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국내 산악인물] 故 김창호 (1969~2018)

입력 2019.11.08 09:58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딱 1년이 지났다. 지난해 9월 말, 그는 네팔 구르자히말(7,193m) 남벽 신 루트 개척을 위해 길을 떠났다. 하지만 원정대는 해발 3,500m 지점의 베이스캠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돌풍에 휩쓸렸다.
이 사고로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원정대원 4명과 정준모 한국산악회 이사, 현지 가이드 4명 총 9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창호는 국내 최초로 무산소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악인이다. 2005년 7월 14일 낭가파르바트(8,156m) 등정을 시작으로 2013년 5월 20일 에베레스트(8,848m) 등정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했다. 그의 무산소 14좌 완등은 한국 최초인 동시에 아시아 최초의 기록이었고, 세계 최단기간 등정이라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단순히 등반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치밀한 연구를 거듭하는 ‘공부하는 등반가’였다. 거기에 초인적인 체력과 정신력까지 더해져 탁월한 고산등반 능력을 자랑했다. 특히 그는 카체블랑사, 바투라2봉, 강가푸르나를 초등하고, 혼보로피크, 시카라, 다람수라, 팝수라 등을 신 루트로 오르는 등 도전적인 등반을 즐겨했다. 단순한 피크 헌터가 아닌, 전 세계가 인정한 진정한 알피니스트였다.
김창호는 8,000m급 14좌 완등 이후에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코리안웨이 프로젝트’로 등반 열정을 이어가며 황금피켈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는 등 독보적인 활동을 펼쳤다. 상업적 성공이나 세간에 주목을 받기보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가는 뚝심의 산악인이었다. 또한 원정대를 꾸릴 때 항상 후배들과 함께하며 후진 양성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그의 죽음으로 우리 산악계는 차세대 리더를 잃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