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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산 2024년 5월호
  • 655호

[9월의 섬 선유도] 신선도 반한 풍경의 쾌락!

글 신준범 차장대우 사진 주민욱 기자
  • 입력 2020.09.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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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길 따라 걷거나, 경치 좋은 봉우리만 오르거나

대장봉 전망바위에서 본 고군산군도 풍경. 왼쪽 정면에 솟은 바위산이 선유봉이다. 대장봉은 대장도의 산이지만 산행이 짧고 경치가 수려해 관광객도 오를 정도로 인기 있다.
대장봉 전망바위에서 본 고군산군도 풍경. 왼쪽 정면에 솟은 바위산이 선유봉이다. 대장봉은 대장도의 산이지만 산행이 짧고 경치가 수려해 관광객도 오를 정도로 인기 있다.

빗소리는 하루 이틀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텐트에 떨어지는 간질간질한 산비 소리를 좋아하지만,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나라가 슬픔으로 차오르고 있었다. 여행을 권할 만한 시기는 아니었으나 출장을 미룰 순 없었다. 예정된 인천의 섬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배를 타지 않아도 되는 섬, 비가 오지 않는 섬을 찾아 하염없이 달렸다.

충남 땅 지나 전북 군산으로 접어들자 마른 땅이 나타났다. 30℃가 훌쩍 넘는 무더위, 모처럼 만난 여름이었다. 군산 시내를 지나 옛 군산으로 향했다. 10년 전의 황홀한 미모가 떠올랐다. 노을이 견딜 수 없이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던 섬은, 방조제와 다리가 놓여 차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고군산군도의 화려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선유봉 오름길.
고군산군도의 화려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선유봉 오름길.

선유도의 본래 이름은 ‘군산도群山島’였다. 바다 한가운데 산들이 무리지어 있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16개 유인도와 47개 무인도를 ‘바다에 떠있는 산의 무리’라 하여 군산이라 불렀다. 그러나 해안가에 도시가 생기면서 무리지어 떠 있던 ‘산의 무리’는 ‘옛 군산古群山’이 되었다. 고군산군도에서 선유도는 세 번째로 큰 섬이지만, 발달한 항구와 아름다움으로 인해 ‘바다에 뜬 산’을 대표하는 산으로 꼽혀 왔다.

바둑 두는 신선을 보고서야 선유도에 온 것이 실감났다. 결이 고운 모래해변 곁에 솟은 두 개의 바위 봉우리가 마치 바둑 두는 신선 같다 하여, 선유도仙遊島이다. 사실 신선을 따온 지명  중엔 억지스런 곳도 있지만, 선유도는 실제로 신선이 반했을 법한 풍경이 널려 있다.

BAC 섬&산 인증지점인 선유봉 정상. 최희원·손창건씨가 인증타올을 들고 섰다.
BAC 섬&산 인증지점인 선유봉 정상. 최희원·손창건씨가 인증타올을 들고 섰다.

신작로가 놓인 섬이 안타까웠으나, 차로 입도하는 편리함을 누리고선 낯설음도 아쉬움도 잊혀진다. 더 편한 것만 찾는 마음의 간사함에 놀랄 사이도 없이 산길로 들어선다. BAC 인증지점인 선유봉(112m)을 오른다. 블랙야크 익스트림팀 손창건씨와 청주에서 온 최희원씨가 동행했다.

이건 반칙이다. 몇 발짝 오르지 않았는데, 아직 몸이 풀리지도 않았는데, 달콤새콤한 풍경이 널렸다. 6분 동안 250m 걸었을 뿐인데, 고군산군도는 모든 풍경을 내어주며 와락 안겨왔다. 마침 하늘은 파란 바탕에 일필휘지로 구름을 써내려가고 있다. 산행 시작 10분이 되지 않았는데, 해발 1,000m 산 정상에서 느낄 법한 풍경의 쾌락. 정직한 발품이 주는 산행의 감동을 믿는 산꾼이라면 양심의 가책을 받을 만한, 지나치게 과한 진수성찬에 몸 둘 바 몰라 산행의 리듬이 깨어진다. 산행의 틀을 깨는 섬산의 신선함이다.

도시의 때에 찌든 몸을 선유봉 급경사에 몰아넣는다. 아직 풀리지 않은 몸은 급격히 심장 박동을 높이며 몸 구석구석으로 혈액을 밀어낸다. 산길을 이룬 바위는 노란 것을 넘어 분홍에 가깝다. 너무 빠르게 닿은 주능선, 일탈을 감행한다. 정상 방향의 산길을 버리고 반대 방향으로 오른다.

선유봉 능선에서 본 망주봉과 남악산. 망주봉 두 개의 암봉은 마치 바둑 두는 신선 같다하여 선유도 이름이 유래한다.
선유봉 능선에서 본 망주봉과 남악산. 망주봉 두 개의 암봉은 마치 바둑 두는 신선 같다하여 선유도 이름이 유래한다.

기대를 충족시키고 남는 멋들어진 분홍빛 칼바위 능선이 바다를 겨누고 있다. 아슬아슬 절벽 사이로 편한 흙길과 조심스런 바윗길이 섞여 있어, 느리고 신중히 칼끝 전망터에 올라선다.

밀려오는 파도와 복잡한 산세를 이룬 무녀도가 선물처럼 펼쳐진다. ‘왜 이제 왔냐’며 마음까지 시원하게 바꿔놓는 바람. 가만히 서서 오래도록 바람의 말을 느낀다. 코로나19도, 하늘이 구멍 난 듯 퍼붓는 빗방울도 다 지나 갈 거라고 속삭인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정상으로 단번에 올려친다. 오르막이 길지 않음을 알아서인지 가팔라도 힘들지 않다. 소나무에 걸린 아담한 ‘선유봉’ 표지판이 반갑다. 정상다운 경치가 있으나, 극적인 경치의 진미는 칼바위능선이 한 수 위다. 편히 숨 돌리기 좋은 정상의 너른 터에서 간식을 먹으며 더위를 식힌다.

선유봉 칼바위능선의 아름다운 위용. 능선 끝 전망터에 오르면 고군산군도의 시원한 바람을 만나게 된다.
선유봉 칼바위능선의 아름다운 위용. 능선 끝 전망터에 오르면 고군산군도의 시원한 바람을 만나게 된다.

김부식이 찾은 뼈대 있는 섬

조금 희미한 산길을 따라 어둑한 하산길을 내려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장도 대장봉이 보인다. 넉넉한 품의 통바위산이 거대한 장독대처럼 바다에 솟았다. 드문드문 터지는 새로운 경치를 즐기며 가파른 비탈을 조심스레 내려서자 장자대교 앞이다.

해변을 가로질러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감미로운 해변 너머로 솟은 두 개의 바위산, 말문이 막히는 놀라운 풍경이지만 피서객과 늘어선 차량에 동양화 밖으로 금세 튕겨 나온다. 피서 인파를 뚫고 땀내 풀풀 풍기며 망주봉으로 향한다. 마이산 쌍봉을 바다로 옮긴 듯 비현실적인 모습에 홀린 듯 다가간다.

거대한 통바위인 망주봉을 배경으로 걷는 최희원·손창건씨.
거대한 통바위인 망주봉을 배경으로 걷는 최희원·손창건씨.

피서 인파와 동떨어진 저 산 꼭대기에 오르고 싶은 욕망을 가라앉힌다. 산 입구에 큼직하게 ‘입산금지’ 안내판이 서 있다. 망주봉은 거대한 통바위인 만큼 암벽등반에 가까운 몸짓으로 고정로프를 붙잡고 올라야 하는데, 추락 사고가 잦아 군산시에서 입산을 금지했다. 망주봉望主峰(110m)은 유배된 선비가 이곳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했다 하여 유래한다.

선유도는 뼈대 있는 역사를 가진 섬이다. 고려의 최무선 장군이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진포해전의 현장이며,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치른 후 전열을 가다듬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아들었던 곳이다.

고려에 사신으로 방문한 송나라 서긍이 쓴 ‘고려방문기’에도 선유도가 등장한다. 1123년 송나라 사신단 200여 명이 몇 척의 배에 나눠 타고 고려를 방문했는데 고려 왕실 환영단이 마중 나온 곳이 선유도다.

선유도해수욕장은 바닷물이 맑고 모래가 부드러워 고군산 최고의 피서지로 손꼽힌다.
선유도해수욕장은 바닷물이 맑고 모래가 부드러워 고군산 최고의 피서지로 손꼽힌다.

당시 환영단의 대표로 선유도까지 왔던 사람이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다. 왕의 임시거처인 행궁까지 있었다고 하니, 1,000여 년 전에도 항구가 발달하고 풍경이 아름다워 이름 높았던 선유도다.

신선 같은 혹은 장군 같은 망주봉을 따라 걷기길인 고군산길을 따른다. 마을 돌담을 지나 남악산에 든다. 156m로 선유도 최고봉이지만 선유봉과 망주봉의 미모에 가려진 육산이다.

대봉전망대에서 본 망주봉과 선유도해수욕장. 우측 봉우리는 고정로프를 붙잡고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 가능했으나, 잦은 추락사고로 입산금지되었다.
대봉전망대에서 본 망주봉과 선유도해수욕장. 우측 봉우리는 고정로프를 붙잡고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 가능했으나, 잦은 추락사고로 입산금지되었다.

푸근한 덩치의 흙산이 짙은 숲으로 모기떼와 함께 환영인사를 건넨다. 산길은 잘 나 있지만, 사람은 우리뿐이다. 가파른 계단 지나 비탈을 넘자, 경치 없는 139m봉이다. 짙은 숲을 뚫고 바다 쪽으로 산길이 나있다. 깜짝 쇼처럼 나타난 깔끔한 데크전망대, 대봉전망대란 이름이 아깝지 않다. 신선이 반한 경치가 드러난다.

선유도해수욕장과 요세미티 암벽처럼 솟은 망주봉 서벽이 장관이다. 하루 종일 봐도 지루하지 않은 풍경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는다.

선유도해변의 또 다른 명물인 서해안 해넘이.
선유도해변의 또 다른 명물인 서해안 해넘이.

하산길에 만난 황홀한 빛내림 현상

마지막 명소인 대장봉(141m)으로 향한다. 대장도의 산이지만 워낙 산세가 수려해 그냥 두고 갈 수 없다. 장자도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대장교를 걸어서 지나 대장봉에 든다. 대장봉의 명물은 뾰족하게 솟은 장자할매바위다. 자세히 보면 아기를 업고 밥상을 들고 서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간 남편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리는 아내가 대장도에 살았다고 한다. 급제한 남편이 집에 온다는 소식에 정성을 다해 상을 차려 들고 마중나간 아내는 첩을 데리고 금의환향한 남편을 보고 넋이 나가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선유도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히는 남악산 대봉전망대.
선유도 최고의 전망대로 손꼽히는 남악산 대봉전망대.

남편을 따라온 역졸을 첩으로 착각했는데, 그 서운한 마음 때문인지 남편과 역졸도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대장봉 정상에 서자 고군산군도가 아기자기하게 펼쳐진다. 기묘하게 기운 넘치는 암봉들이 바다를 수놓은 것이 일품이다. 다시 짙은 숲 속 하산길로 든다. 풍경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섬은 정 많은 할매처럼 놀라운 바다 풍경을 선물로 준다. 문득 서쪽으로 뻥 트인 슬랩이 나타나더니, 멀리 빛의 기둥이 쏟아진다.

‘틴들 현상Tyndall phenomenon’이라 불리는 빛 내림이 구름 구멍을 뚫고 바다를 비춘다. 홀린 듯 서서 바다를 보는데, 빛의 기둥이 여러 개로 늘어난다. 누군가 “저기 천국 맞죠?” 얘기했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선유도를 떠나는 길, ‘정말 신선이 사는 걸까’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망망대해가 후련히 드러나는 대장봉 후면 바윗길. 멀리 구름을 헤치고 햇살이 쏟아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망망대해가 후련히 드러나는 대장봉 후면 바윗길. 멀리 구름을 헤치고 햇살이 쏟아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섬 가이드

선유도·장자도·대장도·무녀도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모두 차로 갈 수 있으며 군산 구불길 8길에 속한다. 구불8길은 선유도~장자도~대장도를 잇는 11km의 A코스와 무녀도~선유도를 잇는 10km의 B코스가 있다.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선유봉, 대장봉, 선유도해수욕장과 대봉전망대만 둘러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선유2교차로에서 대장봉을 올랐다가 장자도로 내려오는 산행은 1km이며 1시간 정도 걸린다. 장자대교에서 도로 따라 선유2교차로로 돌아오는 길은 450m 거리다. 대장교에서 대장봉을 올랐다 내려오는 산행은 1.5km 거리이며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선유도해수욕장에서 대봉전망대까지 1km 거리다. 봉우리마다 거리는 짧지만 가팔라 시간 안배에 주의해야 한다.

선유봉 정상에서 본 칼바위능선.
선유봉 정상에서 본 칼바위능선.

교통

새만금방조제 입구인 비응항에서 무녀도~선유도~장자도를 잇는 99-1번 버스가 1시간 간격(07:10~21:10)으로 운행한다. 군산시내와 비응항을 잇는 7, 8. 9, 85, 86번 버스가 운행한다. 대장봉은 주차장소가 협소해 장자도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것이 낫다. 망주봉과 남악산은 선유3구마을회관까지 들어가야 너른 주차장이 있다. 

숙식(지역번호 063)

선유도활어회직판장(471-1212)은 회정식(1인 3만5,000원)이 유명하다. 으뜸횟집(465-0432)은 가장 섬 안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자연산 회가 일품이다. 선유도짬뽕(461-2010)은 9가지 해산물이 들어간 선유도 별미다. 군산시내의 맛집으로 고추짜장과 짬뽕이 유명한 지린성(467-2906), 석쇠불고기(9,000원)와 석갈비(1만3,000원)가 별미인 쌈밥집 휴락(465-1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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