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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백두대간 에코 트레일 | 9~11구간 덕유산 르포] 여름 능선 종주의 매운 맛 보여준 덕유산

월간산
  • 입력 2018.07.02 09:46
  • 수정 2018.12.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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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에코트레일’ 육십령~남덕유산~백암봉~빼재 구간

삿갓재대피소에서 무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본 아름다운 덕유산 산줄기.
삿갓재대피소에서 무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본 아름다운 덕유산 산줄기.

덕유산은 유독 겨울철 인기가 높은 산이다. 새하얀 눈꽃과 상고대로 치장한 아름다운 능선과 고산 특유의 빼어난 조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덕유산국립공원의 인기는 방문자 통계를 보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특히 1월이면 방문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주능선 탐방로가 정체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몰리는 시기다. 경치가 좋은데다 스키장 곤돌라 덕분에 접근이 쉽기 때문이다.

그동안 본지가 진행한 ‘덕유산 특집’ 역시 주로 겨울철에 집중됐다. 덕유산을 대표하는 화보 사진을 찾아봐도 설경 일색이며, 유난히 향적봉에서 촬영한 겨울 풍경이 많았다. 고도가 높은 향적봉은 멋진 설경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다, 대피소와 곤돌라 덕분에 접근이 쉬워 촬영이 손쉬운 편이다. 덕유산 설경 사진이 흔한 것은 이러한 환경 덕분이라 하겠다.

1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바위지대에서 주변을 조망하고 있는 등산객들.
1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바위지대에서 주변을 조망하고 있는 등산객들.

덕유산은 겨울이 가장 좋은 산이지만, 야생화 피는 봄과 단풍 물드는 가을도 아름다운 곳이다. 연분홍 철쭉꽃이 만발하는 덕유평전은 봄꽃 산행지로 오랜 명성을 이어온 장소다.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구천동 계곡은 가을이면 화려한 단풍으로 치장하고 등산객을 맞는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답게 어느 한 곳 부족함 없는 준수한 풍모를 지니고 있다.

사철 아름다운 곳이긴 하지만, 사실 여름 덕유산에 대한 평가는 조금 박한 편이다. 특히 초지가 많아 뙤약볕을 피하기 힘든 주능선 산길은 한여름에는 고통스럽다는 평가다. 게다가 산길 주변에 샘터도 거의 없어 식수를 지고 다녀야 한다. 날이 더워지면 힘든 능선 종주산행지다. 특히 남덕유산 오름길과 백암봉에서 빼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가파르고 굴곡진 산길은 상당히 고통스럽다. 백두대간 전문 종주팀들도 두려워하는 구간이 바로 여름 덕유산이다.

취재팀이 여름 덕유산을 찾게 된 이유는 종주의 연속성 때문이다. 지난 3월 지리산에서 시작한 블랙야크 백두대간 에코트레일 답사 취재는 봉화산과 백운산을 거쳐 산줄기를 이어왔다. 이번 달에는 육십령에서 시작해 빼재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밟아야 할 차례였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피해가거나 순서를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육십령(734m)에 섰다.

2.백두대간 종주팀이 오르내림이 심한 능선길을 
걷고 있다.
2.백두대간 종주팀이 오르내림이 심한 능선길을 걷고 있다.

3 종주팀이 아침 햇살을 받아 신비로운 분위기가 가득한 산줄기를 감상하고 있다.
3 종주팀이 아침 햇살을 받아 신비로운 분위기가 가득한 산줄기를 감상하고 있다.

손에 잡힐 듯해도 먼, 남덕유산

육십령은 서쪽으로 전라북도 장수, 동쪽으로 경상남도 함양을 잇는 고갯마루다. 여기서 시작해 할미봉(1,026.4m)과 서봉(1,510m) 그리고 남덕유산(1,507.4m)을 거쳐 삿갓골재대피소까지 가는 것이 첫날 일정이다.

커다란 육십령 표지석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주능선으로 올라섰다. 악명 높은 남덕유산 오름길에 긴장하며 조금씩 덕유산으로 몸을 던졌다.

이번 백두대간 에코트레일 덕유산 구간 산행에는 모두 7명이 함께했다. 고정 멤버인 기자와 사진기자 주민욱씨 외에 블랙야크 셰르파 진미장, 변재수, 라경권씨, 예비 셰르파 박춘영씨가 동행했다. 여기에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박용희 국장이 백두대간 현장답사를 위해 합류했다. 난코스 덕유산을 넘기 위해 많은 이들이 힘을 모았다.

육십령을 벗어나 참나무가 무성한 완만한 숲길을 타고 조금씩 고도를 높였다. 깊고 짙어지는 산세를 바라보며 40분 정도 오르자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에 섰다. 잠시 숨을 고르니 강렬한 햇빛 속에 곧추선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바위들이 거칠게 드러난 할미봉(1,026.4m)이다. 오늘 통과하는 구간 상의 첫 번째 인증지점이 있는 봉우리다.

된비알을 지나 올라선 할미봉은 조망이 멋진 망루 같은 봉우리였다. 남쪽으로 지리산 천왕봉부터 백운산, 깃대봉, 영취산, 장안산으로 이어진 산줄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정상석 옆에서 백두대간 에코트레일 인증용품을 들고 사진을 찍은 뒤 다시 길을 재촉했다. 계단이 설치된 급경사의 바윗길을 내려서니 이내 고즈넉한 숲길이 나타났다.

서봉이 가까워지며 산길은 서서히 가팔라졌다. 간간이 나타나는 바위지대에서 숨을 고르며 서봉과 남덕유산의 웅장한 모습을 마주했다. 능선으로 이어진 두 봉우리는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하는 견고한 성채처럼 보였다.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아도 도무지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는 봉우리였다.

온몸이 땀에 젖을 즈음 사방으로 조망이 터지는 멋진 전망대인 서봉(1,492m) 정상에 섰다. 장수덕유산이라고 불리는 높은 봉우리였다. 주변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바위 지대에서 점심을 먹고 곧바로 남덕유산으로 향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어 지체할 수 없었다. 멀리 북동쪽으로 보이는 삿갓봉(1,419m)을 넘어야 목적지인 삿갓재대피소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봉에서 약 40분 거리인 남덕유산 정상까지 가는 길도 은근히 진이 빠지는 구간이었다. 바로 앞에 빤히 보이는데도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다. 남덕유산 정상을 10분 정도 남겨놓고 대간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넓은 공터가 있는 삼거리에 배낭을 벗어두고 남덕유산 정상을 올랐다. 인증지점인 남덕유산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남덕유산에서 내려와 긴 내리막을 통과하니 조용한 숲 속의 고갯마루 월성재에 도착했다. 여기서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박용희 국장은 일행들과 헤어져 동쪽의 황점마을로 하산했다. 다음날 참가해야 하는 워크숍이 있어 대전으로 돌아 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남덕유산을 오른 것으로 백두대간 산행의 갈증을 달래야 했다. 그와 헤어진 뒤 삿갓봉 너머 삿갓재대피소에서 첫날 산행을 마무리 했다.

삿갓재대피소는 덕유산 주능선이나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이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편히 쉴 수 있는 아늑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대피소기 때문이다.

황점 방면으로 가파른 계단을 조금 내려서면 나타나는 황강 발원지 삿갓샘에서 식수 보충도 가능하다. 체력적으로 무리다 싶으면 남쪽 산길을 따라 황점으로 탈출도 가능해 여러 모로 중요한 장소다.

4 뚜렷하게 이어진 덕유산 구간의 백두대간 종주코스.
4 뚜렷하게 이어진 덕유산 구간의 백두대간 종주코스.

1 라경권 셰르파는 산행 중 쓰레기 수거를 위한 
주머니를 배낭에 매달고 걸었다.
1 라경권 셰르파는 산행 중 쓰레기 수거를 위한 주머니를 배낭에 매달고 걸었다.

희귀한 산죽 꽃 보며 산길 걸어

다음날 새벽 일찌감치 아침을 챙겨먹었다. 빼재까지 약 20km에 달하는 긴 능선을 완주하려면 서둘러야 했다. 대피소 앞에서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고 무룡산(1,491.9m)을 올랐다. 이 구간에서 처음으로 덕유산 특유의 넓고 시원한 능선 조망을 만날 수 있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능선을 바라보며 걷는 즐거움이 남다른 구간이었다. 오늘은 바람도 시원해서 기분이 상쾌했다. 출발이 좋았다.

아쉽게도 덕유산 특유의 고산화원은 만날 수 없었다. 철쭉꽃은 이미 떨어졌고 여름 야생화는 아직 일렀다. 하얀 함박꽃 몇 송이가 눈에 띄는 정도였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평소에 보기 힘든 산죽 꽃이 수시로 나타나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행운의 상징이라고도 하는데, 마른 풀 냄새를 풍기는 자줏빛 산죽 꽃이 핀 모습은 일행 모두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이었다.

2 급사면에 설치된 간이사다리를 내려서고 있는 
진미장 셰르파.
2 급사면에 설치된 간이사다리를 내려서고 있는 진미장 셰르파.

대나무나 산죽은 꽃이 피면 수명이 다한다고 한다. 산죽은 60년에서 100년마다 꽃을 피우고 죽는다고 알려져 있다. 씨를 퍼트리니 제 몫을 다했다는 것이다. 개화의 원인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기후 변화의 영향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급격한 계절 변화로 높은 산의 식생도 서서히 바뀌고 있는 듯했다.

향적봉으로 갈수록 산길의 상태가 좋아졌다. 아무래도 탐방객이 많은 구간이라 정비를 많이 해둔 것 같았다. 편안한 오솔길과 계단을 밟으며 동엽령을 거쳐 백암봉(1,490m)까지 빠르게 이동했다. 백두대간 에코트레일은 백암봉에서 동쪽으로 꺾어지며 빼재를 향해 뻗어나갔다. 중봉과 향적봉을 거쳐 설천봉으로 이어진 덕유산 주능선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다.

횡경재를 거쳐 지봉(못봉)으로 이어진 대간길은 평범했다. 조망이 거의 없는 답답한 참나무 숲 사이를 한참 동안 걸어야 했다. 송계사 갈림목인 횡경재(대봉까지 4.2km)에서 지봉池峯(못봉·1,302.2m)까지는 가파른 능선길이다. 배낭 속에 보관하던 행동식을 꺼내 챙겨 먹으면서 씩씩하게 걸어 올랐다.

지봉에 올라 대봉(약 1,190m)을 바라보니 허벅지에서 스르르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까마득하게 떨어졌다가 다시 솟구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힘은 덜 들었다. 계단처럼 차근차근 고도를 높여 오르기 때문에 지봉 오름길보다 쉬운 편이었다. 대봉에서 다시 40분쯤 나아가니 갈미봉(1,039.3m) 정상에 닿았다. 이 봉우리에 서면 빼재가 바로 밑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손에 닿을 듯한 그 거리가 보통 먼 것이 아니었다.

3  백암봉에서 횡경재로 가는 산길에 숲이 우거졌다.
3 백암봉에서 횡경재로 가는 산길에 숲이 우거졌다.

육십령부터 걸어오다 보니 갈미봉에 도착할 즈음 이미 체력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이 마지막 약 3km 구간이 큰 고비였다. 수시로 나타나는 작은 봉우리들은 지친 두 다리를 땅 속으로 잡아끌었다. 빼재까지 가는 한 시간 반이 정말 지옥 같았다. 그렇게 몸속의 에너지를 마지막까지 쥐어 짠 뒤에야 목적지인 빼재에 도착했다. 우리는 덕유산에서 여름 능선 종주의 뜨거운 맛을 봤다. 



[답사팀 프로필] 

진미장_여행 셰르파
백두대간을 두 번 완주한 등산 마니아.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세상 구석 구석을 돌아보며 여행가의 삶을 살고 있다. 8번의 히말라야 트레킹과 남미 W 트레킹, 알프스 구간 종주 등을 경험했다. 

변재수_마운틴 셰르파
토왕폭에서 하산하다 다리를 다치지만 않았어도 김미곤 대장과 히말라야에 있었을 등반가. 그는 취재팀과 덕유산에서 만날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블랙야크 마운틴 셰르파로 서울에서 전철산행을 진행하고 있다.
라경권_마운틴 셰르파
우월한 신체 조건을 자랑하며 성큼 성큼 산길을 걸어 동행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소방대원으로 근무하며 시간 날 때마다 산을 찾고 있다. 마운틴 셰르파로 ‘클린마운틴’을 진행하고 있다.
박춘영_예비 셰르파
이달에도 백두대간 에코트레일 취재팀에 합류해 힘을 보탰다. 블랙야크 100명산을 통해 산을 알게 되어 백두대간에도 관심 많은 예비 셰르파. 산행 중 진드기에 물려 고생 했지만 씩씩하게 종주를 마쳤다.
1 능선 중간의 전망 좋은 바위지대에서 덕유산 줄기의 웅장함을 감상할 수 있었다.
1 능선 중간의 전망 좋은 바위지대에서 덕유산 줄기의 웅장함을 감상할 수 있었다.
2 묘하게 뒤틀린 참나무가 숲을 이룬 가파른 산길.
2 묘하게 뒤틀린 참나무가 숲을 이룬 가파른 산길.

3 서봉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할미봉 일원의 바위지대.
3 서봉으로 가는 도중에 만난 할미봉 일원의 바위지대.

[덕유산 구간 종주 가이드]

삿갓재대피소 이용해 1박 2일 종주

백두대간 에코트레일 덕유산 구간은 육십령에서 빼재까지 31km가 넘는 거리의 제법 긴 산행 코스다. <육십령~남덕유 8km, 남덕유~백암봉(송계삼거리) 12.3km, 백암봉 신풍령(빼재) 11km> 당일 산행으로 한 번에 완주하기는 힘들고, 보통 주능선에 있는 삿갓재대피소에서 1박하며, 이틀에 걸쳐 종주한다.

출발 기점인 육십령의 고도가 해발 734m로, 첫날 오르는 남덕유산 정상(1,507.4m)까지 표고차가 770m 정도로 크지는 않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 가까운 바위지대의 산길 구간이 많아 속도가 나지 않는다. 특히 무더운 여름철에는 길고 지루한 코스다. 삿갓재대피소 이후 백암봉에 이를 때까지 능선 길이 유순한 편이어서 체력적으로 크게 힘들지 않다.

지역 주민들이 ‘빼재’라고 부르는 신풍령은 경북과 전북을 연결하는 국도 37호선이 가로지르는 고갯마루였으나 2013년 신풍령터널 완공 이후 차량 통행이 거의 없는 곳이다. 여기서 서울이나 전북 방향으로 가려면 무주구천동 입구인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까지 가야 하는데 노선버스가 없어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 신풍령~삼공리 약 9.km,  2만 원. 문의 무주구천동택시 063-322-3105.

산행문의(지역번호 063)

덕유산국립공원 본소 322-3174~5, 구천동탐방지원센터 322-3473, 안성탐방지원센터 323-0577, 남덕유분소 055-943-3174, 영각통제소 055-962-1508. 덕유산국립공원 홈페이지 http://deogyu.knps.or.kr


숙식

육십령 고갯마루 남쪽(함양) 육십령휴게소(055-963-0610)에서는 돼지주물럭(1인분 1만 원), 찌개류(6,000원) 같은 음식을 내놓으면서 민박도 친다. 4인 기준 5만 원.

장수 쪽 육십령휴게소(063-353-1964)에서는 돈까스와 스파게티 등의 음식을 내놓는다.

덕유산국립공원 삿갓재대피소(수용인원 46명, 010-5423-1452)와 향적봉대피소(수용인원 38명, 063-322-1614) 2개소가 있다.

사발면, 라면, 햇반, 과자류, 가스, 음료수 등을 판매한다. 성수기 이용료 1만3,000원, 담요 대여 1장당 2,000원이다. 국립공원 홈페이지(www.knps.or.kr)에서 예약해야 이용이 가능하다.

김기환 차장
ghkim@chosun.com
1997년부터 <월간산>에서 일하며 아웃도어와 등산장비 분야의 취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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