영국 윌리엄 왕세손 등이 묵은 곳으로 유명하다. 노스아일랜드 리조트는 섬 하나를 통째로 쓴다.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원하기 때문이다. 영국 윌리엄 왕세손이 끈질긴 파파라치를 따돌리고 애인과 보내기 위해서 찾았던 곳이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도 노스아일랜드에서 묵었다.

세이셸은 멸종위기종 자이언트거북의 유일한 서식지   
세계 최고령 거북도 살아… 한국 여수에 암수 한 쌍 영구임대 해줘
 

세계 최고령을 자랑하는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자이언트거북’ 서식지가 바로 세이셸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수엑스포 개최 당시 세이셸에서 암수 한 쌍을 영구 임대해 줘 화제가 됐었다. 이 장수거북은 아직 새끼 소식은 없지만 여수에서 잘 지내는 걸로 알려져 있다. 한때 암놈이 영 힘이 없어 수의사를 부르는 등 여수시에서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여수시에서는 수놈이 괴롭히는가 싶어 암수를 격리시켜 놓기도 했다.

자이언트거북은 ‘알다브라 자이언트거북(Aldabra Giant Tortoise)’종으로,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 코로모, 알다브라 등에 널리 분포했지만 지금은 멸종위기에 처해 세이셸에서만 볼 수 있다. 한때는 최고 개체수 15만 마리를 자랑했다. 세이셸 거북은 다 자라면 무게가 300kg이 넘고, 평균 수명은 100살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살로 세계 최장수 거북인 ‘에메랄다(Emeralda)’는 기네스북에 등재된 상태다.

세이셸에는 우스개 통계가 있다. 세이셸 인구가 8만5,000명인데 반해 거북이 수가 8만8,000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보다 많은 거북이라고 해서 ‘거북이나라’라고 부를 정도다. 실제로 세이셸 사람들은 거북이처럼 일 처리에 있어 원칙에 충실하고 서두르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 열대지방 기후 탓이기도 하지만 사람들 표정은 어딜 가나 안정된 모습이다.

자이언트거북의 주요 서식지는 라디그섬의 앙스 소스다종 해변 가기 전에 섬 중앙에 있다. 이들은 열대지방의 활엽수를 먹이로 삼으며, 군락을 이루며 살고 있다. 동작도 느릿느릿 시간의 흐름을 잊게 한다. 100㎏ 이상 되는 자이언트거북이 그 큰 체구를 나뭇잎으로 어떻게 유지할까 싶을 정도다. 세이셸에 가면 꼭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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