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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해외 트레킹ㅣ뉴질랜드 루트번 트랙] 청정 뉴질랜드의 장쾌한 황홀경에 빠지다

글·사진 문승영 오지여행가
  • 입력 2018.07.1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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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1대 하이킹 대상지에 포함된 32km 코스 2박3일 트레킹

해리스언덕 너머 루트번계곡의 끝자락에는 언슬로산Mount Aarnslaw이 위엄 있게 솟았다.
해리스언덕 너머 루트번계곡의 끝자락에는 언슬로산Mount Aarnslaw이 위엄 있게 솟았다.

뉴질랜드 루트번 트랙Routeburn Track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세계 11대 하이킹 코스 중 하나로 꼽은 곳이다. 빙하기를 거쳐 형성된 높은 산과 거대한 골짜기, 폭포, 보석 같은 호수들로 이루어져 광대한 고산 풍경을 담고 있다.

총 거리 32km. 트랙은 짧은 편이지만 트랙 최고점인 해발 1,255m의 해리스언덕Harris Saddle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트랙이 지나는 숲은 새들로 가득한데 고유종인 박새와 울새류, 산비둘기, 벨버드를 흔히 볼 수 있고, 세계에서 유일한 고산 앵무새인 케아도 있다.

루트번 트랙은 밀포드 트랙의 명성에 가려져 있지만,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밀포드 트랙을 대신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다. 1880년대 이래로 루트번 트랙은 가장 접근하기 쉽고 인기 있는 트랙 중 하나였다.

1.짙푸른 남색을 띠는 해리스호수는 트랙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2 루트번폭포산장에 다다르면 웅장한 훔볼트산과 황금빛 계곡이 펼쳐진다.
1.짙푸른 남색을 띠는 해리스호수는 트랙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2 루트번폭포산장에 다다르면 웅장한 훔볼트산과 황금빛 계곡이 펼쳐진다.

피오르드랜드국립공원Fiordland National Park과 마운트 아스피링국립공원Mount Aspiring National Park 사이로 나 있는 루트번 트랙은 세계 자연유산 지역으로 지정된 뉴질랜드 남서부 테 와이포우나무Te Wahipounamu의 일부이다.

루트번 트랙은 밀포드 트랙과는 달리 순환 루트가 아니다. 때문에 트레커는 자신의 상황에 맞춰 방향을 택해 걸을 수 있는데, 루트번대피소(글레노키 근방)와 더 디바이드The Divide(테아나우 인근)가 양 끝을 이루고 있다. 시즌에는 트레킹을 즐기는 데 문제가 없지만 눈사태 위험이 큰 4월 말부터 10월 말까지는 이곳을 피하는 것이 좋다. 이곳을 방문하는 트레커는 글레노키 또는 피오르드랜드국립공원 센터에서 트랙 상황과 날씨를 확인할 수 있다.

1. 루트번 트랙에서는 서던 알프스와 빙하에 의해 만들어진 홀리포드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2.로버츠호수에서 떨어지는 얼랜드폭포에서는 날씨가 맑은 날이면 무지개를 볼 수 있다.
1. 루트번 트랙에서는 서던 알프스와 빙하에 의해 만들어진 홀리포드계곡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2.로버츠호수에서 떨어지는 얼랜드폭포에서는 날씨가 맑은 날이면 무지개를 볼 수 있다.
루트번 트랙: 2박3일간의 여정

1day 더 디바이드 → 맥켄지산장 12km

밀포드 트랙이 끝나는 지점인 밀포드 사운드에서 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더 디바이드’는 루트번 트랙의 출발점이다. 싱그러운 풀 내음 가득한 너도밤나무 숲을 따라 오르면 키 서미트Key Summit가 나온다.

키 서미트에서는 깊은 계곡 사이를 구불구불 흐르는 홀리포드강Hollyford River이 내려다보이고, 훔볼트산Humbolt Mountains과 대런 산줄기Darren Mountains의 시원한 조망이 펼쳐진다.

무성하게 자란 나무 사이로 보이는 설산의 파노라마를 즐기며 걷는 사이 얼랜드폭포Earland falls에 다다랐다. 얼랜드폭포는 로버츠호수Lake Roberts에서 흘러나와 떨어지는 말 꼬리horsetail 모양의 폭포로 그 높이만 174m에 이른다. 폭포 하단에 생긴 무지개는 지나가는 트레커들의 발걸음을 한동안 멈추게 만들었다. 안락한 숲 속에 자리한 맥켄지산장 앞에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매혹적인 호수가 있다. 막다른 계곡을 가득 메운 안개 아래 정지된 것처럼 고요한 호수는 물빛이 어찌나 맑은지 호숫가에 반영된 물체가 진짜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1 청명한 맥켄지호수에 반영된 에밀리패스.
2 맥켄지호수에서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서던 알프스의 장엄한 경치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3 절벽을 깎아 만든 아슬아슬한 길을 내려오면 해리스호수에 다다른다.
4 루트번 트랙에서 홀리포드계곡으로 내려가는 데드맨 트랙은 이름처럼 무시무시한 길이다. 급경사지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데다 악명 높은 샌드 플라이가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1 청명한 맥켄지호수에 반영된 에밀리패스. 2 맥켄지호수에서 지그재그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서던 알프스의 장엄한 경치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3 절벽을 깎아 만든 아슬아슬한 길을 내려오면 해리스호수에 다다른다. 4 루트번 트랙에서 홀리포드계곡으로 내려가는 데드맨 트랙은 이름처럼 무시무시한 길이다. 급경사지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데다 악명 높은 샌드 플라이가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2day 맥켄지산장 → 루트번폭포산장

맥켄지산장에서 해리스 새들Harris Saddle을 넘어 루트번폭포산장으로 가는 길은 루트번 트랙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구간이다. 맥켄지호수 옆의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오르니 고산 초원 위로 홀리포계곡과 서던 알프스Southern Alps의 장엄한 경관이 펼쳐졌다. 고도나 규모 면에서 히말라야보다는 못하지만, 2박3일간의 일정에서 이런 풍광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다.

바위산 능선 아래 가파른 길을 지나 해리스 새들 대피소에 도착하니 지난겨울 내렸던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채 쌓여 있다. 루트번 트랙의 최고점인 해리스 새들은 고도가 높아 기상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이곳 대피소의 문이 항상 열려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일부 구간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했다. 국립공원으로부터 해리스호수Harris Lake로 내려가는 일부 구간이 눈사태로 막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에서 제공하는 헬리콥터 비용은 1인당 90달러(뉴질랜드 달러)였는데, 헬기를 타고 내리는 데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이륙한 헬리콥터는 절벽을 깎아 만든 아슬아슬한 길을 선회해 해리스호숫가에 착륙했다.

맑고 깊어 검은색에 가까운 빛을 띠는 해리스호수는 날씨에 따라 군청색이나 짙푸른 회색을 띤다고 하는데, 그 빛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맥켄지호숫가를 걷다 보면 호수의 바위가 완벽한 데칼코마니로 반영되며 멋진 전경을 선사한다.
맥켄지호숫가를 걷다 보면 호수의 바위가 완벽한 데칼코마니로 반영되며 멋진 전경을 선사한다.

3day 루트번폭포산장 → 루트번대피소

해리스호수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폭포가 되기도 하고, 평평한 대지 위에서는 구불구불하게 흐르며 그 모습을 달리했다.

루트번 폭포산장Routeburn Falls Hut에서 하산하는 길은 너도밤나무 숲과 계곡을 지나 트랙의 종착점인 루트번대피소Routeburn Shelter까지 완만하게 이어졌다. 울창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숲의 향기는 몸 구석구석으로 배어 들어와 마음을 정화시켰다. 처음 오는 곳이지만 전혀 낯설지 않고, 편안했다.

밀포드와 루트번 트랙은 짧은 여정이지만 광대한 고산의 풍경과 함께 살아 있는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거친 히말라야를 걸어왔던 나에게 쉼표요, 힐링이 되는 길이었고, 나는 언제고 그 길 위에 다시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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