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생각에 젖어 봅니다.
이즈음 야위어진 골짝에는
산 목련이 돌돌 구르는 봄물에 꽃잎 주며
사막했던 어제를 보듬습니다.
잠시 그대의 기억에서 바랜 화사華奢가
계면쩍 산자락에 젖어 들고
초록의 박동은 멧새의 부리에서
하루가 턱없이 짧겠지요.
지난 계절 그대 안에는
염천炎天의 검바위 명징明澄으로 우뚝했고
깊은 사색에 골똘했던 낙엽의 고샅길과
고독이 눈부시던 차마 은령銀嶺이 있었습니다.
그대 생각에 젖어 봅니다.
언제나 절대絕對의 자리에서
달가움으로 나의 부랑 그느르고 보듬어 준,
헤픈 봄볕에 느즈러진 아지랑이 치고 있는
그대 안에서 그대 생각에 젖어 봅니다.
- 윤치술 ‘봄 산’ 전문
3월의 첫 날, 아내와 함께 북한산에 들었다. 진관사 겹처마에는 새봄이 걸려 있고, 비봉 오름 골짜기에는 봄물이 살집 여윈 얼음장 밑을 쫄쫄 흐른다. 여기저기서 퍼석 잎들은 명지바람에 뒤척이고 그루터기에 벗어 놓은 배낭 위 아지랑이는 나비된다. 언젠가 산 선배가 진달래 꽃잎을 물고 먼 봉우리 바라보며 던진, 훔쳐들은 ‘8/10’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산이 10이면 산 벗이 8이지.” 그래서인지 아내와의 산행은 더 큰 행복이다.
사부작 걸음으로 능선에 붙었다. 사모바위 쉼터 봄볕은 등짝이 뜨겁도록 따사롭고 승가봉의 고추바람은 내 낯을 후리며 먼저 들인 봄을 대놓고 나무란다. 청수동암문 뒷길의 응달 잔설은 섣부른 봄을 마뜩찮게 여기고 버티지만, 대남문의 햇살이 난장亂場을 편 진창길에서는 동장군冬將軍도 아기 손 같은 여린 봄을 이기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행진March의 진취가 능선에서 마구마구 움트고 그 기운 담아 걸으면 자연自然은 나의 유쾌한 지음知音이다. 명주실로 꼰 여섯 줄 거문고의 고수 초楚나라의 백아伯牙와 그의 벗 종자기를 떠 올린다.
백아가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과 흐르는 강을 상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은 산이 눈앞에 있고 강물은 유유히 흐르는구나” 하며 감탄했다. 이렇듯 자기의 마음을 알아 주는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큰 슬픔에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는 옛이야기다.
내 삶의 순례에 자연이라는 큰 벗이 함께함은 카일라스산Mt.Kailas을 우러르며 라끄쉬아스딸 호수에서 미쁨으로 올리는 기도와 같음이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다 그대의 산행도 봄처럼 아름다우시라. 지기지우知己之友 자연을 품은 그대에게 내년 봄 다시 쓰게 될 편지를 준비 해야겠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