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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악돌이 박영래의 만화산행 특별부록지도 코스가이드ㅣ구담·옥순·제비봉] 충주호와 어우러진 풍광 계산무진溪山無盡

글·만화등산지도·사진 박영래 객원기자
  • 입력 2019.06.1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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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마다 일보일품一步一品… ‘퇴계·관기 두향 사랑 공원’ 볼 만,
장회나루엔 구두쇠 얽힌 전설도

제비봉 540.3m봉 서북릉 상단부 전망바위에서 서북방으로 조망되는 충주호에 둘러싸인 구담봉(소나무 뒤). 구담봉 왼쪽 삿갓 모습인 367.8m봉 오른쪽 뒤로 살짝 M자형을 이뤄 보이는 곳은 옥순봉이다. 아래로 보이는 장회나루에서 오른쪽 충주호 건너 호반湖畔 절개지에 두향의 묘가 있다.
제비봉 540.3m봉 서북릉 상단부 전망바위에서 서북방으로 조망되는 충주호에 둘러싸인 구담봉(소나무 뒤). 구담봉 왼쪽 삿갓 모습인 367.8m봉 오른쪽 뒤로 살짝 M자형을 이뤄 보이는 곳은 옥순봉이다. 아래로 보이는 장회나루에서 오른쪽 충주호 건너 호반湖畔 절개지에 두향의 묘가 있다.

백두대간이 차갓재를 지난 1,025m봉에 이르면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대미산(1,145m)으로 향한다. 1,025m봉에서 백두대간과 헤어져 북으로 가지 치는 능선이 있다. 등곡지맥이다. 등곡지맥은 모녀재를 지난 748.1m봉에서 서북으로 방향을 바꿔 637m봉~야미산~등곡산을 빚은 다음, 여맥들이 충주호로 가라앉는다.

637m봉에서 등곡지맥과 헤어져 북으로 갈라지는 능선이 있다. 이 능선이 계란재를 지나 충주호에 막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빚어진 봉우리가 구담봉龜潭峰(338.2m)과 옥순봉玉筍峰 (283.3m)이다. 모녀재 북쪽 748.1m봉에서 북으로 가지 치는 능선도 있다. 이 능선은 용두산과 사봉 자락을 지나 제비봉(722m)을 들어 올렸다.  

구담봉(단양 제3봉)과 옥순봉(단양 제4봉)은 충주호 이남 단양 8경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이다. 460여 년 전 퇴계退溪 이황 李滉(1501~1570)이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이 이보다 더 나을 수 없다”고 극찬하고, 직접 8경으로 정했다고 전해진다.    

구담봉 정상비석. 비석 뒤로 제비봉(앞)과 사봉이 보인다
구담봉 정상비석. 비석 뒤로 제비봉(앞)과 사봉이 보인다

옥순봉과 구담봉은 1986년 충주호가 만수되면서 그 물 깊이가 60여 m에 이른다. 그래서 수면水面에서부터 구담봉과 옥순봉 암벽 높이는 옛날 남한강시절에 비해 낮아진 셈이다. 퇴계 이황 선생이 옥순봉 아래 새겼다는 ‘丹丘洞門단구동문’이라는 글씨는 수면 아래로 숨어버렸다.

구담봉 정상에 오르면 남동쪽 충주호 건너 장회나루와 제비봉이 마치 거대한 수반水盤 위에 담긴 수석水石처럼 마주 보인다. 반대로 제비봉에서는 장회나루 건너 구담봉과 옥순봉이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 폭 그림을 뛰어넘는 경치를 자랑한다.  필설筆舌로 더 설명이 필요 없는 그야말로 계산무진溪山無盡일 뿐이다.

제비봉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단양군 편에 ‘연비산燕飛山이 군 서쪽 10리에 있다. 높고 크고 험준하며 상악산上岳山과 마주보고 있다. 그 사이로 대천인 상진上津이 흐르고 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제비봉은 구담봉과 장회나루 방면에서 남동쪽으로 올려다보면 산세가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로 날아가는 것 같은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367.8m봉 삼거리에서 구담봉
방면 첫 번째 계단 상단부로 내려서기 전(정면으로 장군바위 보이는 곳) 닳고 닳은 내리막 바위.
너무 많은 탐방객들의 등산화에 단단한 화강암이 흙처럼 패어 있다
367.8m봉 삼거리에서 구담봉 방면 첫 번째 계단 상단부로 내려서기 전(정면으로 장군바위 보이는 곳) 닳고 닳은 내리막 바위. 너무 많은 탐방객들의 등산화에 단단한 화강암이 흙처럼 패어 있다

제비봉 들머리인 장회나루에 조성되어 있는 ‘퇴계 이황·두향이 사랑이야기 공원’도 볼거리다. 〈명기열전〉을 쓴 작가 정비석이 의기義妓로 찬양한 두향은 480여 년 전 제비봉 남서쪽 설마동 계곡 안 두항리斗項里에서 태어났다. 두향은 단양고을 퇴기인 수양모 밑에서 자라다가 13세에 기적에 오른 후, 16세에 황초시라는 사람에게 머리를 얹었다. 그러나 석 달 만에 황초시가 죽자 두향은 팔자려니 하고 본격적인 기생 길로 나섰다. 

시화와 풍류에 능했던 두향은 조선 명종 2년(1548) 1월 48세의 나이로 제5대 단양군수로 왔던 퇴계 이황을 만나게 된다. 두향은 10개월 동안 섬기던 퇴계가 풍기군수로 전근하자  그와 헤어지게 된다. 그후 두향은 강선대가 내려다보이는 산마루에 초막을 짓고, 10여 년간 수절하며 퇴계만을 마음으로 사랑했다. 이후 퇴계가 안동에서 타계한 뒤에는 강선대에 올라 신주를 모셔 놓고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 후, 부자탕을 마시고 26세에 생의 종말을 고했다. 두향은 죽기 전 애절한 유서를 강선대 밑에 묻어두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옥순봉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본 구담봉(앞)과 제비봉(뒤). 왼쪽은 충주호 건너 말목산. 말목산과 제비봉 사이 뒤로 단성 두악산.
두악산 뒤로 살짝 보이는 곳은 소백산. 제비봉 오른쪽 뒤는 사봉.
옥순봉 정상에서 동남쪽으로 본 구담봉(앞)과 제비봉(뒤). 왼쪽은 충주호 건너 말목산. 말목산과 제비봉 사이 뒤로 단성 두악산. 두악산 뒤로 살짝 보이는 곳은 소백산. 제비봉 오른쪽 뒤는 사봉.

등산코스 

구담봉과 옥순봉은 제천시 수산면 계란리와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경계인 계란재가 산행 들머리다. 구담봉은 계란재 옥순봉 구담봉주차장 공원지킴 터~북릉~367.8m봉 삼거리~367.8m봉 동릉~장군바위~안부~정상 전망데크, 옥순봉은 367.8m봉 삼거리~367.8m봉 북서릉~정상비석, 제비봉은 장회나루 입구 주차장~제비봉 공원지킴터~540.3m봉 북서릉~정상 서릉~정상, 또는 외중방리 얼음골 우측 능선~정상 동남릉 경유 정상에 오르고 내리는 코스들이 전부이다. 상기 코스들을 구담봉, 옥순봉, 제비봉 순서로 소개한다.   

구담봉 정상을 대신하는 전망데크에서 충주호 건너로 마주보이는 장회나루와 제비봉. 왼쪽은 단성 두악산. 두악산 왼쪽은 소백산. 제비봉 오른쪽 뒤는 사봉.
구담봉 정상을 대신하는 전망데크에서 충주호 건너로 마주보이는 장회나루와 제비봉. 왼쪽은 단성 두악산. 두악산 왼쪽은 소백산. 제비봉 오른쪽 뒤는 사봉.

계란재~367.8m봉~367.8m봉 동북릉~구담봉〈약 1.9 km·1시간 30분 안팎 소요〉

구담봉은 바위 봉 전체 형상이 거북이를 닮았고龜峰, 충주호로 수몰되기 전 바위 아래 물속 바위에 거북 등짝 무늬가 어른거렸다는 구담龜潭에서 생긴 이름이라 전해진다. 구담도 ‘단구동문’처럼 수몰되었다. 구담은 사라졌지만 신기하게도 장회교 남쪽 설마동계곡 안 약 1km 거리에 거북이바위가 있다.    

계란재에서 35분 거리인 367.8m봉 삼거리(현위치 월악 07-03 ←옥순봉 0.9km, ↓공원지킴터 1.4km, 구담봉 0.6km→ 푯말)에서 동쪽 능선 정상으로 향하는 암릉길인 장군바위 직전 내리막과 장군바위봉을 지난 마지막 내리막 위험지역에는 최근 손잡이 계단이 설치되어 위험요소가 대폭 줄어들었다. U자형으로 패인 마지막 안부에서 구담봉 정상으로는 급경사 계단(계단 수 213개)을 오르는 데에만 6~7분이 걸린다. 계단 상단부에서 왼쪽 약 4m 높이 V자로 패인 바윗길을 올라서면 쇠파이프 바리케이드와 함께 밧줄로 엮은 그물망으로 길이 막혀 있다. 그물망 가운데에는 ‘탐방로 아님·안전사고 예방 및 자연자원보호를 위하여 출입금지’라고 쓰인 펼침막이 걸려 있다.

펼침막 앞에서 바로 오른쪽으로는 구담봉 정상비석이 있다. 정상비석에서 직진 20m를 지나면 더 나아갈 곳이 없는 전망데크로 내려선다. 이곳이 구담봉 정상을 대신하는 곳이다.  이 전망데크에서 조망되는 장회나루와 제비봉 풍광이 일품이다.  

계란재~367.8m봉 삼거리~367.8m봉 북서릉~옥순봉 〈장회나루 주차장 기점 약 4.5 km·3시간 30분 안팎 소요〉

옥순봉은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槐谷里에 속한다. 그래서 제천에서는 옥순봉을 ‘제천 10경’ 중 제8경’으로 부른다. 그러나 단양에서도 ‘단양 8경’ 중 제4경이라고 주장한다.

옥순봉은 퇴계 이황 선생이 ‘옥순봉’ 이름을 짓고 일대를 여행한 이후, 240여 년이 지난 1793년에서 1794년 사이 당대 최고 화가 김홍도(1745~1806)가 옥순봉 아래에서 뱃놀이를 즐겼다. 당시 김홍도는 1792년 12월부터 1795년 1월까지 연풍 현감으로 있었다. 이때 김홍도는 단양, 제천 지방을 돌아다니며 산수풍경山水風景을 그렸다. 도담삼봉 사인암도 그렸다. 당시 그는 강에서 올려다 보이는 풍광이 구담봉보다는 옥순봉이 더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 어느 날 ‘옥순봉도’를 병진년 봄에 그렸다丙辰春寫. 이 그림을 스케치한 위치는 옥순봉 북벽北壁 아래 남한강 위 조각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담 없이 들고 다니기 괜찮았을 종이 크기(세로 26.7cm, 가로 31.6cm)에 수묵담채. 그림을 그린 시기는 1796년 연풍현감 임기가 끝난 해였다. 이 옥순봉도는 ‘병진년 화첩’ 20폭 중 첫 번째 그림이다. 보물 제782호.

구담봉 갈림길인 367.8m봉 삼거리에서 왼쪽(북서쪽) 내리막길이 옥순봉으로 가는 길이다. 내리막으로 10분이면 현위치 푯말(월악 08-01)이 나온다. 푯말을 뒤로하고 10분 더 내려서면 마지막 안부가 나오고, 안부에서 오르막으로 5분이면 촛대바위가 보이는 지점에 닿는다. 이곳에서 4분 더 오르면 옥순봉 정상비석과 전망데크에 닿는다.    

             

전망데크에서 북쪽 충주호 건너로는 둥지봉 새바위와 가은산이 마주 보인다. 가은산 위로는 금수산이 하늘 금을 이룬다. 금수산에서 동으로는 충주호 건너 말목산~투구봉이 수반 위 수석인 듯 마주 보인다. 남동으로는 구담봉 뒤로 제비봉이 고개를 내민다. 제비봉 뒤로는 단성면 두악산과 사봉이 하늘 금을 이룬다. 

정상에서 서쪽 바윗길로 30m쯤 옮겨가면 옥순대교와 청풍 방면 충주호가 거울인 듯 펼쳐진다.

옥순대교 북단 옥순봉전망대에서 충주호 건너로 본 옥순봉 북벽. 옥순봉 왼쪽 뒤로
구담봉과 제비봉이 연달아 보인다.
옥순대교 북단 옥순봉전망대에서 충주호 건너로 본 옥순봉 북벽. 옥순봉 왼쪽 뒤로 구담봉과 제비봉이 연달아 보인다.

장회나루~540.3m봉 북서릉(암릉)~540.3m봉~정상 서릉~제비봉 정상〈약 2.5km·1시간 50분 안팎 소요〉

540.3m봉 북서릉은 온통 암릉으로 이뤄져 있다. 제비봉에서 가장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암릉은 대부분이 좌우로 수 십 길 절벽이다. 위험지역마다에는 추락방지를 위한 난간들이 설치되어 있다. 암릉 막바지에는 높이 10~30m에 이르는 급경사 계단들이 이어진다. 이 계단들에서 뒤돌아보는 충주호반에 떠 있는 듯한 구담봉과 옥순봉 풍광이 일품이다. 

장회나루 주차장에 자가용을 주차한 경우에는 올라갔던 길(540.3m봉 북서릉)을 역으로 내려가는 것이 편하다. 정상에서 동쪽은 높이 약 20m 되는 수직절벽이다. 수직 절벽 동북쪽 삼거리에서 직진하는 능선길은 출입금지구역이다. 삼거리에서 살짝 남동으로 갈라지는 능선길로 약 1시간 내려가면 외중방리 얼음골 입구 식당 앞이다. 

223년 전인 1796년 김홍도(1745~1806)가 그린 ‘옥순봉도玉筍峰圖’. 그림 구도構圖로
보아 지금의 옥순봉전망대에서 동쪽으로 약 500m 더 나아간 지점에서 남쪽으로 올려다보고 그린 것으로 보인다.
223년 전인 1796년 김홍도(1745~1806)가 그린 ‘옥순봉도玉筍峰圖’. 그림 구도構圖로 보아 지금의 옥순봉전망대에서 동쪽으로 약 500m 더 나아간 지점에서 남쪽으로 올려다보고 그린 것으로 보인다.
540.3m봉 북서릉 현위치 09-01번을 지나면 보이기 시작하는 급경사 암릉 계단들.
정면으로 보이는 암봉에는 계단이 3개. 두 번째 암봉에는 계단 두 곳을 오르게 된다. 두 번째
암봉 왼쪽은 540.3m봉이다.
540.3m봉 북서릉 현위치 09-01번을 지나면 보이기 시작하는 급경사 암릉 계단들. 정면으로 보이는 암봉에는 계단이 3개. 두 번째 암봉에는 계단 두 곳을 오르게 된다. 두 번째 암봉 왼쪽은 540.3m봉이다.

교통

서울→단양 동서울터미널(전철 2호선 강변역)에서 수시(07:00~18:00) 운행. 요금 1만 5,100원. 2시간 30분 소요.

청량리역→단양역 1일 9회(06:40, 07:38, 09:10, 10:33, 13:00, 15:38, 17:07, 19:13, 21:03) 운행하는 중앙선 이용. 요금 무궁화호 1만600원(경로 7,400원). ITX 새마을호 일반 1만 5,800원(경 1만 1,100원).

단양역→청량리역 1일 9회(03:36, 08:28, 12:34, 14:18, 15:27, 16:21, 18:31, 20:40, 21:34) 운행.   

단양→장회리 단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6회(07:00, 09:35, 11:25, 14:40, 16:20, 18:45, 18:45) 운행하는 충주행 시외직행, 시외버스터미널 도로 건너편 시내버스정류장에서 1일 6회(06:45, 08:20, 11:00, 14:30, 16:15, 18:50) 운행하는 단양역~단성~장회리~고평~양당(고평리와 양당리는 장회직행버스 정류장 매점 앞에서 남쪽 설마동계곡 안으로 약 3~5klm 거리에 있는 마을들이다)행 시내버스(043-422-2866) 이용. 요금 시외 직행 2,600원(25분 소요), 시내 1,200원(30분 소요). 영남지방에서는 부전, 안동, 영주 발 열차나 시외버스편으로 일단 단양에 이른 다음, 상기 버스편 이용. 

장회리→단양 1일 6 회(10:40, 13:45, 15:30, 17:35, 19:05, 20:30) 운행하는 시외직행 및 남쪽 설마동계곡 양당·고평으로부터 나오는 시내버스 6회(07:30, 09:10, 11:50, 15:20, 17:20, 19:40) 운행. 

장회리→충주 1일 6회(07:20, 10:10, 11:50, 15:05, 16:45, 19:10) 운행. 요금 7,200원. 

택시 단양역~장회나루 1만8,000원. 문의 대강콜택시 043-422-8888, 단양개인브랜드콜택시 423-6699, 단양브랜드콜택시 423-6656. 

배를 타고 구담봉과 옥순봉을 구경하려면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탄다. 30분 간격으로 출항. 승선료 1만 5,000원, 소인 1만 원(12개월~만 12세). 문의 충주호 유람선 043-422-1188. 

식사(지역번호 043)

장회리 일원 장회유람선 선착장 입구 구담봉식당(422-6565·010-8364-0470) 한 곳이 있다. 제비봉 등산로 입구 매점(장회 직행 공동정류소)에서 생칡즙, 커피 등을 판다.    

외중방리 일원 얼음골 제비봉 등산로 입구 얼음골 맛집(422-6315) 한 곳이 있다.

원대리 일원 수산면 ‘원대리 삼거리’ 뜨락(653-5501·010-7186-4888), 옥순대교 남단 하얀집(647-5174·010-8191-5174), 옥순대교 북단 옥순봉 쉼터 등 이용.   

제비봉공원 지킴터에서 10분
오른 전망데크에서 북쪽 아래로
본 장회나루.
제비봉공원 지킴터에서 10분 오른 전망데크에서 북쪽 아래로 본 장회나루.

장회나루와 당대 최고 구두쇠 조륵 

장醬을 훔쳐 먹은 파리를 쫓아 장회나루까지 뛰었다는 전설 전해     

충주호가 생기기 전 옛날에는 설마동계곡에서 흘러온 계곡 물이 구담봉 동쪽 아래에서 남한강과 합류되는 지점을 긴 강 여울을 뜻하는 장회탄長淮灘이라 불렀다. 이 장회탄에서 행정지명인 장회리와 유람선 선착장인 장회 나루 지명이 생겼다.

그러나 ‘장회’라는 지명은 ‘자린고비’의 외침소리에서 생겼다는 전설도 있다. 자린고비는 조선 영조 때 이 지역 최고로 이름난 구두쇠였던 조륵趙肋의 별명이었다 한다. 조륵은  구두쇠로 큰 재산을 모았다가 자선하는 데 재산을 모두 썼다. 그후 조륵이 죽은 뒤 지인들이 그의 착한 행적을 기리기 위해 자인비慈仁碑를 세웠고, 세월이 흘러 이 비를 옛 비석이라는 뜻인 자인고비慈仁古碑라 부르던 것이 구두쇠를 뜻하는 ‘자린고비’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조륵은 끼니마다 반찬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조륵네 집에 굴비 한 마리를 두고 갔다. 그런데 조륵은 이 굴비를 보고는 대경실색하여 “어디서 밥도둑이 굴러들어 왔어?”라며 대문 밖으로 멀리 집어 던져 마침 지나던 개가 물고 가버렸다고 한다.

하루는 조륵의 집에 놀러 온 장모가 고구마 몇 개를 가져가자 곧바로 처갓집으로 쫓아가 고구마를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또 조륵이 음성에 살고 있을 때 어느 날 장독 뚜껑을 열고 햇볕을 쬐이고 있었다. 이때 마침 파리 한 마리가 장醬에 앉아 장을 빨다가 날아가 버렸다. 순간 이 장면을 보게 된 조륵은 파리 다리에 묻어간 장이 아까워 파리 뒤를 쫓기 시작했다. 파리는 계속 날아 충주를 지나 어느 덧 단양 땅 구담봉 부근에 이르렀다. 이때 조륵은 남한강을 허적허적 건너는 사이 그만 단양 쪽으로 날아간 파리를 멀찌감치 놓치고 말았다. 

이때 조륵은 파리를 놓친 것이 분한 나머지 발을 동동 구르며, “장외”라고 소리쳤다. 이때부터 조륵이 파리를 놓친 곳을 어떠한 곳의 바깥을 뜻하는 장외場外라 부르게 되었고, 그것이 변하여 장회長淮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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