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에코트레일ㅣ50~51구간 두로봉 르포] 시베리아 동장군의 철옹성을 돌파하라!

입력 2020.01.12 16:04

오대산 두로봉 구간과 구룡령에서 조침령 잇는
풍경 없는 장거리 육산 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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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온도 영하 20°C의 칼바람 부는 백두대간 설릉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 블랙야크 셰르파들. 구룡령에서 조침령에 이르는 22㎞ 능선을 하루에 주파하기 위해선 최대한 빠르게 운행해야 한다.
바보 같은 사내가 떠오른 건, 섬강 때문이었다. 백두대간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가 섬강을 지날 때 강에서 반사된 햇살이 눈을 찔렀다. 영화 속 장면이 과거로 오버랩되듯, 사내의 유서가 떠올랐다.
‘불행한 사람의 삶에 뛰어들어 고생만 하던 고마운 아내. 아들의 뒤를 따라 강으로 뛰어들었다는 아내처럼 저도 처자를 따라 떠나려 합니다. 살아 계신 분들은 제가 없어도 능히 견딜 수 있지만 저희 세 사람은 함께 있지 않고서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을 다시 만날 것을 생각하니 더없이 평온하고 즐겁습니다.’
1990년 9월 1일 영동고속도로 상행선 62㎞ 지점에서 빗길에 고속버스가 섬강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탑승객 28명 중 24명이 사망했고, 이 사고로 아내와 아들을 잃은 장재인(당시 33세)이라는 사내는 사고 발생 보름 만에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 보름 동안 섬강변에 모닥불을 피워 아내와 아들이 돌아오길 기다렸으나, 닷새 뒤 아내의 주검이 발견되고 여드레 뒤 아들의 주검이 발견되었다. 더 이상 기다릴 존재가 없어진 그는, 제 발로 섬강에 뛰어들었다.
슬픈 감상에 잠길 사이도 없이, 동장군의 역습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짜고짜 귀싸대기를 날린다. 드센 난봉꾼의 멱살잡이처럼 매서운 삭풍이 아침잠에서 덜 깬 몸을 강타한다. 겨울은 추워야 산행이 제 맛이지 않던가. 스패츠 차고, 방풍재킷 입고, 발라클라바까지 쓰고 중무장한다. 동장군의 격한 인사에 화답하듯 맹렬하게 산으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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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능선에 눈을 밀어올린 탓에 깊은 곳은 무릎까지 빠져, 교대로 러셀을 해야 했다. 익숙하게 심설을 헤치고 걷는 허영섭 셰르파.
익숙한 손놀림으로 겨울 산행 장비를 결속하는 이들은, 부산에서 온 블랙야크 허영섭 셰르파와 서울에서 온 김윤희 셰르파, 강릉에서 온 김재효 셰르파다. 여러 번 백두대간에서 손발을 맞춘 셰르파들이라, 땀으로 맺어진 친밀감이 있어 연신 웃음이 감돈다. 축구장 두 개만 한 주차장에 우리 차만 덩그러니 두고 온다. 먹고 사는 이야기도 두고 온다. 
산불방지 입산금지 기간, 취재 산행 요청을 하여 어렵게 허가 받았다. 수북이 쌓인 눈 덕분에 산불 위험이 없어 다행이다. 흰 종이에 목탄으로 선을 그은 듯한 눈 덮인 숲. 앙상한 숲의 바다가 지평선 끝까지 넘실거린다. 거대한 고요함으로의 초대장을 받아든 것이다. 아무도 없는 산이 무게감 있는 침묵으로 첫 페이지를 연다.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을 벗어나, 멈춘 세상으로 접속한다.
추위에는 오르막이 약이다. 해발 915m에서 동대산 정상 1,433m까지 급하게 고도를 높인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일행이 옷을 한 꺼풀 벗는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거친 숨결. 내 안에 갇혀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흰 연기로 허공에 흩어진다. 걸음걸음에 잡념이 잘게 부서지고, 단순명료한 능선과 나만 남는다. 고통이 고통스럽지 않은, 등산의 즐거움.
경치가 없어도 정상은 행복을 준다. 둥근 공터 같은 동대산 꼭대기에서 성취감을 누린다. 발자국 없는 흰 눈밭에 흔적을 남긴다. 동대산은 유서 깊은 봉우리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의 자장율사가 중국의 오대산 태화지 연못에서 7일 동안 기도하는 와중에 문수보살이 나타나 “너희 나라 동북방 명주(강릉) 경계에 오대산이 있는데 만 명의 문수보살이 항상 그곳에 있으니 참배하라”고 했다. 자장율사는 귀국 후 강원도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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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생존력의 피나무가 누워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자연 장애물이 된 피나무를 조심스럽게 지나는 김윤희 셰르파.
그 이후로 오대산은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의 다섯 봉우리가 지정되었다. 동대산은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 중 가장 동쪽에 솟은 봉우리로 1,400여 년 전부터 존재성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흰 옷의 나무가 환영 인사를 건넨다. 사스래나무의 흰 껍질이 설경과 잘 어우러진다. 1,000m대 능선을 동장군이 점령했다. 철기병 같은 강력한 바람이 끝없이 몰아친다. 힘으로 인간의 기세를 꺾으려는 듯, 괴성을 뿜어내며 영하 13℃의 날씨를 기어코 영하 20℃까지 끌어내린다. 투명한 거인이 옆에서 고함을 지르듯 사나운 바람이 쫓아온다. 
직선으로 뻗은 능선에 몸을 맡겨 북진한다. 뼈 속까지 시린 바람, 발이 푹푹 빠지는 습설, 광대한 침묵의 첩첩산중, 종일 걸어야 할 먼 길, 묘한 고독감이 드리운다. 그런 감정은 사치임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신갈나무, 피나무, 분비나무, 거제수를 제대로 살 필 틈도 없다. 본능적인 생존 욕구가 점점 육체와 정신을 지배한다.
적설량은 많지 않으나, 바람이 능선에 눈을 쌓아 놓았다. 심한 곳은 허벅지까지 빠지기도 한다. 얼어붙지 않은 초겨울 눈이라 땅 끝까지 발이 빠진다. 교대로 러셀하지만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무도 없는 겨울왕국을 즐기는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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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산 능선의 기묘하게 휘어진 피나무 노거수를 지난다. 고산능선의 혹독한 풍파에도 삶을 이어가는 나무의 악착같은 생활력이 놀랍다.
북대사 스님의 따뜻한 인사
흰 눈을 뚫은 파릇함은 조릿대 군락지다. 들풀처럼 질긴 생존력을 한겨울에도 과시하고 있다. 문득 섬강에 몸을 던진 사내의 시 ‘들풀’이 스쳐간다.
‘목숨이 제 목숨이 아니고 / 명예가 명예가 아닌 세상 / 이름 묻힌 들풀로 살아도 좋다 / 터럭만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 꿋꿋한 들풀로 살아도 좋다 / 용서함의 뿌리로 살아도 좋다 / 낮에는 해 아래 수고하고 / 밤에는 별과 쉬며 / 외로워도 정녕 외롭지 않은 들풀이라야 나는 좋다’   -장재인의 시 ‘들풀’ 중에서.
들풀 같은 산행을 이어간다. 시베리아 거인의 차가운 노래 소리에 발을 맞춰, 유독 뵈지 않는 두로봉을 향해 흰 능선을 주파한다. 둥글둥글 능선으로 유명한 오대산이 언제부터 이리 가팔랐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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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전곡봉으로 이어진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선다. 끝없는 오르내림과 강추위, 겨울 대간 종주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두로봉에 닿자 해가 뉘엿뉘엿한다. 인증사진만 찍고 곧장 두로령으로 탈출한다. 이후 산줄기는 비법정으로 묶여 있어 하산한다. 해가 넘어갈수록 기온도 급격히 떨어진다. 중력에 반쯤 몸을 맞기며 설릉을 빠르게 가른다. 북대사 스님의 “동대산을 넘어오다니 고생하였소. 남은 길도 멀 테니 조심히 가시오”라는 따뜻한 인사를 기억하며 산을 떠난다.
다음날도 맑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멧돼지 포획으로 입산금지 된 응복산을 포기한다. 고개가 가파르고 험해서 용이 구불구불 기어오르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구룡령. 해발 960m 고개에서 곧장 대간 등마루에 올라선다. 바람이 잦아든 틈을 타 산줄기를 빠르게 돌파한다. 지도상으로는 어렵지 않아 보였지만, 실제 능선은 오르내림이 꾸준히 이어진다.
어제보다 덜 추운 날씨 덕에 감사한 마음으로 갈전곡봉(1,204m)에 올라선다. 예상대로 경치 없는, 이정표만 반기는 정상이다. 복병처럼 칼바람이 엄습한다. 뜨겁게 달궈진 숨결이 식는 건 금방이다. 원초적인 추위를 피해 흰 산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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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에서 조침령으로 이어진 긴 육산 줄기는 경치 없이 짙은 숲이 이어진다.
어제 지나온 듯한 같은 풍경의 반복이다. 산은 넘고 넘어도 끝이 없고, 해가 떨어질수록 바람은 날카롭게 날을 세운다. 마주치는 도로가 없는 긴 산줄기, 빠른 하산은 체념이다. 퍼질러 앉아 밥 먹을 사이도 없이, 행동식으로 걸을 힘만 충전하며 도망치듯 산을 지나친다.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산줄기며 나무들에게 미안했으나, 막강한 동장군의 위세에 밀려 다른 선택이 없었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떨어지는 해는 붙잡을 수 없어, 헤드랜턴에 의지해 어둠이 내린 산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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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져지지 않은 초겨울 습설이라 발이 빠져 체력 소모가 적지 않았다.
증기기관차처럼 입에서 흰 연기가 끝없이 새어나오고, 간간이 서로를 응원하며 야간산행을 이어간다. 산이 워낙 험해 새도 하루에 못 넘고 하룻밤 자고 넘는다는 조침령鳥寢嶺. 그 말이 맞다.
야영 장비만 있다면 하룻밤 자고 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쓰러져도 이 능선에서 쓰러져야 한다. 대간꾼 특유의 독한 마음을 부여잡으며, 무의식과 의식을 다 끌어 모아 닿은 조침령. 수고했다며 눈발이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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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두로봉 정상에 오른 허영섭, 김윤희 셰르파. 이번 구간은 경치가 트인 봉우리가 없었다.
두로봉 구간 종주 가이드
비법정 구간을 제외하고, 진고개~두로봉, 응복산~구룡령, 구룡령~조침령 구간으로 세 번에 나눠 종주할 수 있다. 관건은 구룡령에서 조침령까지 22㎞ 구간. 중간에 마주치는 도로가 없고 쉬운 탈출로가 없어 당일에 종주하는 것이 최선이다.
두로봉 이후는 비법정이라, 두로령을 거쳐 월정사로 내려서야 한다. 응복산 구간은 통마람을 기점으로 만월봉에 올라 선 후 북진해서 구룡령에 이르는 방법이 있다. 경치가 열린 곳이 없는 장거리 육산 구간이라 자신과의 싸움을 견디며 빠르게 주파하는 것이 관건이다. 
교통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어렵다. 진고개는 진부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KTX 진부역에서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면 닿는다. 두로봉에서 하산해 상원사에 닿으면 진부행 군내버스가 운행한다. 상원사에서 진부행 버스(09:50, 10:45, 11:45, 12:35, 13:50, 16:00, 16:35, 17:45, 18:25)가 운행한다. 구룡령은 운행하는 버스가 없으므로 양양에서 택시를 타고 접근해야 한다. 양양에서 갈천리행 버스(07:00, 09:50, 14:00, 17:20)를 타고 가서 걸어서 고개를 오르는 방법도 있다. 조침령에서는 서쪽의 인제군 방면으로 도보로 이동해 기린면 현리행 버스를 타야 한다. 

맛집(지역번호 033)
평창 진부는 송어가 별미다. 진부면 중심가의 평창송어횟집(336-2073)은 찰진 송어회를 자랑한다. 송어매운탕은 빈약한 편이지만 싱싱하고 육질이 탱탱한 송어 식감이 살아 있다. 미탄에서 양식한 송어를 들여오는 물안골송어횟집(332-4390)도 송어 맛집이다. 평창 토박이 배희순·김명옥 부부가 운영하며 “이곳 물이 차가워 일주일 동안 수조에 넣어 두면 살이 단단해지면서 쫄깃한 맛이 나기 때문에 계방산 송어가 유명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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