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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새연재 백두대간 에코 트레일 | 3~5구간 만복대 고남산 구간] 저 웅장한 산줄기가 부르는 소리!

월간산
  • 입력 2018.05.09 10:23
  • 수정 2018.12.18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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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야크와 함께하는 백두대간 에코트레일 3~5구간 종주

열린 경치로 1만 가지 즐거움을 주는 만복대를 오른다.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는 만복대는 산행의 즐거움으로 따져도 복된 산이 분명하다.
열린 경치로 1만 가지 즐거움을 주는 만복대를 오른다.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는 만복대는 산행의 즐거움으로 따져도 복된 산이 분명하다.

실로 오랜만의 대간종주. 산에 두고 온 사람을 다시 찾으러 가는 기분이었다. 아련한 감상에서 멱살잡이로 거칠게 깨운 건 성삼재였다.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수가 지키던 성터의 바람은 매서웠다. 태풍에 준하는 강풍 경보가 내린 날이었고,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대간에 몸을 실었다. 산불방지 입산금지 기간이었으나 공단의 특별허가를 받아 입산했다.      

블랙야크 셰르파 3명이 함께하기로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신치호씨만 참가했다. 급히 힘 좋은 여성 백패커 민미정씨를 불러 함께 입산했다. 마을엔 벚꽃이 피었다 지는데, 1000고지 능선은 신갈과 물푸레나무가 바들바들 떨고 있다. 기력이 떨어진 늙은 겨울은 고산능선에서 마지막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풍수적으로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는 만복대萬福臺, 경치로 보나 푸근한 산세로 보나 등산인의 입장에선 복스러운 산이 분명하나 오늘은 아니다. 위아래 없는 폭도 같은 바람이 전망바위에 올라선 사람을 금방 끄집어 내린다.

고리봉에 올라서자 지리산에 왔음이 실감난다. 반야봉의 튼실한 엉덩이며 노고단에서 성삼재로 이어진 우아한 능선이며, 볼 건 많지만 바람의 등살에 밀려 오래 머물지 못한다. 고리봉을 둘러싼 진달래는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지만, 여차하면 용기 있게 분홍색 파문을 일으킬 기세다. 지리산 서북능선에는 두 개의 고리봉이 있는데 높이로 구분해, 성삼재 곁의 1248m봉을 작은 고리봉, 정령치 곁의 1304.5m봉을 큰 고리봉이라 부른다.

고남산 지나 사치재로 이어진 솔숲길을 밝은 표정으로 걷는 신치호·민미정씨. 백두대간은 고도가 낮으면 낮은 대로 편안하고 고즈넉한 산행의 즐거움이 있다.
고남산 지나 사치재로 이어진 솔숲길을 밝은 표정으로 걷는 신치호·민미정씨. 백두대간은 고도가 낮으면 낮은 대로 편안하고 고즈넉한 산행의 즐거움이 있다.
작은 고리봉 지나 만복대 정상을 향해 올라선다. 고산능선인 탓에 4월 중순이 되도록 나뭇가지는 앙상하지만, 노고단에서 고리봉으로 이어진 능선의 장쾌함은 일품이다.
작은 고리봉 지나 만복대 정상을 향해 올라선다. 고산능선인 탓에 4월 중순이 되도록 나뭇가지는 앙상하지만, 노고단에서 고리봉으로 이어진 능선의 장쾌함은 일품이다.

소의 등처럼 편편한 만복대가 둥글고 푸근한 덩치로 ‘어서 오라’ 손짓한다. 진달래와 달리 꼬장꼬장한 심지 굳은 줄기가 제공권을 장악했다. 지금은 앙상해도 5월 말이면 핑크빛 치마를 두르고 철쭉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발품 파는 맛이 난다. 키 작은 철쭉과 억새 탓에 고도를 높이는 족족 시원한 풍경으로 되갚는다. 굽이치며 흘러가는 웅장한 산줄기에 속이 뻥 뚫린다. 정말 백두대간다운 스케일이다. 1만 가지 복을 가져다 줄 것 같은 만복대 정상에선, 지리산 주능선이며 남원 운봉 일대가 훤히 드러난다. 동장군의 잔당 등살에 못 이겨 곧장 내려선다. 북사면 능선에는 잔설이 지뢰처럼 드문드문 남아 있다.

시장바닥처럼 생존을 위해선 못 할 것이 없는 활엽수 숲에서, 흰 수염 도사 같은 침엽수가 걸음을 세운다. 한국 토종 지리산 구상나무. 숱한 바람에도 꺾이지 않은 곧은 기개며, 세월의 깊이를 머금은 옹골찬 초록잎까지 격식 있고 고상한 모양새다. 인내와 절제를 바탕으로 느리고 느리게 자라 거목이 되었으니, 그 세월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관광객들이 경치를 즐기는 정령치휴게소에서 컵라면으로 점심 요기를 한다. 정령치鄭嶺峙는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씨 성을 가진 장군에게 성을 쌓고 지키게 했다는 데서 유래했다.

큰 고리봉이 형님다운 가파른 위세를 과시하지만, 이미 능선의 흐름을 탔기에 어렵지 않게 올라선다. 바래봉 방향을 버리고 하산길처럼 뚝 떨어지는 고기리행 대간줄기로 내려선다. 시간이 촉박하다. 오늘 여원재까지 가고, 내일 사치재까지 가야 하는데, 걸음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만복대 정상 부근의 암릉 지대를 지난다. 강풍주의보가 내린 탓에 벼랑길을 걷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만복대 정상 부근의 암릉 지대를 지난다. 강풍주의보가 내린 탓에 벼랑길을 걷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매요마을과 사치재 사이의 618m봉 너덜을 내려선다. 고남산 이후로는 대간꾼들의 흔적만 남아 있다.
매요마을과 사치재 사이의 618m봉 너덜을 내려선다. 고남산 이후로는 대간꾼들의 흔적만 남아 있다.

아랑곳 않고 오후의 햇살이 시원하게 뻗은 낙엽송숲으로 운치 있게 떨어지고, 잣나무와 소나무가 번갈아 나온다. 이제야 봄 분위기가 난다. 노란 꽃피운 생강나무가 나들이 나온 아이들처럼 귀엽게 흔들거린다. 대간의 품격을 담은 무게감 있는 소나무숲을 지나자 도로가 지나는 고기리삼거리다.

버스라도 타고 질러가고 싶지만 도로가 지나는 낮은 능선도 대간이다. 능선이 아닌 평지 같지만 실상 고도 580m가 넘는 대간 자락이다. 주천면 자체가 고산 분지이기에 평지인 듯 느껴지는 것이다.

4마리 청룡 같은 아름드리 소나무

노치마을에서 다신 산길로 든다. 산수유가 핀 돌담길을 따라 오르자 대나무숲을 지나 청룡 같은 소나무 4그루가 길목을 지키고 있다. 250년 된 보호수인데 자태가 우아하면서 기운 넘치고, 부드러우면서 강인하다. 예사 나무가 아님을 대번에 알 수 있다.

국립공원 밖임을 공기에서 알 수 있다. 과장을 보탰지만 기류부터 모든 분위기가 다르다. 무겁게 내리누르던 무언가가 걷힌 느낌, 예의 바른 궁궐을 나와 평민들로 소란스런 궁 밖에 온 것 같다. 산도 한결 가벼워졌는지 노란 제비꽃과 분홍 진달래가 봄 향기로 산을 가득 채웠다.

큰 표지석이 있는 수정봉(804.7m)을 넘자 햇살도 넘어간다. 취재산행 특성상 보통 대간꾼들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산은 누구에게나 공평해 특혜를 주지 않는다. 오직 정직한 걸음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어둠이 깊은 산을 불평 없이 함께 걸어주는 신치호·민미정씨께 고마워하며 9시에 여원재에 닿았다.  

본잎갈나무(낙엽송)와 조릿대가 정갈한 숲을 이루고 있는, 큰 고리봉 능선길
본잎갈나무(낙엽송)와 조릿대가 정갈한 숲을 이루고 있는, 큰 고리봉 능선길
남산 지나 유치재로 이어진 마을길. 산 속이 아니더라도, 둘레길마냥 시골 마을을 걷는 재미가  있다.
남산 지나 유치재로 이어진 마을길. 산 속이 아니더라도, 둘레길마냥 시골 마을을 걷는 재미가 있다.

아침의 여원재는 다른 곳 같다. 이성계의 꿈에 나타나 황산전투를 이기도록 도와주었다는 노파의 신묘함은 아침 이슬과 안개로 변해 있었다. 마을을 지나고 수더분한 야산 같은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오늘의 최고봉 고남산(846.5m)으로 향했다.

짙은 안개가 지배하는 솔숲, 앞서 가는 사람이 자연스레 잊혀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편안한 잊혀짐이 푹신한 소파처럼 온몸을 휘감고, 이 숲에선 길을 잃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결 같은 숲에서의 헤맴처럼, 기억되는 것보다 잊히는 것이 더 편안할 때가 있다.

여전히 꿈인 걸까? 문득 나타난 산벚나무숲. 순백의 벚꽃이 안개와 함께 하늘을 메웠다. 반전이 있는 드라마처럼 대간줄기가 보여 주는 흡입력 있는 풍경에 감탄이 절로 난다. 낮은 야산이라 기대 없이 붙었던 산줄기에서 이런 감동을 만날 줄이야.

기세등등했던 시절 전봉준의 흔적이 깃든 동학유적지 방아치를 지나 진달래와 할미꽃, 제비꽃의 환대를 받으며 고남산 정상에 다가간다. 데크 계단을 따라 암릉 위에 오르자 고남산의 숨겨진 걸출한 산세가 드러난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시원한 경치의 정상에는 67세의 운봉 토박이 감시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설가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그에게 산에 대해 묻자, 기다렸다는 듯 좔좔 이야기가 쏟아진다. 능선을 따라 산성이 있는데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신라·백제의 경계가 바로 이 능선이었다고 한다. 자랑스럽게 구석에서 슬그머니 꺼낸 건 옛날 토기. 지금도 땅을 파면 삼국시대 토기가  나온다고 한다. 30년을 매일 고남산 정상에 올랐으며, 비 오는 날이 쉬는 날이라는 산지기의 말에 놀란다.       

매요마을에서 다시 아스팔트길. 버스정류장에서 시골의 편안한 정적을 즐긴다. 에쿠스 승용차에 농기구 싣고 밭 매러 가는 할머니가 정겹다. 매요교회 앞의 여왕 같은 밤나무를 지나 유치삼거리에서 산길로 든다. 간벌한 사면을 지나 88올림픽고속도로 위를 지나자 산행이 끝나는 사치재다. 어디선가 날아온 검은나비가 모자 위에 내려앉는다. 함께 서서 오후의 햇살을 맡는다. 라일락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고, 봄의 전령이 육십령 쪽으로 날아간다.

번 구간의 종착지인 사치재. 88올림픽고속도로 위의 고개다.
번 구간의 종착지인 사치재. 88올림픽고속도로 위의 고개다.
여원재에서 고남산으로 이어진 소나무숲길. 짙은 안개가 만들어 낸 몽환적인 숲은 실로 감미로웠다(왼쪽).
수정봉의 조릿대숲을 헤치고 가는 신치호 블랙야크 백두대간 도전자.
여원재에서 고남산으로 이어진 소나무숲길. 짙은 안개가 만들어 낸 몽환적인 숲은 실로 감미로웠다(왼쪽). 수정봉의 조릿대숲을 헤치고 가는 신치호 블랙야크 백두대간 도전자.

교통

서울 용산에서 구례구행 열차가 30~60분 간격으로 운행(6:50~22:45). 무궁화호는 4시간 20분, KTX는 2시간 35분 걸린다. 보통 용산역발 22시45분 막차를 타고 새벽 3시에 구례구역에 도착하면 3시10분에 성삼재로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택시도 서 있다. 성삼재까지 보통 4만 원 받는데 다른 등산객과 합승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구례버스터미널에서 성삼재(노고단)행 버스는 1일 6회(3:40, 6:00, 8:40, 10:40, 14:20, 16:20) 운행한다.

문의 구례버스터미널 061-780-2731. 택시는 남원에서 성삼재까지 6만 원 정도 받는다. 운봉에서 성삼재까지는 4만 원을 받는다. 주촌택시(010-3608-0398).

여원재에서 남원역으로 가는 버스가 20~30분 간격(7:40~21:55)으로 운행한다. 사치재에서는 사치마을에서 남원역행 버스가 1일 3회(7:00, 12:20, 18:05) 운행한다. 운봉콜택시(063-636-1633, 634-0398).

삼재 인근의 고리봉 정상에 올라선 민미정씨와 신치호(가운데)씨. 4월 말에서 5월 초면 진달래가 피는 조망명봉이다.
삼재 인근의 고리봉 정상에 올라선 민미정씨와 신치호(가운데)씨. 4월 말에서 5월 초면 진달래가 피는 조망명봉이다.

만복대~고남산 구간 종주 가이드 TIP

도로 지나는 곳 많아 체력에 맞게 조절 가능해

도로를 만나는 곳이 많아 체력과 일정에 맞게 구간을 나눌 수 있다. 보통은 성삼재에서 여원재까지 당일 종주해 남원으로 나가 귀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원재까지 224km이며 주력에 따라 8~10시간 정도 걸린다. 짧게 잡을 경우 고기리삼거리까지(12.6km)만 산행하기도 한다. 큰 고리봉에서 바래봉 방향이 아닌, 왼쪽 고기리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령치휴게소에서 컵라면(3,000원)과 차 종류를 판매한다. 

여원재에서 사치재까지 13.9km이며 5~6시간 정도 걸린다. 고남산 지나 매요마을에서 길 찾기 헷갈릴 수 있는데 골목 사이로 드문드문 붙은 표지기를 따라 유치삼거리로 가면 산길이 나온다. 사치재에서는 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좌측 끝으로 가면 사치마을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고기리삼거리에 선유산장민박식당 (063-626-7373)이 있으며 점심메뉴로 추어탕, 장어탕, 닭곰탕 등이 있다.

미니 인터뷰

신치호  산 사랑 행동으로 보여 주는 블랙야크 마운틴 도전자

“산 사랑”을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산행 중 쓰레기를 줍는 사람은 드물다.  쓰레기를 줍는데 소주병 같은 무거운 것까지 줍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장거리종주에서도 쓰레기 줍기를 멈추지 않은 진정한 클린마운틴 실천가다.  근현대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역사 전문가이며, 전공을 살려 한양도성박물관 교육강사, 서울시 역사길라잡이 활동가 등으로 활동했다. 블랙야크 100명산 도전 프로그램을 통해 등산에 입문했으며 지난해 10월 100명산을 완주했다. 현재 ‘100명산 어게인(다시 타기)’과 백두대간 프로그램에 도전 중이다. 그는 “블랙야크의 체계화된 도전 프로그램을 통해 산행의 목표를 세우고, 기록도 남기며 공식인증도 받을 수 있어 좋다”며 “앞으로도 모든 산행은 블랙야크와 함께할 것”이라 말한다.

김태억   백두대간 10번째 종주하는 울트라산행 달인

우연히 대간길에서 만난 그는 여원재에서 출발해 사치재까지 갔다가 다시 여원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차를 여원재에 세워둔 탓도 있지만 하루에 2번을 타는 대간 왕복종주를 해야 제대로 땀을 뺀 것 같기 때문이다. 1999년 대간 산행을 시작해 현재 10번째 종주 중이며 정맥과 기맥을 모두 완주했다. 7번째 대간 종주부터 당일 구간 왕복종주를 하고 있다. 대간을 좋아하는 건 정맥과 기맥은 덤불이 많아 속도 내기 어려워 제대로 운동이 안 된다는 것. 3~4일씩 대간만 타는데, 보통 차 옆에 텐트를 치고 야영한다. 64세인 그는 제천시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퇴직한 뒤 본격적으로 대간종주와 울트라산행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울트라마라톤대회에 여러 번 출전한 울트라마라톤 마니아다. 땅끝 해남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622km를 6일간 무박으로 달려 완주한바 있으며, 대한울트라마라톤연맹이 주관하는 가장 힘든 울트라마라톤대회 3개를 한 해에 모두 완주해 ‘울트라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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