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산행기] 남한산성에서 전하는 봄소식

  • 글 사진 장광현
    입력 2019.06.0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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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쾌하게 뻗은 남한산성. 미세먼지로 시계는 좋지 않았다.
    산행을 나서려고 하니 경기지역 초미세먼지 수치가 113㎍/㎥로 ‘매우 나쁨’ 이라는 예보다. 집을 나설 때 미세먼지와 운동이 몸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해 보며 산행을 주저했다. 그러나 산이 너무나 고팠다. 길을 나서 산성 아래 체육공원으로 들어서자 미세먼지에도 아랑곳없이 운동이나 산행을 나온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남한산성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정해진 들머리나 날머리가 없으니 마음 가는 대로 걸어볼 요량이었다. 산정으로 가는 길은 수없이 많은데 어디로 간들 빠르고 늦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목적지에 닿게 마련이다. 
    체육공원에서 ‘어린이 숲 체험장’이 있는 오른쪽 능선으로 길을 잡았다. 5부 능선쯤에 올라서자 계곡 건너편 능선 마루를 타고 산성마을로 난 남한산성로와 산성이 눈에 들어온다. 시가지는 절해고도 마냥 미세먼지에 갇혔고 시가지 너머 청계산도 모습을 감췄다.
    검단산과 제1남옹성의 중간쯤 능선마루로 올라섰다. 비스듬히 사면을 따라 실천을 건너고 옹성 쪽으로 다가섰다. 질척이는 산길 위 곳곳에 바다를 건너 온 야자수 섬유 멍석이 깔려서 걷기가 한결 수월하다.
    남장대 터를 지나면 멀리 북쪽으로 산성 안의 행궁과 산성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문격인 좌익문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동문과 그 건너편으로 망월사 그리고 산성 아래 송암정 터가 온전히 눈에 들어온다. 
    산성마을을 가로지르는 남한산성로를 건너면 동문이 맞아준다. 보수공사로 해체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던 동문은 최근 다시 제 모습을 찾았다. 하늘에서 땅으로 하강하는 용이 비탈진 능선 위로 긴 꼬리를 늘어뜨린 듯 성곽을 뻗치고 우뚝 멈춰선 위용이 늠름하다.
    동문에서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 황진이 일화가 전하는 송암정松巖亭이 있었다는 큰 바위가 산성 바깥 사면에 위태롭게 자리하고 있다. 정조대왕이 여주로 가는 능행길에 대부 벼슬을 내렸다는 소나무, 대부송大夫松은 고사목이 되어 그 옆에서 옛 영화를 회고하고 있다. 
    산성이 골을 타고 산정 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 능선자락에 장경사가 안겨 있다. 목탁 소리에 맞춰 ‘관세음보살’하는 불경 소리가 들려오고, 추임새라도 넣듯 까마귀가 숲에서 가끔씩 ‘까악’하고 운다. 요사채 마루에 걸터앉아 듣자니 천도재를 올리는 중이다. 멀찍이서 한 번 합장을 하고 발을 옮긴다.

    봉암성, 병암바위 등 문화재 관람

    동장대 터 쪽으로 굴곡지며 오르내리는 산성을 따라 걷는 산객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아 카메라 셔터를 연이어 눌러본다. 풍경 사진 속에 사람이 들어가면 생동감이 있다. 암문을 통해 본성 밖으로 나서서 예전에 가보지 않았던 봉암성과 한봉성 쪽으로 발을 옮겼다.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인 ‘벌봉’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약 2km 뻗어 있는 봉암성은 곳곳이 허물어지고 무너져 있어 안타까웠다.
    동장대 터로 돌아와서 전승문이라 불리는 북문을 지나고 네 개의 문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다는 서문에 다다르면 그 아래 국청사가 포근히 안겨 있다. 국청사 약수터에서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양팔을 벌리거나 위로 손을 뻗치면 닿을 듯 아담한 인왕상이 그려진 대문을 들어서면 대웅전 천불전 삼성각이 마당을 가운데 두고 ㄷ자로 앉아 있다. 산문을 사이에 두고 인적 없이 고요한 그 안과 행락객들 발길로 번잡한 그 밖이 극단의 대조를 보여 흥미롭다. 
    다시 걸음을 옮겨 수어장대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둔덕처럼 솟은 능선 위에 ‘병암남성신수비’가 서있다. 정조 때인 1779년 남한산성 보수 감독관 광주부윤 이명중, 석회와 벽돌을 구워 운반하던 감독관, 구역별 책임자 18명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건축실명제’ 금석문이다. 나들이객들은 성벽 옆으로 난 넓은 길을 따라 걸을 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여 아쉽다.
    청량산의 정상부인 수어장대 마당으로 들어섰다. 인조 때 산성 축성비를 탕진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축성 책임자 이회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처첩의 억울한 이야기가 서린 매바위와 청량당, 무망루無忘樓 편액이 걸린 보호각, 1953년 9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이 기념으로 심었다는 전나무 등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시야는 먼지에 갇혀 갑갑하다. 남문이라 불리는 지화문을 통과해 남한산성로 버스정류장에서 가파른 나무계단을 따라 체육공원 쪽으로 내려왔다.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처럼 봄은 올 것 같지 않지만 틀림없이 우리 곁으로 찾아오고 나무들도 곧 메마른 가지에 싹을 틔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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