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SPECIAL] 1월에 갈 만한 산 4선!

입력 2020.01.09 10:29

새 마음, 새 뜻을 담기 위해서 어느 산에 가는 게 좋을까? 1월에는 대개 새로운 마음을 다지기 위해 산행을 한다. 그렇다면 어떤 분위기가 맞을까. 눈꽃과 상고대로 덮인 설산? 일출이 좋은 확 트인 산?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산? 산행지를 선택하는 기준과 그에 따른 결정은 항상 고민과 신중을 기하게 한다.
사실 우리나라 산은 전부 비슷한 듯하지만 전문가가 볼 때는 조금씩 다르다. 특별히 눈과 바람이 많은 산이 있고, 내륙에 있지만 조망이 좋은 산이 있고, 계곡과 물이 특별히 많은 산이 있다. 그런 요소를 계절과 결부시켜 산행지를 선택하는 게 전문가들의 일이다. 월간<山>에서 계절에 맞는 산을 세부 기준으로 분류해서 나누는 작업을 곧 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산행지 선택하는 고민을 조금 덜어질 듯하다.
1월의 산도 개인이 선호하는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설산과 일출이 좋은 산으로 결정한다면, 한국 최고의 설산으로 꼽히는 덕유산, 조망이 트여 일출이 좋은 토함산과 두타산·모악산, 그리고 천성산을 선택할 수 있다. 두타산은 바로 앞장의 1월의 명산에 소개돼 있고, 나머지 4개 산을 1월에 갈 만한 산으로 간략히 소개한다. 자세한 정보는 월간<山> 홈페이지san.chosun.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덕유산
눈꽃·상고대 어울린 일출과 일몰·향림은 환상적
덕유산德裕山(1,614m)을 두고 남사고南師古(1509~1571)는 복지福地라고 했다. 소백산을 두고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 했던 그 남사고다. 복지는 한마디로 복 받은 땅, 명당이라는 말이다. <정감록> 감결에 십승지 중 여덟 번째로 무주 덕유산 아래, 북쪽 동방銅傍 상동相洞을 꼽고 있다. <징비록>에도 ‘북쪽 방은동方隱洞 덕유산 내맥에는 피난처 아닌 곳이 없다’고 했다. 덕유산은 내륙에 있지만 이렇게 숨어서 먹고 살 만한 곳이라는 땅이다.
덕유산의 지명유래는 낭설에 가깝다. 흔히 임진왜란 당시 수많은 사람이 덕유산에 숨었는데, 그때마다 운무가 자욱하게 내려 왜군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해서 후덕한 덕이 있는 산, 덕유산이라 명명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전혀 근거 없다. 임진왜란은 16세기 말 발발했다. 덕유산이란 지명은 15세기부터 지리지나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명쾌한 유래는 어디에도 없다.
눈꽃과 상고대가 쌓인 산그리메가 황홀한 경관을 가진 산은 언제 봐도 후덕하게 보이는데, 그것 때문에 자연스럽게 덕유산이라 명명된 건 아닌지…. 눈꽃과 상고대에 어울린 일출과 일몰, 운무를 상상해 보면 1월에 왜 덕유산을 찾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허목의 <기언집>, 임훈의 <등향적봉기>에도 일출과 일몰의 아름다움과 향림과 어울린 경치를 만끽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실제 가보면 안다.
토함산
동악의 산…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일출 인파
토함산吐含山(745.7m)은 통일신라가 동악으로 정한 당시엔 한반도 최고의 산이었다. 중국의 동악 태산도 그렇지만 동악은 상징하는 바가 매우 크다. 동 ‘東’을 파자하면 나무 ‘木’과 날 ‘日’의 합성어다. 나무 사이로 해가 뜨는 형국이다. 동쪽에서 해가 뜨는 산이 동악東嶽이다.
동악 토함산의 의미는 정상 바로 아래 석굴암에 있다. 석굴암 불상 이마의 보석이 동해의 일출을 받아 반짝인다. 이는 만물이 평안한 세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부처님의 빛으로 세상을 가호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토함산과 석굴암을 그냥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토함산의 지명유래도 예사롭지 않다. 석탈해의 다른 이름인 토해가 토함과 비슷한 음으로 발음돼, 토함산이 됐다는 설이 있고, 운무와 풍월을 머금었다 토해내는 경관을 지녔다고 해서 명명됐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부처님의 진리를 간직하다 드러낸다는 의미도 있다. 정설은 없다.
토함산에서도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엄청난 인파가 몰린다.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3.6㎞가량 된다. 새해 일출 인파는 매년 3,000여 명 된다고 한다. 등산로에 길게 줄 서 있다고 보면 된다.
천성산
내륙에서 일출 비교적 빨라… 원효 관련 전설도
천성산千聖山(920.2m)은 내륙에서 일출이 가장 빠른 산에 속한다.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모이는 산이 천성산이다. 특히 울산·양산 지방에서 신년일출을 보기 위한 인파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정상 부위이거나 조망이 좋은 봉우리에서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원래 원적산圓寂山·元寂山이라 불리던 천성산이 원효대사가 당나라 1,000여 명의 신도를 산사태 위험에서 구해, 이를 인연으로 당의 승려 1,000여 명이 원효대사의 제자가 되어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해서 유래했다. 646년(선덕여왕 15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하는 정상 부근의 원효암은 전국에 산재한 10여 개의 원효암이라는 이름의 암자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원효를 비롯한 많은 고승이 머물면서 수행했던 유서 깊은 사찰로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산세가 높고 험준하며 맑고 빼어나게 아름다워 천 가지 연꽃 같다山卒率靑秀 千朶芙蓉’고 기록할 정도로 천성산은 골산의 험준함과 육산의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모악산
고려까지 금산으로 불러…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
모악산母岳山(793.5m)은 호남에서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 사람들은 무심코 올라갈지 모르지만 모악산에는 음양의 조화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 기운의 작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발길을 모악산으로 향하는지 모른다.
모악산은 ‘호남의 어머니의 산’이자 ‘한국 미륵신앙의 메카’로 알려져 있다. 따지면 음의 산이다. 거기서 태양이 상징하는 양기를 받으면 완벽한 음양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도 모악산이란 지명은 없고 ‘금산金山’이 한 차례씩 언급될 뿐이다. <고려사>에도 금산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고려까지 모악산은 금산이라 불렸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 모악산이란 지명이 등장한다. 따라서 고려시대까지 금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들어서 모악산으로 변한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지금 김제 부근에 남아 있는 금구, 금평, 금화 등의 지명은 금산과 그 유래를 같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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