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연재ㅣ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 <1> 유학재] 클라이머는 도전과 위험 극복해야 한다
월간산
입력 2019.03.06 11:35
수정 2019.04.0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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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등반기술가 꼽혀… 손재주 뛰어나 장비제작수준은 ‘한국의 에켄슈타인
“한국의 알피니즘Alpinism은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해하다. 내가 어렸을 때 읽은 등산백과 사전에는 ‘3,000m 이상의 산을 무상 행위로 등반하는 것을 말하고, 이를 추구하는 자를 알피니스트Alpinist라 한다’고 정의했다. 따라서 3,000m 이상의 산에서 극한 등반, 즉 암벽, 빙벽, 눈 속 비박을 하는 사람을 알피니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한국에는 높이 3,000m 이상 산이 없다. 한국적 알피니즘이 모호할 수밖에 없다. 일단 대상되는 산이 없기 때문이다. 전통도 없다. 선배들 추구했던 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다. 본격 등반행위는 1950~1960년대 실시됐고, 이때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알피니즘이 형성, 정립됐다. 한국에서 현대적 의미의 알피니스트는 주어진 자연환경을 최대한 극복해 나가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면 무난하겠다.”
한국의 대표적 전천후 알피니스트 유학재(59) 대장. 그를 왜 전천후로 부르냐면, 그는 암벽·빙벽·장비·환경 등에 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암벽·빙벽 등반기술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할 정도다. 뚜렷한 8,000m급 등반업적은 없지만 자타가 인정하는 등반기술가다.
몇 년 전 몇 차례 등산을 같이했던 한국산악회 회장을 역임했고 서울대 명예교수인 장승필 교수는 “내가 만난 산악인 중 최고의 등반기술가”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 교수는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꿈꾸며 유학 간 독일에서 알프스를 오르내렸던 학자이면서 등반가다. 그런 장 교수가 유 대장을 칭찬했기에 당시 상황이 아직 귓가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국의 대표적 전천후 알피니스트
유 대장은 최고의 등반기술가가 될 자질을 어린 시절부터 지니고 있었다. 산악회에 입문한 고1 때인 1977년 한 선배로부터 <등산백과>란 책을 선물 받았다. 다른 책은 펴자마자 졸리고 이내 잠이 들었지만 <등산백과>만은 그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했다.
책에서 본 내용을 산에 가서 그대로 따라 실습했다. 그는 “그 책은 나만의 산 세계를 구축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말한다. 워낙 재미있게 보던 그 책을 미술시간에 몰래 읽다 압수당했다. 그 선생님은 “학교에서 볼 책이 아니니 졸업할 때 찾아가라”고 해서 같은 책을 유일하게 돈 주고 구입해서 계속 보고 익혔다. 그는 “등산 관련 내용을 제외한 책은 모두 수면제에 가깝다”고 고백한다. 수면제가 아닌 유일한 책이 등산·등반 관련 책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렇게 밉기까지 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그는 그 책의 모든 내용을 읽고 실습을 통해 머릿속에 각인시켜 놓을 정도였다. 한 번은 설악산 토왕성폭포를 갔다. 선배가 크램폰 밴드를 밟아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정이 필요했다. 그 책에 나오는 응급처치 요령대로 피켈과 슬링으로 다리를 고정시킨 뒤 안전하게 하산했다. 다행히 응급처치가 워낙 좋아 선배는 더 이상 피해 없이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