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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화제 | 중동고 동문산악회] 동문산행 참가인원만 800여 명

월간산
  • 입력 2018.11.0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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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 10량 대절해서 진행… 해병대 호남 고려대 모임 버금가는 4대 모임으로 꼽혀

중동고 동문산악회원들이 서울역 광장 계단을 가득 채워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중동고 동문산악회원들이 서울역 광장 계단을 가득 채워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국엔 가장 유명한 4개의 모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첫째가 해병대동기회. 한국에서 해병대 출신들은 군복 입고 행패를 부려도 그냥 넘어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의 힘든 군대생활은 끈끈한 연대의식으로 이어져 제대 후에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자주 모임을 가졌다. 지금도 거리를 다니다보면 활보하는 해병대 출신이나 해병대 동호회 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 다음이 호남향우회. 호남 출신들의 끈끈한 동향의식은 남부러울 수준이다. 고향이나 동문으로 이어진 그들의 모임은 ‘모 아니면 도’식으로 다양한 방면에서 표출되곤 한다. 셋째로, 고려대 동문회. 고려대 출신들은 사막에 고려대 깃발을 꽂고 “모여라”하면 어디서 찾아오는지 한둘씩 찾아오더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실화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대 교수가 유학 시절 직접 겪은 경험담이라며 들려준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알려진 얘기다. 마지막 하나는 뭘까 궁금했다. 전혀 의외의 모임이 나왔다. 중동고 동문모임이라는 것이다. 중동고 동문모임은 어떤 무용담이나 사건이 있었기에 이 정도까지 알려지게 됐을까?

수덕사 탑 앞에서 57회 동기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으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수덕사 탑 앞에서 57회 동기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으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57회 동기들이 덕숭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기념행사에서
57회 동기들이 덕숭산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기념행사에서

지난 10월 21일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중동 동문산악회가 새마을호 열차 10량을 대절해서 충남 예산 덕숭산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듣고 동행하기로 했다. 오전 8시 집결장소인 서울역 현장에 갔다. ‘아니 이럴 수가…’. 중동 동문들이 서울역 광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일반인들이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대합실 진입계단까지 꽉 채워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니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까?

일단 이들의 일정을 따라가기로 했다. “파이팅”하고 기념사진부터 찍는다. “한 번 더”하고 사진기자가 외친다. 그러자 일부는 “그만”하고 장난스럽게 외친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도 이 순간만큼은 60년 전의 고교시절로 돌아간 듯 장난기가 발동된다.

각자 배정된 열차로 자리를 찾아 앉는다. 드디어 예산을 향해 출발이다. 시간이 흘러도 조용해지거나 잠을 자는 사람이 없다. 전부 삼삼오오 또는 자리를 건너서까지 대화를 나눈다. 예산 도착할 때까지 자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일반 열차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날 산행팀은 3개조로 나뉘었다. A조는 수덕사를 거쳐 덕숭산 정상까지 가는 팀, B조는 수목원과 봉수산을 간단히 오르내리는 팀, C조는 충의사와 추사고택을 방문하는 팀. 일단 A조와 동행하기로 했다.

“건강을 위해서는 등산이 제일이지.” 산행에 나선 동문은 불과 10분의 1 남짓 되지만 덕숭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건강을 위해서는 등산이 제일이지.” 산행에 나선 동문은 불과 10분의 1 남짓 되지만 덕숭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다.
59회 동문들이 산행 중 잠시 쉬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59회 동문들이 산행 중 잠시 쉬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30대부터 80대까지 세월 넘어 한데 모여

한꺼번에 몰린 800여 명은 예산역을 순식간에 서울역급으로 변화시켰다. 뜨내기 상인들도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일제히 나타나 여기저기 예산특산물로 가판을 펼친다.

덕숭산 정상으로 향하는 팀은 불과 100여 명도 안 되는 듯하지만 이들을 따라 올라간다. 일흔을 훌쩍 넘긴 한 동문은 같이 산행하는 친구들을 향해 “다른 조로 간 친구들은 산악회에 왜 왔나. 몇 년은 젊어지는 이렇게 좋은 산행을 두고 딴 곳으로 빠지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산행을 열심히 한 덕택에 상대적으로 젊기 때문에 동기들이 모이면 늙어 보이는 친구와 험한 말을 섞어가며 대화를 나누는데 주변에 나이 드신 분이 “어떻게 한참 어른한테 그렇게 막말을 하냐”고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등산은 산삼보다 더 좋은 보약”이라고 등산예찬론을 폈다.

덕숭산 정상에서는 정상 인증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정상석 앞에서 기념촬영하기 위해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점심시간을 맞추기 위해 간단히 목만 축이고 다시 삼삼오오 하산이다. 점심은 수덕사 앞 식당가. 기수별로 식당을 예약해서 모였다. 800여 명은 수덕사 식당가를 완전 꽉 채웠다. 보통 모이는 인파에 800여 명을 더했으니 수덕사 식당가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62회 동문들이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
62회 동문들이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고 있다.
75회 동문들이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있다.
75회 동문들이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있다.

산행과 산책 등으로 나뉜 조별 모임은 끝나고 전 인원이 모여 예당호 야외음악당에서 기념행사를 가졌다. 마침 충남도지사가 중동고 71회 양승조 동문이고, 도의회 부의장 이종화도 동문이라 행사를 전폭 지지하고 있었다. 이들이 나와 중동고 선후배들에게 환영 인사를 했다. 동문은 아니지만 예산군수까지 나와 환대했다.

중동고 동문이 한 번 움직이면 1,000여 명 가까운 사람이 이동하다 보니 지자체에서 그 사실을 알고 미리 섭외했다고 신영철 사무총장이 귀띔했다.

이날 동문산행 모임에는 올해 만 85세인 최고령 46회 동문부터 이제 30대 접어드는 동문까지 50년의 세월이 함께했다. 46회 동문은 100대 명산을 진행 중이라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100명산을 하는 동문은 전체 30~40명 정도 된다. 47회도 5명이나 참가했다. 졸업 60주년이 되는 51회 동문도 20여 명이나 함께했다. 중동고 총동문회에는 골프, 볼링 등 다양한 모임이 있으나 기껏 모여 봤자 최대 200명 내외라고 한다. 그런데 산악회만큼은 한 번 모이면 기천 명에 가깝다. 도대체 이렇게 많이 모이는 이유가 뭘까, 정말 궁금했다. 총동문회장과 산악회장, 그리고 동행한 한국산악계의 거목 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까지 일일이 인터뷰했다.

기념행사에서 중동 출신인 알펜트리오가 공연하고 있다.
기념행사에서 중동 출신인 알펜트리오가 공연하고 있다.
동문들이 산행 후 기념행사에 참석, 여흥을 즐기고 있다.
동문들이 산행 후 기념행사에 참석, 여흥을 즐기고 있다.

“113년의 전통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작년과 올해 열차산행은 정말 좋았다. 중동 동문은 모임을 중요시한다. 동문들 간의 끈끈한 정이 그 모임의 핵심이다. 누구나 정은 있지만 우린 일제시대 저항정신이 있어 훨씬 강하다. 민족학교란 자부심이 있다. 산사참배나 창씨개명을 학교 차원에서 거부했다. 다른 학교는 전부 고보로 바꿨지만 우리는 중동학교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런 정신이 동문들에게 보이지 않게 면면히 이어져왔다고 본다. 그 유대의식은 한 가지 사건에서도 나타났다. 104회 동문이 사고로 전신화상을 입었다. 사지절단을 해야 했다. 동문 출신인 담임교사가 혼자 돕기에 부족해 아는 동문들에게 부탁할 요량으로 알렸는데 전 동문이 나섰다. 불과 한 달간 1억7,000만 원을 모아 전달했다. 이를 취재한 모 일간지 기자가 ‘중동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해서 더욱 뿌듯했다.

미국 동문회에서는 매년 교사 2명을 초청해서 보름간 연수 겸해 미국여행 비용을 지원한다. 선후배 사랑과 연대의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자부한다. 또 멘토와 멘토링 제도를 운영한다. 덕망 있는 선배가 후배를 1년간 지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전문가 그룹 동문들이 전문가를 지원하는 후배에게 꿈을 잘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 외에도 100주년 기념 에베레스트 등정, 7대륙 등정 등 중동만이 가진 유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_우이형 총동문회 회장

(왼쪽부터) 중동고 총동문회 우이형 회장. 중동고 총동문산악회 안승추 회장. 중동고 출신인 아시아산악연맹 이인정 회장.
(왼쪽부터) 중동고 총동문회 우이형 회장. 중동고 총동문산악회 안승추 회장. 중동고 출신인 아시아산악연맹 이인정 회장.
중동 동문산악회에서 예산군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중동 동문산악회에서 예산군에 장학금을 전달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일제시대 저항정신이 곧 동문정신

“산악회는 산을 다녀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년 취임 이후 매월 3차례 정도 산행한다. 선배들의 반응이 좋다. 선배들이 많이 모이면 자동적으로 모임은 활성화된다. 각 기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기수별로 움직이기 때문에 총동문회에서는 조정만 할 뿐이다. 시즌에 맞춰 보신산행이나 가을에 열차산행 등에는 수백 명의 동문들이 참가한다. 올해로 6번째 기차산행이다. 갈수록 호응도가 높다. 한 번 산행 갈 때 기천 명이 움직이기 때문에 몇몇 지자체에서 사전에 섭외가 온다. 너무 멀리 있는 지자체는 갈 수 없다. 대상지가 결정되면 동선을 확실히 하기 위해 2차례 이상 답사한다. 이미 국내 산행은 활성화됐고 해외산행을 기획하고 싶은데 호응이 어떨지 모르겠다. 내 임기가 끝나더라도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후배들의 지원을 잘하겠다.” _안승추 총동문산악회 회장

“‘우리는 하나다’ 정신이 100여 년 이상 이어져 왔기 때문에 딴 짓 못 한다. 지금 김창호 추모 뒤처리 문제로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하나’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어 올 수밖에 없었다. 일제시대부터 이어져 온 정신이 더욱 단결시키는 힘이 되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동문산악회 행사만큼은 빠지지 않고 온다.” _이인정 아시아산악연맹 회장

예당호 야외음악당에서 기념행사는 더욱 열기를 더해갔다. 산악회 행사에 빠지지 않는 알펜트리오 공연도 이어졌다. 알펜트리오가 중동 동문인 줄 이날 처음 알았다. 동문들의 호응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제 서울로 돌아갈 시간.

마지막으로 지역발전을 위해 중동동문산악회 이름으로 예산군에 장학금을 전달하면서 이날 중동총동문산악회 산행은 막을 내렸다. 다들 아쉬운 듯 “다음에 또 보자”며 인사하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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