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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나홀로 세계일주│미얀마 시포 트레킹] 시간이 멈춘 곳, 시포 은하수와 함께 트레킹

글·사진 김영미 자유여행가
  • 입력 2019.01.1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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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소수 민족, 그림 같은 풍경, 문명과 문화 동시 탐험할 수 있어

시포행 기차를 타고 있는 미얀마 모녀. 얼굴에 바른 것은 미얀마의 천연 선크림 다나까Thanakha이다.
시포행 기차를 타고 있는 미얀마 모녀. 얼굴에 바른 것은 미얀마의 천연 선크림 다나까Thanakha이다.

미얀마는 다양한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다양한 소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림 같은 풍경의 자연적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소수 민족 집단의 문명과 문화를 동시에 탐험할 수 있다.

샨Shan주의 리틀 바간으로 불리는 시포Hsipaw. 이곳에 서는 날것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날 수 있으며, 관광객을 위한 길들여진 길이 아닌 아름다운 시골길을 걸을 수 있는 트레킹이 있다. 만달레이에서 10여 시간 기차를 타고 샨족의 중심지인 시포로 향했다.

시포마을 사람들의 휴식처 남후눼 수영장.
시포마을 사람들의 휴식처 남후눼 수영장.
소와 쟁기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는 시포의 농부.
소와 쟁기를 이용해 농사를 짓고 있는 시포의 농부.

시포를 향한 슬로 기차 여행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곡테익 철교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려는 생각은 아니지만 미얀마 북부의 자연 경관을 즐기기 위해서는 버스보다 느린 기차가 최고의 선택이다. 시포행 기차는 하루에 한 번 운행한다. 만달레이Mandalay에서 새벽 4시에 출발해서 대략 12시간 걸리는데 거리는 약 209km. 평균시속이 20km도 채 안 된다. 요금은 Upper Class가 3,950짯Kyat(약 3,500원)이다. 저렴하다는 단어조차 무색하다. 배낭여행객에겐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이 있을까?

새벽 3시에 기상했으니 지난밤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기차에서 잠을 청해 보려던 생각은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감상하느라 잊은 지 오래다. 노란 꽃들이 출렁거리는 바다 사이로 옥수수 밭과 유채 꽃밭이 나란히 나타나고 황금빛의 들판이 스쳐 지나간다. 정차하는 시골역에선 기차길 옆을 걷던 사람들이 이름 모를 외국인을 향해서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준다. 젖혀지지도 않고 쿠션도 무너진 의자, 레일 위를 달려가는 기차의 덜컹거림, 청소를 언제쯤 했는지 모르는 기차이지만 꾸미지 않은 자연을 즐기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만달레이에서 출발한 기차가 4시간 만에 삔우린Pyin Oo Lwin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눈에 뜨인다. 모두들 곡테익Gokhteik역과 나웅펜Naung Peng역 사이의 협곡에 놓인 곡테익 철교Gokhteik Viaduct를 보기 위해 이곳에서 기차를 타는 사람들이다. 곡테익 철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철교이다. 약 700m 구간의 철교를 보기 위해 모여든 관광객들을 배려하듯이 기차는 속도를 내지 않고 미끄러지듯 천천히 지나간다. 철교 아래로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면 더욱 아찔하다. 그 아찔한 순간을 남기기 위해서 상체를 창 밖으로 내미는 위험까지도 감수한다. 지루할 새도 없이 기차는 11시간 만에 아주 작은 시골 역 시포에 도착했다. 

대나무 바구니에 땔감을 메고 가는 샨족의 여인.
대나무 바구니에 땔감을 메고 가는 샨족의 여인.
시포의 더위를 식혀주는 남후눼 폭포.
시포의 더위를 식혀주는 남후눼 폭포.
샨족의 일상적인 외출 모습.
샨족의 일상적인 외출 모습.
홈스테이 집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로 차려준 건강한 식탁.
홈스테이 집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로 차려준 건강한 식탁.

시간이 멈춘 판캄에서 은하수를 만나다

시포~판캄, 16km

시포에 도착하자마자 시포 트레킹을 예약했다. 시포에 온 관광객은 많은데 트레킹에 참여하는 사람은 적은지 내일 함께 출발할 팀은 5명으로 꾸려졌다. 이스라엘 커플, 중국계 독일인 여자 그리고 우리 두 명이다. 2박3일간 걷고 싶었던 나의 바람은 아쉽지만 버려야 했다. 아무도 신청한 사람이 없었다.

우리 팀의 가이드는 샨족인 20세의 청년 한Han. 트레킹의 시작점은 여행사 사무실이다. 마을을 벗어나니 드넓게 논밭이 펼쳐 있고,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한 농부들이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눈만 마주쳐도 싱글벙글 웃음을 짓는 미얀마 사람들. 세상에 나오는 순간에도 웃었을 것 같다. 논에는 이미 벼를 베어서 나란히 볏짚을 뉘어 놓은 곳도 있다. 털고 난 볏 짚단을 쌓아놓은 모양새는 우리와 같다. 6~7월경에 모를 심고 5개월 정도 자란 12월이 수확시기이다.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집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우리를 반겨주면서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수줍어하며 손을 흔든다. 서로를 느끼는 데 언어가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논밭을 지나니 하늘을 향해 치솟은 바나나와 파파야 나무가 무성한 정글지역으로 들어선다. 시커먼 거미부터 초록의 거북등판을 가진 거미까지 길목을 가로 막고 집을 짓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소스라치지 않는다. 

산기슭에는 콩과 옥수수 밭이 펼쳐 있다. 알프스의 몽블랑이나 페루의 마추픽추처럼 엄청난 자연이나 유적지는 아니다. 그냥 담백하고 소소하게 펼쳐진 자연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걷는다. 아마도 우리네 부모님의 어릴 적 모습은 아니었을지? 

콩밭을 지나면 이 콩으로는 어떤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지, 대나무가 무성한 곳에선 대나무 통밥을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다. 길을 걸으면서 보이는 것들을 설명하고 궁금한 것들을 묻고 대답한다. 흡사 자연 관찰 수업 같다. 자연 수업에 이어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는 샨족의 마을과 역사 이야기까지 곁들여진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씩 알아간다. 

샨족의 경계선에 이르니 바리케이드 앞에는 기관총을 가진 군인이 서 있다. 군인은 정부에서 파견한 것이 아니라 샨족이 자체적으로 고용한 군인이다. 나무로 만들어서 엉성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바리케이드가 샨족의 자치구역으로 들어가는 경계선이다.

나문샨Nax Mun shan마을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한 후에 오늘의 목적지인 판캄Pankam마을로 향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숨이 막힐 만큼 햇볕이 뜨겁다. 황토 길은 메말라서 발을 옮길 때마다 일어난 황토먼지가 온 몸을 뒤덮는다. 이 길에 빗물이 고였더라면 얼마나 질퍽거렸을까?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지금의 먼지는 감사할 뿐! 계속되는 오르막에 모두들 힘이 드는지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다들 호흡이 가빠지고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지만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다. 

오후 3시가 지나서야 판캄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의 고도는 약 1,200m. 그늘에만 들어서도 서늘함이 느껴진다. 숙소라고 소개한 곳은 일반 가정집의 이층이다. 이층에 오르니 침대는 아니었지만 매트리스와 담요가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다. 찬물로 샤워도 가능하다. 전기는 태양열을 이용하고 인터넷은 서비스 불가. 문명세계와는 담을 쌓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외지인에게 경계심 없는 열린 마음으로 반갑게 맞아주는 순박함을 가지고 있다.

늦은 점심상이 성대하게 차려졌다. 안주인의 정성이 느껴진다. 모든 음식의 재료는 이 가족이 재배한 유기농 채소이다. 마치 초등학교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식재료와 영양가에 대해서 설명하듯이 식탁에 올라온 반찬들의 재료와 요리법을 가이드 한이 설명한다. 눈에 익은 식재료들이 많다. 다만 조리방법과 양념이 다를 뿐. 우리 고추보다 더 매콤한 칠리소스가 입맛을 돋운다. 시장이 반찬이기도 하겠지만 모든 음식이 담백하고 맛있다. 모두들 밥을 두 그릇이나 뚝딱 해치웠다.

식사 후에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마을 구경을 나섰다. 한은 만나는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인사성 밝은 싹싹한 젊은이. 나이 들면서 이런 젊은 사람들을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들고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마을 공동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던 여인이 자연스럽게 웃어 준다. 전교생이 약 50명이라는 초등학교에선 우리가 ‘한국인’이란 말에 “안녕하세요”, “언니”, “오빠”, “아줌마” 등 한국어가 쏟아진다. 한국 드라마를 보고 익힌 한국말을 하며 소리 내어 웃으며 재미있어 한다. 미얀마에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다시 마주한 저녁 식탁. 점심과는 또 다른 건강한 반찬이 식탁을 채우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모닥불 앞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의 별들이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다. 그 사이에 자리 잡은 은하수. 한없이 하늘만 바라보다가 갑자기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각대 없이 자리를 바꾸어가며 별을 담으려고 애쓰는 내 모습이 갑자기 안쓰럽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본다. 움직이는 별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다.

판캄마을까지 길은 대부분 황토길. 메마른 황토는 걸을 때마다 온 몸을 뒤덮는다.
판캄마을까지 길은 대부분 황토길. 메마른 황토는 걸을 때마다 온 몸을 뒤덮는다.
전통복장을 입은 샨족의 여인들.
전통복장을 입은 샨족의 여인들.

걸으면서 즐기는 명상의 시간

판캄 ~ 남후눼 폭포, 14km

샨족의 집은 가족이 쉬는 공간이자 작업장이기도 하다. 마당 한쪽에는 녹차를 생산하는 시설이 있다. 수확한 찻잎은 장작불을 이용해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넓은 판 위에 펼쳐서 적당하게 말린다. 그후에 나무로 만든 틀을 이용해 찻잎을 솎아낸 다음 스팀기계에서 증기를 쏘이고 햇볕에 바짝 말리면 상품이 되고 주요 수입원이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수작업이다. 그래서인가 그들이 내어 주는 녹차에는 거칠지만 그들의 깊은 정이 담겨 있다.

소중한 하룻밤 인연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한 차례의 오르내림만 있고 거의 평지라고 한다. 샨족의 또 다른 부족이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난다. 언어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사람들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며 각자의 색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지혜가 지금의 우리에겐 꼭 필요한 것은 아닐지!

마을을 지나니 열대우림이 펼쳐진다. 더운 날씨에 쑥쑥 자라는 이름 모를 풀과 나무들이 가로막고 있는 곳에선 가이드 한이 칼로 베어서 길을 내어준다. 지금은 이곳의 겨울에 해당하는 건기라 습도가 높지 않아 걷기에 불편하지는 않지만 우기에 이곳을 걸었을 사람들의 고충이 충분히 상상된다. 

한 차례의 오르내림이 끝나니 평온한 시골 풍광이 펼쳐진다. 어릴 적 시골 큰집에 놀러가 걸었던 아주 좁은 시골길이 스친다. 옥수수 밭 사이로, 차 밭 사이로 줄을 지어 한 사람씩 걸으니 혼자만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살짝 내리막길을 걷는 편안함까지 주어지니 걷는 발걸음이 어제와는 달리 더욱 가볍다. 세상이 평온하다. 시간이 멈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조차 제자리를 걷는 듯하다. 

가이드 한이 잠시 쉬어가자며 우리를 불렀다. 그리고 종이에 정성스럽게 숫자를 쓰기 시작한다. 미얀마어인 버마어와 샨족의 언어로 정성스럽게 한 자 한 자 쓰는 그에게서 자기 민족의 자긍심이 읽혀진다. 내 눈엔 아무리 보아도 그림이다. 작은 소수 민족의 언어가 아라비아 숫자를 표기하는 숫자를 가지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웠다.  

트레킹은 남후눼Nam Hu Nwe폭포에서 끝이 났다. 점심은 샨 누들. 샨 누들은 우리의 잔치국수와 비슷한 샨족의 가장 기본적인 음식 중의 하나이다. 소면 위에 고명으로 닭고기나 돼지고기, 땅콩 등을 올리고 국물을 부어서 먹는다. 국수를 두 그릇이나 비웠음에도 돌아오는 몸은 더 가벼워졌음을 느낀다.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집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집 앞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겨울철 식량으로 사용할 말린 옥수수.
겨울철 식량으로 사용할 말린 옥수수.

삶의 보너스 같은 시간

아무것도 없는 시간이 잠시 동안은 불편할지 모른다. 대단한 볼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트레킹도 아니다. 단지 가이드의 뒤를 따라 안전하게 내 두 발을 내 딛는 것뿐이었다. 분주한 삶에 익숙했던 지금까지의 삶과는 달랐지만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편해진 나를 발견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한 여정은 삶의 보너스 같은 시간이었다. 옥수수 밭조차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곳. 따스한 녹차만큼이나 따스한 사람들이 사는 곳. 시포가 벌써 그리워진다.  

시포 트레킹 개념도
시포 트레킹 개념도

시포 트레킹 보너스 팁!


1. 시포 트레킹

시포의 트레킹 코스는 정확하게 정해진 루트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가이드의 성격에 따라서 트레킹이 달라질 수 있다.

2. 트레킹 일정과 가격

트레킹은 1박2일과 2박3일짜리 두 가지로 나뉜다. 코스마다 차이는 있지만 하루에 15km 내외를 걷는다. 가격은 1박2일 트레킹은 3만 짯, 2박3일 트레킹은 6만 짯이다.(2018년 12월, Ko Pee Tour 제공)

3. 곡테익 철교

만달레이나 삔우린에서 기차로 이동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철교인 곡테익Gokteik 철교를 만나보자.

4. 샨 팰리스Shan Palace

오스트리아 영화 <Twilight over Burma>의 주인공인 시포 왕국의 마지막 왕 ‘오짜셍’과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인 ‘잉게 서전트’가 살았던 궁이다. 이 영화는 2015년 사빈 데프링거 감독의 작품으로 잉게 서전트의 동명의 회고록 <Twilight over Burma>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책의 판매 수익금은 미얀마 난민들을 위해 사용한다. (개장시간 : 15:0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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