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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2월의 명산ㅣ치악산] 높지 않지만 우뚝 솟아 상고대‧설화 일품

월간산
  • 입력 2019.02.08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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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풍치도 볼 만…경사 30% 이상이 전체 61%로 등산 힘들어

능선따라 춤 추는 듯한 운해와 능선을 뒤덮은 상고대가 겨울 치악산의 풍치다.
능선따라 춤 추는 듯한 운해와 능선을 뒤덮은 상고대가 겨울 치악산의 풍치다.

치악산은 원래 단풍이 좋아 ‘적악산赤岳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꿩의 전설이 알려지면서 치악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치악산 단풍이 좋기는 하지만 설악산?내장산?강천산과 같이 단풍 명산으로 유명한 다른 산에 비하면 그리 감탄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겨울 설경이 더 뛰어나다. 설경은 상고대와 어울린 매서운 추위가 동반돼야 더욱 감동적이다. 치악산은 그런 면에서 실제 높이는 높지 않지만 겨울 산의 풍치를 흠뻑 가진 분위기다. 

치악산으로 바뀌게 했다는 꿩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그 옛날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구렁이에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꿩을 살려 주자, 그 꿩이 다시 선비를 살리는 보은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산 이름도 적악산에서 꿩 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그런데 사실은 꿩의 전설보다 치악산이란 지명이 훨씬 먼저 등장한다. 고려시대 과거가 시행되기 전의 문헌에서다. <삼국사기>권5 열전 ‘궁예’편에 벌써 치악산이 나온다. 

‘드디어 궁예에게 병사를 나누어 동쪽으로 땅을 공략하도록 했다. 이에 치악산 석남사에 나가 머물면서 주천, 나성, 울오, 어진 등의 현을 돌아다니면서 습격하여 모두 그곳들을 항복시켰다.’ 

치악산 정상에는 매년 초 해돋이를 보기 위한 인파로 붐빈다.
치악산 정상에는 매년 초 해돋이를 보기 위한 인파로 붐빈다.

이로 미뤄보면 꿩의 전설보다 치악산이란 지명이 더 오래됐고, 꿩으로 인해 치악산으로 변경된 것이 아니라 치악산이란 지명이 꿩의 전설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치악산이란 지명은 이후 <고려사>권56 지리편에 ‘원주는 본래 고구려 평원군으로, 신라의 문무왕 때 북원소경을 두었다. (중략) 공민왕 2년(1352)에 원주의 치악산에 왕의 태胎를 안치하고 원주목으로 복구했다’고 나온다. 

조선시대에도 치악산이란 지명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더욱 명산으로 숭배된다. <태종실록>28권 예조 산천편에는 ‘치악산을 감악산계룡산소백산주흘산 등과 함께 소사小祀로 삼았다’고 기록했다. 이어 <세종실록>에는 ‘치악산은 중악 백악산, 남악 관악산, 북악 감악산, 서악 송악산과 더불어 동악으로 국가제사를 지내기도 했던 산’으로 숭배됐다. 

치악산 설경은 어느 명산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한다.
치악산 설경은 어느 명산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한다.
치악산 성황당에 눈이 덮여 겨울 정취를 더해준다.
치악산 성황당에 눈이 덮여 겨울 정취를 더해준다.
치악산 능선 따라 흐르는 운해와 산그리메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뤘다.
치악산 능선 따라 흐르는 운해와 산그리메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뤘다.

하지만 치악산이란 지명이 어디서, 어떻게 유래됐는지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문헌에도 도대체 찾아볼 수 없다. 뒤늦게 19세기 돼서야 상원사 주지 범해가 쓴 <범해선사문집>에 꿩의 전설이 처음 등장한다. 아마 치악산이란 지명에 맞춰 꿩의 전설을 만들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또한 꿩과 관련한 지명 유래를 설명하면서 불교의 윤회설을 강조하고자 했을지 모른다. 치악산도 정상 비로봉을 비롯 온통 불교와 관련한 봉우리들이다. 

조선 선비들의 유산록에는 가끔 치악이란 한자가 ‘雉岳’이 아닌 ‘峙岳’으로 등장한다. 오기인지 의도된 표기인지 알 수 없다. 오히려 산에 가보면 ‘峙岳’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치악산 등산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상 비로봉이 1,288m로 별로 높지도 않은 산이 매우 가파르고 힘들다. 산높이는 남한 산 중에서 18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힘들기로 따지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다 이유가 있다. 

치악산은 표고 1,000m 이상이 전체 3%, 500~600m가 전체 45%를 차지한다. 최저표고가 300m로 비교적 높은 산악지대에 속한다. 등산할 때 경사가 힘들게 느낄 정도인 경사 30% 이상이 61%로 가장 많은 지역을 이루고, 경사 10% 미만은 0.1%에 불과하다. 표고분석과 경사도 분석에서 알 수 있듯 치악산의 산세는 매우 험준하다. 마치 태산같이 평지에 우뚝 솟은 산세다. 따라서 높지는 않지만 등산하기엔 어느 산보다 힘든 것이다. 

윤회설의 배경이 됐을 수도 있는 주봉 비로봉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향로봉(1,042m)남대봉(1,180m), 북쪽으로 매화산(1,083m)삼봉(1,073m) 등 여러 봉우리들이 에워싸고 있다. 비로봉이 높지는 않지만 내려다보는 풍치가 제법 평가받는 이유다. 거기서 바라보는 상고대와 설화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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