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ㅣ<8> 윤욱현] 가난하더라도 즐거운 등반 추구하는, 강단 있는 산악인

글 신준범 기자 사진 황문성 사진가, 윤욱현 제공
  • 입력 2019.12.11 11: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내암장 운영하며, 경쟁보다 과정 추구하는 히말라야 원정 도전

“행수는 말수가 적고, 착한 후배였어요. 재학생 숫자가 워낙 적어 졸업생인 제가 산을 가르쳤어요. 첫 얼음도 저와 함께였지요. 제 첫 히말라야 원정이 2011년 윤치원·박행수 시신 수습 원정대였어요. 막내 대원이던 행수를 그 차가운 곳에 두고 온 선배들이 미웠지만, 막상 그곳에 발을 디뎠을 때 알게 되었어요. 어쩌면 제대로 가르친 것도 없이 직계 선배랍시고 있는 제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산악인에게 주어진 숙명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무수한 산악인과 유가족들이, 고인을 가슴에 품은 채 간간이 울컥 차오르는 그리움을 아무도 모르게 삼키고 있을 것이다. 윤욱현(45세)은 山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미안함, 원망, 분노, 애정을 모두 품고서 꿋꿋이 자신의 산을 오르는, 강단 있는 산악인이다. 

2011년 시신 수습 원정대의 일원으로 흰 산을 처음 경험한 그는, 이후 거의 매년 히말라야 원정에 나서며 고산등반에 빠져들었다. 그 성과로 8,000m 고봉 중에서도 어렵기로 손꼽히는 가셔브룸1봉(8,068m)을 김미곤 대장과 함께 등정했다. 김미곤 대장의 대원으로 원정에 나섰던 박행수를 대신해, 김미곤 대장의 등반에 참여했다. 고산 경험이 비교적 적었던 윤욱현은 처음엔 등정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낭가파르바트(8,125m)를 오르는 윤욱현. 캠프2로 향하는 설사면을 오르고 있다.
낭가파르바트(8,125m)를 오르는 윤욱현. 캠프2로 향하는 설사면을 오르고 있다.

“원정을 떠나기 전부터 정상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르내리며 캠프 구축만 도울 생각이었는데, 격려차 온 장창수 선배의 권유로 정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3캠프를 거쳐 정상까지는 크게 힘든 것이 없었는데, 앞서가며 로프를 정리하면서 하산할 때는 다리가 풀려 몇 번을 주저앉았어요. 발을 떼기가 힘들었는데, 가족을 생각하며 내려왔습니다.”

고산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그는 이후 출루페어이스트(6,059m), 낭파이고숨(7,312m), 다울라기리(8,167m), 낭가파르바트(8,125m) 등반을 했으며, 2018년에는 직접 원정대를 꾸려 출루이스트(6,484m) 정상에 대원 4명 모두 올랐다. 출루이스트 원정대장은 그가 아닌, 박행수를 잃었던 원정대 대장이었던 김주형 선배였다. 윤욱현은 “선배의 자책과 아픔을 등반을 통해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나머지 대원은 그가 운영하는 광주의 실내암장 회원들이었다. 

“요즘 암장에서 운동하는 사람은 등반을 운동으로 생각합니다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산에 가기 위한 과정이라고 봅니다. ‘요즘 사람들은 실내운동만 하지 그런 것 안 해’라고 포기하기 보다는, 그런 기회가 제공되지 않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성취감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는 대중적인 곳 대신, 출루이스트처럼 정보가 지극히 적은 산을 택했다. 직접 루트파인딩해서 코스를 잡아 산을 올랐으며, 셰르파도 산에 대한 정보가 없어 안자일렌 맨 뒤에서 따라왔다고 한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면 정상을 고집하지 말고 후퇴하자’는 계획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2013년 가셔브룸1봉(8,068m) 원정에서의 윤욱현. 정상 공격을 위해 해발 7,800m 지점의 급경사 구간을 오르고 있다.
2013년 가셔브룸1봉(8,068m) 원정에서의 윤욱현. 정상 공격을 위해 해발 7,800m 지점의 급경사 구간을 오르고 있다.

원정은 최소의 비용으로 대원 각자 십시일반 하여 꾸렸다. 그는 “가난하더라도 즐거운 등반을 하자”는 것이 원정대의 이념이었다고 한다. 스폰서에 대한 부담 없이, 과정을 즐기며 모두가 즐거운 등반을 하는 것이, 등정보다 큰 목표였다. 그는 8,000m 원정을 여러 번 경험했지만, “즐거운 등반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고 한다. 탄탄한 기업의 지원이 몸은 편하지만, 이로 인해 연예인 같은 산악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그가 운영하는 실내암장에는 등반교실이 있어 등산입문, 기초암벽, 인공등반, 종합등반, 동계등반을 배울 수 있다. 이렇게 등반의 기초를 닦아 매년 히말라야로 회원들과 함께 가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내년에도 네팔 나야캉가(5,844m) 원정을 계획하고 있으며 벌써 10명의 대원이 모집되었다고 한다. 이 중 절반은 트레킹을 하고 나머지는 등반에 나선다. 

암장 회원들과 나선 첫 히말라야는 2017년의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이었다. 대중적인 안나푸르나 트레킹이나 에베레스트 BC가 아닌 마나슬루를 택한 건, 그곳에 묻힌 윤치원·박행수를 추모하고 싶어서였다. 5,230m의 라르게패스를 넘는, 보통의 암장회원들이 하기에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또한 윤치원이 속한 진해산악회의 김덕신 회원이 함께 동행해 그들의 영혼을 기렸다. 이 트레킹을 통해 박행수에 대한 무거운 감정을 조금이나마 털어내고, 자신의 산을 찾는 계기가 되었던 셈이다.  

다울라기리(8,167m)를 오르는 윤욱현. BC에서 캠프1을 구축하러 가는 길. 텐트를 비롯한 각종 짐과 중간 표식기 역할을 하는 대나무까지 25㎏ 무게의 배낭을 메고 고산을 오르내렸다.
다울라기리(8,167m)를 오르는 윤욱현. BC에서 캠프1을 구축하러 가는 길. 텐트를 비롯한 각종 짐과 중간 표식기 역할을 하는 대나무까지 25㎏ 무게의 배낭을 메고 고산을 오르내렸다.

두륜산이 낳은 알피니스트

해남 두륜산 기슭이 고향인 그는 산이 놀이터였다. 아들 셋 중 장남이었으나,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범생은 아니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대구의 공장을 3년간 다녔고, 목수일을 1년간 배우기도 했다. 절친한 친구가 사고로 척추신경이 끊어져 하반신 마비가 되자, 그는 친구 치료비를 벌기 위해 또래 친구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 뒤늦게 공부에 매진해 광주대 건축학과에 입학했으며, 동시에 대학산악부에 가입했다. 대학산악부의 일원으로 호남정맥을 종주하고, 고향땅 해남의 땅끝기맥을 홀로 11일 동안 걸어 완주했다. 산에 점점 빠져든 그는 등반을 더 전문적으로 하고, 졸업 후에도 등반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2005년 ‘광주 빌레이클럽’을 만들었으며, 창립 회장을 맡았다. 

대학 졸업 후 설계사무소에 입사했으나, 자유롭게 산에 가고 싶어 1년 만에 퇴사하고 화재보험사에 입사해 10년을 일했다. 또한 지금의 아내를 광주 빌레이클럽에서 만난 것은 그의 등반인생에 있어서는 행운이었다. 치과 치기공사인 아내 덕분에 2014년 개업한 실내암장 운영에만 몰두하며 자유롭게 산에 다니게 되었던 것. 지금도 암장에서 나오는 수익은 암장에 재투자 하거나 산에 다니는 비용으로 쓰이며, 1남1녀의 가족 경제를 꾸리는 것은 아내의 몫이다. 

2013년 가셔브룸1봉 정상에 오른 윤욱현 대원(오른쪽)과 김미곤 대장. 가슴에 한이 되어 남아있던 박행수 대원과 윤치원 선배의 사진을 정상에 묻고 내려왔다.
2013년 가셔브룸1봉 정상에 오른 윤욱현 대원(오른쪽)과 김미곤 대장. 가슴에 한이 되어 남아있던 박행수 대원과 윤치원 선배의 사진을 정상에 묻고 내려왔다.

그는 대장이 아니다. 대장을 맡은 적 없다고 말한다. 

“저는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혼자 대장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닌거죠. 원정대를 매년 꾸리고, 효율적인 원정대를 추구하고 있지만, 대장 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습니다. 사람을 컨트롤해야 하기에 대장은 쉬운 자리가 아닙니다.”

그는 스스로 알피니스트라고 말하지 않지만, 자신만의 알피니즘을 추구한다. 등반기술을 꾸준히 습득하고,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그의 알피니즘이다. 무엇보다 윤욱현은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경쟁보다는 배려를 통해 알피니즘을 추구하면서 산을 오르는 사람이 진정한 알피니스트”라고 힘주어 말한다. 

윤욱현 프로필


소속

광주빌레이클럽, 광주전남등산학교 강사, G1클라이밍 대표

등반 활동

2000 킬리만자로(5,895m) 등정

2004 호남정맥 구간 종주, 땅끝기맥 단독 일시종주(11일)

2005 광주 석문산 석문암장 리볼팅 및 개척

2007 해남 두륜산 초의길 개척

2011 고 윤치원·박행수 시신 수습원정대 해발 7,000m 진출

2013 파키스탄 가셔브룸1봉(8,068m) 등정

2016 네팔 출루페어이스트(6,059m) 등반. 5,900m 진출

2017 네팔 낭파이고숨(7,312m) 등반. 6,500m 진출

2018 네팔 다울라기리(8,167m) 등반. 7,100m 진출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8,125m) 등반. 5900m 진출

네팔 출루이스트(6,484m) 등정

수상 경력

2013 광주산악연맹 공로상

2014 광주산악연맹 우수산악인상

2017 광주전남 학생산악연맹 공로상

저작권자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