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옛 문헌에 나오는 백덕산] 거슬갑산·사자산과 혼용해서 사용

입력 2020.02.10 18:19

적멸보궁 법흥사가 있어
사자산→거슬갑산→백덕산 순으로 오래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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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살짝 솟은 봉우리가 백덕산 정상이며, 좌우로 긴 능선 왼쪽으로 사자산 봉우리가 있다. 왼쪽 사자산 능선으로 보이는 절벽 아래 나무가 움푹 패인 곳에 법흥사가 있다.
평창과 영월의 경계를 가르는 백덕산白德山(1,350.1m)은 설경이 뛰어난 대표적인 겨울 명산이다. 하지만 옛 문헌에서는 혼동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국토지리정보원은 백덕산과 인근 사자산을 명확히 구분해서 지정했지만 그 근거가 불분명하고 옛 문헌에 나오는 거슬갑산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어 지역의 향토사학자들조차 지명정리가 완전히 되지 않은 듯하다.
먼저 <세종실록지리지> 원주목편에서 ‘(원주의) 명산은 치악雉嶽(주 동쪽에 있는데, 봄·가을에 향축香祝을 내려 제사 지내기를 소사小祀로 한다)과 거슬갑산琚瑟岬山(주천현 북쪽에 있는데, 그 고을 관원이 제사 지낸다. 속칭 백덕산이다), 사자산獅子山(주천현 동북쪽에 있다)이다’고 나온다.
조선 초기부터 많은 산 중에서 치악산, 거슬갑산, 사자산만 꼽으며 명산으로 언급할 정도면 관가나 민가에서 어떤 행사를 치르기 위해 제법 알려졌거나 사람들이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조선 초기에는 거슬갑산과 백덕산을 명확히 같은 산으로 보고 있다. 거슬갑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본 명칭에 가깝고, 백덕산은 경관이나 형태로 파악한 명칭으로 여겨진다. 그 구체적 차이에 대해서는 점차 설명하겠다.
이어 100여 년 뒤에 발간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거슬갑산은 주천현 북쪽 30리에 있다. 백덕산은 (원)주의 동쪽 30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혀 다른 산으로 등장한다. 혹시 주변에 동명이산 백덕산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같은 책 사묘祠廟편에 거슬갑사가 나온다. 여기서 거슬갑사는 산 북쪽 사자동獅子洞에 있다고 소개한다. 사자동은 사자산에 있는 동굴을 말한다. 거슬갑산과 사자산을 비슷한 산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거슬갑산과 백덕산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거슬갑산과 사자산을 같은 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어쨌든 거슬갑산은 당시 많이 불리어진 산은 분명한 듯하다.
18세기 후반 제작한 조선시대 종합 지도책 <여지도> 원주 산천편에서는 ‘백덕산은 일명 사자산이고 주천 동쪽 30리에 있다. 거슬갑산은 관문 동쪽에 있고, 주천현 북쪽 130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지도>에서는 백덕산과 사자산을 동일시하고 있다. 전부 제각각이다.
<여지도>보다 불과 몇 십 년 앞서 제작된 <택리지> 산수 도읍과 은둔편에 ‘원주의 치악산은 토산이기는 하지만 산중에 아름다운 골짜기가 많고, 동서에는 이름난 마을이 많다. 게다가 산에는 신령한 감응이 있어 사냥꾼이 이곳에서는 감히 짐승을 잡지 못한다. 사자산은 치악산 동북쪽에 있고, 수석이 30리에 걸쳐 뻗어 있다. 주천강이 여기에서 발원한다. 남쪽에 있는 도화동과 두릉동은 계곡의 경치가 아주 빼어나며, 복지라 불리니 참으로 속세를 피해서 살 만한 땅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택리지>에서는 백덕산보다 법흥사 사자산을 언급하고 있으며, 그 아래 있는 무릉리와 도원리 일대를 숨어살기 좋은 복지福地로 가리키고 있다.
문헌마다 가리키는 산이 조금씩 달라
이와 같이 백덕산에 대한 기록은 옛 문헌마다 조금씩 차이를 나타낸다.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에도 거슬갑산에 대한 내용이 언급된다. ‘세종 19년(1437) 예조에서 악·해·독·산천의 단묘와 신패의 제도를 상정하다’에서 ‘원주 관할 안의 주천현 거슬갑산은 사묘가 현내의 평지에 있고, 위판에 거슬갑산지신위琚瑟岬山之神位라고 썼는데, 청하건대, 위位자는 삭제하고 다시 산기슭에 땅을 가려서 단을 설치할 것’이라고 나온다. 마찬가지 <여지도>의 단묘에 ‘거슬갑산사琚瑟岬山祠는 원주 관문 130리 사자굴에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거슬갑산을 사실상 사자산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현대 들어서 발간한 <강원도지명유래>에는 ‘<해동지도> <여지도> <광여도> <팔도분도>에 백덕산이 표시되어 있다. <평창군신지지>는 평창의 서쪽 맨 끝에 사자산이 있는데, 이는 동쪽으로는 읍의 뒷산인 노산과 이어진다고 쓰고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백덕산을 대화면 운교리에 소재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나온다.
지명의 동일성과 차이성을 파악하기 위해 옛 문헌에 등장하는 거슬갑산과 사자산, 그리고 백덕산 3개 중에 어느 지명이 제일 먼저 등장하는지 살펴보고, 그 이후 왜, 어떻게 다른 지명으로 바뀌었는지를 파악하는 게 유래를 아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적멸보궁 법흥사는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의 5대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은 신라 자장율사가 당나라에 유학 가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안장한 곳이다. 그중 한 곳이 사자산 법흥사이다. 또 통일신라 말 선종의 발흥으로 구산문九山門이 크게 번성한다.
구산문은 실상산문, 가지산문, 사굴산문, 동리산문, 성주산문, 사자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이다. 여기 나오는 사자산문의 본산이 바로 사자산이고, 그 자락에 있는 것이 법흥사이다. 그렇다면 거슬갑산이나 백덕산보다 사자산이 훨씬 먼저 등장한 것으로 판단된다.
사자산에 대한 유래는 정설 없이 몇 가지가 전한다. 먼저, 강원도 지명유래에 나오는 내용이다. 예로부터 4가지 재물, 즉 동칠東漆(동쪽의 옻나무), 서삼西蔘(서쪽의 삼나무), 흉년에 먹는다는 남토南土와 북토北土가 있다고 해서 사재산四財山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후 부르기 쉬운 사자산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둘째, 법흥사의 전신인 흥녕사를 건축할 때 신라 자장율사가 사자를 타고 이 산으로 왔다고 해서 명명됐다고 한다. 세 번째로 지역 향토사학자들은 “부처님이 설법을 토할 때 뭇 악귀가 굴복하고 귀의한다는 뜻으로 사자후라고 하는데, 부처님이 설법한 산이라 해서 사자산이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사자산의 배경은 법흥사(전신은 흥녕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사찰에 관해서 신경준이 기록한 <가람고>와 <조선사찰전서>에도 줄곧 사자산으로 나온다. 물론 사찰 관련 내용이니 당연히 사자산으로 언급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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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지도>에는 거슬갑산과 백덕산만 보인다.
사자산 전신은 사재산이라는 설도 있어
그런데 사자산은 조선시대 들어서부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슬그머니 거슬갑산으로 바뀐다. 거슬갑산은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형상의 풍수지리적인 의미가 강한 개념이다. 옥녀가 거문고를 타면 얼마나 평화롭고 풍요로운 모습인가. 여기서 <택리지>의 ‘도읍과 은둔’편에 언급된 내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숨어살기에 좋은 복지 사자산인 것이다. 사자산이 있는 지형과 위치는 풍수적 의미로 평화롭고 풍족한 거슬갑산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거슬갑산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 신라시대 왕의 이름을 지칭하는 거서간居西干에서 유래한 ‘첫째’, ‘으뜸’을 지닌 옛말이라는 설명도 있다. 물론 이 의미도 법흥사와, 그리고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을 가리키는 말과도 연결된다. 조선시대에는 거슬갑산이란 지명이 제법 알려졌던 듯하고, 관에서 거슬갑산사를 지어 제사도 지낸 것으로 파악된다.
백덕산이란 지명은 윤두서(1668~1715)의 <동국여지지도>에 처음 등장한다. 여기서도 사자산과 백덕산을 동일시하고 있다. “백덕산은 지역 주민들이 부드러운 능선이 그릇에 고봉으로 담긴 밥 같아서 명명됐다”고 정원대 향토사학자는 말한다. 실제로 맞은편 구봉산에서 백덕산을 보면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이 물결치듯이 굽이져 흐르는 모습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또한 능선에 눈이 쌓이면 그 모습이 인근 주민들에게 하얀 쌀과 같이 큰 덕으로 보인다 해서 백덕산으로 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로 미뤄볼 때 백덕산은 주민들에 의해 명명된 지명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지명의 생성은 사자산→거슬갑산→백덕산 순서로 생겨 불린 듯하다. 때로는 동일한 지명으로 때로는 조금 다른 산으로 지칭한 걸 알 수 있다. 또한 사자산은 흥녕사(지금의 법흥사)가 창건될 때 불렸던 고유의 지명이고, 거슬갑산은 풍수지리적 또는 관 주도 제사를 지내는 산으로서의 지명이고, 백덕산은 주변 거주민들이 실제 산을 보고 명명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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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겨울 설경 명산으로 꼽히는 백덕산 정상에 등산객이 올라서고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에서는 이 능선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백덕산으로, 주능선 서쪽의 두 번째 봉우리를 사자산으로 구분해서 명기하고 있다. 같은 능선에 몇 개의 산이 혼재해 있는 상황이다. 차라리 지리산같이 최고봉 천왕봉, 중봉, 반야봉 등으로 구분해서 명명했으면 남한 전체의 산에 대한 개념 통일성이 조금 더 이뤄졌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
어쨌든 백덕산은 주민들이 명명한 듯한 그릇에 고봉으로 담긴 밥처럼 완만한 능선을 자랑하는 명산이며, 특히 눈이 내려서 쌓인 모습이 절경을 이루는 산으로 평가받는다. 이름 그대로 하얀 눈이 쌓인 모습이 큰 덕과 같이 보인다 해서 백덕산이라 명명했을 수 있다. 겨울이면 1,000m 이상 주능선 봉우리마다 피어나는 설화雪花가 겨울산행의 제맛을 느끼게 해주고, 또한 은백색의 환상의 세계로 이끌어 줄 듯하다.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는 가리왕산, 북쪽으로는 오대산과 계방산, 서쪽으로는 치악산, 남쪽으로는 소백산이 저 멀리서 물결치듯 흐르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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