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등반] ‘위기에 처한 남자의 마지막 몸짓’ 초등기

  • 글·사진 임덕용 꿈속의 알프스등산학교
    입력 2020.07.21 09:51

    [해외 등반ㅣ소프라 볼자노 암벽등반]
    이탈리아 클라이머 플로리안 레글러의 5.13b루트 등반 스케치

    이미지 크게보기
    홀드를 붙잡은 크리스티앙 뒤로 이탈리아 볼자노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극도로 어려운 난이도이다. 꾸준히 과학적인 운동을 해야 하며, 거의 직업적으로 암벽등반을 한 사람이 도전할 만하다. 대부분 오버행을 이루며 고난도 등반 기술과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며, 완벽하게 등반해야 한다. 재등자가 거의 손에 꼽을 정도다. 이탈리아에서도 유능한 톱 클라이머 중 5% 미만이 완등했으며, 한 번에 오르기는 어렵고, 몇 차례의 시도와 추락을 반복하다가 오를 수 있는 아주 어려운 등급이다.’
    등반 난이도 ‘8a(5.13b)’를 검색해 보았다.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렵게 정의되어 있었다. 근 40년간 6a(5.10b)를 온사이트 등반하는 실력을 유지해 온 필자에겐,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난이도다. 6a도 검색하니 ‘바위를 많이 오른 유능한 선등자다’라는 말에 위안을 받는다.
    난이도 5.10부터 a, b, c, d로 단계가 세분화된다. 이때부터 확실한 손 홀드나 발 홀드가 없다. 페이스에서 억지로 미세한 홀드를 찾아 이용해야 한다. 5.9 정도의 난이도가 사람들이 많이 타서 미끄러운 상태가 되면 5.10a 정도로 난이도가 상향된다. 5.10c 정도면 중급자가 선 등할 때 미끄러질 각오를 하고 바위에 임해야 된다. 바위를 많이 오른 유능한 선등자라면 추락 없이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그레이드(난이도)다.
    이미지 크게보기
    크리스티앙이 난이도 6b(5.11a) 루트에서 몸을 풀고 있다.
    소프라 볼자노Sopra Bolzano는 ‘볼자노 위에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필자의 집에서 보이는 붉은 벽이 있다. 왜 저 벽에 암벽등반 루트가 없을까 궁금했는데 어느 날 같은 마을에 사는 플로리안 레글러Florian Riegler가 루트를 개척했다며 같이 가자고 청했다. 매일 산으로 튈 생각만 하던 차에 카메라를 급하게 챙기며, 마치 바쁜 일이 생겨 출사 나가는 사람처럼 준비를 하니 아내가 한 말씀한다.
    “아이구, 신나는 일이 생겨서 축하드립니당. 조심히 잘 다녀오세용.”
    레글러 형제 중 형인 마틴 레글러는 건축 디자이너고 동생 플로리안 레글러는 농부이다. 포도밭과 사과밭이 수백km에 걸쳐 있는 볼자노는 이탈리아 최고의 사과 산지이자 최고급 화이트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때문에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과일을 생산한다. 플로리안은 부모가 물려준 농장에서 사과와 포도를 재배하는 젊은 부농 클라이머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플로리안이 난이도 6b(5.11a) 루트에서 여유있고 가벼운 동작으로 몸을 풀고 있다.
    형 마틴이 직접 디자인하고 건축한 아주 좋은 저택에 살고 있다. 바로 옆에 형 마틴의 멋진 집이 있고, 왼편에는 부모가 사는 오래된 집이 있다. 3가구 모두 전원주택이며 멋진 수영장까지 있다. 심플하고 모던한 그들의 집은 포도밭과 사과밭 사이에 숨어 있다. 우리 집에서 승용차로 3분 거리에 있어 그와 자주 만나는 사이다.
    형 마틴은 건축 업무로 바빠 동행하지 못했다. 대신 그의 친구인 크리스티앙이 함께했다. 플로리안이 등반 루트를 만들었으나 아직 완등자는 없다. 개척 루트를 소개하기 위해 사진 촬영을 위한 등반에 나섰다.
    이미지 크게보기
    크리스티앙이 난이도 8a(5.13b) 루트 크럭스로 진입을 하고 있다. 오버행 벽 아래로 볼자노 시내가 드러난다.
    20년 이어온 플로리안과의 인연
    차량이 산길로 올라서며 볼자노의 파노라마를 보여 준다. 비포장도로가 나오자 플로리안이 “여기부터는 개인 사유지인데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서 통행할 수 있다”며 자랑한다. 카메라 장비와 등반장비를 배낭에 메고 30분은 걸어야 했지만, 차로 오를 수 있어 시간을 절약하니 기분이 좋았다.
    급경사 커브 길 구석에 주차를 하고, 아직 접근 등산로가 만들어지지 않은 숲을 5분 정도 걸었다. 나뭇가지와 덤불이 빽빽해 정글을 가는 것 같다. 암벽은 멀리 우리 집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매우 컸다. 많은 루트를 만들 수 있는 벽이었다.
    몸을 풀기 위해 6b 난이도의 루트를 돌아가며 등반했다. 아직 등반한 사람이 없는 새 루트라 슬랩과 크랙은 무척 거칠었고, 바위 결이 살아 있었다. 플로리안이 루트 청소에 나섰다. 커다란 빗자루와 쇠로 된 칫솔을 벨트에 연결하고 8a 루트를 조금씩 오르며 바위 상태에 따라 청소했다. 숱한 돌가루가 쏟아졌다. 돌가루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정말 풋풋하고 신선한 암장이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플로리안이 8a 초등에 도전하고 있다. 크럭스로 진입하기 직전 퀵드로에 로프를 걸며 호흡 조절을 하고 있다.
    경사가 가장 급한 오버행 크럭스 아래에서 빗자루와 칫솔을 볼트에 걸어 놓고 한두 번 가볍게 시등을 하며 무브를 연결해 보았다. 6급의 클라이머가 보기에도 매우 힘들고 무척 까다로운  동작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청소를 마친 플로리안이 상쾌하게 “오케이”를 외치며 내려왔다. 확보를 보던 크리스티앙이 “오늘 끝내자”며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플로리안이 “루트는 만들었지만 아직 한 번도 등반 시도를 해보지 않았는데 한 방에 끝낼 수 있을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필자도 “너에게 한국의 커다란 행운을 선물하는 사람이 있으니 한 번에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격려를 덧붙였다.
    이미지 크게보기
    ‘위기에 처한 남자의 마지막 몸짓(8a)’크럭스 구간을 돌파하는 크리스티앙의 연속 동작.(1)
    플로리안과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스네이크Snake’란 브랜드를 론칭하며 20대 초반이던 마틴 형제에게 스폰을 해주었다. 빙벽과 드라이툴링 실력도 뛰어난 형제들이었기에 그리벨과 라스포르티바에 건의해서 근 10년간 장비를 지원했었다. 플로리안이 선수 생활을 그만 둔 이유는 선수 대기실에서의 긴장되고 초초한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였단다. 지금은 히말라야, 남미 등에서 고산 알파인 등반을 하고 있으며, 돌로미테에서만 28개 루트를 초등해 낸 형제 등반가로 유명하다.
    손에 습식 초크를 하얗게 바르던 그가 몇 번의 심호흡을 하고 출발한다. 느낌이 좋다. 보기에도 가볍게 출발한 그의 등반 모습은 절정으로 치닫는 댄서의 춤사위 같았다. 거침없이 여러 동작을 풀며 올라가다가 크럭스 부분에서 멈췄다. 1분 넘게 한 손은 홀드를 잡고 한 손은 가루 초크를 바르며 쉬고 있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위기에 처한 남자의 마지막 몸짓(8a)’크럭스 구간을 돌파하는 크리스티앙의 연속 동작.(2)
    140° 오버행에서 날아오르다!
    긴장된 순간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고개가 부러질 정도로 하늘을 향해 쳐다보고 있던 내가 한국말로 “가자아! 가자!”라고 외치자 나를 한번 내려다보고는 벽 겨루기에 들어갔다. 여러  대회에서 박희용, 신운선, 송한나래, 김자인 선수를 응원하는 구호인 “가자”의 뜻을 잘 아는 그가 필자의 목소리에 출발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인 크럭스는 140° 오버행에서 홀드를 잡기 위해 점프를 해야만 오를 수 있었다. 허공을 발로 걷어차고 그가 하늘을 날아올랐다. 학의 춤이었다. 두 손으로 홀드를 잡아채자 그의 몸이 허공에서 흔들거리는 시계추가 되어 몇 번이고 좌우로 흔들거린다.
    이미지 크게보기
    ‘위기에 처한 남자의 마지막 몸짓(8a)’크럭스 구간을 돌파하는 크리스티앙의 연속 동작.(3)
    크럭스를 넘어서자 사자의 포효 소리가 볼자노 시내까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루트가 끝나는 곳에 로프를 걸고 하강을 시작하자 다시 사자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축하 악수를 교환했다. 이후 크리스티앙이 도전했지만 10번이나 추락해 줄에 매달려야 했다. 플로리안이 다시 동작을 익히기 위해 등반했고, 완등에 성공했다. 그는 사진 촬영을 위해 로프를 고정시켜 주었다.
    출발부터 발이 허공에 뜨는 35m를 등강기로 오르니 볼자노 시내가 훤히 드러났다.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촬영을 위해 플로리안이 다시 등반을 하며 당일에 이 어려운 루트를  3번이나 완등했다. 개척자이자 초등자인 플로리안 레글러는 바윗길 이름을 ‘위기에 처한 남자의 마지막 몸짓Disater Men Last Tons(8a, 5.13b)’이라 붙였다.
    더불어 차량 진출입과 루트 개척을 허락해 준 산의 주인이자 농부인 노아퍼 바우어Noafer Bauer씨에게 깊은 감사를 전했다. 플로리안의 겸손한 삶과, 등반할 때만큼은 겸손하지 않은 과감한 몸짓이 동시에 빛나고 있었다.
    이미지 크게보기
    ‘위기에 처한 남자의 마지막 몸짓(8a)’크럭스 구간을 돌파하는 크리스티앙의 연속 동작.(4)
    이미지 크게보기
    ‘위기에 처한 남자의 마지막 몸짓(8a)’크럭스 구간을 돌파하는 크리스티앙의 연속 동작.(5)
    이미지 크게보기
    ‘위기에 처한 남자의 마지막 몸짓(8a)’크럭스 구간을 돌파하는 크리스티앙의 연속 동작.(6)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