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여성 백두대간 단독 일시종주기<17>] “이젠 대간이 몸에 아로새겨졌어요”

  • 글 사진 성예진(블랙야크 셰르파)
    입력 2019.11.04 18:55

    내측광근 부상으로 왼쪽 다리 거의 쓰지 못한 채 속리산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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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리산 정상의 파노라마.
    9월 21일 백두대간 일시종주 28일차
    벌바위~월영대~피아골~대야산~밀재~고모령~조항산~갓바위재~청화산~늘재~장암교차로~화북오송탐방지원센터 26km
    "예진아~"
    부모님께서 평소 일어나는 시간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자 나를 깨웠다. 5시 30분, 적당한 시간이다. 요즘은 6시가 넘어야 해가 뜨기에 이맘때가 딱 좋다. 알람을 확인하니 5개나 설정해둔 알람이 모두 꺼져있다. 부모님이 계셔서 긴장을 풀고 잠이 들어버린 듯하다. 6시간 정도 잔 것 같은데, 온몸이 찌뿌둥하기만 하다. 조금 비약을 더하자면 밤을 꼬박 새운 기분이다. 개운하지 않은 느낌에 눈을 뜨고도 한참을 침낭 안에서 뒤척인다.
    금방이라도 다시 잠들어버릴 것 같은 상태다. 대간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지 않았다면 아마 몇 번이고 그대로 잠이 들었거나 휴식을 가졌을 테다.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고 일어나 산행할 준비를 시작한다. 비몽사몽간에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고, 배낭을 챙겨 걸음을 옮긴다. 어머니는 아침을 먹고 갔으면 했지만, 밥을 먹으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을 것 같아 대충 산행할 준비만 해서 그대로 출발했다. 그렇잖아도 피곤한데 엉덩이까지 무거워지면 곤란하다. 대신 엄마가 챙겨준 김밥과 과일, 군것질거리가 배낭에 가득하기에 여느 때보다 든든한 하루다. 
    오늘은 대야산과 조항산, 청화산 3개의 산만 넘으면 된다. 오후 3시부터 비소식이 예정되어 있다. 별 다른 문제가 없다면, 평소 걸음 정도만 걷는다면 비가 쏟아지기 전에 늘재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산에서 비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대야산을 오른다.
    대야산 역시 최근에 다녀온 곳이다. 얼마 전, 가까운 지인이 대야산에서 100대명산 완등식을 했기에 낯설지 않다. 들머리 또한 같은 곳이라 낯익다. 계곡산행으로 유명한 대야산은 수량이 풍부했다. 널찍한 바위가 많아 천연 풀장 같은 용추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 월영대 삼거리에서 피아골으로 오른다. 당일 산행의 경우 대개 밀재로 오르는 길을 택하지만, 대간 남진을 하는 나는 정상에서 밀재 방향으로 내려가기에 다른 길로 오르고 싶었다. 또, 밀재로 오르는 길은 이전에 다녀온 길이라 정상으로 곧장 올랐다.
    정상까지 1.9km.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길이다. 경사가 가파르고 돌이 많다. 군데군데 로프가 설치되어 있을 만큼 가파른 길들이 이어진다. 천천히, 그렇지만 너무 느리지도 않게 꾸준히 오른다. 거리에 비해 멀게만 느껴지는 길이었다. 1.9km에 500m 고도를 올려야 하니 가파른 게 당연했다. 정상이 300m 정도 남았을까? 얼굴에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진다. 일기 예보에는 분명 3시부터 비가 온다고 했는데. 하늘을 올려다보니 심상치 않다. 무언가 곧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다. 걸음이 빨라진다.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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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야산 능선에 설치된 데크를 따라 올랐다.
    숨 가쁘게 계단을 올라 정상까지 내달린다. 정상에서 사진만 찍고 밀재로 향한다. 정상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야산까지 오르는 내내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누군가 있었다면 제대로 된 사진을 찍었을 수 있었을 텐데. 먹구름 잔뜩 낀 하늘이 사진으로 퍽 괜찮게 표현될 것 같아 아쉽기만 했다. 셀카봉을 잃어버린 것을 탓하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밀재로 내려가며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서울에서 내려와 어젯밤 용추계곡 식당가에서 민박하고 올라오는 길이라고 했다. 아주머니 역시 오르는 길에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며 무척이나 반가워하기도 했고, 민박이 정말 별로라며 투덜거리기도 하셨다. 날이 좋지 않으니 길에서 만나는 낯선 이 조차 반가울 따름이다. 
    점점 빗방울이 굵어진다. 옷을 여미고 고어텍스 자켓과 오버트라우져를 꺼내 우중산행에 대한 대비를 단단히 한다. 비가 더 굵어지기 전에 가야 했다. 갈 길이 멀다. 내려가기 전 패션 선글라스에 바람막이 한 장, 가벼워 보이는 가방까지 우천 대비가 충분해보이지 않는 아주머니가 걱정되어 얼른 하산하는 게 좋을 거라 이야기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고모령으로 향하는데 바람이 심상치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말 17호 태풍 ‘타파’가 올라오고 있구나 싶을 만치 매서운 바람이었다. 그 위력에 몸이 움츠려든다. 나무 두 그루가 쓰러져 길을 방해하고 있었다. 직전 13호 태풍 링링의 영향으로 쓰러진 듯 보인다. 내 허리둘레의 3배는 족히 넘을 굵기의 나무인데, 이들을 쓰러뜨릴 정도면 바람이 얼마나 불었던 걸까?
    식수 보충지로 유명한 고모샘을 지나친다. 대간꾼들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샘이다. 마루금 가까이 있어 인기가 좋다. 웬만해선 잘 마르지 않는다. 대간 초반에 물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부터 마실 물은 항상 넉넉하게 챙겨 다니고 있다. 중간에 샘터가 있기도 하고 비소식이 있으니 굳이 물을 많이 챙기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지만 고집스럽게, 어떻게 보면 무식하게 많이 챙겼다. 부족해도, 과해도 문제이지만 적당히 조절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지금은 그냥 과하게 지고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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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보보다 빠르게 비구름이 몰려들었다.
    조항산으로 가는 길, 안개가 점점 짙어지더니 오전 10시가 지나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기상청이 미워지는 순간이다. 새벽부터 내리는 비가 아니라면 비 소식에도 계획대로 걸었을 테지만 훨씬 일찍 내리는 비에 마음이 급해진다. 비 오기 전, 하산하겠다는 계획은 이미 틀어졌지만 등산화는 지켜야겠다. 등산화가 젖기 전에 하산하고 싶은 마음에 걸음을 서두른다. 
    하필이면 이어지는 구간이 암릉이다. 거의 직벽 수준인데다 로프를 잡고 넘어야 하는 구간도 있고, 걷는 길 좌우로 낭떠러지가 펼쳐지는 좁고 위험한 암릉이 이어진다. 암릉은 신선암봉을 지나며 지긋지긋하게 겪었으니 이제 끝이겠지 생각했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나보다. 안개가 자욱한 탓에 길이 잘 보이지 않아 더 무서운 길이었다. 위험한 암릉을 지나는데 성난 바람이 불어대는 통에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빗속에서 암릉과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데 바람과 안개마저 발목을 잡으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어찌 조항산에 오르긴 했는데 청화산까지 4.6km라는 안내 정보를 보니 막막하기만 하다. 남은 구간은 또 어떻게 간단 말인가. 길에 대한 정보는 없지만 왜인지 청화산까지도 암릉이 반복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이 밀려온다. 나도 모르게 땅이 꺼질듯 한숨이 새어나온다. 정상에서 한참 내려가 능선에 접어든다. 그리고 다시 또 한참을 오른다.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길이다. 바위가 많은데다 길까지 미끄러우니 내리막임에도 속도가 나질 않는다. 오르막은 오르막대로 힘이 빠져 시원찮다. 몸이 흠뻑 젖어버린 뒤라 마음은 급하기만 한데 당최 속도가 나질 않는다. 그렇게 갓바위재를 지나 청화산까지 두 시간을 안개 속에서 헤매었다.
    짙은 안개로 뒤덮인 숲에 혼자 있다 보니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무서워지니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생각에 생각이 더해져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스스로 만든 무서운 환경에 괜히 마음이 옥죄여 들자 걸음이 빨라진다. 동물 울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길 반대편에서 귀신이 나올 것만 같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스산하게만 느껴지는 길이다. 어떻게든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한다. 얼른 이 길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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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야산 정상.
    우여곡절 끝에 청화산에 도착했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에 속하는 청화산. 대간길을 걸으며 지나는 명산중 하나이다. 이렇게 설악산 대청봉을 시작으로 오대산 비로봉과 노인봉, 두타산, 덕항산, 함백산과 태백산 장군봉, 소백산 비로봉, 칠보산, 대야산, 청화산까지 총 11개의 명산100 어게인 인증을 받은 셈이다. 굵은 빗줄기에 자켓 깊숙이 꽁꽁 숨겨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인증사진을 찍는다.
    이제 늘재까지 2km만 더 걸어가면 된다. 다 왔다는 생각에 더는 이 공간이 무섭지 않게 느껴진다. 2시간 동안 쫓겼던 마음이 한결 퍈해진다.
    내려가는 길에 서울의 유명한 안내산악회를 만났다. 20명은 족히 넘는 인원이 줄지어 내려가고 있었다. 비소식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여기까지 참 대단한 열정이다. 다른 우천 대비 없이 한 손에 든 우산만으로 비를 피해 내려가는 분들이라 걸음이 맞지 않았다. 낙오자 없이 앞뒤로 촘촘하게 나란히 걷는 팀이었다. 묵묵히 뒤를 따르는데 길을 지날 수 있게 배려해주셔서 먼저 내려갈 수 있었다.
    그 길로 도로를 따라 화북오송탐방지원센터까지 내달린다. 5km가 조금 넘는 길이다. 늘재부터 밤티재, 문장대까지는 속리산 국립공원 지역의 비법정탐방로인 까닭에 늘재부터 문장대까지 장암리 마을을 거쳐 도로를 경유해서 가는 방법이 최선이다. 비는 점점 더 거세지고, 온 몸이 쫄딱 젖은 채로 앞만 보고 걷는다. 차에서 바라보는 내 모습이 꽤나 안쓰러워 보였는지 놀랍게도 다섯 분이나 내가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보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다. 그 마음은 감사했지만 나에겐 탈 수 없는 분명한 이유와 소신이 있었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차주 분들께 거듭 감사를 전하며 걸음을 이어갔다. 차를 세우진 않더라도 내 곁을 지날 때만큼은 도로가에 고여 있는 빗물이 튀지 않도록 속도를 줄이는 차들이 많았다. 나름의 배려였을 것이다. 각박한 세상 속 따뜻한 온정을 느낀 순간이었다.
    장암교차로를 지나 속리산 식당가에서부터는 부모님께서 차로 서포트를 해주셨다. 내 뒤에서 서행하며 안내소에 도착할 때까지 천천히 따라오셨다. 다음 구간이 편하도록 등산로 입구까지 걷는다. 기왕 젖은 김에 좀 더 걸었다.
    오후 3시 30분경 산행을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대구 집으로 향했다. 8월 24일 진부령으로 가기 위해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뒤로 꼬박 한 달 만에 들어가는 집이다. 태풍 타파의 영향으로 9월 22일과 23일, 연이틀 태풍을 동반한 비소식이 예정되어 있어 더는 진행할 수 없었다. 한반도를 강타하는 태풍 소식에 휴식일을 가지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13호 태풍 링링으로 인해 휴식일을 가진 10월 7일 이후 첫 휴식일이다. 꼬박 14일의 강행군 이후 두 번째 가지는 휴식일이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모두 태풍으로 인한 휴식이다. 근처 화북에 있는 모텔이나 펜션을 알아보니 죄다 1박에 5만 원 이상이었다. 3일이면 최소 15만원에 삼시 세끼 식사까지 챙기면 지출이 훨씬 많아질테니 그것보단 차라리 집에서 쉬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아 복귀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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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야산의 고즈넉한 숲길.
    9월 22~23일 백두대간 일시종주 29~30일차 
    휴식일
    오랜만에 갖는 휴식일은 정말이지 달콤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이틀이었다.
    집에서 편히 쉬는 이틀이 좋기도 했지만 왜인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 달 동안 5시에 눈을 떠 하루 종일 걷는 일을 반복한 까닭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평소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그리 힘들었는데 새벽 5시만 되면 별 다른 이유 없이 눈이 떠지는 통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젠 대간이 몸에 아로새겨졌다.
    휴식일을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지금 당장 좋을 진 몰라도 휴식일이 길어질수록 결국 천왕봉 도착이 늦어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쉬는 와중에도 불쑥불쑥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이왕 쉬기로 결정한 이상, 푹 쉬고 다시 운행을 재개하는 날 더 열심히 걷기로 한다.
    하루 8끼, 2시간에 한 번 꼴로 먹은 것 같다.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눈을 뜨기만 하면 배가 고팠다. 휴식일을 가진 이틀 동안 한 것이라곤 정말 먹고 자는 일 뿐이었다. 내 몸은 끊임없이 음식을 갈구했다. 그 많은 음식들이 다 어디로 들어가는 걸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신기할 만치 먹고, 또 먹었다.
    그간 연락하지 못했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즐거움을 찾기도 했다. 휴식일인 참에 밥을 사주겠다는 지인들도 있었지만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운행을 끝낸 직후부터 발이 퉁퉁 부어올라 곰 발바닥이 된지 오래였고, 통증으로 일어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전신이 욱신욱신 안아픈 곳이 없었다. 몸살이 분명했다. 마지막 반나절을 비를 맞으며 걸어서일까? 제대로 몸살에 걸린 것 같다. 그래도 꼬박 이틀을 쉬니 컨디션이 꽤나 회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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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식일을 가진후 이른새벽 화북오송탐방지원센터로 돌아왔다.
    9월 24일 백두대간 일시종주 31일차
    화북오송탐방지원센터~성불사갈림길~문장대~문수봉~신선대휴게소~신선대삼거리~입석대~비로봉~속리산천왕봉~피앗재~형제봉~갈령삼거리~비조령~봉황산~화령재~윤지미산~무지개산삼거리~신의터재 40km
    대간길로 돌아왔다. 벌써부터 힘들다. 그간 백두대간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쉽사리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답하곤 했다. 모르기에,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른 새벽, 대구 본가에서 속리산까지 부모님께서 데려다 주었다. 처음엔 못마땅한 마음에 괜히 "네가 선택한 길이니 고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시기도 했지만 열흘이 지나고, 보름, 한 달,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야위어가는 내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신 건지 나중엔 하나라도 더 도울 것은 없는지 매일같이 묻곤 하셨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아마도 이런 연유에서 나온 말일테다.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다시 신은 중등산화는 여전히 무겁게만 느껴지고, 발은 붓기가 미처 다 가라앉지 않았다. 내딛는 걸음마다 발바닥에서 이물감이 느껴진다. 이틀 내내 쉬었음에도 몸은 좀 더 쉬어야 한다 말하는 듯하다. 신장 기능에 문제가 있는 건지 발뿐만 아니라 얼굴과 손 역시 부어오른 채로 한껏 성을 내고 있다. 2주 동안 휴식일을 가지지 않고 강행군을 이어온 탓일까? 원래는 적어도 3일, 못해도 4일에 한 번은 휴식일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태풍으로 인해 예정에 없던 휴식을 가지고 난 뒤로 당초 계획과는 많이 달라져버렸다. 급한 마음에 걸음을 이어오다 보니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걷는 데만 집중했다. 너무 빠듯하게 걸어오며 몸을 생각할 만한 시간이 부족했다. 템포를 조금 늦추는 것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30분 정도 지나니 몸이 걷기 좋은 상태로 돌아왔다. 뻐근하던 느낌과 이물감이 사라지고 다시 등산화와 발이 한 몸이 되었다. 30일간 꾸준히 걷던 리듬을 찾았다. 이제는 몸이 알고 있나보다. 어차피 걸어야 하는 길이라는 걸. 마음가짐이 달라지며 다시금 씩씩하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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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속에서 맞은 일출.
    칠흑 같은 어둠이 언제고 계속될 것만 같더니 하늘과 숲의 경계가 열리고, 주위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한다. 얼마 못가 따뜻한 기운이 주위를 감싼다. 해가 완전히 떠오른 것이다. 문장대에 올라 일출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오늘도 역시나 숲에서 일출을 만난다. 나뭇가지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나를 바라보는 태양. 오랜만이다. 따스한 아침 햇살의 인사에 웃음으로 화답하고 문장대로 걸음을 재촉한다.
    비가 지난 뒤라 계곡물의 수량이 풍부하다. 시원스레 내려가는 물소리가 참 듣기 좋은 길이다. 태풍 피해는 크지 않았던 모양이다. 약간 어수선한 공기가 흐를 뿐 쓰러진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이른 시각 산행을 재개하니 상쾌하다. 지저귀는 새소리가 흥을 돋아준다. 숲의 공기도 좋고 물소리도 시원하고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유쾌하게 다가온다. 
    천왕봉은 가본 적 있지만 문장대는 처음이다. 사람들이 속리산 최고봉인 천왕봉보다 문장대를 더 많이 간단 사실을 듣고 꼭 가보고 싶었다. 걱정과는 달리 완만한 경사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편하게 오른다. 모처럼 평탄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충북을 지나며 암릉이 기본인 가파른 길들의 향연에 얼마나 힘들었던가.
    기대하며 오른 문장대엔 별 다른 건 없었다. 길이 편안했다는 느낌 뿐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피앗재까지 약간의 내리막 능선이 이어진다. 정말 거저 지나는 길이다. 휴식일을 가져서인지 몰라도 정말 편했다. 뒤따라 올 시련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신나게 걸어간다.
    편한 능선을 지나며 약초꾼을 여럿 만났다. 이제 정말 버섯철인가보다. 산객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는데 오늘만 벌써 약초꾼 열명은 족히 만난 것 같다. 속리산 버섯이 그렇게 좋다더니. 전국의 약초꾼이 여기에 다 모였나보다.
    화북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괜찮더니 천왕봉을 지나 형제봉을 오르며 그 근육의 통증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정확히 허벅지 앞쪽 내측광근의 통증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휴식일을 가지며 폼롤러로 마사지를 해준 뒤부터 시작된 증상이다. 집에서 몸을 푼다는 것이 도리어 근육을 손상시켰나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근육은 딱딱하게 굳어져만 간다. 오른쪽 다리는 멀쩡하기만 한데 왼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다리가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구부렸다, 폈다 기본적인 움직임조차 자유롭지 않다. 여간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목표한 걸음이 있기에 멈출 수는 없고, 속으로 제발 큰 일이 아니길 바라며 불편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걸어간다.
    봉황산부터 곧이어 화령까지 시원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봉황산을 오른 만큼 다시 또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도 길이 참 좋다. 오늘은 문장대부터 시작된 된비알을 제외하곤 길이 다 좋은 편이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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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리산 능선에서 바라본 운해.
    봉황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오솔길로 밤나무가 많았다. 밤나무인지 몰랐지만 주위에 밤이 많이 떨어져 있는걸 보고서야 밤나무인 줄 알았다. 토종밤이다. 씨알이 굵지는 않지만 자잘한 밤이 길에 널려있다. 아직 채 익지 않은 밤송이가 땅에 나뒹굴고 있다. 아마 이번 태풍으로 조금 일찍 바닥에 떨어진 밤일테다. 그 모양이 퍽 탐스러워 보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듣기로는 이런 밤이 퍽 맛이 좋다던데. 잠시 쉬어갈까 했지만 앉았다 일어설 때의 통증을 생각하니 눈살이 찌푸려진다.
    예로부터 터가 좋은 자리에 묘가 든다던데, 길을 지나며 무덤 역시 못해도 5~6기는 본 것 같다. 자리가 좋은가보다. 오랜 시간 방치된 채로 풀이 무성히 자란 무덤이 많이도 보인다.
    좋은 길을 두고 제대로 달리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증상이 예사롭지 않다. 돌부리라도 걷어차는 날엔 문지방에 발을 찧은 것 마냥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을 삼켜야 했다. 정말이지 세상이 뱅글뱅글 도는 것 같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꾸역꾸역 통증을 참아가며 겨우 한 발짝씩 걸음을 옮긴다.
    화령으로 향하는 길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악휘봉에서 지원와준 상진 오빠가 다시 한 번 지원을 오겠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갑작스레 성사된 지원이지만 사실 내가 도움을 청했다고 해도 무방했다. 마침 연락이 닿은 오빠에게 다리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사실대로 털어놓았고, 다리가 불편하다는 내 이야기가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얼굴이라도 잠시 보고 가겠다며 오빠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덥석 고맙다는 말부터 뱉어버렸다. 영 심상치 않은 통증에 나 역시 불안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걸어도 되는 걸까. 이러다 다리를 못 쓰게 되는 건 아닐까' 처음 겪는 상황과 통증에 좋지 않은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누군가 온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했다. 통증은 그대로였지만 든든하기만 했다. 이대로 걷다가 탈이 나도 나를 구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됐다.
    화령에 도착하니 시간도, 체력도 여유가 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좋지 않은 다리뿐이었는데,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신의터재까지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화령에서 쉴 곳이 마땅치 않기도 했고, 저녁까지 가만히 앉아 멀뚱히 기다리고 있으려니 부정적인 생각만 들 것 같아 차라리 걷는 편이 나아보였다. 정말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병원에 가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그 경우를 위해 조금 더 걷고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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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이 아름드리 나무를 반으로 쪼개놨다.
    화령에서 신의터재까지 11km가 조금 넘는 길이다. 동네 뒷산, 야트막한 야산 같은 느낌이다. 3시간 정도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코스다. 마을을 끼고 걷는 길. 능선을 걸으며 많은 구간 차가 지나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사람 사는 냄새를 느낄 수 있다. 전체 대간길 중에서도 쉬운 길로 손꼽히는 구간이라 큰 부담 없이 걸어간다.
    화령에서 얼마나 올랐을까. 진한 냄새가 풍겨온다. 그 구수함이 코를 찌른다.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악취다. 아마도 주위 축사의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오나보다.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지나는 지점이라 차들의 소리 또한 시끄럽다. 바로 옆에서 덤프트럭이 지나다니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소리가 크게 전해진다. 청각과 후각을 괴롭히는 요인들에 자연스레 걸음이 빨라진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윤지미산으로 가는 길에도 무덤이 많았다. 화령까지 오는 길에 있는 무덤은 방치된 느낌인데 반해 이곳의 묘들은 하나같이 잘 정리된 무덤이었다. 비석이 세워져있는가 하면 주춧돌이 서있고, 잔디까지 잘 다듬어진 모양새였다. 누구신지 몰라도 살아생전 덕을 많이 쌓고 가셨나보다.
    완만한 능선을 걷다보니 어느새 윤지미산임을 알리는 정상석이 보였고, 개인 산악회에서 만들어둔 윤지미산 안내판을 보니 일전에 이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가끔씩 정상석보다 더 큰 임팩트를 지닌 이정표들이 있다. 
    윤지미산을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져버렸다. 무지개산을 지날 때 해가 저물 거라 생각했는데, 확실히 아픈 다리 때문에 시간이 늦어진다. 두 다리로 걷는다는 느낌보다 오른 다리로 걷고, 왼다리는 짐이 되는 느낌이다. 무지개산은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조금 빗겨나 있다. 계획을 세울 때만 하더라도 그리 멀리 떨어있지 않으니 잠시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7시가 되기도 전에 해가 지고, 다리의 통증도 점점 심해지니 바로 하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마침 능선 바로 아래에 마을 불빛이 도깨비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반짝이는 불빛이 마치 이리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즉각 '지난번에 올랐으니까' 생각하며 무지개산 삼거리를 지나쳐 신의터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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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미산으로 향하는 능선에서 바라본 마을. 마을이 근처에 있으면 덜 무서울 거라 생각했는데 도리어 밤이 되니 더 무서웠다.
    마을이 근처에 있으면 덜 무서울 거라 생각했는데 도리어 밤이 되니 동네 뒷산이 훨씬 무서웠다. 집집마다 키우는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는 어둠이 내려앉은 숲속에 공포심을 심어주기 충분했고, 왜인지 어디선가 사람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사냥 시기인지 어디선가 총소리도 울려퍼진다. 한 발이 아니라 여러 발이다. 사냥을 하다가 나를 잘못 쏘면 어쩌나 하는 괜한 걱정에 잔뜩 움츠러들었다. 가까이서 침을 질질 흘리며 뛰어오는 광견병 걸린 개의 모습이 떠올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8시에 신의터재로 내려올 수 있었다. 늦을 거라던 오빠는 나보다 일찍 신의터재에 도착했고, 예상보다 늦어지는 내 걸음에 거꾸로 올라와 나를 맞이한다. 순간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사람과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상진 오빠와 인사를 나누자 허기와 피곤이 동시에 몰려온다. 예상치 못한 다리의 통증으로 온종일 긴장하며 걸었더니 몹시 피곤했다.
    신의터재 정자에 짐을 풀어두고, 5분 동안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다리가 아플 뿐, 느린 걸음에 체력 소모가 그리 크지 않다 여겼는데, 생각에 비해 에너지를 많이 썼나보다. 한동안 멍하니 쉬다가 오빠가 사온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는다.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 그리고 시그니처 빅맥. 줄여서 베토디(베이컨 토마토 디럭스)라 부른다고 한다. 다섯 입 만에 햄버거를 먹어치우고, 콜라 500mL를 비워냈다. 역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을 때 마시는 콜라가 최고로 맛있다. 후식으로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까지 싹싹 비워낸다. 먹는 내내 대화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난번에 비해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아픈 다리를 이고 산길 40km를 하루 종일 걸어온 나도 어쩌면 좋을지 앞으로 남은 길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오빠도 걱정이 깊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가벼운 농담들을 던져보지만 분위기가 바뀌진 않는다. 이윽고 오빠가 정적을 깼다. 
    "내일 병원 가보는 게 어때요?" 
    여기 올 때 병원에 데려갈 마음으로 왔다며 직접 상태를 보니 가야할 상황인 것 같다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걸을 때는 당장 느껴지는 고통에 포기해야 할까 고민스럽기도 했지만 앉아서 쉬다보니 컨디션이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 같아 욕심을 거두기 쉽지 않다. 이 걸음을 이어가는 것이 욕심인걸까? 파스를 뿌리고 밤새 푹 쉬고 일어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천천히 걸으면 괜찮지 않을까? 미련스러운 고집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생각들이 복잡하게 뒤엉킨다.
    거의 한 시간을 병원을 가느냐마느냐로 이야기 나눴다. 오빠는 병원에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 나는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서로 주고받는다. 산티아고 순례길, 해외의 여러 장거리 트레일을 경험한 오빠이기에 직접 겪은 일들을 일목요연하게 이야기 해준다. 정말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좋아질 것 같은데.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서 첨예하게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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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터재로 향하는 길에 해가 저물고 있다.
    병원에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루 정도만 걸음을 미루고 다녀오면 된다. 다만 병원에 가면 모르긴 몰라도 최소 일주일에서 보름, 길게는 한 달도 쉬라고 할 것이고, 만약 힘줄이나 연골 손상이라면 병원에 간다고 해서 어떠한 대책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키지 않았다. 기간이 얼마가 됐든 걸음을 멈춰야 한다. 대간을 언제 끝낼지 기약할 수 없게 된다. 끝낼 수는 있을까? 덩달아 태풍 링링으로 길어진 휴식일 탓에 하루 30~40km씩 걸으며 노력한 걸음이 물거품이 된다. 여기서 늦춰지면 분명 50일을 넘길 것 같았다. 몸은 쉬어가라 말하고 있었지만 쉴 수 없다. 물론 욕심이다. 허나 멈추고 싶지 않았다.
    두 시간 넘는 고민 끝에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 10km정도만 걸어보고 안되겠으면 그때 가서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하며 안심시켰다. 오빠는 떠나는 마지막까지 여러 차례 되물었다. 내일이면 괜찮을 거라 이야기 하니 “겪어본 바로는 그런 기적은 없어요”라고 이야기 하는 오빠의 표정이 묘하다.
    오빠가 떠난 신의터재 정자. 공기가 삭막하기만 하다. 심각한 상황은 아닐 거라 확신하면서도 내심 별의별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피곤하지만 온갖 걱정에 잠 못 드는 밤이다. 침낭에 누워 한참을 고민하는데 전화가 울린다. 서미석 언니다. 무슨 일일까? 전화를 받자마자 언제나처럼 밝은 언니의 목소리가 내 귓가로 날아든다. 
    "예진씨, 어디쯤 왔어요? 내일 응원갈까요?"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비치는듯하다. 이번에도 실례를 무릅쓰고 덥석 감사하단 말부터 뱉었다. 언니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실은 다리의 상태가 좋지 않은데, 만약 여의치 않으면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다 이야기 하니 어쩌다 그 지경까지 두었냐 하며 내일 시간 맞춰 갈 테니 어디로 내려오는지 알려달라고 하며 병원에 꼭 가보자고 이야기한다. 정말 감사했다. 
    상진 오빠에게 다시 전화했다. 아는 언니가 오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여의치 않으면 병원에 가겠노라 이야기 했다. 오빠는 내가 안심시키려 부러 거짓말 하는 것이라 생각했는지 믿지 않는 말투였다. 언니와 주고받은 카톡을 보내주고야 믿고선, 다행이라며 웃어 보인다. 
    이처럼 주변 여러 이들의 도움으로 대간을 이어가고 있다. 정말 감사한 날들의 연속이다. 내 걱정스런 맘이 전해졌는지 밤새 서너분이 더 전화를 주셨다.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아직 여유 있다고 말하자 도리어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도움의 손길로 따뜻한 밤이다. 부디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기적처럼 괜찮아지기를 바라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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