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알피니스트] 한국식 팀워크등반의 모범답안, 동아대산악회의 등반대장

입력 2020.07.22 10:02

[한국의 알피니스트, 아직 살아 있다 <14> 조벽래]
부산 동아대산악회 6대륙 최고봉 등정 이끈 견인차, 성실한 훈련·안전 강조하는 단단한 리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직전인 페리체(4,371m)에서 집에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가 위독하니 돌아오라’고 하더군요. 등반대장인 제가 돌아가면 우리 원정대는 처음 해외원정 온 후배 장재용·김남구 대원만 남는 거였어요. 몇 년을 준비한 등반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그때부터 집에 전화를 안 했어요. 대원 모두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한 뒤 하산해서 전화했어요.”
유럽의 알피니즘만이 정답은 아니다. 개인보다는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단체 문화를 바탕으로 한 ‘한국적인 팀 등반 정신’도 존경 받을 만하다. 그렇게 본다면 부산 동아대산악회의 조벽래(51)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동아대산악회의 6대륙 최고봉 등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견인차 역할을 했다. 7대륙 최고봉 중 한 곳인 남극 빈슨매시프를 포기한 건 비용 소모가 지나치게 크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부산 동아대산악회는 1996년 인도 마나파르바트 2봉(6,771m) 신 루트 등정 이후 2006년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가셔브룸1봉(8,068m) 등정에 성공했다. 당시 조벽래는 등반대장을 맡았다. 개교 50주년, 60주년처럼 큰 기념행사가 있을 때만 원정을 가다 보니 산악회원들의 원정 경험 축척이 안 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10년 만에 다시 원정을 가려 하니 경험 있는 대원이 적었던 것. 열띤 토론을 거쳐 6대륙 최고봉 등반이라는 장기 등반 계획을 세웠다. 전 세계 고산을 매년 오르며 산악회의 꿈을 이루고, 경험치도 쌓겠다는 계획이었다.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최고봉 에베레스트였다. 고산등반 경험이 가장 많았던 조벽래가 등반대장을 맡았고, 나이 차이가 열 살 넘게 나는 어린 대원들과 혹독한 훈련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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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전남 구례 용서폭암장에서 인공등반 중인 조벽래
“동아대산악회 장점은 ‘훈련을 열심히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훈련을 1970년대 기준에 부합할 정도로 철저하게 오래했어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함께했던 허영호 선배가 우리 팀을 ‘원정등반의 FM’이라 평했을 정도였어요. 계획했던 대로 1년 반 동안 거의 매주 모여 훈련했어요.”
고대하던 에베레스트 원정 출국 당일, 그날 새벽 암 치료 중이던 시골 어머니가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생겼다. 깊은 고민에 빠졌지만, 결국 그는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네팔에 도착해서도 집에 전화를 하지 않고 캐러밴에 몰두하다 베이스캠프 도착 직전에서야 전화했다.
모친이 위급하다는 얘기를 듣고 ‘지금 돌아가더라도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판단해 더 이상 집에 연락하지 않고, 등반에만 집중해 후배 대원 2명과 정상에 올랐다. 하산 후 카트만두까지  가서야 전화를 했고, “아직 목숨이 위급한 채로 생존해 계신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귀국한 그를 보고 어머니는 일주일 뒤 숨을 거두었다.
3남2녀 중 막내였던 그는 형과 누나들에게 집중성토를 들어야 했다. 결과는 원정도 성공했고, 모친도 돌아가시기 전에 뵈었지만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산에 가야 하나’하는 자책과 죄책감에 산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었다. 이후 한동안 산을 놓고 살았으나, 2년 후 가족을 동반한 에베레스트 트레킹으로 다시 산을 찾게 되었다.
“제가 에베레스트에 있는 동안 형제들에게 아내가 얼마나 시달렸겠습니까. 제가 보았던 멋진 에베레스트 풍경을 아내와 아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어요.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도 가족 트레킹으로 풀고 싶었고요. 식구들과 다시 가니 참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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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6,000m대 고산인 로부제 동봉을 등반하는 조벽래 대장
중학생 아들 데리고 로부제 동봉(6,119m) 올라
조벽래 대장은 온 가족이 동아대산악회다. 아내를 학창시절 산악회에서 만났고, 아들은 어릴 적부터 산에 데리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산행과 등반을 즐겨 스스로 산악부 입회를 택했다. 2012년 12월 가족과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갔을 때, 중학교 1학년이던 아들과 함께 로부제 동봉(6,119m)에 오르며 놀라운 등반 열정을 보여 주었다. 이를 위해 트레킹 떠나기 전 아들과 함께 국내에서 철저한 훈련을 했다.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그는 산악회 해외원정에선 뒤로 빠져 있었으나, 2015년 오세아니아 최고봉 칼츠텐츠(4,884m) 원정을 시작으로 다시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되었다. 
2016년 북미 최고봉 데날리(6,194m) 원정 때는 원정대장으로 대원 8명을 정상에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데날리 등반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한국 특유의 단합력으로 일궈낸 기록적인 성과였다.
더불어 조벽래 대장은 세계적인 산악인 여럿이 숨을 거뒀을 정도로 쉽지 않은 산임에도 많은 대원을 정상에 올리며, 탁월한 판단력과 리더십을 증명했다.
2015년 원정 당시 조벽래는 칼츠텐츠 대원이 아니었다. 출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현지 일정에 변화가 생기며 대원들의 원정 스케줄이 엇갈리게 되었고, 예약해 둔 원정 경비를 날릴 처지가 되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그가 동참하게 되었다. 한편으론 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낼 뭔가가 필요하던 상황에 칼츠텐츠가 운명처럼 앞에 다가왔고 놓치지 않았다. 그는 “모친이 위급할 때도 산에 간 인간이 다른 핑계로 산을 안 가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9명이 가서 8명 등정했어요. 연락책을 맡은 선배 한 명 빼고 모두 데날리 정상에 올랐어요. 3캠프에 도착했는데 계산과 달리 식량이 모자란 거예요. 비행기 착륙 가능한 랜딩포인트까지 2박3일 거리인데 6명이 뛰다시피 하여 24시간 만에 식량을 가져왔어요.
데날리 원정을 준비하면서 훈련을 엄청 많이 했어요. 우리는 정말 과하게 훈련해요. 1년간 매주 훈련했어요. 원래 등반하던 사람들이 1년 동안 폭발적으로 훈련량을 늘리니 기량이 크게 올라왔죠. 또 원래 한 팀이니, 소통이나 팀워크는 탄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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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스위스 알프스 뮌히(4,107m) 정상에 올라 산악회 깃발을 들었다.
그는 데날리 정상을 포기하고 연락책을 자처한 성기진 선배에게 공을 돌렸다. ‘1년 동안 고생해서 훈련했는데 누구에겐 등정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건 말이 안 된다’고 조 대장은 생각했고, 대장의 마음을 읽은 성 대원이 “나는 여기까지만 하고 싶다”며 홀로 4캠프에 남아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산악계에선 조벽래의 능력을 산악회 내에서만 쓰기엔 아깝다 여겼으나, 그는 “동아대산악회원들과 함께여서 가능했다”고 말한다.
“연합 원정 가자는 얘기는 많이 들었는데, 그분들 등반에 내가 맞추지를 못해요. 실력 차이가 있어도 팀워크로 극복 가능한데, 팀워크는 함께 흘린 땀으로 가능한 것이거든요. 1년 동안 훈련하자고 하면 대부분 거절해요. 사실 프로 수준의 산악인들과는 수준 차이가 나서 함께 못하고, 우리 팀밖에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리 등반 잘한다고 소문났어도 내 목숨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어요. 그 팀이 싫어서 안 가는 게 아니에요.”
6대륙 최고봉을 마친 동아대산악회는 “등반의 폭을 넓혀 보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고, 이후 매년 원정을 떠났다. 고산 등정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2017년에는 라오스 암벽등반 투어를 다녀왔고, 2018년에는 유럽 알프스를 다녀왔다.
여름휴가 일정을 맞춰 치마그란데 북벽을 오르고 아이거와 몽블랑 정상에 올랐다. 신입생으로 산악회에 입회한 아들과 아내가 함께해 그에겐 더 의미가 깊었다. 가족이 동아대산악회고 동아대산악회가 가족인 셈이었다.
“보통 1~2주에 한 번은 만나죠. 호칭만 형동생이지 거의 친구 사이예요. 동지이자 친구죠.”
그가 꼽는 동아대산악회의 또 다른 장점은 ‘배움에 열려 있다’는 것과 ‘안전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 등반 경력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올해에도 미국 요세미티를 가기 위해 5명의 회원들이 거벽등반 교육을 별도로 받았다.
동아대산악회는 어떤 등반을 하든지 헬멧을 쓴다. 심지어 인공암벽장에서도 헬멧을 쓴다. 안전을 가장 중요시 하여 “헬멧 때문에 등반이 불편하면, 등반 실력을 더 키워라”라는 것이 산악회의 기조다.
“위험하니 재학생끼리 암벽등반 가지 말라고 해요. 저도 재학생 때는 그랬지만 돌이켜보면 아찔한 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안전을 더 강조하죠. 내 자식이라 생각하면 그렇게 위험하게 등반시킬 수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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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랑(4,807m) 정상에 선 그의 가족. 왼쪽은 아들 조현세군, 오른쪽은 아내 황정희씨. 가족 모두 동아대산악회원이다.
알피니스트라면 공부와 기록 필요
그는 자신이 알피니스트는 아니라고 말한다. 때문에 ‘한국의 알피니스트’ 코너 출연을 처음엔 사양했다. 조벽래는 “알피니스트가 되는 것은 꿈이며, 실현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머리는 엔지니어이고, 가슴은 알피니스트인데 어느 쪽에서 봐도 만족스럽지 않다”고 한다.
그는 발전소 설비부품을 만드는 케이텍플러스 대표이사다. 2002년 홀로 창업해 10년 만에 법인으로 전환했다. 2014년 우수 중소기업으로 선정되어 국무총리상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한 내실 있는 회사의 수장이다. 조 대표는 “법인으로 바꾸면 집착이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직원 7명인 작은 회사라 별 차이는 없다”며 스스로를 낮춘다.
“사장이 한 달 넘게 원정을 가는 건, 회사 문을 닫고 가는 것과 같아요. 거래처에선 미쳤다고 하죠. 반대로 등반하는 사람들은 저에게 ‘산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안 다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죠. 저는 알피니스트 반열에 오를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꿈이 알피니스트인 사람이죠.”
조벽래 대장이 생각하는 알피니즘은, 그저 산을 오르는 행위가 아닌 사상이다.
“알피니스트는 사상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겠죠. 사상을 받아들여 산노래도 하고 등반기도 쓰고, 생각을 몸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알피니스트라 생각해요. 오직 몸으로만 표현하는 이는 알피니스트가 아니에요. 그래서 많은 공부도 필요하고, 산에 다녀와서 기록도 해야 돼요. 요즘은 원정 보고서다운 보고서가 정말 드물어요. 보고서도 알피니즘의 한 부분인데 너무 그레이드(난이도 등반)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도 아직 도달하지 못했지만 알피니즘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동아대산악회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는 “내 푸른 날의 조벽래”라며 “산악회만 생각하면 젊을 적의 내가 생각난다”고 호쾌하게 웃으며 말한다. 
소속
동아대산악회
1993년 승학암 개척
1994년 설악산 토왕폭 등반, 칸텡그리(7,010m) 등반
1996년 인도 마나파르바트 2봉(6,771m) 신 루트 등정
2006년 가셔브룸1봉(8,068m) 등정(등반대장)
2008년 유럽 엘부르즈(5,642m) 등정
2010년 에베레스트(8,848m) 등정(등반대장)
2012년 로부제 동봉(6,119m) 중학생 아들과 등정
2015년 오세아니아 칼츠텐츠(4,884m) 등정
2016년 북미 데날리(6,194m) 등정(원정대장)
2017년 라오스 방비엥 지역 암벽등반
2018년 치마그란데 북벽·아이거·몽블랑 등정
2019년 파키스탄 미등봉 Peak39(6,120m) 등반 
직장 관련
2002년 케이텍 창업
2012년 케이텍플러스 법인전환
2014년 국무총리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 수상
현 ㈜케이텍플러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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