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서스 3국을 가다ㅣ<1> 조지아 마운틴 카즈벡] 그리스신화 간직한 조지아의 聖山

입력 2019.11.08 09:57

코카서스산맥에서 7번째 높아…2,200m에 있는 14세기 건립 사메바 수도원도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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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년설로 뒤덮인 코카서스산맥 카즈벡산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 트레커들은 보통 아래 목장이 있는 산장까지 갔다 되돌아온다.
한국에 백두산이나 지리산이 있다면 조지아엔 마운틴 카즈벡Khazbeg(5,053.9m)이 있다. 조지안들의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카즈벡산은 조지아인들에겐 성산聖山과 같은 존재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와도 연결된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리스신화 속에서 ‘인간들의 왕’으로 통한다. 세상 만물이 혼돈상태이던 시기, 프로메테우스는 대지의 흙을 조금씩 떼어내 인간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동물에게 지혜와 힘, 용기 등을 불어넣어줬다고 한다.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정작 인간 차례가 되었을 때 힘을 너무 소진해 더 이상 남은 것이 없었다. 이에 형 프로메테우스에게 도움을 청하자 프로메테우스는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하늘에서 불을 훔쳐와 인간에게 건네주었다. 불을 가진 인간은 더욱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신의 왕 제우스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천둥이나 벼락, 즉 불을 내리지 않기로 했으나 이를 어기고 인간에게 불을 건네준 프로메테우스에게 독수리가 간을 쪼게 하는 무서운 형벌을 내린다. 그 장소가 바로 코카서스산맥 동쪽에 있는 카즈벡산이다. 카즈벡산 4,000m 정도에 베틀레미Betlemi 동굴이 위치한 절벽에 프로메테우스가 묶여 있었다고 전한다. 지금 게르게티 트리니티성당 또는 츠민다 사메바교회가 있는 위치가 해발 2,200m 정도 된다. 베틀레미 동굴까지는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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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벡산 올라가는 중간쯤 2,200m 고지에 14C에 건립한 츠민다 사메바교회가 있다.
신화에 등장하는 독수리가 인간의 간을 쪼고 있는 그림 속 주인공이 프로메테우스다. 프로메테우스는 거인족 티탄족 영웅이지만 올림포스 신들이 나중에 승리를 거둘 줄 아는 ‘먼저 아는 자’라는 뜻으로서, 올림포스의 최고의 신인 헤라클라스가 구출한다. 그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는 ‘나중에 아는 자’라는 뜻으로 온갖 혼돈이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를 연 주인공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미리 알고 동생에게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세상을 온갖 불행과 재앙을 겪게 한다.
‘이아손과 아르곤 원정대’라는 또 다른 신화의 장소도 카즈벡산과 관련 있다. 이아손은 이올코스 왕의 아들 이오메데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이부형제 펠리아스가 왕위를 찬탈하자 그의 어머니는 궁술·음악·의학·예술의 현자인 케이론에게 양육을 맡긴다. 이때 이오메데스라는 그의 이름이 이아손으로 바뀐다. 이아손은 성장해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이올코스로 찾아간다. 펠리아스가 받은 신탁에서 ‘한쪽 샌들을 신은 자가 왕좌를 찬탈하러 온다’고 했는데 이아손이 그 모습이었다. 펠리아스는 이아손을 죽음으로 내몰기 위한 계책으로 “세상의 동쪽 끝에 가서 황금양털을 가져오면 왕위를 건네주겠다”고 약속한다. 당연히 그는 이아손이 죽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이아손은 헤라클레스, 아탈란타, 오르페우스 등의 도움을 받아 아르곤호를 만들어 항해를 떠난다. 아르곤호의 항해지이자 세상의 동쪽 끝은 흑해의 동쪽이자 코카서스산맥의 동쪽에 있는 마운틴 카즈벡으로 알려져 있다. 서쪽 끝은 지브롤터. 해협에 두 기둥을 박았다고 하는데 헤라클레스가 게리온의 소떼를 차지하러 가는 길에 세상의 끝에 온 기념으로 박았다고 신화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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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츠민다마을 전경.
카즈벡은 만년설산 혹은 얼음산이란 뜻
카즈벡산은 코카서스Cacusus산맥 중 7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다. 첫 번째가 유럽 최고봉 엘브루스Elbrus(5,642m). 조지아에서는 시카라Shkhara(5,193m)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몇 년 전까지 융가Janga(5,051m)가 두 번째였고, 카즈벡은 5,033m 또는 5,047m 등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2019년 5월 조지아 정부가 직접 실측한 결과 5,053m로 확정 발표했다. 카즈벡의 뜻은 그루지야어로 ‘Glacier Peak’ 또는 ‘Freezing Cold Peak’를 의미한다. 즉 ‘얼음산’이나 ‘빙하봉’, ‘만년설산’ 등으로 불린다. 코카서스산맥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평가받는다. 1868년 영국 산악인 더글라스 프레시필드가 최초로 등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 소련에 의해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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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츠민다마을 가는 도로에 있는 명소 구다우리전망대.
2,500m까지 누구나 트레킹 즐길 수 있어
산행 출발지는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마을. 해발 1,870m쯤 된다. 마을은 카즈베기라고도 한다. 제정 러시아 당시 총독이었던 알랙산더 카즈베기가 자신의 이름을 붙여 카즈벡산이라고 명명했고, 마을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조지아는 독립 후 원래의 지명인 스테판츠민다로 복원했다. 이는 조지아 정교의 수도사였던 스테판과 ‘성스럽다’는 뜻의 츠민다를 합성한 것이다. 보통 산행은 게르게티 트리니티성당까지 가거나 조금 더 위 만년설 조금 못미친 곳까지 트레킹한다. 그 이상까지 오르려면 전문장비를 갖춰야 한다.
코카서스산맥을 넘으면 러시아. 산맥이 조지아와 러시아의 국경인 셈이다. 출발지인 스테판츠민다마을은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한적하다. 코카서스산맥을 가로질러 러시아가 유일하게 남하할 수 있는 길이 바로 마을 앞을 지나는 바로 그 도로라고 한다. 도로 자체가 고도 2,000m를 오르내린다. 왕복 2차선 좁은 도로에 대형 트레일러나 짐차들이 숱하게 지나간다. 굴곡진 도로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기도 한다. 스테판츠민다마을로 접근하는 길에 교통사고로 도로 옆 절벽으로 떨어질 뻔한 트레일러를 목격하기도 했다. 좁은 도로는 긴장감을 주고도 남았지만 마을은 무척 아늑하다.
스테판츠민다마을과 아늑한 게르게티마을을 지나 가파른 카즈벡산 자락으로 오른다. 제법 숨이 차다. 미국과 유엔 구호기금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게르게티 트리니티성당Gergeti trinity church(게르게티 성삼위일체교회. 또는 츠민다 사메바교회)로 물공급을 하고 있다는 안내판도 보인다. 츠민다 사메바교회는 절묘한 장소에 위치해 있다. 카즈벡산 자락 조그만 봉우리 정상에 수도원을 지어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적의 침범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일종의 망루 역할을 한다. 14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스만투르크 전성기와 맞물린다. 4세기에 세계에서 최초로 기독교 국가로 공식 승인받았다고 하니 당연히 이슬람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을 것 같다. 이를 피하기 위해 산 위에 조성했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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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다우리전망대에서 카즈벡산과 깊은 계곡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4세기에 기독교 공인국가
고도는 점점 올라간다. 스테판츠민다마을이 해발 1,800m 남짓 됐으나 어느 새 2,000m 고지를 훌쩍 넘었다. 츠민다 사메바교회가 저기 멀리 보이기 시작하자 트레커들도 제법 눈에 띈다.
혼자 내려가는 젊은 트레커를 만났다. “어디서 왔나”고 묻자 “인디아”라고 말한다. “지금 세 시간째 힘들게 걷고 있다”며 “올라갈 때는 힘들어서 헉헉 거렸는데, 내려가는 길은 매우 빠르다”고 응답한다. 이어 연인인 듯 남녀가 올라간다. 그들은 “폴란드에서 왔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2주일 전에 내 형제가 한국을 방문했다”고 자랑하며, “제주도와 서울 등지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제주도는 한국의 하와이”라고 형한테 들었다고 응답한다. “제주도는 한국 유일의 세계자연유산”이라고 가르쳐주자, “맞다”며 “매우 아름답다고 하더라”고 말한다. 폴란드팀을 세 팀이나 만났다. 독일과 스위스 젊은이들도 마주쳤다. “풍광이 스위스와 비슷하다”고 한다. 완만한 산사면에 트레킹하기 딱 좋은 분위기다. 저 멀리 카즈벡 정상은 만년설로 덮여 있고, 그 경계선 조금 못미친 곳에서는 아르곤의 양떼인지 수많은 양들과 말들이 방목해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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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벡산과 그 아래 있는 게르게티마을 전경. 왼쪽 중간 봉우리에 게르게티 트리니티성당이 조그맣게 보인다.
카즈벡산 정상은 서쪽으로 계속 올라가지만 츠민다 사메바교회는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아쉬운 마음에 조금 더 카즈벡산으로 향하다 해발 2,500m 정도를 확인하고 뒤로 돌아 츠민다 사메바교회로 향한다.
교회까지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차가 올라간다. 교회 주변에 많은 차들이 정차해 있다. 교회는 14세기 때 건립한 모습 그대로다. 교회 아래 게르게티마을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전망대 치고는 너무 완벽하다. 건너편에 스테판츠민다마을도 완전 마주보고 있다. 전쟁이나 재난 시에 조지아의 귀중한 유물은 사메바교회에 보관했다고 한다. 조지아인들에게는 그만큼 성스러운 곳이라,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마주보는 스테판츠민다마을 전경과 올려다보는 카즈벡산의 만년설 풍광, 그리고 그 길을 걷는 수많은 트레커들은 왜 이곳이 조지아 최고의 여행지로 꼽히는지를 말해 주는 듯하다.
츠민다 사메바교회를 기점으로 하산이다. 코스는 다양하지만 어느 길을 택하든 위험한 코스는 전혀 없다. 걷기 딱 좋은 트레일이다. 출발한 게르게티마을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3시간 남짓 걸렸다. 거리는 불과 5.9km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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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게티 트리니티성당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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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카즈벡산 개념도
마운틴 카즈벡 가이드
수도 트빌리시로부터 북쪽으로 175km 떨어져 있다. 한국 같으면 얼추 2시간 정도 걸리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해발 2,000m 오르내리는 러시아로 향하는 왕복 2차선 도로는 시속 40km도 채 낼 수 없다. 버스로 4시간은 족히 예상해야 한다.
스테판츠민다마을로 가는 도중 구다우리전망대가 나온다. 천길 낭떠러지가 바로 발아래 펼쳐지고, 깊은 계곡을 낀 카즈벡산이 저 멀리 만년설과 함께 한눈에 들어온다. 명물이다. 구다우리전망대는 러시아와 조지아가 더 이상 불편한 관계를 가지지 말자고 약속하면서 상징적으로 건립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불편한 관계에 있다. 상징적 건물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유명 관광지가 됐다.
스테판츠민다마을에서는 카즈벡산을 마주보는 룸스 호텔 카즈베기가 전경은 제일 좋다. 카즈벡산으로 넘어가는 석양이 일품이다. 관광객들 모두 카메라나 휴대폰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느라 이리저리 분주하다. 이 지역을 찾는 전 세계 여행객들에게 호평을 받는 호텔이다. 실제 호텔에 가면 여러 국가의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수영장과 사우나시설까지 갖춰 편의시설도 수준급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비싼 게 흠.
스테판츠민다마을을 거점으로 때 묻지 않은 대자연을 즐길 수 있는 주타마을과 트루소 트레일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주타마을에서 출발하는 트레킹은 환상적이다. 정말 알프스에 온 듯하다. 실제 이곳에서 만난 스위스 젊은이들은 “알프스의 케이블카가 싫증나서 여기 와서 대자연을 즐긴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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