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곤 대장의 그때 그 순간 <2>ㅣ2012년 K2~2018년 낭가파르바트] 등반보다 어렵고, 등정보다 귀중한 ‘사람’

  • 글 서현우 기자
  • 사진 김미곤 제공
    입력 2019.06.04 20:14

    네팔대지진 당시 구호활동 위해 정상 등정 포기…마이크 혼에게 “로프 끊겠다” 협박 받기도
    낭가파르바트 원정대 분란 월간山 통해 최초 공개…“다음 목표는 마지막 8,000m 동계 미등봉, 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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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2 정상에 오른 김미곤 대장(좌)과 김홍빈 대장.
    “14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등반이 어려웠던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항상 운이 따라줘서 무난하게 등정에 성공했죠. 다만 사람 때문에 어려웠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위스의 유명 산악인 마이크 혼으로부터 우리 원정대의 로프를 끊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고, 데리고 간 원정대원이 분란을 일으켜서 이를 수습하는 데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등반보다 사람이 더 어렵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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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강동욱 대원, 김덕중 단장, 김미곤 대장, 나관주 촬영감독
    서양에는 ‘친구를 알고자 하거든 사흘만 같이 여행해 보라’는 속담이 전해진다. 여행을 함께하면 사람의 내면을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흘이면 사람을 알 수 있는데, 하물며 두 달 이상은 같이 지내야 하는 히말라야 원정은 말할 것도 없다. 라인홀트 메스너와 페터 하벨러도 함께 에베레스트 최초 무산소 등정을 이룩한 후 완전히 사이가 틀어진 바 있다.
    김미곤 대장도 “14좌 등정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사람’의 어려움과 귀중함을 절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김 대장은 직전 마나슬루 원정에서 박행수, 윤치원 대원을 잃으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았다. 이 사고로 구설수에도 올랐다. 정상 등정을 위해 동료를 등한시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담았던 <부러진 피켈>이라는 책은 한동안 산악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현재는 저자의 사과로 매듭지어졌으며, 책도 판매 중지됐다.
    또 하나는 원정대장을 맡게 됐다는 점이다. 이전의 등반은 다른 원정대의 등반대원으로 참가했으나 이제는 원정 전체를 통솔하는 입장이 됐다. 등반 외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김 대장은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았다”며, 그간 언론에 밝히지 않았던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의 분란을 털어놓기도 했다. 2012년 K2부터 2018년 낭가파르바트로 마무리된 김 대장의 14좌 후반부는 산보다 사람 얘기가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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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스캠프 한쪽 편에 있는 메모리얼.

    지난 원정 경험으로 파업 통제 성공

    김 대장은 K2부터 이어지는 원정에서 원정대의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또한, 원정대원도 고산등반 경험이 일천한 젊은 대원들 위주로 선발했다. K2 때는 강동욱 대원, 2014년 캉첸중가는 당시 26세였던 최윤정, 조강현 대원으로 단출하게 구성했다. 모두 히말라야가 처음인 대원들이었다. 인원이 적어야 다루기 편하기 때문이다.
    “후배들에게 고산등반 경험을 물려주고 싶어 항상 원정대에 젊은 대원을 포함시키려 했습니다. 특히, 학연·지연에 구애받지 않고 선발하려고 했어요. 지금도 그렇고 산악계는 지나치게 학연이나 지연을 따지는 경향이 있어 평소에 반감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오히려 초보자들이 어설픈 숙련자보다 훨씬 나아요. 초보자들은 명령에 충실하게 따르는 반면, 어설픈 숙련자는 겉멋이 들어서 제대로 명령을 수행하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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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키스탄은 포터를 남자들만 한다.
    김 대장은 지난 원정들을 통해서 사람과 상황을 통제하는 방법을 철저히 익혔다. 2014년 캉첸중가 원정 당시 베이스캠프로 이동하던 중 포터들의 파업이 발생했지만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전의 원정 경험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캉첸중가 지역 포터들은 파업이 비일비재하다고 이미 들은 상태였어요. 아예 포터 고용을 포기하고 헬기로 짐을 수송하는 외국팀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래서 애초에 도망갈 걸 가정하고 짐의 양보다 포터를 조금 더 넉넉히 고용했어요. 또, 번거롭더라도 매일매일 일당을 따로 나눠서 지불했죠. 그리고 한 마을에서 포터를 모두 고용하지 않고 여러 마을에서 조금씩 고용했어요. 그 덕분에 파업이 발생했지만 남은 포터들을 잘 달래서 원정에 차질이 없게끔 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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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드피크에서 바라본 K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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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곤 대장이 직전 해 사고를 당한 고 박남수 대원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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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곤 대장이 캉첸중가 캠프1으로 가는 청빙구간을 개척하고 있다.
    캉첸중가 베이스캠프에 입성한 후에는 다른 원정대들의 셰르파들을 휘어잡았다. 독보적인 실력을 보여 줬기 때문이다.
    “열흘 정도 늦게 베이스캠프에 들어왔는데 다른 원정대들이 캠프1조차도 개척을 못 하고 있더라고요. 사정을 들어보니 캠프1으로 진입하는 벽이 청빙이라 셰르파들이 무서워서 못 뚫고 있다고 했어요. 호기심이 동해서 한 번 시도해 봤는데 30~40분 만에 올라갔죠. 그 이후로 다른 원정대들이 모두 저희 원정대 등반 계획에 맞추려고 했죠. 무모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위험하면 내려오면 그만이었어요. 무모함과 용기의 경계는 부담감이 덜할 때 더 뚜렷하게 보이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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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반 중 미들캠프에서 포터들이 파업을 일으키며 임금을 더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짐을 내버려두고 그냥 간다고 협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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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미곤 대장이 고용인 집에서 그의 가족들과 사진을 찍었다. 원래 무슬림 여자들은 외부인과 한자리에 앉지 않는데 그의 가족들은 김 대장을 친인척처럼 생각해서 같이 모여서 차도 마시고 식사도 했다.

    알피니즘보다 휴머니즘이 우선

    원정 결과도 좋았다. K2와 캉첸중가 모두 순조롭게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김 대장의 표현에 의하면 K2 등정은 ‘어부지리’였다고 한다. 국제상업등반대가 루트작업을 거들어 줬고, 등정에 대한 기대감 없이 나선 정상공격에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마지막 정상공격을 할 때는 아예 셰르파들에게 캠프 철수 지시를 내린 상태였어요. 전진 캠프에서 날씨 상태를 봐서 정상 공격 여부를 결정한다곤 했지만, 그보다는 다음 등정을 위해 정상부의 지형을 숙지하자는 차원에서 오르기 시작했죠. 고소적응도 충분히 안 된 상태였어요. 그런데 올라가서 보니 날씨도 좋고, 상업등반대도 정상 등정에 동참해 수월하게 등정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상업등반대에는 김홍빈 대장도 속해 있어 함께 정상을 밟았습니다.”
    캉첸중가는 정상 등정을 뒤로 미루고 할 일이 있었다. 직전 해 원정에서 사망한 절친한 선배 박남수 대원의 시신을 찾아야 했다. 알피니즘보다 휴머니즘이 우선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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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반 일정표를 들고 있는 김미곤 대장.
    “2005년 낭가파르바트 루팔벽 등반 때부터 자주 원정에 함께했던 선배였습니다. 성격이 시원시원했어요. 평소에 ”나이 많다고 선배냐, 산에 많이 다닌 사람이 선배다. 시킬 거 있으면 시켜라”며 격의 없이 지냈죠. 사고 당시 같이 간 대원들이 시신 수습을 못 하고 GPS 좌표와 사진만 찍어서 저한테 넘겨줬어요.”
    캠프4 인근에 있다는 GPS 좌표로 향했으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수색을 계속했지만 악천후로 인해 소득 없이 베이스캠프로 물러났다. 날씨가 진정돼 재차 올랐지만 여전히 찾을 길이 없었다. 다른 외국 원정대들은 내심 길을 개척해 주면 따라 오를 심산으로 김 대장이 정상에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박남수 대원이 속했던 원정대 대장이었던 이성원 대장이 베이스캠프에 들어와 “그 정도까지 했으면 판상 눈사태에 유실됐으니 너의 등반에 전념하라”고 말했다. 
    김 대장은 정상을 등정한 뒤 하산 중에 또 다시 수색했지만 결국 시신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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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대원이 발목에 부목을 대줬다.
    같은 해 가을 이뤄진 브로드피크 원정은 초고속으로 이뤄졌다. 실제 등반일이 5일에 불과해 히말라야 14좌 중 가장 빠른 등반이었다. 여기서는 산 사람을 살렸다.
    “브로드피크 정상 공격을 대만팀과 같이 했습니다. 무난하게 정상에 선 뒤에 저는 먼저 하산하고 셰르파와 조광현 대원이 마지막 캠프에서 하루 자고 뒤따라 내려오기로 했죠.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는데 대만 원정대에서 정상 등정팀과 연락이 두절됐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우리 팀에 연락해 보니 대만 팀 2명 중 1명이 고소로 탈진한 상태에서 비박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셰르파를 시켜서 우리 팀 마지막 캠프에 있던 예비 산소를 올려 보내 살려냈죠.”
    이 사건으로 인해 대만산악연맹과 김 대장은 각별한 사이가 됐다. 2015년 1월에는 대만산악연맹 회장과 당시 소생한 대원이 함께 한국을 방문했고, 매년 겨울이면 대만산악연맹 회원 15~20명이 빙벽등반을 배우러 오고 있다. 김 대장은 “국가와 이데올로기, 종교 등을 떠나서 산악인은 모두 친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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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를 다친 와중에 얼굴 팩을 하고 있는 대원들(왼쪽부터 김진현, 조강현, 이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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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의사가 김진현 대원의 다리를 치료해 주고 있다.
    김 대장은 안나푸르나를 세 번째 원정인 2016년에 등정했다. 2015년에도 정상 공격 직전까지 등반했지만 사건이 발생했다. 네팔 대지진이 일어났던 것이다.
    “처음 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일반적인 눈사태로 인한 진동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진원지로부터 20km밖에 안 떨어져 있는데 지반이 단단해서 큰 진동이 없었던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언론을 접하지 못하니깐 정확한 피해 상황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한국과 통신으로 피해가 꽤 크다는 사실을 듣게 됐죠.”
    김 대장은 결국 정상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가기로 결정했다. 내려오고 나서 목격한 건 완전한 폐허와 아수라장이었다. 김 대장은 원정대를 이끌고 헬기나 차량이 접근하지 못하는 산간지역으로 들어가 구호활동을 펼쳤다. 원정대의 남은 식량을 모두 나눠 주고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우는 작업을 했다. 블랙야크가 지원해 준 수 톤의 텐트 및 의류를 진원지인 고로카 지역에 들어가서 나눠 주기도 했다.
    사실, 한국에서는 길을 걷다가 누가 쓰러져 있어도 귀찮은 일에 휘말릴까 우려해 대부분 모른 체하기 일쑤다. 반면, 김 대장은 극한의 환경인 히말라야에서, 막대한 원정비용 손실을 감수하고, 사람을 살리는 데 앞장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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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원정대들도 마이크 혼의 소동을 듣고 웅성이고 있다.
    히말라야 14좌의 영광이 완성되던 2018년 7월 9일 낭가파르바트 등정. 2000년 초오유 등정으로부터 무려 18년이 걸친 대장정이 마무리된 순간이었다. 그러나 김 대장은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속사정이 있었다”며 당시의 분란을 들려줬다.
    “먼저, 스위스의 유명 산악인인 마이크 혼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베이스캠프에 입성하고 난 뒤 보니깐 스위스 원정대가 로프, 스노바, 스크루 등 공동등반 장비 일체 없이 개인장비만 가져왔더라고요. 저희 원정대의 로프를 몰래 사용할 요량이었던 거죠. 저희는 로프만 4km를 챙겼습니다.”
    보다 못한 한국 원정대원 한 명이 스위스 원정대에게 가서 로프 사용료를 내라고 요청했다. 히말라야에선 다른 원정대의 로프를 사용할 경우 이용료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위스 일부대원도 수긍했다. 그런데 정작 대장인 마이크 혼이 화를 내며 “I cut that rope너희 로프를 자르겠다”라는 사실상 살해 협박을 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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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트도를 그리고 있는 유희원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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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트도 앞에서 외국원정대와 함께 선 김미곤 대장(왼쪽 두 번째).
    “일부 서양 원정대들의 행태입니다. 알파인스타일을 자처한다면서 몰래 다른 원정대들이 깔아놓은 고정로프를 사용하는 거죠. 마이크 혼도 알파인스타일로 오른다고 했죠. 웃긴 건 알파인스타일로 로프 없이 오른다는 사람들이 로프를 자르겠다고 협박했단 점이죠.”
    결국 마이크 혼의 협박으로 파키스탄 경찰까지 왔다. 경찰이 오자 마이크 혼은 “등반 중에 아이젠에 걸려 로프가 잘릴 수도 있다는 걸 오해한 것 같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한 한국 원정대원에게 “로프를 자르겠다”고 협박한 말을 포함해 대화 전체를 녹취한 증거물이 있어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마이크 혼은 어쩔 수 없이 사과하고 며칠 뒤에 바로 베이스캠프를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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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희원 대원이 루트도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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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가 파르바트 베이스 캠프에 도착한 원정대.

    등반력보다 인간성이 중요

    한편, 김 대장은 한국 원정대 안에서도 분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한 원정대원이 원정대 전체와 융화되지 못하고 분위기를 흐렸다는 것이다.
    “이제 등반을 마무리한 지도 꽤 시간이 흐른 뒤라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결코 이 사람을 매장시키려고 이 내용을 털어놓는 게 아니에요. 단지, 산악인들에게 자신의 등반 파트너를 고를 때 등반 호흡보다 인간적인 호흡이 맞는지, 등반력보다 인간성이 좋은지를 먼저 고려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김 대장은 해당 대원은 히말라야 고산 등반 경험이 꽤 많은 축에 속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 경험을 토대로 다른 젊은 대원들을 무시하기도 하고, 다른 대원의 험담을 늘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김 대장은 “자신이 등반대장이나 부대장 정도는 할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대원에 머물러 있던 게 불만이었던 것 같다”며 “내가 원정대장이자 등반대장으로 선등하기 때문에 따로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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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 혼이 손가락으로 한국대원을 가리키며 변명과 함께 화를 내고 있다(가운데).김미곤 대장은 한국대원을 자중시키고 있다(오른쪽 파란색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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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진으로 붕괴된 곰파.
    “국내 훈련을 할 때도 대원들을 선동해서 정해진 루트 대신 몰래 지름길로 돌아서 가기도 했어요. 그래도 후배고 고된 훈련을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눈감아 줬죠. 그런데 원정이 끝난 뒤 14좌 보고회 때 제가 먼저 떠난 대원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 걸 보고, ‘악어의 눈물’이라고 험담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김 대장은 “나중에 알고 보니 우울증 약을 먹을 정도로 원래 불안한 친구라고 들었다”며 “지금은 다 잊었다”고 말했다. 다소 침울해진 분위기는 히말라야 14좌 이후의 계획에 대해 묻자 다시 밝아졌다.
    “현재 히말라야 14좌는 동계 초등마저 대부분 이뤄진 상태입니다. 딱 하나, K2만이 아직 동계 초등되지 않아 전 세계적인 관심이 쏠려 있죠. 다가오는 겨울, K2 동계 초등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히말라야 14좌 마지막 초등 기록에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새기고 싶습니다. 
    저는 여태껏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등 선배들의 족적을 따라온 것에 불과합니다. 이제 이분들이 쌓아올린 계단을 딛고 저도 한 계단 더 올라서서 후배들에게 더 높은 계단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현재 전략을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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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대가 현지마을에서 구호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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