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0주년 기념특집Ⅰㅣ<7> 50년史 화보] 월간山의 역사는 한국산악史 한국 산의 미래는 월간山에…

입력 2019.06.12 11:06

반세기 운명 짊어지고 달려와… 등산 트렌드 주도 사명 가져

1969년 월간<山> 창간의 서막이 올랐다. 제호를 원래부터 <山>으로 하려고 했으나 당시 한국산악회 회장이었던 노산 이은상의 제안으로 <등산>으로 제호를 정했다. 노산은 제호 글씨도 써줬다.
경영난을 겪던 <등산>은 신우회에서 인수한 1971년 1월부터 월간<山>으로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편집장도 초대 최선웅에서 조선일보 사회부장·문화부장이었던 이일동으로 바뀌었다.
월간<山>은 경영난으로 창간 바로 다음 호인 6, 7월호를 합본호로 발간했다. 특집으로 여름산 세미나와 등산용어 정리에 관한 제언 등을 다루고 있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지면내용이다. 아래 사진 기사는 세계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히말라야 14좌, 즉 세계 14개 고봉 완등 소식을 특집으로 다룬 내용이다.
1977년 11월호 
1977년 한국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한 고상돈을 표지사진으로 실었다.
1979년 7월호 
당시 매킨리(지금은 데날리로 개칭)에서 조난 당한 고상돈 소식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1980년 6월호
한라산의 모든 것과 세계 최장의 산맥 안데스를 특집기사로 다룬 표지.
2000년 9월호에는 ‘엄홍길의 히말라야 8,000m급 14개봉 완등’의 궤적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1988년 에베레스트에서 2000년 K2에 이르기까지 상보를 전하면서 세계 8번째이면서 아시아 첫 완등자라는 기사를 전하고 있다. 20년 전의 엄홍길이 표지인물로 나와 있다.
2003년 8월호는 한왕용도 히말라야 8,000급 14개봉을 완등한 궤적을 특집으로 다루고 있다. 신록의 싱그러움을 발하는 아름다운 숲 사진을 2개 면에 걸쳐 게재한 지면도 눈길을 끈다.
2005년 6월호는 박영석이 북극점 도보탐험에 성공함으로써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소식을 표지사진과 여러 지면에 걸쳐 특집으로 상세히 다루고 있다. 2000년대 초는 한국산악붐이 서서히 일던 시기라 등산인구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한다. 박영석의 이런 활동도 등산인구 증가에 기여하는 변수가 됐다.
창간 40주년인 2009년 6월호에는 당시 한국의 대표적인 산악인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오은선, 고미영이 한 자리에 모여 월간산 창간 40주년을 축하하고 있다. 박영석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의 최고 난이도 높은 벽인 남서벽으로 등정하면서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월간<山> 40주년 축하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각계 인사들의 축하메시지와 함께 인물사진을 실었다.
창간 41주년인 2010년 6월호에는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오은선을 특집으로 다루면서 표지인물로 싣고 있다. 오은선은 이후 등정 논란에 휩싸이면서 주춤한 상태에 있다.
2011년 6월호는 창간호이자 지령 500호 특집 ‘세계 최고봉, 나도 오를 수 있다’를 다루고 있다.
2018년 8월호는 김미곤이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면서 완등상보와 화보를 독점 게재했다. 여름 특집기사로 한국의 얼음골 25선 및 대표 계곡 10선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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