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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명산순례기 | 포천시·철원군 각흘산] 전쟁의 야만을 딛고 일어선 평화의 땅

글 · 사진 윤제학 동화작가·월간山 기획위원
  • 입력 2017.11.07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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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흘산 능선에서 바라본 용화저수지. 저수지 너머로 가장 높은 산이 금학산이고 그 왼쪽이 고대산이다.
각흘산 능선에서 바라본 용화저수지. 저수지 너머로 가장 높은 산이 금학산이고 그 왼쪽이 고대산이다.

지금 우리 산하는 풍화하는 초목의 숨결로 가득하다. 어떤 숨결, 이를테면 계수나무의 그것은 매혹적이다. 솜사탕 냄새와 흡사한데, 그것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우아하다. 갓 베어낸 벼에서는 논흙 냄새가 짙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의 후각은 썩 신통한 편은 아니어서(계수나무 정도를 제외하고는) 단풍 들 때의 나뭇잎 냄새는 맡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편집적으로 시각에 매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이 계절의 은행 냄새는 ‘훔쳐보기’도 서슴지 않는 인간의 과도한 시각 의존에 대한 야유인 것 같기도 하다.

지금처럼 아파트가 보편화되기 전 빨랫줄에 널어 말린 옷에서 나는 가을 햇볕 냄새는 정말 향기로웠다. 기억 속의 그 냄새마저도 이제는 섬유 유연제가 가로막는다. 이래저래 우리의 코는 음식, 매연, 화장품 냄새 사이를 오가며 더욱 무디어진다. 코의 감각이 둔해진다는 것은 시각에 그 몫만큼의 감각이 옮겨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몽골처럼 광활한 초원을 갖지 못한 우리로서는 혹사당하는 눈에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산과 숲을 찾는 일이 가장 쉬울 것이다.

가을에 산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단풍’이 아닐까 싶다. 1년에 딱 한 번 산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 계절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오로지 눈의 황홀을 위해 산을 찾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올 여름도 잘 넘기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스스로에 건네는 위로, 앞으로 다가올 앙상한 계절을 대비한 충전의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는 그런 것들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나무와 풀처럼,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심리적 광합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설악산에 첫 단풍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지 꽤 몇 날이 지난 것 같은데 아직 내장산 단풍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올해 단풍은 예년보다 늦다. 온난화 영향이라고도 하고, 일교차가 크지 않아서 그렇다고도 한다. 어쨌든 멀지 않아 남녘의 산하도 마지막 가을 햇볕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가을 산행지를 선택할 때는 별 고민을 하지 않는다. 가급적 단풍으로 유명한 산은 피한다는 원칙을 따르면 가고 싶은 산이 여기저기서 솟아오른다. 각흘산도 그렇게 다가왔다.

각흘산 정상 서쪽 기슭.
각흘산 정상 서쪽 기슭.

정상 조망뿐 아니라 계곡의 호젓함 일품

각흘산(838.2m)은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과 강원도 철원군의 갈말읍과 서면에 걸쳐 있다. 한북정맥의 광덕산(1,046m)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온 가지줄기에 맺힌 산인데, 이 산에서 다시 산줄기는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북쪽은 대득봉(630m)으로 뻗고, 서남쪽은 명성산(923m)으로 이어진다. 명성산에서 서남쪽으로 여러 갈래 나누어지는 산줄기는 한탄강 동쪽에서 멈춘다.

각흘산은 널리 알려진 산이 아니다. 38선 이북인데다 군사지역인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이 산이 숨겨진 산이라는 건 포천과 철원의 경계에 있지만 두 지자체의 홈페이지 모두 이 산에 대해 소개하지 않는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이 산을 찾게 된 건 동쪽으로 47번 지방도가 넘나드는, 각흘산과 광덕산 사이의 고갯마루인 ‘자등현’에서 각흘봉 정상까지 2.7km의 능선길이 그리 가파르지 않고 정상의 조망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명성산까지의 종주산행이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등현은 <대동여지도>에도 현 위치와 거의 일치하는 곳에 ‘自燈峴’으로 지명이 표기돼 있다. 조선시대에도 포천현에서 북동쪽으로 영평현, 김화현을 잇는 주요 길목이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慈燈山자등산’이라는 이름이 ‘영평현’ 산천 조에 보이는데, ‘현 동북쪽 50리 지점에 있다’는 설명으로 보아 현재의 자등현 근처에 있는 산을 가리켰을 개연성이 높다.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건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말하는 ‘자등산’이 현재의 각흘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아주 터무니없지는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만 해도 각흘산의 존재는 사람들의 인식 속에 분명히 자리했을 것 같다. 그런데 왜 각흘산은 현대에 들어 숨어 있다시피 한 산이 되었을까. 남북 분단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가보면 느끼겠지만 분단의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각흘산 정상.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각흘산 정상.
각흘산은 그 이름만으로도 상상할 수 있듯이 정상과 능선에서의 조망이 빼어난 산이다. 하지만 그것은 각흘산이 가진 매력의 절반이다. 나머지 반, 어쩌면 각흘산을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건 산 동쪽 자락의 계곡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폭포의 목소리가 우렁찬 깊고 넓은 계곡은 아니지만, 호젓하고 순박하면서도 고매한 은사隱士를 보는 듯하다. 정상과 능선의 조망만을 즐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각흘계곡에서 정상을 올라 자등현으로 내려서거나 그 반대로 하는 것이 각흘산을 제대로 만나는 길이 될 것이다. 요즘처럼 단풍 드는 계절이라면 당연히 계곡을 들머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어느 산이든 볕이 넉넉히 드는 계곡의 단풍이 기슭보다 고운 법이다.

자등현 남쪽 1.2km 지점, 한국성서대학교 수양관 맞은편에서 산자락으로 다가서자 곧바로 계곡이다. 계류는 온화하면서도 섬세하게 암반을 어루만진다. 벌써 일대사를 마친 신갈나무와 단풍나무 사이로 보이는 계류에는 비취빛이 감돈다. 단 한 번도 적의를 품어본 적이 없는 사슴의 눈빛이 이러지 않을까 싶다. 한참 물빛을 바라보며 눈을 씻는다.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이 계곡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징검다리를 건너듯 바위를 딛고 계곡을 오른다. 10분쯤 지나자 와폭이 암반의 목젖을 적시듯 흘러내린다. 계곡으로 얼굴을 내민 나뭇잎들은 거의 다 물들었다. 기슭을 돌자 계류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색색으로 물든 잎들이 물 위에 떨어져 함빡 웃는다. 생명체의 사멸을 보며 웃는다고 느낄 수 있는 건, 저 잎들의 지난 삶이 순수한 생명 의지 외에 어떤 욕망도 품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가을 숲의 열반락을 조금의 질투심도 없이 부러워하고 있다. 더없는 즐거움이다. 눈길을 떼는 순간 까맣게 잊을망정.

계곡은 살금살금 높아진다. 거의 경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이런 길은 아껴 걷는 기분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렇게 걸어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지나자 계곡이 벌떡 허리를 일으켜 세운다. 산기슭 나무들의 단풍은 거의 절정이다.

빨려 들어가듯 비탈을 오른다. 가까이서 본 잎들은 온갖 상처를 지니고 있다. 완전히 물들지 못하고 얼어서 웅크린 모습으로 시든 잎들도 많다. 며칠 전 비가 내린 다음 추운 밤을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단풍 든 숲의 아름다움에 조금의 흠도 아니다. 나무의 개별성을 소거시키지 않으면서도 한 몸으로 존재하는 숲. 나무와 숲은 분리되지 않는다.

참나무숲은 아직 푸르러서 빨갛게 물든 단풍과 묘한 대조를 보인다. 아직 햇빛과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남은 모양이다. 그 사연이 궁금할 즈음 홀연히 능선이다. 내가 올라선 것이 아니라 올려 세워진 느낌이다. 억새꽃이 구름을 흔들고 있다.

1. 방화선을 만드느라 불모지가 되어 버린 각흘산 능선. 2. 옥담이라 불러도 좋을, 각흘계곡의 계류.
1. 방화선을 만드느라 불모지가 되어 버린 각흘산 능선. 2. 옥담이라 불러도 좋을, 각흘계곡의 계류.
불모의 띠 푸른 숲으로 바뀌기를 기대

능선에서 바라본 정상부의 모양은 왜 이 산의 이름이 ‘각흘角屹’인지를 단박에 알게 한다. 정상부는 말끔한 삼각형을 이루었다. 군더더기가 없어서 우뚝 솟아 보이는 것이다. 이곳 능선에서 정상 반대쪽으로 가면 명성산이다.

등성마루는 마치 사막의 일부를 떼다 놓은 듯 기묘한 풍경이 정상으로 이어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남북 분단에 의한 상처다. 각흘산 정상에서 북서쪽 능선, 남서쪽 기슭에서 용화저수지를 향해 타원형으로 불모의 띠가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는 포 사격장이다. 사격 훈련 시 산불이 날 경우를 대비해 ‘방화선’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런 걸 두고 고육지책이라 할 것이다. 비극적 풍경이긴 하지만 방화선을 이룬 능선은 탁월한 조망감을 안겨 준다. 서쪽으로 용화저수지 너머 신철원 일대와 금학산과 고대산, 동쪽으로 한북정맥의 광덕산과 백운산, 남서쪽으로 명성산으로 향하며 너울거리는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용화저수지 또한 비극적 산물이다. 6·25 전쟁 이후 북한에서 철원평야를 적시던 평강군의 봉래호 물줄기를 황해도 쪽으로 돌려 버렸기 때문이다. 철원평야가 가뭄에 시달리며 황폐화되자 1960대부터 용화저수지와 하갈저수지, 토교저수지 등을 만들고 한탄강 물을 끌어 쓰면서 물 걱정을 덜게 되었다. 각흘산의 넉넉한 품에 안겨 하늘의 시린 기운까지 듬뿍 담은 평화로운 산속의 호수가 실은 ‘야만’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기막힌 역설이다.

사막 같은 능선을 지나면 정상을 향하는 암릉이 이어진다. 바위 사이로 길이 있고 안전시설도 돼 있어서 위험한 구간은 거의 없다. 정상은 아래서 바라볼 때와는 달리 품이 넓어서 바람도 구름도 편안히 쉬어 간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내려서면 출입을 통제하는 안내판이 나온다. 이곳에서 한 마장쯤 편안한 내리막 능선을 따라 걷다 잣나무 숲을 지나면 자등현이다. 잣나무 숲을 보며 상상해 본다. 각흘산 능선의 불모지가 푸른 숲으로 바뀌는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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